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참이 9월 26일 내놓은 자료는 군이 가장 잘 쓰는 언어로 쓰여 있다. 우리 군과 유엔사가 합동으로 DMZ 내 지뢰 추정 폭발 상황과 관련해 기동로를 확보하고 작전환경을 살폈다는 것, 합참차장 TF와 유엔사 군정위·조사기관·작전 병력 20여 명이 투입됐다는 것, 21일 작전에 나섰던 장병 일부도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것, 이동로 안전성과 감시·통신 상태를 확인했다는 것, 장병 안전이 확보된 가운데 합동 조사를 준비해 왔으며 결과를 투명하게 설명하겠다는 것, 일정 노출은 안전에 위협이 되니 신중하라는 당부. 문장만 보면 사고 수습 공지다. 그러나 이 짧은 공지가 나온 자리는 이미 정치의 한복판이다.
폭발은 이번 달 21일 오전, 서부전선 25사단 관할 DMZ에서 일어났다. 유엔사 현장 조사를 앞두고 우리 군이 수색로를 개척하던 중이었다. 지뢰탐지기와 방호복, 덧신을 착용한 병력 18명이 들어갔고, 선두 중사가 먼저 다치고 구조를 하려던 수색대대장이 두 번째 폭발에 더 크게 다쳤다. 한 명은 발목 절단급 중상이었다. 합참은 사고 지점을 군사분계선 근접 지역이라고 했고, 북한 매설·유실·아군 잔존(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조사하겠다고 반복했다. 파편은 국과수로, 보디캠은 군 내부 분석으로 넘어갔다. 26일의 투입은 본조사가 아니라 본조사를 위한 환경 점검이었다.
같은 사단에서는 다음 날 아침 또 하나의 침묵이 있었다. 사단 본부 근무 대위가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그가 수색 작전에 직접 투입되지 않았고 작전계획 업무를 했으며, 범죄 혐의점은 없다고 했다. 사인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 죽음을 사고의 증거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같은 사단, 같은 48시간 안에, 현장에서 다친 자와 숙소에서 숨진 자가 겹치면, 정치는 그 겹침을 그냥 두지 않는다. 야당은 내부 동요와 은폐를 암시하고, 군은 연관성 낮음으로 차단한다. 확인되지 않은 죽음이 확인된 폭발 옆에 붙는 방식이야말로 정쟁이 사건을 삼키는 전형적인 경로다.
그 경로의 전면에 선 것은 국민의힘과 그 주변을 맴도는 보수 여론이다. 유용원 의원실은 사고 직후 지뢰지대 인근이라는 정보를 흘렸고, 나경원은 긴급 기자회견을, 한동훈은 국방부 앞 1인 시위를 추석 당일까지 이어갔다. “증거를 찾는 것은 시간과의 싸움”, “전쟁 나도 연휴 끝나고 싸울 것이냐.” 프레임은 일관된다. 북한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지뢰를 심었고, 정권과 군은 알고도 늦췄으며, 폭우 전에 현장을 열지 않은 것은 직무 유기라는 것이다. 2015년 목함지뢰 이후 11년 만의 군사분계선 이남 중상이라는 상징까지 더해지자, 보수의 안보 서사는 거의 자동으로 작동했다. 장병의 발목은 인도적 언어로 포장되지만, 실제 타깃은 이재명 정부의 대북·안보 태세다. DMZ 내 군 작전에 대해 마구잡이식 성명 발표를 해대는 국힘 포함, 일부 보수세력들의 섣부른 주장과 정쟁유도 행태는 지양되어야 한다. 향후, 전작권 전환과 맞물려 기존의 관행과 제도를 결합한 미측의 유엔사 강화 움직임과 연계되어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이 압박이 위험한 이유는 현장의 성격 때문이다. 사고 지점은 군사분계선에서 수십 미터, 보도에 따라 50~100m 남쪽이다. 소구경 화기의 사격권 안에 들어가고, 엄호는 충분하지 않다. 접근로 자체도 안전이 담보되지 않았다. 21일 사고가 바로 그 길을 열다 일어났다. 지금 ‘즉시 재진입’을 외치는 것은 이미 터진 길을 정치 일정에 맞춰 다시 열라는 말과 같다. 재진입의 주체는 구호를 외치는 쪽이 아니다. 현장에 가장 익숙한 병력은 수색대대이고, 그 대대장은 중상으로 공석이다. 대대장이 쓰러진 부대를 같은 의심 지대로 다시 밀어 넣는 것은 작전이 아니라 정치적 재투입이다.
야당이 “증거가 사라지기 전에 지금 들어가라”를 밀면, 여당과 군은 “절차와 안전이 확보되기 전에는 들어갈 수 없다”를 내민다. 둘 다 장병을 말하지만, 장병은 양쪽의 명분이다. 한쪽은 증거의 시간을, 다른 쪽은 절차의 시간을 소유하려 한다. 민주당과 대통령실의 “피 흘린 장병을 정쟁에 활용한다.”, “은폐는 없다”라는 대응도 그 대립의 반대편일 뿐이다. 해외 순방 중에 나온 신속·철저 조사 약속은 야당의 즉시 공개 요구를 거부하는 효과도 낸다. 합참의 보안 당부 역시 이중적이다. 적에게 경로를 보여주지 말라는 군사적 경고이면서, 국내 정치가 현장의 리듬을 흔들지 말라는 행정적 경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미 흔들렸다.
지뢰의 출처를 성급히 북한 목함지뢰로 단정하는 공세도 같은 맥락이다. 군은 아군 잔존, 유실, 북한 매설(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있다. 강신철 장관이 말한 것도 “아군 지뢰다”가 아니라 “어떤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매설 의심 지대와 사고 지점의 일치를 지금 확정할 수 없다”라는 수준이다. 부상 양상만으로 출처를 단정하기도 어렵다. 2015년 목함지뢰는 다리가 날아가는 피해를 냈고, 이번에는 방호 장구를 착용한 상태에서 중상이 발생했다. 군 관계자는 우리 군 M14만으로는 덧신 착용 시 그 정도 외상이 나오기 어렵다는 취지의 설명도 내놓았다. 아군 지뢰 가능성만 높다고 볼 근거도, 북한 목함지뢰라고 단정할 근거도 아직 없다.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넘어서 심는 동안 경고사격도 안 했다”라고 몰아가는 것은 수사가 아니라 선동이다.
정작 물어야 할 질문은 다른 데 있다. 왜 그 위험한 지점에, 그 시점에, 수색로 개척이 있었는가. 군이 밝힌 이유는 분명하다. 유엔사 현장 조사를 앞두고 접근로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북한의 지형 변화와 지뢰 매설 의혹을 유엔사와 확인하려면 길이 필요했고, 그 길을 우리 군이 먼저 열다 사고가 났다. 그렇다면 정치가 집중해야 할 지점은 ‘왜 추석 전에 안 들어갔느냐’가 아니라 ‘왜 유엔사 조사를 위해 그 통로를 열어야 했느냐?’, ‘그 요구를 한국군 지휘부가 조정하거나 거부할 수 있었느냐’이다.
DMZ는 한국군 단독 공간이 아니다. 정전협정 체제와 유엔사, 실질적으로 미군이 핵심을 장악하는 감독 구조가 겹쳐 있다. 헬기 투입도, 합동 TF도, 본조사 일정도 유엔사와 공유된다. 전작권이 환수되지 않은 상태에서 DMZ의 모든 사건은 한미 동맹의 필요와 맞물릴 수 있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하고 국경을 요새화하는 국면에서, 한국이 독자적으로 지뢰지대를 확인하고 대응하면 긴장 관리의 주도권이 서울로 이동한다. 반대로 사고가 나고 조사가 지연되며 정치 공방이 커지면, ‘아직 한국군 단독으로는 위험하다.’, ‘유엔사·미군 협조가 필수다’는 논리가 강화된다. 주한미군 철수와 전작권 환수를 민족의 과제로 보는 시각에서 보면, 이 사고는 동맹 의존을 재확인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것은 확정이 아니라 해석이다. 그러나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는 이미 현장에 있다.
군 내부에는 한미 연합과 유엔사 채널을 일상으로 다루는 연속성이 있다. ‘안전 확보 후 조사’는 장병 보호이면서, 조사의 리듬을 동맹 일정과 내부 위계에 맞추는 기술이 될 수도 있다. 21일 작전이 유엔사 조사의 ‘여건 조성’이었다는 설명 자체가 그 위계를 보여준다. 우리 땅이지만 먼저 길을 여는 쪽은 한국군이고, 공식 조사의 권위를 나누는 쪽은 유엔사다. 장병이 밟고, 협정 체제가 판정에 참여한다. 유엔사가 정전 관리 기능을 다시 각인시키려 해 온 흐름 위에 이번 현장 확인 요구를 올려놓는 것은 가능하다. 확인된 것은 더 단순하다. 위험한 작전을 만든 일차 동력은 길거리의 구호가 아니라, 유엔사 일정에 맞춘 한국군의 여건 조성이었다. 지휘부가 그 일정을 재조정하지 못한 이유는 아직 설명되지 않았다. 부하를 지키는 지휘는 때로 거부를 포함한다.
합참 자료가 반복하는 안전과 투명과 보안은 그 순환을 가리는 공식 언어에 가깝다. 필요한 순서는 분명하다. 출처 단정 이전의 감정적 대북 확정, 추석 일정에 대한 선동적 질책, 부상 부대를 다시 같은 길에 세우라는 요구는 접어야 한다. 대신 물어야 한다. 유엔사 현장 확인은 반드시 그 지점, 그 방식이어야 했는가. 한국군은 그 요구를 협의·지연·거부할 권한을 실제로 갖고 있는가. 전작권과 정전 관리가 겹친 공간에서 우리 장병의 진입 여부를 누가 최종적으로 결정하는가. 미확인 지뢰지대에 군을 계속 밀어 넣는 한 폭발은 다시 일어날 수 있고, 그 폭발은 다시 정쟁이 된다. 21일의 폭발과 22일의 침묵과 26일의 공지는, 우리 장병이 밟는 땅이 우리 군의 판단만으로 열리고 닫히느냐는 질문에 아직 한국이 완전한 답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