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용이지, 눈치보기가 아니다. 같은 발언과 같은 통계를 두고 한쪽은 ‘혐오’로, 다른 한쪽은 ‘정당한 정책 판단’으로 읽는 이유는 사실이 달라서가 아니라 진영의 좌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진영 논리는 같은 자료를 진실로도, 거짓으로도 만들 수 있게 하며, 그 과정에서 정치 자체에 대한 혐오와 냉소를 키운다. 2026년 10월 27일 국무회의에서 나온 이재명 대통령의 외국인 노동자 관련 발언과 그 이후의 보도·반박·비난이 바로 그 구조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대통령은 농업·축산업 등의 인력난을 논의하던 중 “외국인 노동자들을 불러다가 해도 국가 경제에 크게 도움이 안 되고 전부 다 송금해 버리고 그러니까”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인건비를 지원하더라도 내국인 고용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자고 했다. 발언의 초점은 국내 실업 문제 해소와 내수 활성화, 그리고 농촌 인력난에 대한 현실적 대책에 있었다. 이후 엑스에서 밝힌 해명은 보다 분명했다. “일자리 문제 해결이나 소비 촉진, 내수 진작 등 경제 기여도를 고려할 때 국외 송금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국내 경제에 도움은 되나, 내국인 노동자보다는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기 때문에 인건비 지원을 통해 내국인 고용을 늘리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발언의 전후 맥락상 비교 화법임이 분명한데도 ‘도움 안 된다’고 전제하고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었다. 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국내 경제에 더 크게 도움이 되는 내국인 고용을 재정 지원을 통해서라도 늘려야 한다는 실용적 판단이었다. 청와대 역시 앞뒤 맥락을 잘라 외국인 혐오 논란으로 이어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크게’라는 단어를 뺀 제목을 달아 ‘외국인 노동자, 국가 경제에 도움 안 돼’로 보도했다. 한겨레는 대통령의 정정과 사과 요구 뒤에 제목을 수정했지만, 이미 형성된 프레임은 혐오 발언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이주노동자 단체와 일부 진보 정당·노조는 극우 진영에서 나올 법한 차별이라고 규정했고, 송금을 문제 삼는 것 자체가 낙인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이주노동자가 창출하는 경제적 가치가 수십조 원에 달한다며 차별적 인식이라고 규탄했고, 정의당 등도 노동자가 임금을 받아 송금한 것을 타박하는 태도를 문제 삼았다. 반대로 대통령 지지 쪽에서는 언론이 의도적으로 왜곡해 정부를 흔든다고 보았다. 같은 문장, 같은 통계, 같은 정책 제안이 한쪽에서는 인권과 다문화의 후퇴로, 다른 쪽에서는 국내 고용과 내수 보호의 시도로 읽힌다.
이 차이는 사실의 차이라기보다 진영의 해석 규칙에서 나온다. 한쪽 진영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의 기여를 강조하고 차별 프레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정체성의 일부다. 따라서 ‘크게 도움이 안 된다’는 비교조차 위험하게 들리고, ‘전부 다 송금’이라는 과장된 표현은 곧바로 혐오의 증거가 된다. 다른 쪽에서는 국내 실업과 농촌 인력난, 임금의 해외 유출을 우선시하는 것이 정체성이다. 따라서 비교 화법을 강조하고 언론의 제목 조작을 부각하며, 발언의 정책적 취지를 옹호한다. 진영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무시할지를 미리 정해 둔다.
2025년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에서 전체 외국인의 총소득 대비 국내외 송금 비중이 25.5%, 생활비가 37.3%라는 숫자는 한쪽에서는 대통령 발언의 과장을 증명하는 근거가 되고, 다른 쪽에서는 비전문취업(E-9) 체류자의 송금 비중 56.5%, 생활비 20.3%를 들어 내수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같은 자료가 두 개의 진실로 작동한다. 진영은 자신에게 유리한 숫자를 선택하고, 불리한 숫자는 맥락에서 분리하거나 축소한다.
실용을 기준으로 보면 판단은 달라진다. 외국인 노동자는 내국인이 기피하는 업종의 생산을 유지하고 사업장을 존속시키며 국내에서 주거비와 생활비 일부를 지출한다. 이 기여를 송금액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불완전하다. 동시에 특정 업종에서 송금 비중이 높고, 내국인 고용에 비해 국내 소비·고용 승수가 낮다는 비교는 통계적으로 근거가 있다. 정부가 인건비를 지원해 내국인 고용을 늘리려는 방안은 재정 부담과 고용 대체 효과, 생산성, 세수까지 종합적으로 따져야 하는 정책 문제이지, 혐오냐 아니냐의 정체성 문제가 아니다.
농촌과 축산업은 이미 외국인 노동력에 의존해 사업장을 유지하는 구조가 고착화돼 있다. 이 구조를 그대로 두고 인력난만 메우기보다, 인건비 지원이라는 재정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내국인 일자리를 늘리고 임금이 국내에서 순환되도록 하자는 제안은 실용적이다.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경제의 내부 순환을 강화하고 외국 의존을 줄이며 국내 고용을 우선하는 자립적 대책에 가깝다. 임금의 상당 부분이 해외로 유출되면 생산은 일어나도 내수 효과가 제한된다는 문제의식은 국가 단위의 경제 효과를 우선하는 관점과 맞닿아 있다.
눈치보기는 이 실용적 계산을 가로막는다. 한쪽에서는 차별 프레임에 걸릴까 봐 국내 고용 우선을 말하기 어렵고, 다른 쪽에서는 정부 비판에 이용될까 봐 발언의 과장과 한계를 인정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정책 논의는 진영의 신호 경쟁으로 바뀌고, 농촌 인력난과 국내 실업이라는 실제 문제는 뒤로 밀린다. 진영 논리가 진실과 거짓을 동시에 가능하게 만드는 이유는 검증의 기준이 사실의 정합성이 아니라 진영의 이익과 정체성에 있기 때문이다.
언론이 제목에서 핵심 단어를 빼면 그것은 사실 왜곡이다. 대통령이 “전부 다”라고 과장하면 그것도 사실의 한계다. 그런데 진영은 한쪽의 왜곡만 크게 보고 다른 쪽의 한계는 작게 보거나, 그 반대로 한다. 이 선택적 검증이 반복되면 시민은 어느 쪽 말도 온전히 믿기 어려워진다. 정치가 사실의 공방이 아니라 프레임의 공방이 될수록, 정치 자체에 대한 혐오가 커진다. ‘어차피 다 자기 편 유리하게 말하니까’라는 냉소가 확산되고, 실용적 판단보다 어느 편에 서느냐가 더 중요해진다. 이번 논란에서도 일부 보도는 정확한 인용보다 혐오 프레임을 우선했고, 일부 방어는 과장된 표현의 문제를 언론 탓으로만 돌렸다. 양쪽 모두 진영의 논리를 강화했지만, 사실의 복원과 정책의 실용성은 약화됐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용적 기준이다. 국내 실업을 줄이고 농촌 사업장을 유지하면서 내수 순환을 높이는 방안이 무엇인지를 따져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의 생산 기여와 송금으로 인한 유출을 함께 계산하고, 인건비 지원의 재정 효율과 고용 효과를 비교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발언의 과장은 과장으로, 언론의 제목 왜곡은 왜곡으로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한쪽의 정체성을 배신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사실을 조정하는 순간, 정책은 눈치보기의 산물이 된다. 같은 사안을 이렇게 다르게 해석하는 이유는 사실이 모호해서가 아니라, 진영이 사실을 해석하는 규칙을 이미 정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 규칙을 잠시 내려놓고 실용의 계산을 앞에 두는 것만이, 진실과 거짓을 동시에 가능하게 만드는 진영 논리와 그로부터 비롯되는 정치에 대한 혐오를 줄이는 길이다.
노동의 가치와 경제적 효과, 국내 고용과 내수라는 기준이 국적보다 앞설 때, 논란은 소모적 프레임이 아니라 실제 문제를 푸는 논의로 바뀔 수 있다. 내국인과 외국인의 고용을 대립시키기보다 국내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기피 업종의 임금과 근로 조건, 내수 순환의 한계, 재정 지원의 효율—를 해결하는 것이 정책의 목적이어야 한다. 언론이 발언을 정확하게 인용하고 맥락을 설명하며 주장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역할을 수행할 때, 그리고 시민이 진영의 신호보다 실용의 계산을 우선할 때, 정치에 대한 혐오는 줄고 사실의 공방이 가능해진다. 결국 필요한 것은 편 가르기가 아니라 사실의 복원과 실용적 판단이다. 그 기준이 설 때 일자리 확대와 사회적 통합이라는 두 목표를 함께 추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