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위대한 역사학자 브로델은 아날학파의 대표자인데, 그는 문서 창고 속에 갇혀 왕들의 어록을 받아 적으면서 그것을 역사라고 말하는 랑케식 실증주의 역사학자들을 혐오한다. 가짜 북한 사회주의 국가 김일성의 왕의 어록을 적고, 김일성 신하들이 공표하는 문서를 받아쓰기 하면서 그것을 내재적 접근 방법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허구적인지 알아야 한다. 내재적 접근은 방법론의 이름을 빌린 문서 숭배에 가깝다. 그것은 북한을 이해한다는 명분으로 수령의 자기 서술 안으로 들어가고, 그 자기 서술을 다시 학문의 언어로 번역해 주는 작업이다. 송두율이 1980년대 후반 독일에서 들여온 ‘내재적 접근’이 한국 북한학의 한 흐름이 된 이후, 이종석이 말하는 ‘내재적 비판적 접근’도 강조점만 조금 옮겼을 뿐 같은 함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나치즘도 아리아 민족주의와 생존권 사상이라는 자기 완결적 논리를 가지고 있고, 대동아공영론도 일본인의 내적 시각에서는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체제의 내부 논리만을 먼저 인정하고 그 위에서 비판한다고 하면, 비판은 언제나 한 박자 늦게, 그리고 한 겹 얇게 온다.
아날학파들은 역사학을 지배하던 랑케식 실증주의, 곧 국가·전쟁·외교·위인을 중심으로 사건을 연대순으로 서술하는 ‘사건사(histoire événementielle)’를 혐오한다. 아날학파는 이런 역사가 문서에 현혹되어서 사회의 대다수 사람과 그들의 삶을 규정하는 깊은 구조를 보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노동신문의 사설, 김일성 저작집, 당 대회 결정서, 신년사는 사건사의 가장 조악한 형태다. 그것들은 역사가 아니라 권력의 자기선전이며, 그것을 꼼꼼히 주석하는 일은 역사가의 일이 아니라 궁정 서기의 일이다. 아날학파는 역사를 문제사(histoire-problème)라고 한다. 역사가는 사료를 모아 사실을 나열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세우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사료를 찾고 해석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역사 서술은 이야기가 아니라 문제 해결이다. 우리는 왜 북한이 악마와 같은 병신이 되었는지 원인을 파헤쳐야 하지, 그 사나운 병신이 뱉는 말들을 가지고 무엇을 구성해서는 안 된다.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수령이 무엇을 말했는가가 아니라, 왜 그 말이 수십 년 동안 사회의 유일한 가청 주파수가 되었는가. 주체사상의 문장이 아니라, 그 문장이 가능하게 된 지리적 고립, 전시 동원 체제, 기근의 반복, 중국·러시아라는 후방 공급망, 그리고 주민이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의 한계가 무엇인가.
아날학파들은 진리는 전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전체사(histoire totale)’와 학제 간 연구를 원한다. 사회를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얽힌 총체로 보고, 이를 이해하기 위해 풍수 인문 역사지리학(비달 드 라 블라슈의 인문지리학), 사회학(뒤르켐), 경제학, 심리학, 언어학의 방법을 적극 채용한다. 그들은 사료를 공문서뿐 아니라 토지 대장, 교구 기록, 가격 기록, 농기구, 지명, 경관, 민간 신앙까지 모두 포함시킨다. 북한 연구에 이것을 옮기면 사료의 위계가 뒤집힌다. 김정은의 현지 지도보다 배급 장부의 공백, 장마당 시세, 탈북자의 이동 경로, 국경 밀수 품목, 옥수수와 감자 경작의 고도 한계, 압록강·두만강의 결빙일수, 함경도의 산지 지형, 평안도의 평야와 대동강 하구, 신의주-단둥의 물류, 나진-하산의 철도가 더 깊은 사료가 된다. 공문서는 표층의 거품이다. 구조는 땅과 배와 몸과 가격 속에 있다.
그들은 ‘심성사(histoire des mentalités)’를 말한다. 이것은 민족성과 문화, 한 시대가 공유하는 사고의 한계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것은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토크빌이 미국 이민자들의 과도한 물질주의와 평등주의, 성공에 대한 집착을 문화심리학적으로 분석한 데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블로크의 『기적을 행하는 왕』(1924)은 왕의 손길이 연주창을 치료한다는 믿음이 수백 년간 지속된 현상을 통해 집단적 사고방식을 분석했고, 페브르의 『16세기의 무신앙 문제: 라블레의 종교』(1942)는 한 시대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의 한계를 탐구했다. 페브르가 경고한 가장 큰 죄는 시대착오다. 20세기의 무신론과 합리주의를 16세기에 투영하지 말라는 것이다. 북한 연구에서도 같은 경고가 필요하다. 우리는 북한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한계를 탐구해야 한다. 수령은 왜 치유하는 왕처럼 남는가. 왜 기근 앞에서도 반란의 언어가 쉽게 형성되지 않는가. 왜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말이 현실의 붕괴를 설명하는 대신 현실을 삼켜 버리는가. 심성사는 주민을 동정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김일성 신화를 집단적 믿음의 구조로 해체하고, 그 믿음이 어떤 공포와 고립과 배급의 리듬 위에서 재생산되는지를 묻는 작업이다.
아날의 제2세대를 이끈 페르낭 브로델은 아날학파의 방법론을 가장 체계적인 형태로 만든 인물이다. 그의 대표작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중해 세계』(1949)는 상당 부분 독일군 포로수용소에서 기억에 의존해 구상되고 집필되었다. 책이 없는 곳에서 그는 문서가 아니라 공간을 생각했다. 이종석이나 서동만과 같은 북한학자들은 전근대적인 근면성으로 북한 신문과 문헌을 뒤져서 쓴 성과로 안기부장과 안기부 기조실장이라는 벼슬을 얻었다. 그런 북한 공문 정리는 인공지능에 시키면, 그들이 7~8년 할 일을 교육만 잘 시키고 문헌을 개방하면 단 10분 만에 해치울 수 있다. 내재적 북한 연구는 빈곤하고 무능하고 위선적이었다. 문헌 정리의 권위를 방법론의 권위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브로델은 역사적 시간을 세 층위로 나눈다. 가장 깊은 층은 ‘장기 지속(longue durée)’이다. 산맥, 평원, 바다, 기후, 자연적 교통 인프라처럼 거의 움직이지 않는, 수 세기 단위로 변하는 지리적 시간이다. 브로델은 이를 ‘지리 역사(géohistoire)’라 불렀고, 인간은 이 구조 속에서 살아가며 그 한계를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고 보았다. 이것에 정치가 얹히면 지정학이다. 한반도의 북쪽은 그 자체로 장기 지속의 감옥이다. 높은 산지, 짧은 여름, 추운 겨울, 제한된 경작지, 바다로 열린 남쪽과 달리 대륙의 배후에 매달린 북쪽의 위치. 압록과 두만은 강이면서 동시에 울타리이고, 백두와 개마고원은 숭배의 산이면서 동시에 이동을 막는 벽이다. 평양은 대동강의 하류 분지에 자리 잡아 통치의 중심이 되었지만, 그 중심은 한반도 전체의 중심이 아니라 북부 분지의 중심일 뿐이다. 풍수지리를 미신으로 치부할 필요는 없다. 아날이 말하는 인문지리학은 바로 그 땅의 제약과 가능성의 학문이다. 북한의 폐쇄는 이념만의 선택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그 땅을 규정해 온 교통의 빈약함과 농업 생산력의 한계와 대륙 세력에의 의존이 이념의 옷을 입은 결과다.
중간층은 ‘국면(conjoncture)’이다. 가격, 인구, 생산, 교역의 순환처럼 수십 년 단위로 움직이는 사회·경제적 시간이다. 북한의 국면은 전후 복구와 중공업 동원, 1970년대 외채와 교역 단절, 1990년대 고난의 행군, 2000년대 이후 장마당의 확산과 달러·위안 경제의 침투, 대북 제재와 중국 의존의 심화로 이어진다. 이 국면을 수령의 결단으로 설명하면 역사가 신화가 된다. 인구의 감소와 노령화, 영양 상태, 석탄과 전력의 만성 부족, 군수와 민생의 자원 배분, 국경 밀무역의 계절성이야말로 국면의 진짜 시계다. 가장 표층은 ‘사건(événement)’이다. 전투, 조약, 정치 지도자의 결정처럼 짧고 극적인 시간이다. 브로델은 사건을 바다 표면의 거품이나 먼지에 비유하며, 눈에 잘 띄지만, 역사의 깊은 흐름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지중해』의 3부 구성(환경, 집단의 운명, 사건)이 바로 이 세 층위에 대응한다. 핵실험, 미사일 발사, 당 대회, 정상회담은 거품이다. 거품을 부정하라는 것이 아니다. 거품만 보고 해류를 모른 채 항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의 말년 대작 『물질문명과 자본주의』(1979, 전 3권)에서 브로델은 경제 활동도 세 층위로 나누었다. 맨 아래는 음식, 주거, 의복, 기술 같은 일상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물질생활’이고, 그 위는 투명하고 경쟁적인 교환이 이루어지는 ‘시장 경제’이며, 맨 위는 독점과 원거리 교역, 금융을 통해 이윤을 얻는 ‘자본주의’다. 브로델에게 자본주의는 시장 경제와 동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의 경쟁을 회피하는 ‘반(反)시장’적 영역이며 약탈적이다. 북한을 이 틀에 올려놓으면 공식 사회주의는 거의 설명력을 잃는다. 아래층에는 배급이 무너진 뒤에도 이어지는 생존의 물질생활이 있고, 중간층에는 장마당과 돈주와 밀수가 형성하는 불완전한 시장이 있으며, 맨 위에는 당·군·보위 기구가 외화벌이와 특권 교역과 제재 회피를 통해 독점하는 반시장적 약탈 경제가 있다. 수령 경제는 시장을 부정하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시장을 아래쪽에 방치한 채 위쪽에서 독점을 유지하는 기형적 반시장이다.
나아가 브로델은 국민경제와 국가 내 공급망을 세계로 확산시켜 ‘경제-세계(économie-monde)’ 개념을 제시했다. 하나의 중심 도시를 축으로 중심부, 반주변부, 주변부가 위계적으로 연결된 경제 공간이라는 것이다. 베네치아, 안트베르펜, 제노바, 암스테르담, 런던이 그 중심이었다. 이 개념은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 개념을 동북아에 적용하면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의 하위체계에 속해서 살아가는 비루한 국가다. 평양은 세계 경제의 중심이 아니며, 평양의 특권층조차 베이징과 모스크바와 단둥의 물류에 기생한다. 석탄과 광물과 노동력과 불법 환적을 내주고 식량과 에너지와 부품과 외화를 받아오는 구조는 주체라는 말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주체는 장기 지속의 종속성을 가리는 수사다. 내재적 접근이 그 수사를 진지하게 받아 적는 순간, 연구는 이미 주변부의 자기기만에 동참한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 연구의 과제는 김일성 어록의 내재적 재구성이 아니다. 땅의 제약, 기후의 리듬, 배고픔의 주기, 암시장의 가격, 국경의 밀도, 심성의 한계, 주변부 경제-세계의 위치를 하나의 문제로 묶는 일이다. 아날이 왕과 조약을 거품으로 취급한 것은 정치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정치가 서 있는 바닥을 보기 위해서였다. 북한학이 아직도 수령의 문장 주석에 머문다면, 그것은 학문이 아니라 궁정의 연장이다. 문헌은 인공지능이 정리하면 된다. 역사가는 그 문헌이 숨기는 구조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북한 연구의 방법론은 바로 그 지점, 아날학파의 지리 역사와 심성사와 전체사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