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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ther Corea or Korea, dignity comes f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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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回顧/懷古

칼럼
PinkPepper

懷古162. 안중근과 문세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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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0. 26
유권자의 능력
영화가 점차 변방이 되어가는 극우의 분발을 촉발할 정도로 한국 사회의 정치적 에너지는 성장했다. 수십 년을 행위로 증명한 문재인, 김어준, 유시민 등 셀 수 없는 프락치들과 만년 좌파 정당 이미지를 벗지 못하는 무능한 민주당과 소수 야당 내 좌파 행세가 공적 이익 실현에 전혀 무관심한 사실이 드러났다. 추악한 그들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민심이 변한 것은 문재인에서 윤석열로 이어진 정치 현실과 실패한 비상계엄 때문이지, 성장한 대중의 지각 능력 덕이 아니다. 대다수 민중은 원래 정치 시스템이 돌아가는 원리에 접할 수가 없다. 다만 운이 좋았다.
 
정치에 가까이 가지 못하는 차단막은 독재 정치 시스템과 반공·좌익 공산당 몰이로 대중의 눈꺼풀을 덮고 사고의 확장을 막아, 이전 시대 전쟁과 식민지의 실체를 은폐하고 있었다. 반공을 내세운 이 선동은 오퍼레이션 트러스트(Operation Trust: 소련이 가짜 反 볼셰비키 조직을 만들어 실제 반공세력을 유인하고 무력화한 작전)와 같은 방식의 기만 공작이다. 그런데 학력 좋은 엘리트나 반대로 그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이 같은 길, 즉 반공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것은 재미있는 현상이다. 배운 자와 못 배운 자가 같은 길을 걷는 것은 그 속성에 물리적 고문과 폭력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반공주의는 학력의 높고 낮음보다, 서로 다른 계층의 이해와 불안을 하나의 적대 서사로 묶는 정치적 언어로 작동해 왔다. 엘리트에게는 기존 권력과 질서를 지키는 수단이 되고, 불안한 대중에게는 복잡한 현실을 선악의 구도로 이분화하고 소속감을 확인하는 틀이 된다. 이처럼 동기는 달라도 같은 반공 노선에 결집할 수 있다는 점, 공포 정치의 현실을 합리화하는 엘리트와 공포를 몸으로 순응하는 인간의 이해가 같다는 점은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오퍼레이션 트러스트와 같은 기만 공작은 음모적 공작을 파헤치려는 에너지를 유인하고 분산시켜, 진실 규명과 저항의 동력을 약화할 수 있다. 그래서 음모론은 거짓된 이야기를 믿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그것을 진실이라고 확신한 사람들이 실제 행동에 나서면서 또 다른 음모, 즉 역음모(Counter-Conspiracy)를 양산할 수 있다. 영화 ‘암살자들’은 바로 이러한 기만과 역음모의 작동 방식을 되짚어 볼 계기를 제공한다. 이제는 과거의 좌익 몰이가 어떤 정치적 목적과 공작에 의해 이루어졌는지, 그 실체를 역사적 사실과 증거에 근거해 철저히 규명해야 할 때다.
 
천만 배우라는 유해진 개인을 향해 던진 돌은 천만 배우 故 이선균을 행해 던진 돌과 유사하다. 필요하면 영웅이고, 필요에 반하면 악마화해서 목숨을 앗아가거나, 목숨을 버리도록 종용한다. 배우조차 개처럼 죽을 때, 일반인은 개만도 못한 운명이라는 점, 알고 행위의 주체가 되길 바란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정치 방식과 이명박의 댓글 부대가 만들어낸 국민성에 반영된 이념 몰이의 답습을 영화판에서 본다. 그러나 대세는 이 악질적인 보수를 표방한 극우 선동의 만연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대중의 눈을 덮었던 ‘보수 기득권 판타지’라는 콩깍지가 떨어져 나가는 중이다. 기득권을 옹호한다고 내가 기득권의 반열에 올라가지 않음이요, 주진우 의원 등의 공적 분노 표출을 핑계 삼고 주진우를 부자 되게 하며, 위법을 희석해 문제의 실체를 용두사미로 만드는 방식, 이는 민주당이 공과 사, 모두에서 좌파를 표방한다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우파의 실체라고 보면 된다. 대한민국의 우파는 생물학적으로 친일파와 오장육부를 섞어나온 일제의 잔재로 국내외 곳곳에서 여전히 준동하고 있다. 교수, 학자, 의사, 종교, 기업인의 형태로 포장을 하고 있어도 본질에서 그들은 대한민국이 하나 되는 걸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 유해진 집 앞을 포위하는 그 뒤 배경에 누가 있는지 이제 공권력이 답할 차례다.
 
 
문세광의 역량
문세광(文世光, 1951~1974)은 23세 생일을 엿새 앞둔 만 22세에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혈흔이 낭자한 장봉화의 시신과 달리 육영수는 피 한 방울이 보이지 않게 버선발을 양쪽에서 잡아끌고 사라졌다. 사건 동영상은 누가 봐도 문세광이 쏘았을 방향도 위치도 아니다. 문세광이 박정희를 쏘려다 육영수를 쏘아 죽이게 했다는 것은 넌센스다. 그 어린 애를 누가 어떻게 섭외했는지, 관련자는 살아 있다면 양심선언 하라. 위조 여권을 쓸 수밖에 없는 신분이 어떻게 오사카 파출소에서 권총을 훔쳐서 고급 차를 타고 무대까지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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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shorts/tN_sNROzZF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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靜岡年鑑 1975년
 
다만, 그 시대는 정치도 국민도 눈뜬장님의 세상이었다. 문세광의 죽음은 식민지 청산 불발의 역사 죄업과 한일간의 정치적 비화와 맞닿아 있다. 그의 죽음 이면에는 한국인의 인권이 완전히, 그리고 철저히 짓밟고 무시해온 세계사와 무관하지 않으며 지금도 그 구조는 틀을 다 깨지 못한 채 여전하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전대미문의 법으로 일본의 식민지 죄업을 청산해준 장본인들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생존과 민족 멸망의 과거사를 제멋대로 거래했기 때문에, 이들이 온전한 인간관계 속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바탕으로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더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이들의 과거지사를 옹호해온 정서로 살도록 세뇌 훈련되었고-그것이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것인지, 세뇌에 따른 것인지는 별개로-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저마다 성인이 되어 자식을 낳고 가르치고 늙었으니, 자식 세대가 ‘정치와 어른’을 쉽게 무시하는 풍토를 나무랄 수 없는 노릇이다. 개와 유사한 본능적 삶을 추종하는 정치를 체험한 사회 구성원들이 업보처럼 개와 유사한 행동을 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인가, 아니면 인과응보인가. 독자들은 문세광의 죽음이 상징하는 근현대사 은폐에 발길질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문세광이라는 이름은 비현실적인 정치를 현실에서 원 없이 펼쳤던 이승만과 박정희의 잔인한 살상 정치의 희생제물이라는 상징성 외에도, 두 독재자의 식민지 청산 불가 정책 시행 과정에서 재일교포에 간첩 누명을 씌우며 양국에 공안 분위기를 조성한 악질적 정치 피해자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이중 희생양이다. 즉, 문세광은 제멋대로 역사 문제를 봉쇄한 중범죄자들이 택한 연출 기법, 자신을 희생물로 연출한 사건에서 악역을 맡게 된 ‘속은 자(The Victim of Deception)’다.
 
그런데 문세광의 이력과 족적은 팔수록 엉성한 의문투성이인 데다, 해방 이후 재일교포 수난사, ①일본에서 체포·수감되거나 사형을 받은 사례, ② 전후 전범 재판으로 수감된 조선인 한국인, ③ 재일동포가 한국에서 수감·사형을 받은 사례로 분류할 때, 박정희 정권의 이중정치, 즉 공안 사건과 기생 관광이 공존했다는 믿기지 않는 현실 세계와 너무나 동떨어지는 취급을 받아 22세의 어린 나이에 정치적으로 인생을 도용당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재일한국인정치범 구원 가족교포회’의 집계를 인용해, 1970~80년대 관련 간첩 사건 160여 건 중 국내 출신을 제외한 재일교포 출신 사건이 120여 건으로 집계했다. 문세광 사형이 아니더라도 남의 인생을 망치는 정치는 한일 양국에서 식은 죽 먹기였고 그 중 대표적인 사건은 1975년 11월 22일 중앙정보부 대공 수사국장이던 김기춘에 의해 발표된 공안 사건이다. 재일동포 13명을 포함, 총 21명을 간첩으로 기소했던 중앙정보부 조작 간첩 사건으로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으로 몰린 서승·서준식 형제 사건이라고도 한다. 바로 전해에 육영수가 죽었으니, 이 정도 사건은 지속해야 공포 정치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본다.
 
재일교포 서승(徐勝, 1945~)은 1971년 서울대 대학원 유학 중에 학원 침투 간첩단으로 체포된다. 그는 고문당하는 중에, 분사(焚死)를 시도해 얼굴과 상반신에 심한 화상을 입었지만,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무자비한 독재 정권 시대였다. 그는 19년간 복역했고, 1990년 석방되어 리츠메이칸(立命館) 대학교수 등을 지냈다. 형과 함께 체포된 서준식(徐俊植, 1948~)은 징역 7년과 보호 감호 10년을 거쳐 1988년 석방되었고 인권 운동가가 되었다. 두 형의 구명운동에 참여했던 막내 서경식(徐京植, 1951~2023)은 불문학과 출신 작가로 도쿄경제대 교수였으며, 2023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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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서승에 대해 검색하면 불법·유해 정보(사이트)에 대한 차단 안내가 뜬다. 친일 반민족주의자들아, 너희들은 언제까지 역사를 틀어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요즘 사람들은 국가보안법의 위력을 모르지만, 그 위세를 경험한 세대는 국가보안법이라는 말만 들어도 오줌을 지렸다. 민주당 김근태 의원과 이해찬 의원이 바로 이 법 때문에 고문으로 몸과 마음이 불행한 고통의 삶을 살았던 사실이 엄연한데도 배부른 돼지들은 수치심을 모르고 그들을 비웃고 여전히 그 시대를 추억 팔고 있는 현실은, 해석하기 어려울 만큼 암울하다.
 
그러나 이 암울한 정치의식이 뻔뻔한 대중의 소비 욕구로 치환되어 채워나갈 때, 서승 형제의 가족들은 한국에서 고문당하고 징역을 사는 두 형제를 위해 일본 국내는 물론 한국에서 구명 운동을 펼쳤지만, 이 과정을 한국의 언론은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언론은 근대 개벽 이래, 친일이며 그것은 민족을 배반하는 반민족의 속성을 벗어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유권자는 지속해서 각성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서승의 가족들이 일본으로 건너간 시대의 이야기를 어느 미디어도 조명하지 않았고 우리가 동포인 생물학적 시대를 잠재우고 폄훼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정치 생명은 이렇게 고문으로 얼룩진 유학생의 젊은 인생, 자신들을 반대하는 국민의 피로 쓰인 역사다. 자신들은 미국과 일본의 앞잡이로 개처럼 살았지만, 이들이 호사를 누리기 위해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고 죽었다. 누구의 피도 아깝지만, 지각 있고 양심을 갖춘 인사들이 죽어 나간 것은 민족을 구성하는 생물학적 혈통에 지대한 마이너스였다. 그러니까 한국은 이 시기 경제 발전이라는 선동에 매몰되어 박정희라는 정치인의 본질이 독재의 권위와 위엄을 사람의 피로 깐 붉은 카펫 위에 섰던 흡혈귀와 같았던 사실을 잊었다.
 
독재 시대에는 벗는 영화가 붐이었다. 매춘과 인신매매가 버젓이 자행되던 한국의 밤거리가 그대로 영화 소재였다. 이것만으로 독재가 돌아가지는 않았다. 1965년 한일수교 이후, 일본인 대상 ‘기생관광’이 확대되어, 1970년대 중후반에 전성기를 맞았고, 86년 아시안 게임과 88년 올림픽 개최도 기생관광 수요를 자극했고, 1990년대 이후 점차 쇠퇴했다. 한쪽에서는 일본인 현지처를 키우고 한쪽에서는 지각 있는 젊은 청춘 남성 유전자를 말살해 지금 똑똑한 테토남이 태어나지 않는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독재 미화를 위해 서방 외교관들에게 성상납을 했다. 한국은 더러운 정치가 국민을 강간한 나라다.
 
그렇게 역사는 점점 더 멀어졌다. 역사는, 하루하루 돌보지 않으면 안 되는 식물과도 같으며 인간의 족적을 되짚어 미래를 예측해본다는 의미에서 유물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다. 역사를 문명의 이기 속에서 풀어낸 서양의 실증주의로는 경제 발전기의 한국이 희석해버린 한일 역사 은폐의 한 장이 마치 밑동 채 도려낸 식물처럼 회생의 방도가 없는 채 오늘도 박근혜는 가짜 보수의 상징으로 웃음을 판다. 과거 같으면 부관참시도 아까운 존재들이다.
 
우선 인간으로서 박정희는 중혼에 불륜이 당당하던 독재 권력자로 여러 가정을 파탄 낸 인물이면서 그를 따라 하는 자들이 한때 한국 남자의 마초성을 드러내는 거로 착각하던 시대가 있었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이혼과 재혼, 그리고 ‘족보’ 문제는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역사 회복의 첫걸음이다. 물론 윤석열이 이 문제에 자유로울 수 없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현대사는 필리핀, 우크라이나보다 떨어지는 정치성을 보여줬다는 의미에서 51.6%라는 사전에 유출된 득표율로 당선된 박근혜는 선관위와 함께 수사 대상이다. 가장 더러운 오점은 세월호와 간통죄 폐지다. 불륜관계에서 태어난 첩의 딸이 대통령이 된 과정도 수상하지만, 박근혜와 박정희의 정치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에 김기춘이 있다. 이 자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꼭 짚고 넘어갈 악인의 대표성을 가진다. 이 땅에 지금 더러운 짓들이 만연하게 된 통치자 박근혜의 존재, 당시 유명했던 ‘鬼胎’의 장본인이 만든 사회니, 그 부친이 이력을 쌓았던 만주군의 횡포의 업보와 일본인으로 혈서를 써 충성을 맹세했던 박정희가 육영수를 제거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낮다. 박정희의 머리 쓰는 방식은 식민지 시대 방식이니, 그가 문세광이라는 젊은이를 다.
 
 
안중근을 소환한 일본
문세광 체포 후 일본의 한 잡지 <아시아 레포트> 1974년 11월 호는 안중근과 문세광으로 본 역사 왜곡 주장의 허점을 파헤친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기자는 재일교포로 동경 한국 연구소장 최서면(崔書勉, 1928~2020), 강릉 최씨, 본명 최중하(崔重夏)로 최규하 전 대통령의 사촌이며 이승만 정권과의 정치적 갈등으로 1957년에 일본으로 망명했다. 연희전문을 나와 대동신문(대동신문) 기자로 있었고 1947년 장덕수(張德秀, 1894~1947) 암살 사건으로 미군 정에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 장덕수는 1947년 12월 한국민주당 정치부장으로 제기동 자택에서 암살당했는데 이 사건을 수사한 미군 정은 김구, 최서면 등을 암살 주동자로 간주했으니, 1911년 데라우치 암살 조작으로 신민회를 말살한 총독부 정치와 같은 짓이었다. 6.25를 북침 남침을 놓고 싸우지 말고 더 근본 문제를 보라.
 
최서면의 일본행은 해방 후 정상적 사고(思考)로 식민지 지배기 역사에 의문을 품은 지식인들이 지적 활동을 할 수 없도록 만든 남한 사회의 관습법 탓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은 자신들의 지속 가능한 독재를 위해 우매한 대중을 만들고 저질 문화를 키운 장본인들이며 그 저질 풍토의 수혜를 입은 장본인들이다. 그 추악한 정치는 문재인, 윤석열 같은 정의감, 책임감 없고 사적 욕망 가득한 아둔한 미국과 일본의 프락치 후배들을 탄생시켰다. 재일교포는 아니지만, 최서면처럼 망명자로 대통령이 된 김대중은 민족주의 진영의 여망을 실현하지 못하고 구태한 중도 통합을 외치다가 기득권과 야합한 케이스다. 자기 목숨을 내놓지 않으면 개혁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고, 그의 정치는 결국 노무현을 제물로 삼는 결과를 낳았다.
 
기사로 돌아가서, ‘안중근과 문세광으로 보는 이토 히로부미 사살범, 박 대통령 저격범 역사 둔갑설’은 ‘이토 히로부미 암살범은 안중근이 아니다.’라는 자신의 회고록 주장에서 시작한다. 1909년 10월 26일, 음력 9월 13일 아침, 러시아 재무장관 블라디미르 코코프초프(Влади́мир Никола́евич Коковцо́вㅠ, 1853~1943)가 객차 안으로 들어와 이토를 맞이했다. 몇 분간의 대화 후 나란히 내려와 러시아 의장병 앞을 지나 외국 영사단 앞에 이르러 몇몇 사람과 악수하고 의장병을 열병하기 위해 돌아섰다. 북한의 김씨 3대가 중국행에 전용 열차를 이용하고, 특히 김정일·김정은의 중국 이동 때는 일반 열차 운행과 주변 접근을 통제하며 주요 목적지 위주로 운행했던 이유는 단순하지만, 역사의 반복을 노리는 접근을 원천 차단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요새처럼 보란 듯이 모습을 드러내는 건 수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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Влади́мир Никола́евич Коковцо́в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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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 두 번째 인물이 암살 직전의 이토
 
만주 수행에 동행했던 이토의 총아 무로타 요시아야(室田義文, 1847~1938)는 1872년에 이토의 힘으로 외무성에 입사했고, 1887년∼1890년 부산 영사를 역임, 1905년 山陽鉄道 이사, 1901년 취임한 第百十国立銀行 은행장을 십 년 넘게 재임 중, 이토의 만주 수행 중 하얼빈역에서 함께 부상했다. 주한일본공사관기록·통감부문서에 따르면, 무로타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 관련 조사·보고 문서의 작성자였다. 동학농민운동은 명칭과 성격, 발생 공간이 현대에 알려진 지식과 상충한다. 무로타의 이력도 그렇다. 그가 어디에서 근무하고 어떤 일을 수행했는지 회고록에서 전부 털어놓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조선의 추운 겨울, 펄펄 끓인 목욕 물통에 어린 딸이 빠져 익사한 사건을 서술할 정도로 자신의 주변을 냉정히 기록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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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이누가이(犬養) 내각 때인 1932년의 무로타(室田義文), 우) 최서면(崔書勉, 1928~2020)
 
무로타는 안중근을 이토의 암살범으로 기억하지 않았다. 재판에서도 안중근의 화약 잔흔은 프랑스 기병총의 탄환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토가 맞은 총은 벨기에산 FN 브라우닝 M1900, 총번 262336으로 확인되지만, 그 총의 정확한 제조 연월일과 최초 구매자로부터 안중근에게 전달되기까지의 전 과정은 알지 못한다. 문세광이 오사카 파출소에서 훔친 권총과 위조 여권으로 국내에 들어와 박을 쏘려다가 육을 쐈다는 정황과 유사 패턴이다.
 
안중근은 여순(旅順)의 관동도독부지방법원(関東都督府地方法院)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공판기록은, 이토의 얼굴을 사진으로만 봤고 킥 크고 턱수염을 기른 사람이라고 들었다고 했다. 맨 앞서가는 그가 이토라고 생각해 쏘았으나, 생각보다 왜소했다고 했다. 범인과 피살자의 화약 잔흔이 다르고 본 적도 없는 인물을 사진으로만 상상해 현장에 임했던 안중근이 권총 암살에 성공할 가능성이 크지 않은 데다 콧수염이 있는 무로타와 헷갈렸을 가능성마저 있다.
 
그러나 안중근이 진범이 아니면 진범을 체포할 때까지 사건이 종결되지 않고 사건이 러시아와 일본 간 국교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어 군사참의관(軍事参議官) 야마모토 겐베(山本権兵衛, 1852~1933)가 진범 논란을 불러올 탄환 문제를 밝히려 하지 않았다는 게 후대의 중론이다. 그러나 무로타는 항의했고, 침묵을 종용받았다. 무로타는 이토가 정치에 입문시킨 인물이고 야마모토는 이토 암살 사건에서 중책을 맡았다고 보이는 인물이지 실제 역할은 확실하지 않다. 이토가 러시아 재무장관을 만나러 만주행을 선택한 것은 남만주철도(南満洲鐵道) 초대 총재 고토 신페이(後藤新平, 1857~1929)의 주선 때문이다. 어쩌면 슬슬 이토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질 시간이 온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 제국주의는 군부와 기업이 식민지 영토를 두고 싸웠던 군국주의 체제지만, 뒤에는 더 큰 세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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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 해군 소위 시절의 야마모토(山本権兵衛), 혼혈은 유년-청년-중년-노년기의 얼굴이 전부 다르게 변화한다. 일본이 혼혈 사회로 성공한 인류사 미증유의 실험 무대였던 사실, 언제쯤 밝혀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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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총독부(台湾総督府) 민정장관 시절로 추론 되는 고토(後藤新平)
 
안중근의 모친은 백천(白川) 조씨로 이름은 확실하지 않고, 흔히 조마리아로 알려진다. 조마리아는 일찍이 황해도에 들어간 프랑스 선교사들의 활동기에 출생했고 1897년 뮈텔(Gustave-Charles-Marie Mutel, 閔德孝 1854~1933) 주교에게 세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황해도가 어디인지 프랑스 선교사들이 왜 그렇게 많이 그곳에 포진해 있었는지 역사는 입을 다물고 있다.
 
황해도의 프랑스 선교사 초기 활동은 1863년 베르뇌(Siméon-François Berneux, 張敬一, 1814~1866) 주교의 방문까지 올라간다. 안중근에게 세 일가와 직접 연결되는 인물은 1896년 황해도 담당으로 부임한 빌렘(Nicolas Joseph Marie Wilhelm, 洪錫九, 1860~1938) 신부다. 1909년 당시 러시아와 프랑스는 동맹국이었고, 두 나라 모두 일본과는 1907년 각각 협약을 맺어 동아시아의 세력권을 조정하며 협력하던 관계였다. 이토 암살은 조선인 박해 수단이자, 밀정이 득세하기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으며, 이토가 조선인이라면 역할이 끝난 배우가 무대에서 사라진 것뿐이다.
(https://www.p-um.net/p/diaspora/zainichi/clocfor1w008l01ah8pokwp81)
 
1985년 중국 출생으로 한국계 미국인 학자 이정식(李庭植, 1931∼2021)은 『Japan and Korea: The Political Dimension』에서 데탕트(Détente: 긴장완화) 시대를 만난 박정희의 동요와 유신 체제 구축을 묘사했다. 미국의 아시아 개입 축소와 주한미군 감축은 박정희로서는 위기다. 코너에 몰린 박정희는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일본에서 김대중을 암살하려 했으나, 모종의 손에 의해 암살 직전 풀려나 김대중은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한국인 미래 지도자 암살이 발생하면 안 되었던 것은 민주주의 가치 훼손을 막기 위한 미국·일본의 배려가 아니라, 한국인 정치인이 일본 내에서 죽으면 안 되는 영토 문제, 해결되지 않은 과거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김대중 납치사건 관련 수사 중지를 일본에 통보한 1974년 8월 14일, 다음 날 육영수 피격 사건이 발생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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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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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정한 범죄자라는 낙인이 언제나 진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재일동포 간첩 조작 사건과 고문 피해자들의 역사가 보여주듯, 권력은 때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 무고한 사람의 인생까지 희생시켰습니다. 과거의 국가 폭력을 철저히 재조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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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非者
9
이 글은 안중근과 문세광이라는 두 인물의 의문을 넘어, 우리가 어떤 역사를 배웠고 무엇을 보지 못하도록 강요받았는지를 묻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의 진실은 권력이 허락한 기억 속에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외면당한 사람들의 삶을 복원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역사 바로 세우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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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nggil
5
안중근과 문세광이라는 두 인물을 통해 식민지 청산의 실패와 독재 권력이 역사를 이용해 온 방식을 되짚어 보게 하는 글입니다. 우리가 배운 역사가 과연 충분한 사실 위에 세워졌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은 없는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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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a
7
글쓴이께서 말씀하시려는 핵심은 특정 인물에 대한 호오가 아니라, 식민지 청산에 실패한 역사가 독재와 공안 정치로 이어지고 그 유산이 오늘날까지 청산되지 않았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를 단절된 사건으로 바라보지 않고 하나의 구조로 읽어내려는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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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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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단순히 과거의 인물을 단죄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국가 권력이 어떻게 진실을 통제하고, 언론이 무엇을 외면하며, 국민이 어떻게 선동에 휩쓸렸는지를 밝혀야 합니다. 다만 의혹은 의혹으로 남겨두지 말고 사료와 증거로 검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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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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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무서운 것은 독재자 한 사람의 폭력이 아니라, 그 폭력을 정당화하고 다음 세대에까지 미화하는 사회의 구조입니다. 경제 발전이라는 성과가 고문과 인권 유린을 지워주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과거를 직시하지 않는 사회는 같은 잘못을 반복할 위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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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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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의거와 문세광 사건을 동일한 선상에서 단정하기보다는, 두 사건을 둘러싼 기록과 증언을 면밀하게 검증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역사는 권력자의 설명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의문을 제기할 자유와 그 의문을 증거로 검증할 책임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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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용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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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지 말라는 말은 흔하지만, 정작 불편한 역사를 마주할 용기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글쓴이께서는 독재자의 공적이라는 이름 아래 묻힌 고문과 희생, 재일동포의 수난, 한일 과거사의 미청산을 한데 연결해 우리가 외면해 온 책임을 묻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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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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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세광이라는 한 청년의 삶을 통해 국가 권력이 개인의 운명을 어떻게 빼앗고, 한 사람을 시대가 필요로 하는 악역으로 만들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가 실제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관한 의문은 사료로 검증되어야겠지만, 권력의 발표만으로 역사를 완결해서는 안 된다는 작가님의 문제 제기는 무겁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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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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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글이 독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과거의 진실을 대신 판단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의심하며 역사의 행위 주체가 되라는 뜻이라고 봅니다. 누가 영웅이고 누가 악인인지 권력이 정해 준 구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기록을 읽고 증언을 살피며 감춰진 희생을 기억하는 시민만이 역사의 반복을 막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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