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2일 발언은 협상 문안을 넘어선 일방 발표를 관세 레버리지로 다시 밀어 넣는 전형적인 압박이다. 요구의 정치적 논리는 분명하지만, 계약상·상업상 타당성은 약하다. 한국이 지금 할 일은 감정적으로 거절하거나 성급히 서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합의된 ‘상업적 합리성’ 조항을 방패로 삼아 가격·물량·위험 배분을 다시 쓰는 것이다. 알래스카 LNG 자체는 수십 년째 종이 위의 프로젝트로 남아 온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9월 30일 백악관은 한국의 대미 에너지 투자 2,000억 달러 패키지에 텍사스 가스복합화력, 대형 원전 8기, 그리고 알래스카 LNG가 포함된다고 발표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알래스카 몫을 500억 달러 이상으로 특정했다. 한국 정부는 즉각 선을 그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합의 문서에 담긴 내용은 세 문장이며, 상업적 합리성이 확인될 때에 한해 검토에 착수한다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미국 측 발표가 합의를 넘어섰다며 러트닉에게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다고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상업성이 확인되고 국내 법적 절차를 충족하는 것을 전제로 실무 검토를 진행한다는 입장을 냈다. 공동 팩트시트의 문구는 ‘commence working, subject to commercial reasonableness’에 가깝다. 투자 확정이 아니다.
이틀 뒤 트럼프는 그 간극을 메우기보다 압박으로 메웠다. “그들이 원하지 않으면 괜찮다. 더 많이 청구하면 된다.” “곧 서명하지 않으면 두 배로 올리겠다고 전하라.” 무엇을 두 배로 올린다는 것인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맥락상 지난해 25%에서 15%로 낮춘 대미 관세, 또는 그 패키지 안의 청구액을 가리킨다는 해석이 자연스럽다. 백악관은 같은 시기, 이 발표가 ‘역사적’이라며 알래스카 주민이 건설과 완공을 기대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정치 일정과 주 정치가 상업 판단을 앞지른 장면이다.
그렇다면 요구는 타당한가?. 동맹 관리의 관례로 보면 타당하지 않다. 합의문에 조건을 적어 놓고, 상대가 조건을 지키겠다고 하자 공개적으로 벌금을 예고한 것은 협상의 원칙을 스스로 흔드는 일이다. 한국이 지난해 관세 인하와 맞바꿔 약속한 것은 일정 규모의 대미 투자와 LNG 구매이지, 상업성이 확인되지 않은 특정 파이프라인에 대한 무조건 출자는 아니었다. 투자 총액 상한과 연간 송금 한도도 이미 협상 테이블에 올라와 있다. 그 틀 안에서 어떤 사업을 고를지는 투자자의 권리다.
다만 힘의 논리는 작동한다. 트럼프에게 알래스카 LNG는 에너지 수출 서사와 알래스카 정치의 상징이다. 카터 행정부 이후 여러 대통령이 노스슬로프 가스의 상업화를 약속했고, 번번이 비용과 수요 앞에서 멈췄다. 한국·일본 같은 아시아 구매자를 끌어들이지 못하면 파이프라인은 다시 미뤘다. 그래서 그는 ‘서명하지 않으면 더 받는다’라는 말로, 상업 심사를 정치 일정에 종속시키려 한다. 이는 협상 전략으로는 일관되지만, 한국이 받아들여야 할 계약 조건은 아니다. 타당성의 기준을 ‘미국 대통령이 원하는가?’에 두면 모든 요구가 타당해지고, ‘회수 가능한 투자인가’에 두면 이번 요구는 아직 근거가 부족하다.
사업성은 더 냉정하다. 사업 구조는 간단해 보인다. 북극권 노스슬로프의 가스를 약 1,300km 파이프라인으로 남부 니키스키까지 보내고, 연간 2,000만 톤 규모의 액화 설비를 지어 아시아로 수출한다. 개발사 글렌판이 제시한 총사업비는 445억~545억 달러다. 미국이 한국에 먼저 들이민 숫자는 670억 달러였고, 이후 540억, 500억 초반대로 내려왔다. 금액 자체가 협상 재료라는 뜻이다.
단위 원가가 문제의 핵심이다. 이 규모는 연간 생산능력 100만 톤당 약 22억~27억 달러에 해당한다. 2022년 이후 승인된 미국 걸프만 LNG 프로젝트의 평균 건설비가 100만 톤당 10억 달러 안팎인 것과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다. 비용은 세 덩어리다. 파이프라인 132억~169억 달러, 북부 가스 처리시설 77억~92억 달러, 니키스키 액화·선적 설비 236억~284억 달러. 걸프만은 이미 깔린 셰일가스 관망 위에 액화 설비만 올리면 된다. 알래스카는 가스전 처리, 영구동토 위 1,300km 관로, 액화 터미널을 전부 새로 짓는다. 공사 가능 계절은 짧고, 인력과 물류는 비싸며, 공기 지연은 이자 비용으로 바로 돌아온다. 김정관 장관이 지난해 이 사업을 고위험으로 보고, 상업적 합리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미국도 안다고 한 배경이 여기 있다.
수요 쪽도 아직 닫히지 않았다. 일본·한국·대만·태국과 토탈에너지 등이 연 1,300만 톤 규모의 비구속 구매 의향을 냈다. 금융 조달에 필요한 구속력 있는 장기 판매계약과는 거리가 있다. 글렌판은 파이프라인 최종투자결정(FID)을 2026년, 수출설비 FID를 2027년, 초도 수출을 2031년으로 잡았으나, 구매계약 목표를 채우지 못해 일정이 이미 한 차례 밀렸다. 지분 구조도 글렌판 75%, 알래스카주 25%다. 과거 엑손모빌·BP·코노코필립스 같은 메이저가 이 노선을 붙잡았다가 손을 놓은 전례가 있다. 자원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자원을 시장까지 가져가는 비용이 판매 가격을 잠식해서다.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니키스키에서 한국·일본까지의 항로는 걸프만 출발, 파나마 경유보다 짧다. 운임과 운송 리스크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중동·호주·러시아에 기댄 도입선을 북미로 하나 더 두는 공급망 가치도 있다. 미국이 제시한 조건, 즉 경제성 있는 장기 구매계약, 한국에 대한 우선 접근, 철강·기자재 관세 인하, 한국 기업의 시공 참여는 투자 회수의 일부를 다른 경로로 보완할 수 있다. 대미 투자 손익을 프로젝트별로 가르지 않고 우산형으로 정산한다면, 수익성이 나은 텍사스 가스복합화력(정부 추산 223억 달러 투자, 20년 회수 약 1.9~2.0배)이 알래스카의 적자를 일부 덮는 구조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건 알래스카가 스스로 성립한다는 증거가 아니라, 다른 사업의 이익으로 정치 프로젝트를 보조한다는 뜻에 가깝다. 한국 국내 LNG 수요가 산업·인구 구조 변화로 정체되거나 줄어들 경우, 장기 구매 의무는 비싼 가스를 떠안는 계약이 된다.
대응은 세 층으로 나누는 편이 맞다.
첫째, 문안을 다시 못 박는다. 합의의 전부는 상업적 합리성과 국내 법적 절차를 조건으로 한 검토 착수다. 이 문장을 국회 보고, 투자심사, 대외 설명의 기준으로 고정해야 한다. 트럼프의 공개 발언은 정치 메시지이지 계약 수정이 아니다. 김 장관이 이미 한 이의 제기를 실무 채널에서 문서로 남겨, 이후 ‘합의했다’라는 재해석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것이 최소 방어다.
둘째, 숫자를 조건으로 바꾼다. 참여를 원천 봉쇄하기보다, 참여의 가격을 한국이 정한다. 투자 상한은 미국이 말한 500억 달러가 아니라, 한국이 감당할 연간 송금 한도와 2,000억 달러 총액 안에서 역산한 금액이어야 한다. 출자 비중, 최소 수익 보장, 비용 초과분의 부담 주체, 공기 지연 시 위약, 장기 구매 가격의 상한(걸프만 FOB 대비 운임 절감분을 반영한 수준), 한국 기자재·시공 물량의 의무 비율을 선결 조건으로 걸어야 한다. 구속 구매계약이 설비 용량의 상당 부분을 채우기 전에는 FID에 돈을 넣지 않는다는 금융 관행을 한국 측 조건으로 그대로 쓰면 된다. 미국이 연방 신용보증이나 세액 공제로 원가를 실제로 낮춘다면 그 효과를 가격에 반영하고, 낮추지 못하면 투자 규모를 줄이거나 지분 대신 구매·기자재 참여로 전환한다.
셋째, 관세 위협은 패키지 전체로 받는다. ‘두 배’가 15% 관세의 복원을 뜻한다면, 그것은 알래스카 한 건의 문제가 아니라 지난해 관세 합의 전체의 재협상이다. 자동차·부품·전자가 이미 15% 체제에 들어가 있는 만큼, 한국은 알래스카를 단독 거절하는 대신 텍사스 발전, 원전, 기자재 관세, LNG 구매를 한 묶음으로 되돌려 협상력을 유지하는 쪽이 유리하다. 원전 8기(거론 규모 약 1,200억 달러)와 알래스카를 동시에 한국 자본으로 떠안는 구조는 총액 상한을 사실상 무력화한다. 우선순위를 수익이 보이는 발전 사업과 기술 참여에 두고, 알래스카는 옵션으로 남기는 순서가 맞다.
공개 대응의 톤도 중요하다. ‘미국이 강요한다’라는 프레임만 밀면 트럼프에게는 국내 정치용 소재가 된다. ‘서명된 조건은 상업성 확인이며, 그 심사를 서두르겠다’라는 프레임이 문안과도 맞고 압박을 늦추기도 한다. 심사 결과는 미리 정해 두지 않되, 심사 기준은 미리 공개한다. 단위 투자비, 구속 판매계약 비율, 비용 초과 분담, 국내 도입가의 경쟁력. 이 네 가지를 통과하지 못하면 투자 규모는 제로에 가깝게 줄어드는 것이 합리성의 정의다.
트럼프의 요구는 알래스카 사업을 살리려는 정치적 청구서로는 이해되지만, 합의 문안과 사업 원가에 비추면 한국이 그대로 수용할 이유가 없다. 알래스카 LNG는 수송 거리라는 진짜 이점을 가졌으나, 그 이점이 파이프라인과 액화 설비의 초과 비용을 메운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한국의 대응은 거부가 아니라 조건부 지연이다. 상업성이 숫자로 확인되기 전에는 돈을 넣지 않고, 확인되더라도 위험과 기자재 몫이 한국에 돌아오는 구조로만 넣는다. 그 선을 지키지 못하면 관세는 잠시 낮아져도, 비싼 가스와 회수되지 않는 출자가 더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