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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존일본인13. 하세가와 워크스(長谷川組) 밀반출 사건(1952년,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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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한국에 잔류한 일본인 중, 일부는 정말 추하게 행동했다. 그들은 일본으로 귀환하기에 앞서, 멀쩡한 기계를 일부러 망가뜨려서 고물로 만들어 처분해 갔고 이러한 행태는...
잔존일본인12. 일본 종군기자들이 구출한 일본인 고아 거지(1952년 발견,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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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시기에 자행된 무차별 폭격은 수많은 전쟁난민과 고아를 남겼다. 그 중에는 잔존일본인 고아도 있었다.
잔존일본인11. 나카노(中野), 야마다(山田, 부산, 1951년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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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을 계기로 일본인들이 후방지원을 위해 한국에 체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잔존일본인들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다.
잔존일본인10. 후루카와 후지오(古川藤夫, 부산, 1950년 체포) 외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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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신문기사들의 단편들 속에서도 잔존일본인의 실체는 확인 가능하다. 적어도 1950년 1월, 3월에 이어서 6월에도 발각되었다.
잔존일본인9. 스즈키 다다요시(鈴木忠義, 1950년 당시 30세,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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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은 잔존일본인을 철저히 단속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잔존에 성공했고 1950년대에도 각종 범죄에 관여하며 암약하였다.
잔존일본인8. 야마시타 사토키치(山下里吉, 1950년 당시 32세, 히로시마 출신) 외 4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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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야마시타 형제는 해기사(海技士) 자격증을 취득해, 동해 어장에서 조업하다가 패전을 맞았다. 그들은 해방 후에 밀수업을 통해 검은 돈을 벌어들이다가 결국 꼬리가 밟혔다. 
잔존일본인7. 모토다 마스미(元田增己, 1949년 당시 50세, 전남 무안) 7인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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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청은 1947년 4월 현재 잔류일본인 남성은 없다고 보도했다. 앵무새처럼 군정청의 말을 받아쓰기 바빴던 신문보도를 통해 잔존일본인의 존재는 은폐돼 버렸다. 
잔존일본인6. 가타야마 센이치로(片山泉一郞, 한국명 김대석, 1948년 당시 42세, 서울・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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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존일본인과 친일파들이 결탁해 무수한 범죄를 저질렀다. 특히 바다를 이용한 밀항, 밀수출이 끊이지 않았다. 해방 공간에서 밀수출은 경제를 교란시키는 중대한 범죄였다. 
잔존일본인5. 시미즈 노부오(淸水信雄, 1947년 당시 18세,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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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존일본인들은 다양한 일에 종사했는데 육지에 비해, 밀수입에 관련된 이들은 일부 발각되곤 했다. 특히 잔존일본인과 친일파들은 해방 직후에도 해협을 자유로 오가며 밀수를
잔존일본인4. 마쓰모토 가메조(松本龜藏, 1947년 당시 65세,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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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4월 3일 주요 신문들은 일제히 군정청의 발언을 인용해, 더 이상 남한에 한국인과 결혼한 일본인 처 및 기술자, 송환관계자(세화회)를 제외하고 일본인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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