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분6등법과 연분9등법'에서 현 정부가 배워야 할 지혜
정책은 선의만으로 성공하지 않는다. 집값을 잡으려는 대책이 전월세를 올리고, 세금을 올리면 세수가 늘 것 같지만 사람들이 매매와 투자 행동을 바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모든 정책에는 부작용과 연쇄효과가 따른다. 그렇다면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필자는 600년 전 세종의 조세개혁에서 그 답을 찾고 싶다.
조선 초기의 전세는 관리가 직접 논밭의 작황을 조사해 세액을 정하는 답험손실법에 따랐다. 풍년에는 많이, 흉년에는 적게 걷겠다는 취지는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조사해야 할 논밭이 너무 많았고, 무엇보다 작황을 평가하는 관리의 주관이 세액을 좌우했다. 백성에게는 농사를 잘 짓는 것만큼이나 관리가 자기 논밭을 어떻게 볼지가 중요해졌다. 백성을 배려하려던 제도가 백성을 관리의 재량에 묶어 둔 것이다.
세종은 이 재량을 줄이고 객관적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려 했다. 그 대안이 공법(貢法) 이었다. 1430년 세종은 공법을 두고 관리뿐 아니라 일반 백성에게까지 의견을 물었다. 17만 2,806명이 참여해 9만 8,657명이 찬성, 7만 4,149명이 반대했다. 찬성이 약 57%였으니 오늘의 다수결이라면 시행할 수 있는 숫자였다.
세종은 숫자 뒤의 분포를 보았다. 경상도와 전라도에서는 찬성 6만 5,864명에 반대 664명이었지만, 함길도와 평안도에서는 찬성 1,410명에 반대 3만 5,912명이었다. 같은 제도가 지역에 따라 정반대의 의미를 가졌던 것이다. 전국 평균이 좋다고 모든 지역에 좋은 정책은 아니다. 세종은 여기서 멈췄다.
1436년 전제상정소를 두어 조세제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게 했고, 1437년에는 상정공법으로 전국 시행을 꾀했다. 그러나 지방 관리와 사간원의 반대가 거세자 세종은 다시 물러섰다. 이미 내린 결정이라는 체면보다 반대 의견의 내용을 더 무겁게 본 것이다.
방법은 달라졌다. 1438년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먼저 시행했고, 이듬해 충청도로 넓혔다. 오늘의 말로 하면 시범 사업(pilot program)이다. 실제로 해 보니 세 부담이 예상보다 커지는 등 책상 위에서는 보이지 않던 문제가 드러났고, 그때마다 제도를 고쳤다. 1444년에야 전분6등법과 연분9등법이라는 기본 틀이 확정되었다.
전분6등법은 땅의 비옥도를 여섯 등급으로, 연분9등법은 해마다의 풍흉을 아홉 등급으로 나눠 최고 풍년에는 1결당 20두, 최악의 흉년에는 4두를 거두게 했다. 땅마다 생산력이 다르고 해마다 형편이 다르다는 두 가지 현실을 함께 담은 것이다. 이 제도도 완전하지는 않았다. 풍흉을 판정하는 데 여전히 사람의 판단이 필요했고, 토지 측량이 뒤따라야 해서 전국 시행은 성종 때인 1489년에야 마무리되었다. 따라서 이 개혁의 핵심은 '성공한 제도'가 아니라 제도를 만들어 간 과정에 있다.
부동산은 정책 실험이 특히 어려운 영역이다. 보유세를 바꾸면 보유자의 행동이 달라지고, 대출을 조이면 구매 시기와 능력이 변하며, 매매시장을 누르면 수요가 전월세로 옮겨 간다. 공급 대책은 결실을 보기까지 수년이 걸린다.
현 정부는 규제·공급·세제를 결합해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입장이다. 2026년 9월 현재 시장은 단순하지 않아서, 강남·서초 등 일부 지역 아파트값은 내렸지만, 서울 전체는 오랜 상승세를 이어 가고 있다. 지금 정책 전체를 성공이나 실패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다만 물을 수는 있다. 시행 전에 2차, 3차 효과를 충분히 검증했는가.
보유세 논쟁도 마찬가지다. 강화론은 과도한 보유를 억제하고 조세 형평을 높이자고 하고, 신중론은 임대료 전가와 은퇴자의 부담, '똘똘한 한 채' 선호를 우려한다. 어느 쪽 논리만 듣고 결정해서는 안 된다. 목적이 옳은지 다투는 데서 한 걸음 나아가, 실제로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전월세 상승도 원인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 공급과 입주 물량, 금리, 대출 규제, 임대차 제도, 가구 수 변화가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할 일은 정책을 방어하는 것도, 성급히 실패를 인정하는 것도 아니다. 무엇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데이터로 밝히는 일이다.
미국에서는 주(州)를 "민주주의의 실험실"이라 부른다. 한 주에서 먼저 시도해 결과를 보고 다른 주가 따르거나 피한다. 법률에 일몰 조항을 두어 효과가 없으면 저절로 소멸하게 하는 것도 같은 발상이다. 오늘의 정부에는 세종대왕이 상상도 못 했을 빅데이터와 AI가 있다. 일정 지역이나 대상에 먼저 적용하고, 예상 효과를 미리 공개하고, 실제 결과와 비교하는 일이 훨씬 쉬워졌다. 결과가 다르면 고치면 된다. 정책 수정은 패배가 아니다. 잘못을 알고도 고집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현대에는 세종 때처럼 장기간 정책 타당성을 검증할 수 없다. 경제위기나 재난처럼 시간을 다투는 때에 몇 달도 검토에 시간을 소비할 수 없다. 세종에게 배울 것은 느린 행정이 아니라 검증되지 않은 확신에 대한 경계다. 세종은 오늘의 어느 대통령보다 강한 권력을 가진 군주였다. 그런 세종도 자신의 생각만으로 세제를 밀어붙이지 않았다. 먼저 듣고, 작게 시작하고, 결과를 재고, 잘못되면 고치고, 확인된 뒤에 넓혔다. 좋은 생각과 실제 정책결과가 다를 수 있음을 안 것이다.
정치인은 자기 정책이 옳음을 증명하고 싶어 하지만, 이재명 정부가 증명해야 할 것은 자신의 옳음이 아니라 국민의 삶이 실제로 나아졌다는 사실이다. 600년이 지난 지금도 세종의 공법 개혁이 우리에게 남기는 교훈은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