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원순 진실규명 시민모임’의 선언문은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그날 진실을 향해 올바른 방향으로 걸었는가. 6년이 지나 신종오 판사의 죽음 앞에서 그 물음은 다시 돌아왔다. 답은 여전히 ‘아니다’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래서 국가가 대신 물어야 한다.

면제의 기쁨을 공식 언어로 발화하고 복무의 표식을 전리품으로 쓴 일에 대가가 없으면, 다음 금메달은 같은 문장으로 설명된다. 그 대가를 묻지 않으면, 비무장지대에서 지뢰 작업을 하다 발목을 잃은 젊은이들의 한도 풀리지 않는다. 병역 면제와 지뢰 사고는 같은 세대의 두 끝이다.

한국이 지금 할 일은 감정적으로 거절하거나 성급히 서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합의된 ‘상업적 합리성’ 조항을 방패로 삼아 가격·물량·위험 배분을 다시 쓰는 것이다. 알래스카 LNG 자체는 수십 년째 종이 위의 프로젝트로 남아 온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DMZ는 한국군 단독 공간이 아니다. 정전협정 체제와 유엔사, 실질적으로 미군이 핵심을 장악하는 감독 구조가 겹쳐 있다. 헬기 투입도, 합동 TF도, 본조사 일정도 유엔사와 공유된다. 전작권이 환수되지 않은 상태에서 DMZ의 모든 사건은 한미 동맹의 필요와 맞물릴 수 있다.

한국이 이 거래에서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주권은 ‘안 한다’가 아니라 어떤 사업에는 안 한다를 관철하는 일이다. 관세와 동맹을 한꺼번에 뒤집을 힘은 현재 구조에 없다. 그렇다고 미국 대통령이 고른 모든 사업에 공적 외화수익을 넣는 일이 동맹의 숙명은 아니다.

보유세 논쟁도 마찬가지다. 강화론은 과도한 보유를 억제하고 조세 형평을 높이자고 하고, 신중론은 임대료 전가와 은퇴자의 부담, '똘똘한 한 채' 선호를 우려한다. 어느 쪽 논리만 듣고 결정해서는 안 된다. 목적이 옳은지 다투는 데서 한 걸음 나아가, 실제로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전쟁 당사자가 되어 전투병을 보내는 일과, 위험해진 항로에서 우리 국민과 선박을 지키는 일은 같은 글자가 아니다. 다른 나라들 역시 자국 선박과 항로를 위해 군사 자원을 움직이며, 후티처럼 실제 무력 충돌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위험과 전쟁 당사자 지위는 같지 않다.

대상 기관의 일반직·무기계약직 등 정규직은 약 12만 명으로, 정부는 임원을 제외한 고용과 처우를 유지하고 중복 인력을 감축이 아니라 인공지능(AI)과 신기술 분야로 돌리겠다고 밝혔다. 이 방향은 군살 빼기가 아니라, 비대해진 공공조직을 국가 과제에 맞게 다시 짜는 작업으로 읽어야 한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중요한 것은 국적이 아니라 얼마나, 얼마나 오래 기여했느냐”고 한 말도 국적 차별이 아니라 기여·체류의 실질을 기준으로 잡자는 취지다. 따라서 해법은 국적 칸막이가 아니라, 체류 기간·실 납부 기간·부양 실체를 숫자로 고정하는 쪽에 있다.

법원행정처의 해명은 익숙하다. 소부(작은 재판부)나 전원합의체 기일을 전후해 재판에 관여한 대법관과 재판연구관의 노고를 격려하기 위한 취지였고, 처장에게는 사법행정 총괄과 대외 업무, 재판 지원을 병행하는 부담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감사 결과는 수용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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