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31일, 감사원이 공개한 대법원 정기감사 결과, 법을 해석하고 공금의 적법을 가르쳐야 할 최고 사법기관이, 스스로 정한 예산 집행지침을 어기고 대법관과 법원행정처장에게 수년간 현금을 정기 지급해 왔다. 2022년부터 2025년 9월까지 격려금 명목으로 나간 돈은 12억 9,900만 원, 대법관 12명에게는 매달 특정업무경비 512만 원이 이미 지급되고 있었고, 그와 별도로 2024년 4월까지 매달 두 차례 평균 200만 원가량이 현금으로 건네졌다. 일부 기간에는 100만~150만 원이 더 붙었다.
법원행정처장은 같은 기간 월평균 300만 원, 이후에는 200만~400만 원을 받았다. 2024년 기준 대법관 1인당 연간 지급액은 2,650만 원에서 3,050만 원 선으로 서로 비슷했다. 대법원장 본인은 받지 않았다. 그러나 경호의전팀과 공관 경비대에는 별도로 월 150만~280만 원 규모가 정기 지급됐고, 그 합은 약 1억 6,000만 원이었다. 감사원은 행정 집행 주체는 법원행정처지만, 실제 지급은 대법원장이 한 것으로 봤다.
숫자의 나열보다 무거운 것은 금지 조항을 어긴 점이다. 대법원 예산 집행지침은 격려금을 우수 부서와 직원 등에 집행하게 하고, 법령 근거 없는 월정액·정기 지급을 금지한다. 과거 법원행정처는 사법·재판 정보 수집을 이유로 대법관에게 특수활동비를 주다가 2019년 이후에 중단했다. 중단된 자리에는 기타운영비로 편성된 격려금이 들어섰다. 2022년부터 2025년까지 격려금 예산만 약 45억 원이 잡혀 있었다. 이름이 바뀌고 계정이 바뀌었을 뿐, 정기 현금이라는 실체는 이어졌다. 2024년 5월 이후에는 지급일과 액수를 대법관마다 조금씩 달리해 겉으로는 월정액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러나 연간 총액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형식을 손질하고 실질을 유지한 것이다. 금지 조항을 정면으로 어기다가, 나중에는 금지의 외관만 피하는 쪽으로 이동한 셈이다.
법원행정처의 해명은 익숙하다. 소부(작은 재판부)나 전원합의체 기일을 전후해 재판에 관여한 대법관과 재판연구관의 노고를 격려하기 위한 취지였고, 처장에게는 사법행정 총괄과 대외 업무, 재판 지원을 병행하는 부담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감사 결과는 수용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집행 내역과 증빙을 내놓으라는 요구에는 자료를 갖추지 않아 제출이 곤란하다고 답했다. 현금으로 주면서 장부를 남기지 않고, 나중에 물으면 자료가 없다고 하는 식, 국민 세금이 어디로 갔는지 사후에 확인할 수 없다면, 그것은 격려가 아니라 검증 불가능한 궤변 관행이다. 취지가 좋으면 증빙이 필요 없다는 논리는, 공직사회 어느 곳에서도 통용되지 않는다. 하급 기관이 같은 말을 하면 법원은 그것을 변명으로 읽고 통하지 않을 논리다. 사법기관 최고 기관인 대법원이 그 변명을 자신에게 허용한 것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다.
여기서 도덕 불감증이 드러난다. 대법관은 국가의 최종 법률 해석권자다. 예산 집행지침이 금지하는 정기 현금을 수년 동안 받으면서, 그 금지 조항을 자신의 사건에 적용하듯 엄격히 따져 본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다른 기관의 예산 남용과 공금 오용을 심판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들어오는 현금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침묵은 동의에 가깝다. 한두 달의 실수가 아니라 2022년부터 이어진 반복이다. 반복은 관행이 되고, 관행은 양심을 마모시킨다. 재판이 힘드니 격려가 필요하다는 말은, 그 자체로 틀린 문장이 아니다. 그러나 격려가 법령 근거 없는 월정 현금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우수 직원에게 공개적으로 주고, 증빙을 남기고, 한도에 맞추면 된다. 그 최소한을 하지 않은 채 현금을 돌린 것은, 격려의 언어로 포장된 특권이다. 특권은 늘 필요한 일처럼 말한다. 이 발상은 식민지 권력 기관이었던 대한민국 사법부의 안일한 정통성에 기인한다. 정서적으로 이들은 국민을 위한 편의 행정 기관으로서보다 국민 감시와 통제를 위한 역할을 해왔던 기능을 구실로 이런 시대착오적 발상이 계속될 수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비양심은 병행된 예산 집행에서 더 선명해진다. 같은 감사에서 전산장비 유지보수 계약에 이미 포함된 운영체제 업그레이드를 구두 합의라며 따로 떼어 6억 5,000만 원을 추가로 준 사실이 확인됐다. 2022년부터 2025년까지 PC 구매 과정에서는 전년도에 이미 산 교체 물량을 다시 사거나, 합리적 근거 없이 예비품을 확보했다. 2025년 말 기준 예비품으로 남은 PC는 6,131대, 프린터는 2,983대, 스캐너는 559대였다. 법원 정원 1만 8,669명의 약 3분의 1이 쓸 수 있는 규모다. 2025년에는 프린터 계약 단가가 내려가자 예산을 소진하려고 구매 물량을 1,055대 더 늘렸다. 경매사건 현황조사 여비는 표본의 94.5%가 규정 초과 또는 중복으로 추정됐다. 업무추진비로 1억 원대 주류를 사면서 용도를 명확히 하지 않은 사례, 계약 없이 도서를 먼저 받고 사후 계약을 맺은 뒤 소속 법관 등에게 원고료·심사료를 우회 지급한 사례도 적발됐다. 예비품 창고와 현금 격려금이 같은 기관, 같은 기간에 공존한다. 이를 실무 착오로만 읽는 것은 예산 낭비와 특권을 행정용어로 세탁하는 일이다.
더 불편한 지점은 기억의 단절이다. 2015년 전후 법원행정처가 공보 관련 예산을 현금으로 회수해 법원장과 고위 법관에게 격려금처럼 나눠 준 의혹은, 사법 농단 수사 국면에서 이미 한 차례 드러난 바 있다. 그때의 핵심도 공적 예산을 현금으로 개인에게 정액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 이름만 격려금으로 남고 계정만 기타운영비로 바뀌었다면, 이는 학습이 아니라 습속의 재생산이다. 사법부가 그때 무엇을 반성했는지, 이번 감사는 반대로 증명한다. 반성했다면 증빙 없는 현금이 다시 나올 수 없다. 반성했다면 금지된 월정액을 지급일만 흩뜨려 유지하는 기술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반성은 말의 문제가 아니라 장부의 문제다. 장부 없는 반성은 반성이 아니다.
법원은 헌법상 독립기관이다. 그 독립은 재판의 외압을 막기 위한 장치이지, 예산 집행을 검증 불가능한 영역으로 만드는 특권이 아니다. 감사원법상 직무감사가 아니라 회계검사만 가능하다는 제도적 한계는 있다. 2021년 이후 정기감사가 없었던 공백도 있다. 그 한계와 공백을 아는 기관이 증빙을 남기지 않는 것은, 한계를 방패로 쓴 것이다. 감사원의 조치는 주의 통보였다. 환수도, 개인 징계도, 수사 의뢰도 전면에 서지 않았다. 독립기관에 대한 회계검사의 천장이다. 그러나 천장이 낮다고 해서 바닥의 양심까지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대법관 개개인이 봉투를 설계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받은 사람이 문제 삼지 않으면, 그 침묵이 제도가 된다. 최고 법관에게 요구되는 것은 법률 지식만이 아니다. 공금 앞에서 머뭇거릴 줄 아는 감각이다. 그 감각이 사라졌을 때 남는 것은 권위 외피 뿐이다.
이번 감사를 통한 결과는 사법부 전체가 한꺼번에 부패했다는 일괄 낙인이 아니다. 더 일상적이고 더 위험한 것이다. 금지된 줄 알면서도 형식을 바꿔 계속하고, 물으면 취지를 말하고, 장부는 없다고 하고, 결과는 수용한다고 하면서 책임은 주의로 끝내는 태도. 그것을 우리는 ‘도덕 불감증(moral insensitivity)’이라 부른다. 중증 발달장애인 두 명이 1,500원짜리 아이스크림 한 개를 계산하지 않고 나누어 먹었고, 부모가 점주에게 사과하고 10만 원을 배상했으며, 점주도 처벌을 원하지 않았지만, 경찰은 ‘두 사람이 함께’ 했다는 이유로 합동 절도를 씌웠다. 국민에게는 영수증을 요구하는 국가가, 스스로에게는 영수증을 남기지 않는 합동 비리 국가다. 비양심은 거창한 범죄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받을 수 없는 돈을 관행이라 부르며 받는 일, 설명이 궁하면 노고를 내세우는 일, 검증을 피하려고 현금을 선택한 일에서 나타난다. 재판의 독립과 예산의 책임은 대립하지 않는다. 현금을 돌리고 증빙을 지운 쪽은 독립을 지킨 것이 아니라, 독립의 이름을 빌려 양심의 장부를 비워 둔 것이다. 주의 조치로 사건이 닫힌다 해도, 닫히지 않는 것은 그 공백이다. 공백을 메우는 일은 감사원의 문장이 아니라, 현금 받는 자리의 침묵을 깨는 일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