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혁명은 조선족 동포들의 정체성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1950년대 말 일어난 반우파투쟁과 민족 정풍운동 때만 해도 그들은 심정적으로 ‘조선 민족성’을 유지하려 했지만,...
공산주의 국가의 사상투쟁이 그렇듯 중국 공산당의 반우파투쟁과 민족 정풍운동은 주로 조선족 사회의 대학교수, 과학자, 기관 간부, 교원, 작가 등 지식인들을 집중적으로 겨냥했다....
중국에서 항일 운동을 전개했던 조선인들을 설명한 동북공정 자료는 중국 내 양대 진영에서 조선인에게 지원과 탄압을 동시에 전개해 국공내전의 패배까지 불러올 정도의 영향력을 끼쳤다는...
조선인을 적대적으로 대했던 장개석(1887~1975) 정권과 달리, 중공은 조선인들을 습격하는 중국 토비를 토벌까지 해주며 그들의 환심을 사려 했다.
일제의 패전과 우리의 해방은 만주지역 조선인들에게도 새로운 삶에 대한 갈림길을 결정해야만 하는 사건이었다. 해방 당시 중국에는 수백만 명의 조선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조선족의 형성 시점은 1950년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해방 이전에는 한반도에 거주했던 사람이든 중국 동북지역에 거주했던 사람이든, 조선인으로 불리든 한인으로 불리든
조선족은 일제강점기를 전후로 한민족이 겪은 역사의 상처와 후유증을 온몸으로 맞선 사람들이다. 그들이 살아온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 그들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한국은 2024년 아시아 최초 ‘다인종·다문화 국가’ 진입이 유력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외국인 비중이 전체 5%를 넘어서면 다인종·다문화 국가로 분류하는데 한국은...
러시아 연해주와 더불어 한민족의 고대 활동무대였던 간도는 조선 말기에는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한 영세민들의 ‘신천지’였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 지배 시기로 넘어오면서
귀환하는 우리들의 ‘동포’들과 그 가족들을 모두 같은 한국인으로 대하려는 관용과 통합의 정신이야말로 다양성 존중과 다민족 사회로 가는 ‘생태 에너지’이자 자양분임을 잊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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