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에 이은 연속 신호와 한미 이상 기류의 의미
2026년 10월 28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진성준 국회 국방위원장이 자신의 미국 비자 신청이 거부됐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정치권과 외교 당국이 동시에 술렁였다. 그는 11월 1일부터 5일까지 국방위원회 차원의 방미단을 이끌고 하와이의 미·인도태평양사령부를 방문해 사무엘 파파로 사령관, 태평양함대·공군 사령관 등 주요 인사들과 한미 안보협력 강화와 동맹 발전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면담 일정까지 이미 확정된 상태였으나, 미국 측으로부터 ‘거부(Refused)’라는 명확한 통지를 받았다. 진 위원장은 페이스북과 보도자료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이자 동맹국 국회의 국방위원장에 대한 미국의 비자 거부는 국회의 위상을 무시하고 한미동맹의 근간인 상호 존중과 신뢰를 훼손하는 처사”라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특히 제19대 국회 국방 위원 시절인 2014년 3월 같은 태평양사령부를 공식 방문한 전력이 있다는 점을 들어 ‘이번 처사를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신청한 비자는 공무 수행 목적의 A-2 관용 비자였다.
이 사건은 이달 초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례와 맞물려 더욱 큰 파장을 일으켰다. 정청래 의원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으로 주미대사관 등 국정감사를 위해 미국 비자를 신청했으나, 출국 직전까지 ‘검토 중(Under Review)’ 상태가 지속되면서 사실상 방미가 무산됐고 유럽 일정으로 변경했다. 진성준의 경우 지연이나 보류가 아니라 명시적 거부로 통보됐다는 점에서 더 강경한 조치로 받아들여졌다. 야당은 ‘초유의 사태, 한미 관계 심각’이라고 공세를 폈고, 여당과 일부 진보 세력은 ‘한국 길들이기 반복’ ‘맹종을 요구하는 것 아니냐?’라는 반발을 쏟아냈다. 외교부는 개별 비자 심사가 미국 국내법과 절차에 따라 비공개로 처리되며, 아직 절차가 완전히 종결되지 않았을 수 있다고 하면서 미국 측과 긴밀히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 측은 구체적 사유를 공개하지 않았다.
진성준과 정청래 두 사람 모두 민주당 중진으로, 과거 반미 활동 전력이 비자 심사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진성준은 1989년 군 복무 중 육군 내에서 ‘의병회’라는 조직을 주도적으로 만든 혐의로 국가보안법 위반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판결문에는 8·15 해방 직후 한국에 들어온 미군을 ‘한반도 남쪽에 진주한 점령군’으로 여겼고, 국군을 미군에게 작전권을 빼앗긴 제국주의 용병으로, 주한미군을 북한에 군사적 위협을 주는 통일 장애 요소로 보는 등 발언이 담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국적 무장 혁명을 위해 북한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포함됐다. 형량은 육군 고등군사법원에서 감형됐고 이후 사면됐으나, 미국 측은 관련 법원 기록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청래 역시 1980년대 반미 시위와 미 대사관 관련 전력이 있으며, 과거에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음에도 이번엔 비자가 막혔다. 전직 미국 외교관 헨리 해거드는 한국 국회의원들의 공식 방문이 비자 문제로 차질을 빚는 것은 ‘매우 특이’하다고 평가하면서, 형사 기록이 있는 신청자에 대한 심사가 이전보다 엄격하게 적용됐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다만 공식 방문까지 막는 수준은 이례적이라는 점도 함께 지적했다.
이 조치의 강도는 상징적·정치적 측면에서 상당히 높다고 평가할 수 있다. 동맹국 국회의 국방위원장이 공식 방미단 단장으로 핵심 미군 사령부를 방문하려는 관용 비자를 거부당하는 것은 개인 입국 제한을 넘어 국회의 공식 의정활동을 가로막는 조치로 비쳐진다. 국내에서는 ‘한미 이상 기류’ 프레임이 강화됐고, 야당은 이를 현 정부의 대미 외교 실패 신호로, 여당 일부는 미국의 일방적 압력으로 해석하는 공방이 이어졌다. 반면 실질적 동맹 운영 측면에서는 제한적이다. 국방장관 등 정부 채널의 회담은 별도로 진행되고 있고(예: 강신철 국방장관과 피트 헤그세스 미 전쟁부 장관의 만남), 전작권(OPCON) 전환 논의나 SCM 일정 조정 등 큰 틀의 군사 협력은 유지되고 있다. SCM이 28년 만에 해를 넘겨 개최되는 등 일정 차질이 있긴 하나, 이는 비자 문제와 직접 연결되지 않은 별개 사안이다. 결국 이 사건은 동맹의 근본을 흔드는 고강도 제재라기보다는 신뢰 훼손 논란을 키우고 국내 정치 공방을 증폭시키는 ‘강한 신호’ 수준으로 볼 수 있다.
정청래에 이은 연속 사례라는 점에서 ‘길들이기’ 성격이 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갖는다. 두 사람 모두 민주당 핵심 인사이며 과거 반미·진보 활동 전력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이 비자 심사를 통해 특정 정치 세력의 동맹 신뢰성을 선별적으로 관리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가능했던 방문이 이번에 막힌 점, 그리고 정청래(지연·보류)에서 진성준(명시적 거부)으로 수위가 높아진 점은 우연으로만 보기 어렵다. 현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전작권 전환 추진 속도, 동맹 운용 방식에 대한 이견, 일부 진보 인사의 과거·현재 입장, 국정원 관련 비자·신분 이슈 등이 겹치면서 ‘한미 이상 기류’가 심화되는 상황과 맞물려 있다. 미국은 통상적으로 ‘개별 사례 기준 심사, 국가안보 최우선’이라는 입장을 취하지만, 공식 방미단의 핵심 인물을 연속으로 막는 조치는 행정적 차질을 넘어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국내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의 대 한국 의중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공식 사유가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능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기술적·법적 강화다. 국가보안법 위반 등 안보 관련 형사 기록이 있는 인물에 대한 심사를 더 엄격히 적용한 결과일 수 있다. 미국은 비자 심사에서 국가안보와 공공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며, 모든 신청을 개별적으로 검토한다고 밝혀 왔다. 전직 미 외교관도 이쪽을 더 가능성 높게 봤으나, 공식 방문까지 막는 건 이례적이라고 했다. 둘째는 정치적 신호와 레버리지다. 특정 배경을 가진 민주당 인사들의 방미를 막음으로써 동맹 파트너로서의 신뢰도를 따지겠다는 메시지를 주는 동시에, 낮은 비용의 압력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모든 한국 인사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선별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후자의 해석이 국내에서 힘을 얻고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전작권 전환을 둘러싼 이견, 대북 정책 기조, 일부 인사들의 과거 발언이 미국의 경계심을 자극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사안은 개인 비자 문제를 넘어 한미 관계의 미묘한 균열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내 정치에서는 여야가 서로 다른 프레임으로 공방을 벌이며 정치적 자산화를 시도하고 있고, 외교적으로는 신뢰 훼손 논란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외교부의 협의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추가 전개가 어떻게 이어질지 주목된다. 전작권 전환 논의, SCM 일정, 국정원 관련 이슈와 함께 이 사건은 당분간 국내 정치와 외교의 주요 쟁점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경계를 비자라는 소프트 파워로 표출하는 양상이 지속된다면, 한국 내부에서는 주권과 자주성 논란이 더욱 확대될 여지도 있다. 결국 이 사건의 본질은 한미동맹이 군사 협력 관계를 넘어 정치적 신뢰와 상호 존중의 문제로 재해석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오늘 오전 진성준 위워장 입장문이 나왔다.
조금 전 주한미국대사관으로부터 입국사증을 받았습니다.
뒤늦게나마 미국 국무부가 대한민국 국회 국방위원장의 공무 비자(A-2)를 발급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예정대로 출국하여 미 태평양사령관을 비롯한 미군 수뇌부와 대한민국의 국익을 중심으로 양국의 안보협력 강화와 미래지향적 동맹 발전 방안을 충실히 논의하고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