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바람은 나무 끝에 불고, 밝은 달은 눈 속에 찬데, 萬里邊城에서 一長劍 짚고 서서 긴 휘파람 큰 고함에 거칠 것이 없구나.
* 김종서(金宗瑞, 1383~1453)는 자가 국경(國卿), 호가 절재(節齋)로 충청도 지명에 절재로(節齋路)가 있을 정도니, 조선 초에 공이 큰 신하로 품격이 높은 인물이다. 그런데 이 조선이라는 나라, 파면 팔수록 명확하지 않고 모호하다. 청구영언은 김종서의 시를 시작으로 ‘본조(本朝)’라는 표현을 썼는데 본조는 현존하는 왕조의 조정을 의미한다. 그런데 실록-조선, 명, 청-의 형식과 문체는 공통점이 많고 本朝·上·詔·遣使·朝貢 같은 표현 또한 공유하고 있어 기록의 주체가 구분되지 않는다. 15세기 일본의 귀족 일기 『実隆公記』는 ‘高麗’라고 기록했으니, ‘여말 선초’라는 표현도 내수용 역사다. 외부 세계는 과연 ‘우리’를 무엇이라고 정의했던 것일지, 생각해볼 때다. 조선왕조실록과 명청 실록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은 것은 중요한 시사점이다.
이 시상은 차갑고 거센 변방의 자연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인물의 기개가 거센 바람과 달빛, 눈이 혹독한 만리장성에서 드러난다. 긴 칼 짚고 서 있는 늠름하고 우렁찬 휘파람 소리는 시청각을 압도하는 김종서의 자신감을 표현하고 있지만, 현대의 우리는 그의 북방 활동을 전혀 알 수 없다. 모든 역사는 일제가 침을 발라 놓았기 때문에 허접한 역사 서술을 암기해서 담론화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식민지 지배는 영원한 굴레니, 빠져나갈 생각을 말고 앞으로 100년의 복기 작업(review)을 필수로 봐야 한다.
김종서의 이 시에서 만리장성을 저 먼 변방의 어느 성(城)으로 해석해온 한국인의 정서는 완전한 사대주의 정서다. 청구영언 역시 일제의 입김이 작용한 시조집이지만, 굳이 ‘만리장성’을 왜 그대로 두었을까. 역사는 비밀이 많다. 영토 전쟁을 숨기고 문화의 이동을 감추며 뺏고 뺏긴 역사도 감추었기 때문이다.
1917년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는 만리장성 건설을 소재로, 거대한 국가사업에 참여하면서도 그 목적과 권력의 실체를 알지 못하는 인간의 처지를 그린 미완성 단편을 집필했다. 원제는 ‘Beim Bau der chinesischen Mauer’, ‘만리장성의 축조 때’ ‘만리장성의 축조’ 등으로 번역한다.
중국 남부 출신 화자가 장성 건설에 참여했던 경험을 회고한다. 일정한 구간을 완성하면 바로 옆을 이어 짓지 않고 멀리 떨어진 다른 현장으로 이동한다. 그 때문에 장성 곳곳에 빈틈이 남는다. 외적을 막는 성벽이 아닌, 보여주기 만리장성 축조다. 누가, 왜 이런 방식을 지시했는지는 알 수 없다. 화자는 최고 지도부에 깊은 뜻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그 의도를 끝내 설명하지 못한다. 백성들은 북방의 적을 직접 본 적이 없지만, 그 적을 막기 위해 인생을 바친다.
현대의 만리장성은 새로 탄생한 중국 (New China)를 위해 새로 지은 만리장성이다. 카프카 생존 또는 그 전시대에 쌓았다고 볼 수 있지만, 역사적으로 이를 증명하려면 시간이 필요하지, 자료는 넘친다. 카프카는 유대계 소설가로 세기말(fin de siècle), 기존 질서의 쇠퇴, 퇴폐와 불안을 그렸지만, 그 시절 누구도 빅 브라더를 알지 못했다. 물론, 우리는 문무를 겸비한 김종서의 능력도 충심도, 인종도 키도 좋아하는 음식도 빅 브라더도 알지 못한다. 인간의 역사는 파괴의 순간에도 이유를 모르는 게 현실이다.
1) 朔風 - 朔은 북의 뜻이며, 朔風은 북풍, 곧 겨울의 맵찬 추운 바람. 북방을 ‘削榜’, 북방의 기운을 ‘朔氣’, ‘北邊’을 ‘朔雪’이라고 함.
2) 나모긋 : 나무 끝에. ‘나모’는 나무의 옛말. 다음에 母音으로써 비롯하는 조사가 올 때는 ‘나ᇚ’이 된다. (시조 1의 (2) 뎜그디도條 참조)
3) 듸 : 찾는데. ‘ᄎᆞ다(充·滿)의 활동형. 여기선 明月이 눈속에 가득 비취어 있는데.
4) 萬里邊城 : 멀리 떨어져 있는 국경 부근의 城이니, 邊塞의 뜻. 여기서는 金宗瑞가 가서 지키던 咸鏡道 북방에 있는 六鎭을 가리킴이다.
5) 람 : 휘파람
6) 큰소릐 : 크게 한번 내지르는 소리
7) 거칠것 : 거역하는 것, 가로 막는 것
8) 업세라 : ‘없애라’의 連綴로 없도다. 없구나. 語尾 ‘에라’는 ‘ᄒᆞ얘라’ 形. (참조 시조 7의 (3) 머흐레라)

백두산에 깃발을 꽂고 두만강에 말을 씻기니 썩은 저 선비야. 우리는 사내대장부가 아니더냐. 어떠하냐, 기린각에 화상이 누가 먼저 걸리겠는가.
* 백두산을 장백산으로 표기한 이른 시기의 기록물에 남송(南宋) 홍호(洪皓)의 『松漠紀聞』 속편이 있다. ‘長白山在冷山東南千餘里, 蓋白衣觀音所居。其山禽獸皆白, 人不敢入, 恐穢其間, 以致蛇虺之害。(장백산은 냉산의 동남쪽 천여 리에 있으며, 백의관음이 거처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 산의 새와 짐승은 모두 희다. 사람들은 그 안을 더럽혀 뱀과 독사의 해를 입게 될까 두려워 감히 들어가지 못한다.)’ 냉산(冷山)은 지금의 흑룡강성(黑龍江城)에 비정했으나, 이 기록을 곧이 믿는 어리석음이 한국인을 단순하게 만들었다. 가짜 역사라며 가짜 지명을 믿어 왔으니, 두뇌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치매를 막으려면 역사를 뺏긴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깨어 있어야 한다.
북방에 군사를 끌고 나가 위세를 떨치던 북방 개척과 국경 수호의 자신감을 드러내는 시적 표현이지만, 굳이 김종서가 실제 백두산 정상에 깃발을 꽂았다고 볼 수 없다는 기존의 해석은 누가 정의 내린 결과일까. 김종서는 만리장성에 서고 백두산에 승리의 깃발을 꽂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학문으로서의 역사의 본질이 영토문제이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그 영향이 미치는 지정학의 문제여서이다. 그런데 어쩌면 김종서는 북벌이 아니라, 남벌일 수도 있고 서벌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알 수 없다. 아무것도 단정하지 말아야 비로소 보이는 역사다.
좁은 식견과 형식적 학문에 갇혀 행동하지 못하는 부유(腐儒: 생각이 낡고 완고한 쓸모없는 선비)를 꾸짖으며, 큰일을 감당하고 나라에 공을 세워 기린각에 초상이 걸리는 영예를 겨루자는 주장이다. 김종서가 멀리 한나라의 공신 초상을 시구에 넣고 만리장성을 노래했을까. 시가집 청구영언도, 실록도 믿을 게 없다면 한국인들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이것을 과연 정치가 손을 댈 수 있는 영역일까.
9)( 長白山 : 滿洲와 한국의 경계를 지우는 산으로 滿洲에선 長白山이라 하며, 한국에서는 白頭山이라고 함
10) 서근 져 션븨 : 좀된 저 선비. ‘서근’은 썩다(腐)의 冠形詞形이 아니고 혁다(小)의 冠形詞形으로 보고자 한다.
11) 나희 : 사내. (男兒) 大丈夫라는 뜻. ‘사나ᄒᆡ’에서 온 말. 이 말은 ‘ᄉᆞ나ᄒᆡ>ᄉᆞ나희>ᄉᆞ나의>사내’로 전해 온다.
12) 獜閣 : ‘獜’은 麟과 통하며 麟閣은 ‘麒麟閣’과 같은 것이고, 麟閣은 麒麟閣의 준 말이다. 麒麟閣은 前漢의 武帝가 麒麟을 얻었을 때에 지은 높은 집이니, 後에 孝宜帝가 거기에 國家 功臣을 그려 건 것이다.
13) 누고 : 누구(誰)

수양산을 바라보며, 백이와 숙제를 한탄하노라. 주리어 죽을지라도 고사리를 뜯어 먹는 것인가. 비록 풀일망정, 그것이 누구의 땅에서 났더냐.
* 매죽당(梅竹堂)은 단종 복위를 꾀한 사육신 성삼문(成三問, 1418~1456)의 호다.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무너뜨리자, 이를 옳지 않게 여겨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겠다며 수양산으로 들어간 인물들이다. 이 시조의 화자 성삼문은 백이·숙제 고사에서 더 나아가 “주나라 곡식을 거부했다면, 주나라 땅에서 자란 고사리도 먹어서는 안 되지 않느냐?”라고 따진다. 백이·숙제를 꾸짖는 형식을 취하지만, 그들보다 더 철저하게 절의를 지키겠다는 결의에 차 있다.
마지막의 ‘누구의 땅이냐’라는 물음은 ‘수양산’의 ‘수양’을 수양대군으로 해석할 때, 세 가지 함의가 떠오른다. 첫째, 주나라 땅이 누구의 땅인가, 즉 백이·숙제가 성삼문에게 외국인이라면, 만리장성 노래한 김종서도 성삼문도 실성한 사람에 가깝다. 이들의 표현은 마치 현대 한국인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상상하며 자신의 인생을 고대 이집트에 거는 셈이다. 김종서 시대에도 만리장성은 전설과 같았을 것이고, 성삼문 때 백이·숙제 고사는 단종을 섬기기에는 철저히 먼 과거의 일이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국사와 세계사가 혼합된 가치관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과연 피라미드·스핑크스의 건설 주체는 어떤 문명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통신이 없던 오백 년 전에는 문화에 이질감이 없던 세상이었을까.
14) 首陽山 : 수양산은 중국에서도 여러 지방에 同名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황해도에 同名이 있다.
15) 夷齊 : 伯夷와 叔齊의 약칭.
16) 주려 주글진들 : 주리어 죽을지라도. ‘ㄹ진ᄃᆞᆯ’은 현대어의 ‘ㄹ지라도’에 해당하는 假定不拘束形.
17) 採薇 : 고사리를 캠. 伯夷, 叔齊는 殷 이 망하고, 周天下가 됨에 周粟을 먹지 아니 하기 위하여, 수양산에 들어 고사리를 캐어먹고 餓死함.
18) 것가 : 하는 것인가. ‘가’는 평서에 쓰는 의문형 어미. 이와 대응하는 ‘고’는 겸양적이고, 의문의 정도가 약하다.
19) 비록애 : ‘비록’과 같은 말. 부사 ‘비록’에 조사 ‘애’를 가져옴으로써 뜻을 강조한 것이라 할가?
20) 푸새엣 : 푸새의. ‘엣’은 冠形格助詞의 ‘의’ 處所格助詞 ‘에’에 사잇소리가 연결된 語形.
21) 긔 : 그것이. ‘그+이’의 結合形. ‘그’는 代名詞. ‘이’는 不完全名詞.
22) 낫니 : 났더냐. ‘ᄃᆞ’는 回想補助語幹 ‘더’의 訛綴. ‘니’는 疑問終止形 어미. (시조 2, (3) 어듸가니 참조)

이 몸이 죽어서 무엇이 될 것인고 하니, 봉래산 제일 높은 봉우리에 우뚝 솟은 소나무가 되었다가 흰 눈이 온 세상에 가득 찼을 때 홀로 푸르고 푸르리라.
* 작품의 핵심은 죽은 뒤에도 소나무가 되어 절개를 지키겠다는 결의다. 앞의 ‘수양산 바라보며’가 백이·숙제의 처신을 따지며 단종에 대한 절개를 드러냈다면, 이 작품은 자신의 사후 모습을 그린 의지의 표현이다. 온 세상이 다른 권력을 따르더라도 자신은 홀로 단종에 대한 충성을 지키겠다는 뜻이다. ‘흰 구름’은 녹을 때가 있으면 쌓일 때가 있는 법, 지금이 바로 눈 녹을 때가 아닌가 싶다.
단종의 비극처럼, 황실 혈통의 비극적 말로는 대략 세어봐도 수십 건, 사사(賜死)와 독살을 합하면 훨씬 많다. 거대한 신화 같은 서사가 된 역사를 현실적 사건으로 분석해도 현대인이 알 수가 없게 된 것은 침 바른 역사, 일제의 장난질 탓이다. 남의 탓을 내 탓으로 간주해온 관행은 한국인들을 역사 바보로 만든 주범이다.
23) 蓬萊山 : 발해 중에 있다고 전하는 三神山 중 하나. 仙宮 神仙이 있다고 전함. 우리나라에선 금강산(夏)에 비하기도 하나 여기선 임금이 계시는 서울 주위의 산, 특히 남산에 비유하였다고 본다. (本首 (2)※ 참조)
24) 第一峰 : 제일 높은 꼭대기
25) 落落長松 : 성하게 뻗어 높게 자란 소나무. ‘落落’은 ‘높은 모양’을 말함.
26) 滿乾坤 : 하늘과 땅에 가득 참.
27) 獨也靑靑 : 홀로 푸르고 푸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