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이 급작스럽거나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을 때마다 한국 사회는 같은 장면을 되풀이해 왔다. 경찰은 ‘범죄 혐의점 없음’이라는 한 줄로 수사를 닫는다. 기관의 수장은 입을 닫는다. 그리고 ‘고인의 명예와 유족의 슬픔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 진실을 묻는 목소리를 덮는다. 2020년 7월의 박원순 서울시장, 2026년 5월의 신종오 서울고법 판사. 두 죽음은 성격도, 맥락도 다르다. 그런데 두 사건을 나란히 놓으면 기묘한 대칭이 보인다. 같은 국가인권위원회가 한 번은 죽은 자를 향해 너무 멀리 나아갔고, 한 번은 죽은 자를 위해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방향은 정반대였지만 결과는 같았다. 진실은 봉인되었다.
박원순 사건 —조사되지 않은 죽음
박원순 시장이 숨진 뒤 벌어진 일을 되짚어 보자. 박원순 진실규명 시민모임이 올해 5월 발표한 선언문에 따르면, 고소장이 접수된 지 채 하루가 지나기 전에 290여 개 단체가 연대 성명을 냈다. 언론은 검증 없이 그 목소리를 증폭했다. 그는 자신에게 제기된 혐의에 한 번도 공식적으로 답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사실 확인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2차 가해’라는 이름으로 차단되었다.
이 광풍의 한가운데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인권위가 조사하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다. 고소가 이미 제기된 사건이었다. 그런데도 당시 최영애 위원장은 직권조사라는 우회로로 조사를 강행했고, 스스로를 변호할 수 없는 고인에게 사실상 유죄의 낙인을 찍는 판단을 내놓았다. 시민모임은 인권위 조사 과정에서 박 시장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서울시 직원 진술이 다수 있었고, 고소인 측이 주장한 핵심 증거는 끝내 제출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이 사실들은 당시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시민인권위원회는 2022년 10월 최 전 위원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공수처는 1년이 넘도록 고발인 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정작 조사되지 않은 것은 따로 있었다. 그의 죽음 그 자체다. 유족이 화장에 동의한 것은 장례 방식에 대한 선택이었을 뿐, 사망 경위를 밝히는 부검을 대신할 수 없다. 시장은 공인이고, 그의 죽음은 공적 사건이다. 그러나 국가는 ‘예우’라는 명목 아래 죽음의 경위를 묻지 않았다. 국가는 죽은 자의 혐의는 직권으로 파고들면서, 그 죽음은 유족의 선택 뒤에 묻어 두었다.
왜 그랬나? 국가는 답해야 한다.
신종오 판사 사건 — 수사가 끝났다며 조사를 거부한 국가인권위
6년 뒤 같은 기관이 정반대의 얼굴을 보였다. 신종오 판사는 김건희 씨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항소심 재판장이었다. 2026년 4월 28일 징역 4년을 선고했고, 8일 뒤인 5월 5일 자신이 근무하던 법원 청사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경찰은 ‘범죄 혐의점 없음’으로 사건을 사실상 종결했다. 독립적 부검이 실시되었다는 공식 확인은 지금까지 없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넉 달이 넘도록 사망 경위와 구조적 원인에 대해 아무런 공개 입장을 내지 않았다.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그의 죽음과 특정 재판 사이의 인과관계는 확인된 바 없고, 이 글도 그것을 단정하지 않는다. 판결 전부터 외부 압박과 협박의 정황이 거론되었다는 사실, 내란전담재판부 신설에 따른 사건 무더기 재배당과 ‘6·3·3’ 기준이 판사들에게 과부하를 안겼다는 사실은 모두 밝혀져야 할 물음이다. 결론이 아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조사가 필요하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 앞에서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침묵이 아니라 규명이다.
필자는 6월 24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피진정인은 경찰청장과 대법원장이었다. 독립적 부검 없이 수사를 종결한 것이 국제인권기준 위반인지, 대법원장이 소속 판사의 사망 경위 규명과 구조적 원인 해소를 위해 아무 조치도 하지 않은 것이 직무 해태인지 판단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인권위는 8월 18일 이 진정을 각하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망자는 헌법상 기본권의 직접적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경찰 수사 결과의 적정성을 다투는 것이어서 인권위가 조사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두 논거 모두 진정의 핵심을 비껴갔다. 진정은 망자의 기본권을 다투지 않았다. 살아 있는 국가가 자신의 조사 의무를 이행했는지를 물었다. 수사 결과의 옳고 그름을 다투지도 않았다. 부검을 했는가, 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국제기준에 부합하는가라는 절차를 물었다. 인권위는 묻지 않은 것에 답함으로써 물은 것에 답하지 않았다. 결정문 어디에도 진정의 근거였던 미네소타 프로토콜에 대한 언급은 없다.
두 얼굴의 인권위, 하나의 결과
두 사건을 겹쳐 보면 국가인권위의 논리는 이렇게 정리된다. 박원순 사건에서 인권위는 수사가 진행 중인데도 조사했다. 신종오 사건에서는 수사가 끝났다는 이유로 조사하지 않았다. 박원순 사건에서 고인은 스스로를 변호할 수 없는 상태로 조사당했다. 신종오 사건에서 고인은 기본권의 주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조사받지 못했다. 죽은 자는 방어권이 없어서 조사당했고, 죽은 자는 기본권이 없어서 외면당했다. 기준은 오락가락했지만 한 가지는 일관되었다. 국가는 어느 경우에도 죽음의 경위를 공적으로 규명하지 않았다. 경찰은 한 줄 발표로, 대법원장은 침묵으로, 인권위는 월권과 각하로 같은 말을 했다. ‘우리는 이 죽음에 대해 알고 싶지 않다.’
국제기준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가 펴낸 미네소타 프로토콜(2016년 개정)은 이 문제에 분명하게 답한다. 제2조 (c)항은 국가가 죽음을 야기했거나 막지 못했다는 의혹이 없는 경우에도, 국가는 의심스러운 모든 죽음을 조사할 일반적 의무를 진다고 규정한다. 제15항은 잠재적으로 위법한 죽음에 관한 합리적 주장이 제기되면 국가의 조사 의무가 발동된다고 밝힌다. 제17항은 모든 조사가 신속하고, 실효적이며 철저하고, 독립적이고 공정하며, 투명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프로토콜은 또한 잠재적으로 위법한 죽음에 대한 조사가 거의 언제나 부검으로 뒷받침된다고 본다.
당대 최대 정치재판의 재판장이 판결 8일 뒤 법원 청사에서 숨졌다. 그 사실만으로 합리적 의문의 근거는 충분하다. 유서가 있었다 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유서는 망자의 마지막 말이지, 사망 경위의 객관적 증거가 아니다. 그것이 어떤 압박 속에서 쓰였는지, 사망 원인이 무엇인지는 독립적 조사로만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의무는 유족의 의사와 독립해 존재한다. 국가의 조사 의무는 유족의 허락으로 생겨나지도 않고, 유족의 침묵으로 사라지지도 않는다. 공인의 죽음을 유족의 선택 뒤에 숨기는 것은 국가가 져야 할 짐을 가장 약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떠넘기는 일이다. 이 기준은 6년 전의 죽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현직 서울시장이 고소 직후 숨졌다. 그 죽음은 제2조 (c)항이 말하는 ‘의심스러운 죽음’에 해당한다. 부검 없이 닫힌 그 사건도 국제기준에 비추어 다시 열려야 한다.
예상되는 반론에 답한다
첫째, 공적 조사가 유족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타당한 우려다. 그러나 답은 조사를 포기하는 데 있지 않고 조사의 방식에 있다. 유족의 사생활과 애도의 시간을 보호하고, 조사 경과를 통지하고, 의견을 진술할 권리를 보장하면 된다. 다만 조사를 시작할지 여부를 유족의 거부권에 맡겨서는 안 된다. 박원순 사건은 ‘2차 가해’라는 말이 누군가를 보호하는 데 쓰이지 않고 의문을 틀어막는 데 쓰일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보호의 언어가 침묵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모든 공인의 죽음에 국가 자원을 들일 실익이 있느냐는 물음이 있다. 조사 대상은 모든 죽음이 아니다. 권력과 제도가 얽혀 있고 합리적 의문이 제기된 죽음이다. 그런 죽음이 방치될 때 무너지는 것은 유족 한 사람의 평온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 전체에 대한 신뢰다. 판결 한 줄이 생명과 재산을 좌우하는 판사가 자신의 청사에서 숨졌는데도 그 경위를 묻지 않는 나라에서, 어떤 판사가 압력 앞에서 양심에 따라 판결할 수 있겠는가.
선언이 아니라 장치가 필요하다
신종오 판사 사건에는 지금 바로 걸을 수 있는 길이 있다. 인권위 결정문이 안내한 대로 결정을 안 날부터 90일(11월15일) 안에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행정안전위원회는 부검 미실시와 국제기준 미준수를 국정감사에서 따져야 한다. 유엔 법외처형·자의적 처형 특별보고관에게 이 사건을 알리는 국제 채널도 열려 있다. 그러나 사건마다 시민이 진정서를 들고 뛰어야 하는 구조로는 같은 일이 반복된다. 제도로 막아야 한다.
첫째, 공인 의문사에 대한 공적 조사 트리거를 법률로 만들어야 한다. 합리적 의문이 제기된 공인의 죽음에는 유족의 동의와 무관하게 독립 부검과 공적 조사가 개시되도록 해야 한다. 조사의 개시 요건, 주체, 시한도 법률에 명시해야 한다.
둘째, 조사 주체는 사건과 이해관계가 없는 독립 기구여야 한다. 사법부 사안을 사법부가, 인권위 사안을 인권위가 스스로 조사하는 ‘셀프 조사’의 한계는 이미 드러났다. 필자가 제안해 온 ‘주권자 진실규명 기구’가 그 대안이다. 국회의 입법권과 시민의 감시권을 결합한 상설 기구로, 국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조사권을 갖는다. 추첨으로 선발된 시민이 조사 과정의 투명성을 감시하고 최종 보고서 채택에 참여한다. 영국의 공적 조사(Public Inquiry)가 처벌이 아니라 진실의 공개를 목표로 삼듯, 이 기구의 목적도 단죄가 아니라 규명이어야 한다.
셋째, 국가인권위가 국제인권기준을 외면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국제인권기준 위반을 다투는 진정이 ‘수사 종결’이나 ‘망자의 기본권 주체성’이라는 형식 논리로 각하되지 않도록 국가인권위원회법을 손봐야 한다. 인권은 국내법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국제사회가 공인한 기준이 인권의 내용을 이룬다. 그 기준을 검토조차 하지 않는 인권위라면, 그 이름이 무색하다.
넷째, 유족 보호 절차를 조사 절차 안에 넣어야 한다. 유족의 의견 진술권, 사생활 보호, 조사 경과 통지를 법정 권리로 보장하는 것이 상처를 막는 길이다. 조사를 막는 것이 그 길이 아니다.
맺음말
‘박원순 진실규명 시민모임’의 선언문은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그날 진실을 향해 올바른 방향으로 걸었는가. 6년이 지나 신종오 판사의 죽음 앞에서 그 물음은 다시 돌아왔다. 답은 여전히 ‘아니다’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래서 국가가 대신 물어야 한다. 무엇이 그를 그 자리에 이르게 했는지, 제도는 그를 지킬 수 있었는지, 왜 지키지 못했는지. 그 물음을 유족의 슬픔 뒤에 숨기지 않는 것, 형식 논리로 각하하지 않는 것, 여론의 광풍에 맡기지 않는 것. 그것이 국가가 고인과 유족, 그리고 주권자 앞에 바칠 수 있는 유일한 예우다. 기록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