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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붓끝에 서린 靈魂영혼 - 서예의 造形조형과 心象심상 – 11 – 추사의 대표작 不二禪蘭圖불이선란도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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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난초 잎 사이에 쓴 두번째 발문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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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草隸奇字之法爲之 초서와 예서, 기이한 글자를 쓰는 법으로써 그렸으니
世人那得知 세상 사람들이 어찌 이를 알 수 있으며
那得好之也 어찌 이를 좋아할 수 있으랴?
謳竟 又題 구경이 또 쓰다
 
이번 발문은 앞의 것과는 달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전통적인 방법으로 써 내려갔다.


서예의 글씨를 쓰듯 난초를 쳤다고, 난초의 잎을 초서와 예서를 쓸 때 터득한 필획의 방법으로 쳤음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이렇게 서예의 기법으로 난초를 그렸으니 난초라는 대상을 묘사하였다기 보다는 그림을 그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추사 김정희에 앞서 청나라의 板橋판교 鄭燮정섭을 비롯한 揚州八怪양주팔괴란 전위적인 작가그룹은 서예의 필획을 써서 기이한 그림을 그리고 독특한 글씨체를 유행시켰는데, 그 영향을 받은 추사 김정희는 그 경지를 더욱 한 차원 높게 끌어 올린 것이다. 추사 김정희 자신도 다른 사람들이 이 작품을 쉽게 잘 이해하기 어려우리라는 판단을 한 끝에 이 발문을 썼을 것이다. 그는 당시로서는 초 현대적인 추상 작품을 그려 놓고, 스스로 해설까지 붙인 것이다.
세번째 발문은 왼쪽 난초의 꽃 아래에 썼다. 첫 번째 발문과 같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 내려가는 파격을 보였다.
 
始爲達俊放筆 처음 달준에게 주려고 마음 놓고 그렸다
只可有一不可有二 단지 이 그림 하나만 있을 수 있고, 두 번 다시 같게 그릴 수 없다.
仙客老人 선객노인 쓰다
 
추사 김정희는 처음 이 그림을 달준이라는 사람에게 주려고 편안한 마음으로 放筆방필하다 나온 것임을 말한다. 그런데 소산이란 사람이 뒤에 그림을 보고 달라고 하니, 이런 그림은 하나만 있지 둘은 있을 수 없어 다시 그릴 수 없다는 추사 김정희의 생각을 써 놓은 것이다. 우연히 일필휘지한 순간에 자연스럽게 나온 흡족한 작품에 자신도 놀라 두 번 다시는 같은 그림을 우연히 그릴 수도 없겠고 그리지도 않겠다고 말하는 듯하다.


추사 김정희는 여기서 이런 그림이 나올 수 있었던 경지를 유마의 不二禪불이선의 경지로 생각한 듯하다. 그림의 난초와 글씨는 바로 추사 김정희 자신이 되고, 추사 김정희는 난초와 글씨가 되는 경지이다. 그림이 곧 사람이고 사람이 곧 그림인 不二불이의 경지를 체험한 것이다. 자신의 그림의 이치가 곧 불교의 선의 이치와 통하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추사 김정희는 書畵一致서화일치의 이상을 넘어 畵禪一致화선일치의 경지를 불현듯 일궈냈고, 그 결과와 성취에 스스로 놀라워했던 셈이다. 그래서 이 그림 하나만 있을 수 있고, 두 번 다시 같게 그릴 수 없다는 발문은 추사 김정희가 이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던진 話頭화두라고도 하겠다. 아니 추사 김정희가 그림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은 다음에 내어논 悟道오도의 偈頌게송 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추사 김정희가 이 그림을 통하여 던진 화두를 감상자들 각자가 자기의 도량과 수양의 깊이에 따라 알아서 이해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네번째 발문은 아주 작은 글씨로 짧게 썼다.
吳小山見而豪奪可笑 오소산이 보고서 얼른 빼앗아 가려 하니 우습도다
두 번 다시 그릴 수 없는 까닭에 어쩔 수 없이 소산이란 사람에게 그림을 주면서도 조금은 난처하였던 사연을 조그만 글씨로 써넣었다. 추사 김정희는 그림을 간곡히 청하여 가져가려는 오소산이 자신이 <불이선란도>를 그린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림만을 탐내는 것을 우습게 여긴 마음을 쓴 듯하다. 추사 김정희는 작은 한 장의 난 그림을 통하여 유마의 침묵과 같은 경지를 담았는데, 소산이 그 뜻까지 알고 가져가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적은 것이다. 그리고 이 네번째 마지막 발문의 끝에 <樂文天下士낙문천하사>(글을 좋아하는 천하의 문사)와 <金正喜印김정희인>이라는 두 개의 다른 도서를 찍어 작품을 마감하였다.


이제 본래의 그림과 글씨 부분은 지우고 난초만 남긴 그림을 통하여 자세히 살펴보자.
추사가 그린 두 촉의 난은 각각 4개와 6개 모두10개의 잎을 가졌는데, 그 길이와 굵기와 먹물의 농담의 정도는 모두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모두 왼쪽으로 향하였다가 극적으로 오른쪽으로 꺾이어 휘는 형세를 하고 있다. 마치 강한 바람에 불려 밀린 듯 자연스럽게 바른쪽 위쪽을 향하여 쏠리어 강한 태풍을 만나 버티고 있는 형세이다. 나는 추사 김정희가 이런 바람에 버티고 있는 난초의 형상을 통하여 강인한 삶을 살고 있는 백성들의 원초적인 생명력과, 정치적 시련을 견디어 내면서 살고 있는 자신의 삶과 정신을 그려 표현하였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전통적인 그림에서 난초의 잎은 윤택하고 좌우로 고르게 펼치어 지기 때문에 편안하고 균형이 잡힌 자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추사 김정희의 <불이선란도>에서 보이는 난초의 잎은 거의 오른쪽 한 방향으로 쏠려 있다. 그는 이런 쏠림을 절묘한 위치에 절묘한 방향으로 꽃대를 놓음으로써 균형을 잡고 있다. 왼쪽 여백에 불쑥 꿈틀대며 힘차게 솟아 있는 꽃대에 활짝 꽃을 피운 것이다. 강인한 꽃대와 꽃을 반대의 방향으로 돌아 앉힘으로써 바른 쪽으로만 쏠린 잎들과 균형을 맞춘 것이다. 그리고도 남는 부분에는 특이하게 세번째와 네번째의 발문을 더 써넣음으로써 좌우의 안정을 꾀하고 대비시키는 장법을 썼다.
전통적인 난초를 그리는 법에서는 잎과 잎이 적당한 곳에서 서로 만나고 어우러져 두 잎이 만나는 곳 아래에 마치 반달모양의 공간을 만든다. 봉의 눈과 같이 생긴 이 기다란 형태의 공간을 또 다른 잎이 쳐지면서 다시 공간을 적당히 나눈다. 이를 봉의 눈을 깨뜨린다고 하여 破鳳眼파봉안이라고 한다. 난초 그림은 이 때 그려지는 잎들 사이의 疎密소밀 - 성금과 밀접함에 따라 또 다시 기묘한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추사 김정희가 그린 잎들은 바람이 몹시 날리어 바른쪽으로만 쏠리는 바람에 파봉안을 여러 차례에 걸치어 만들고 있다. 따라서 기운 잎들과 그 잎들이 사이사이에 만들어 내는 공간이 기묘한 모양을 띠게 되었다. 이런 기상천외의 기법의 난초 그림은 추사 김정희가 자연 속에 핀 난초를 보고 그린 것이 아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담고 있던 난초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이는 寫生畵사생화가 아닌 寫意畵사의화이자 理念畵이념화인 것이다. 마음 속에 품은 뜻 - 心意심의의 향기가 스며 나오도록 그린 것이다. 추사 김정희는 손재주뿐 아니라 그의 혼을 난초에 불어넣어 그린 것이다. 추사 김정희는 그림에서 자신의 예술혼이 풍기는 향기와 神氣신기가 뿜어져 나오게 그린 것이다. 그가 끊임없이 공부하여 이룬 文字香문자향과 書卷氣서권기를 그림과 글씨에서 은은히 피어 나도록 그리고 쓴 것이다. 추사 김정희가 화선지 위에 난초를 그리자 그 꽃에서는 향기도 함께 그려진 것이다. 그는 마음속에 품고 있던 난을 마침내 그리고 꽃피운 것이다.


난초의 잎과 꽃잎과 꽃대는 모두 은근한 흐린 淡墨담묵으로 그렸다. 단지 花心화심만 진한 濃墨농묵으로 굵게 처리하여 담묵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강인한 악센트를 주고 있다. 이 검고 굵은 화심은 마치 서예의 점과 같이 처리되어 있는데, 옆에 쓴 화제와 같은 먹의 색깔로 처리하여 글씨와 그림 사이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이루고 있다.


글씨의 진행방향도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마음이 내키는 대로 썼다.
난초 그리기를 쉬다가 20년 만에 처음 쳤다는 이 묵란은 추사 김정희 자신도 그려 놓고 보니 뜻밖에 평소에 그리고 싶어하였고 마음에 흐뭇하게 드는 會心회심의 작품이었던 듯하다. 그는 제발에서 밝혔듯이 放筆방필로 그렸다고 했다. 즉 마음 놓고 그린 것이다. 판교 정섭이 <難得糊塗난득호도>의 경지에 이르는 법을 말 할 때 “放一着退一步當下心安방일착퇴일보당하신안 - 생각을 놓고 한 걸음 물러서는 순간 마음은 편해지며”라고 썼 듯이, 추사도 이와 같은 한 걸음 물러나 편한 마음에서 우연히 친 난초인 것이다.


추사는 난초를 그림에 있어 九千九百九十九分구천구백구십구분은 노력으로 될 수 있지만 나머지 一分일분은 노력으로도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일분이란 천분天分을 뜻하는 것으로 자유로운 예술정신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 궁극의 일분을 추사는 마침내 얻어 회심의 난초를 그려 완성한 것이다. 그가 이제 비로서 모든 집착을 버리고 自由無碍자유무애한 가운데 善선하고 禪선한 경지에 이르러 放筆방필로써 비로서 회심의 난초를 그린 것이다.


추사 김정희가 제발을 하면서 쓴 글씨를 잘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방필을 하였는지 보다 잘 알 수 있다. 글씨의 진행 방향뿐만이 아니다. 네 개의 발문은 글씨는 크기가 고르고 단정하지 않으며 줄도 잘 맞지 않고 먹물의 색깔도 고르지 않다. 그러나 첫번째와 두번째의 발문은 한 번 먹을 찍은 다음 단숨에 한번에 쓴 듯, 글씨의 진행방향을 따라 점점 먹물이 닳아 없어져 흐려지고 필선이 가늘어지면서 크기도 작게 되었다. 세번째 발문을 쓰기 시작할 때 다시 붓에 먹물을 찍어 써가니, 바른쪽 끝 줄의 글씨가 굵고 강하여 진하게 표현되었다. 따라서 먹물이 마른 다음에 쓴 오른쪽의 글씨는 자연스럽게 난초를 친 흐린 먹색과 잘 조화되었다. 네번째 발문의 글씨를 쓸 때에는 꽃대와의 사이에 남은 공간이 좁다 보니 자연 글씨도 작아지고 흐리게 처리가 되어, 바로 옆의 난초의 잎들과 조화가 되었다.


나는 이 작품의 완결성은 자연스럽게 연속하여 일어난 의외성에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을 두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연습한 끝에 어느 날 홀연히 친 난이 만든 조화에서 추사 김정희는 문득 늘 마음 속에서 그리던 不二불이의 이상세계를 느꼈을 것이다. 그는 두 번의 귀양생활을 포함하여 山戰水戰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살아온 과정에서 마음속으로 터득하고 달관하게 된 경지, 선악, 시비, 생사 등의 일체 상대적이고 이원론적인 차별상과 차별에 집착하는 마음을 비우게 되자, 스스로 공空에 들어 반야의 지혜로 中道중도를 실천하고 自由自在자유자재한 깨달음의 삶을 살아가는 보살의 길을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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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선란도>는 추사 김정희가 일필휘지로 난초를 치다 해탈을 한 경지라고 생각한다. 그는 파란 많은 삶을 산 끝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자신을 거친 바람을 이겨내고 버티고 있는 난초에 비유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윤택한 선비의 삶도 살아 보았고, 귀양지에서 가난한 백성들의 삶을 가까이서 살펴보며 그들보다도 더 거친 삶을 살아도 보았다.


추사 김정희는 자신을 윤기가 흐르는 매끈한 난초가 아니라 들의 잡풀과 같이 거친, 그러나 질긴 생명력을 지닌 난초로 표현하고 싶었던 듯하다. 그러나 그 거친 난초도 품위 하나만은 잃고 있지 않으며, 또한 꽃을 피우는 일도 잊지 않았다. 또한 고상하고 그윽한 향기를 풍긴다. 이런 강인하고 향기로운 난초를 그리는 데는 추사 김정희 특유의 추사체의 마른 渴筆갈필과 모나고 거친 方筆방필과 放筆방필의 필선과 글씨가 제격이었을 것이다.


이 그림은 특유의 추사체로 여백을 가득 메우고 있는 화제들과 함께 어우러져 詩書畵시서화 일치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필선의 아름다움과 이념의 아름다움이 극치를 이루며 융합된 이 그림은 추사 김정희의 예술세계의 뛰어난 격조와 함께 조선시대 문인화의 높은 경지를 담고 있다. 추사가 마음속으로 꿈꾸던 난이 갑자기 득도하듯 눈 앞에서 자연스럽게 그려졌다고 하는 이 그림은 문인화의 寫意사의와 文氣문기의 세계를 넘어 종교적 법열의 심오한 경지까지 그렸다 하겠다.


필자가 내 멋대로 부족한 언어의 표현으로 이런 해석을 다는 것 자체가 쓸데없는 노력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우리 모두 추사 김정희가 말한 유마거사와 같이 침묵의 행동으로 다시 이 작품을 감상하여 보자.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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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ario
7
추사의 <불이선란도>를 단순한 난초 그림이 아니라 서예와 회화, 선과 삶이 하나로 만나는 작품으로 풀어낸 해석이 인상적입니다. 특히 네 개의 발문과 난초의 방향, 먹의 농담까지 연결해 읽으니 그림 전체가 하나의 수행 과정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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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kyung90
5
“두 번 다시 같게 그릴 수 없다”는 추사의 말이 이 글을 읽고 나니 새롭게 다가옵니다. 단순한 자부심이 아니라 오랜 수련 끝에 우연과 필연이 한순간 겹친 예술적 순간을 스스로 직감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래서 불이선란도라는 이름도 더욱 깊게 느껴집니다.
( 0 / 500 )
찬호74
5
난초의 잎이 한쪽으로 몰린 것을 단순한 조형상의 특이함으로 보지 않고, 거센 바람 속에서도 버티는 생명력으로 해석한 대목이 좋았습니다. 추사의 파란 많은 삶과 연결해 보니 난초가 곧 한 인간의 자화상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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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인
4
마지막에 “침묵의 행동으로 다시 감상하자”고 한 말이 오히려 이 작품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은 해설로 작품을 규정하기보다, 추사가 남긴 난초와 여백과 글씨를 오래 바라보면서 각자가 자기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불이선란도>를 감상하는 또 하나의 방법일 듯합니다
( 0 / 500 )
minjoong
3
이 글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추사체의 필법과 난초의 잎을 따로 보지 않고 하나의 정신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한 점입니다. 초서와 예서의 필획으로 난초를 그리고, 그 옆에 자유롭게 발문을 배치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서화일치와 화선일치의 실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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