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역사문화공원 묘역 중 가장 후일담이 많은 유택은 이기붕 가족 묘역이다. 가족 묘지는 없어졌지만 끊임없이 뒷담화가 이어지고 있다.
2020년 4.19혁명 60주년이었다. 《월간조선》에 ‘예가의 후손들’을 연재하는 김태완 기자와 2019년 두 번, 2020년 한 번 망우역사문화공원 관련 취재차 ‘사색의 길’을 오르내리며 답사했다. 망우역사문화공원 관련 인물 중 안석영의 2녀·나운규의 장손·최신복의 여동생인 최순애와 이원수 부부의 2녀·박인환의 아들· 김규진의 손녀 등과 대담을 통해 쓴 기사가 필자의 망우역사문화공원 탐구 및 답사에 많은 정보를 얻었다.
필자는 김기자와 후손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김기자가 취재한 추담 허연의 맏딸과 둘째와 셋째 아들·영랑 김윤식의 셋째 아들과 셋째 딸·김이석의 부인 박순녀·장형두의 둘째 아들 부부· 함세덕의 동생의 딸·강소천의 외아들·함이영의 맏딸·국채표의 둘째 아들·설태희의 셋째 아들 설정식 시인의 둘째와 셋째 아들 등과 대담할 때 필자도 함께 하였다, 가족만이 할 수 있는 귀한 일화 등을 통해 인물들의 진면목을 알 수 있었다.
2020년 3월 30일 대학 과 동기인 구준회 시인이 이승과의 마지막 이별의 장소가 벽제 화장장에서 양재동 서울추모공원승화원으로 바뀌어 국립중앙의료원 발인제만 참석하고, 고양시 사설공원으로 김 기자의 승용차로 달렸다.
이기붕 박마리아 가족 묘역은 넓고 단장이 잘되어 있었다. 하단에 딸 이경희, 아들 이강석, 이강욱 상단에 이기붕 박마리아 부부 묘역이 자리를 잡았다.
부부의 묘비 앞면 상단에 ‘國會議長 晩松李起鵬先生墓 夫人朴瑪利亞女史祔左 마지막 ‘부좌’로 미루어, 망우역사문화공원에서는 부부 합장묘가 아니었다. 이기붕의 어머니와 장모는 이장하며 함께 오지 않고, 비운의 다섯 가족은 각각의 비석도 옮겨 왔다.
1949년 이화여중 2학년 2학기 중간고사 시험 치르다 심장병으로 요절한 이강희의 비문을 보면 권력 쥐기 전 부모의 심정을 절절히 표현하여 천천히 읽어 보았다.
묘비 앞면 ‘+李康姬之墓’. 뒷면 ‘강희야 귀한 강희야 어두운 밤 무서워말고 눈보라 빗바람에 떨지 말고 천사 너를 직히리니 여기 고히고히 잘 쉬여라 요단강 건너가 다시 만나자 一九四九年十一月二十二日 애닮은 아빠 李起鵬 엄마 朴마리아’
당시 들어온 부의금에다 동창 학부형들이 십시일반 모은 3,500여만 원으로 재단법인 ‘이강희기념장학회’가 설립됐다. 가난한 수재에게 학비를 보태고 졸업생들에게 입학금도 지원했다고 전한다.
*사진 151 이기붕 가족 묘지
묘비 앞면 리강석의무덤. 뒷면 불타는정의감이있었기에 부모님모시고동생데리고기꺼이 웃으며 자진해서 간 것을 우리는 아노라 李康石君一九六0年四月二十八日二十四歲로散花함
묘비 앞면 리강욱의무덤. 뒷면 한창 피어오르던 어린 싹 너에게 때 아닌 찬서리를 맞혀 피기도 전에 지게 하다니 진정 애처롭구나 李康旭君一九六0年四月二十八日二十歲로散花함
이기붕 가족의 비극적인 삶을 마감하고 망우리에 묘지를 쓴 것은 부모와 장모 딸 이강희의 무덤이 망우리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강희 묘 위에 부모 아래에는 두 남동생의 묘를 썼다.
망우리공동묘지 이기붕 일가의 묘지는 이기붕 관련 친목모임인 만만클럽에 의해 1976년 4월 17일 고양시 사설공원묘지로 이장하였다.
4월 28일 이기붕 60주기 추모제가 고양시 소재 공원묘원 이기붕 일가 묘지에서 전주이씨 효령대군파 문중 중심으로 코로나19 여파로 예년에 비해 간소하게 열렸다.
이기붕씨와 가장 가까운 7촌 조카와 문중 회장 등의 말을 종합하여 그 동안 이기붕씨 일가의 묘 관리 과정은 다음과 같다.
작년까지 강욱이 친구들과 삼사년 전까지도 강석이 여자 친구라는 분이 참석하였다. 강석의 여자 친구는 망우리공원 이강석 묘지에 자주 찾아 온 젊은 여인이라 것이다.
지금의 묘역도 그 여자 분이 시집가는 대신 장성 출신인 아버지한테 결혼 비용 대신 받아내 12년 전에 조성하였다. 1976년에 이장한 것도 당시 사단장이 헬기로 밤에 모셔왔다는 것이다.
망우리공원 최학송 묘역을 관리하는 분은 이장 당시 일을 거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묘역은 500여 평 정도였고, 기억으론 비석이 많이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의 4.19도서관인 이기붕씨의 집 안을 데모 군중들이 들어와 파괴하고 집기와 물건을 가져 갈 때, 현장에 있던 집안 조카의 말은 냉장고 안에서 수박이 나왔고, 열대 과일 등과 선물로 받은 모직물 두루마리가 많이 쌓여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기붕씨의 몸이 아파 모든 걸 내려놓겠다고 몇 번 기회가 있었으나, 박마리아 여사의 과욕으로 비극의 가정으로 전락했다고 전했다.
4.19혁명 당시 두 번에 걸쳐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 담화를 박마리아 여사의 힘으로 ‘모든 것을 ~고려해 보겠다.’는 것으로 변하여 발표하였다. 그래서 걷잡을 수 없이 번지게 되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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