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화가 칸디두 포르치나리(Cândido Portinari)의 Mestiço, 1934년
천하天下
칼럼
baba77
브라질의 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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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0. 30
아리스토텔레스의 민주주의 비판에 동의하며, 직접선거를 '굴레'로 여기는 필자는 브라질 대선 사례를 통해 현대 정치의 복잡성을 분석합니다.
브라질 보우소나루와 룰라의 대선은 혈통, 식민주의 역사,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얽힌 정체성 정치를 보여주며, 미국이 선거에 개입하려던 시도가 더는 통하지 않는 상징성을 지닙니다.
룰라의 승리는 소득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과 적극적인 투표 동원 전략이 주효했으나, 현직 프리미엄 논란과 탈락 후보 지지층의 예상 밖 이동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습니다.
한국 주류 미디어가 브라질 대선을 '좌파의 깽판'으로 폄하하고 부정선거 음모론과 엮는 행태를 비판하며, 이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와 미국의 영향력에 기인한다고 지적합니다.
결국, 한국 정치 시스템은 '차악'을 선택하게 하고, 미국이 뿌린 악의 열매를 맛본 한국인들이 이러한 병든 사회를 지속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는 폭군의 독재만큼 안 좋은 체제”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숫자의 정치이지, 숫자의 질을 따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을 저술했을 만큼 당시 인류가 고루 발전한 문명의 토대 위에 있지 않았다고 보는 사람이다. 또한, 인류는 영리한 사람, 우둔한 사람, 정체된 사람, 젊은 사람, 늙은 사람, 용기 있는 사람, 비겁한 사람, 민족주의자, 토착 왜구가 모두 같은 한 표의 무게라는 점에서 직접선거제도를 ‘굴레(manipulation)’로 뒤집어쓴 어리석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공을 초월해 관통하는 현실 정치에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의견에 동조한다. 현대 한국인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인용되면 급 정당성을 갖게 되는 이 ‘시공을 초월한 심리적 위축’을 깨고, 어쩌면 그가 가공의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고전 의심(Questioning Politicized Classics)과 함께 저 멀리 브라질 정치가 미국과 연결되는 지점에 무엇이 있는지 함께 봐야 한다고 본다.
보우소나루와 미국
2018년 브라질의 계보학자 다니엘 타도네(Daniel Taddone, 1978년생)의 조사에 따르면-학자인 그 역시 이탈리아계 브라질 이민 혈통-보우소나루의 고조부모 16명 가운데 13명은 이탈리아계, 2명은 독일계, 1명은 더 이전의 혈통이 확인되지 않은 브라질 출신이다. 보우소나루 성씨의 원형은 이탈리아어의 ‘Bolzonaro’에서 그 역사가 시작되고, 외가는 토스카나의 이탈리아계, 친가는 베네토·칼라브리아의 이탈리아계와 함부르크의 독일계가 결합한 가계다.
반면, 승리한 룰라(Luiz Inácio Lula da Silva, 1945년생)는 브라질 북동부 페르남부쿠주(Pernambuco)의 농촌 지역 출신이다. 룰라의 인터뷰에 따르면 조부모들이 브라질 원주민과 유럽인 혼혈을 뜻하는 ‘카보클루(Caboclo)’로, 흑인 또는 원주민의 후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브라질인의 먼 조상이 유럽인이거나, 아프리카인일 수 있다는 사실이 브라질 대선에 미치는 영향은, 미비하지만 절대적이다.
포르투갈어 ‘메스티수(Mestiço)’는 카보클루보다 광범위한 의미에서 유럽계·원주민계·아프리카계 등 다양한 혼합 혈통을 뜻한다. 이 명칭에는 서구의 식민 지배와 강제 인구 이동, 사회적 차별과 정치적 동원의 역사가 축적되어 있다. 현대의 선거 정치는 복잡한 이 역사적 정체성을 유권자의 한 표로 환원하고, 다시 그 한 표를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라 권력의 계산에 편입시킨다. 브라질이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게 된 역사를 집중적으로 파고들면 카보클루와 메스티수는 모호한 개념을 넘어서며 인류가 걸어온 복잡한 사회 문화의 혼혈 정체성이 표에 숨어 살아 움직이는 정치의 확장성과 유동성을 만날 수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브라질의 2026년 대선은 아버지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 1955년생)와 아들 플라비우 보우소나루(Flávio Nantes Bolsonaro, 1981년생)가 각각 한 번씩 룰라와 대결했던 브라질 정치의 약점, 대선에서 미국이 차지했던 영향력이 더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상징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2022년 10월 30일 룰라가 대선에서 이기고 이틀 후, 자이르 보우소나루는 전자투표기에 관해 이의를 제기했으나, 선거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고, 자이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던 트럼프 대신에 트럼프의 측근 스티브 배넌(Steve Bannon)이 선거 결과를 부정하며 재검표를 요구했었다. 그해 12월 30일, 자이르는 브라질 공군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미국 플로리다로 떠났다.
스티브 배넌은 주한미군 철수를 중국과 북한을 상대로 한 미국의 협상 수단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서 북한의 재래식 무기로 전쟁 발발 30분 안에 서울 시민 1,000만 명이 희생될 수 있다는 극단적인 말로 트럼프의 대북 군사 강경론에 공개적으로 찬물을 끼얹는 설레발로 본인의 경질을 앞당긴 인물이다. 트럼프는 선거 직전 자신의 트루스소셜(Truth Social)에 룰라를 비난하고 보우소나루를 지지하며 룰라를, “His opponent, ‘Lulu,’ is a Radical Left Lunatic.”(자이르의 상대 룰라는 급진 좌파 광인이다) 라고 하며 정신병자 취급했다. 마치 김어준이 현직 대통령으로 여조 회사 꽃의 사장이면서 총선에서 이래라저래라 선거 판도에 영향을 끼치는 발언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 꼴이다.
2026년 10월 25일 자이르의 아들 플라비우가 대선에서 패배하자, 다음날 트럼프는 증거 없이 브라질 선거가 조작된 것 같다고 부정 선거를 의심하는 발언을 했지만, 얼마 후 브라질 선거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물러섰다. 불과 나흘 후면 미국의 중간 선거다. 트럼프의 미국은 과거 유럽계 식민 활동과 그 후손들인 이민자, 아시안이라는 신흥 인종까지 뒤섞인 그야말로 용광로로 버거운 여러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브라질 정치가 보우소나루 2대로 끝날지, 또 다른 미국의 개가 짖게 될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왜? 서구의 남미 침략 역사는 그렇게 만만하게 볼 게 아니다. 인류가 인류를 잡아먹는 ‘식민(colonialism)’의 역사가 단 한 시대도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주요 미디어가 브라질 대선의 룰라 승리 결과를 놓고, 바로 부정 선거로 몰기 시작했고 한국의 부정 선거 또는 선거 부정 음모론과 엮으며 브라질의 민주화를 좌파의 깽판으로 한국의 유권자에 인식시켰다. 이것은 매우 차원이 낮은 아이러니다. 한국의 주류 미디어는 그 존재가 비극적 현대사, 이승만을 들어 쓴 미국의 한국 정치장악과 그 뒤에서 개처럼 뛰어 준 한국 선거 역사와 맥이 같았던 역사를 스스로 드러내며, 이제 분수를 모르고 남의 나라 대선에까지 훈수를 두는 꼴이다. 한국 여론은 기본적으로 브라질의 민주화를 좌파의 깽판으로 인식한다. 대중의 생각은 묻지 않고 기득권의 입맛에 거슬린다고 판단, 저 먼 브라질 정치에 감을 놓고 배를 놓고 제사를 지내며 트럼프의 살화(舌禍)를 흉내 내는 것은, 선거의 기술을 극대화하는 방법론이 있지 않고는 힘든 태도다.
아버지처럼 아들 보우소나루는 미국으로 도망갔다. 이승만이 하와이로 도망한 사건 때를 떠 올려보자. 부정 선거나, 선거의 부정은 친일파 반민족주의자들의 전매특권이다. 그 역사를 이재명 빨갱이에 덮어씌우는 낡은 작전을 털어내지 못하는 한국의 여당, 만년 야당이 체질이다. 정치사를 꿰고 있는 브레인이 없어 이승만을 ‘망명’으로 쓰도록 한 뉴라이트 식민사관을 그대로 두고 그들과 살을 섞고 무기력한 섹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더불어민주당은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하는 썩은 배로 항해 중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에는 과연 몇 프로의 신천지, 통일교 신자가 끼어 있는지, 친일 반민족 생물학적 종은 얼마나 섞여 있을지 민주당은 까 놓을 준비를 해야 한다.
차악(次惡)을 부추기는 시스템
2026년 1월 3일, 미국이 베네수엘라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를 군사작전으로 체포해 뉴욕으로 이송한 사실에 트럼프가 매우 흡족해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2020년 미국 대선의 전자투표 조작 의혹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두 사건 사이에는 트럼프 측이 제기한 베네수엘라 관련 선거 조작 주장이라는 정치적 연결고리가 있다. 베네수엘라 출신 기업가들이 2000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스마트매틱(Smartmatic)을 설립했고, 2004년 베네수엘라 선거에 기술을 공급했다. 2020년 11월, 트럼프가 바이든에게 선거인단 232대 306으로 패하자, 트럼프의 변호인 시드니 파월과 루디 줄리아니가 스마트매틱과 도미니언 투표 시스템이 베네수엘라와 관련되어 있으며 투표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대선 결과를 뒤집을 규모의 투표기를 조작한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마두로에게 실제 적용된 미국의 형사 혐의는 마약 테러·마약 밀매·무기 범죄·고문 공모였지, 2020년 미국 대선 조작 혐의는 아니었다. 미국 선거에 개입했다는 추측이나, 마약은 핑계다. 타국에 영향력을 과시하는 빨대 꽂기를 멈출 정치를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마두로가 미국으로 끌려가자, 베네수엘라의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 (María Corina Machado, 1967년생)는 2025년 자신이 받은 노벨평화상 메달을 2026년 1월 트럼프에게 전달했다. 마차도는 마두로 정권 교체를 추구해 온 야권 지도자였으니, 미국의 마두로 체포는 그의 정치적 목표와 맞닿아 있었지만, 트럼프의 미국은 마두로 체포 후 마차도를 베네수엘라의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고, 대신 마두로 정권의 부통령이었던 델시 로드리게스와 협력하는 방향을 택했다. 닭 쫓던 개가 지붕을 쳐다보게 된 이 장면을 전 세계가 시청했다.
행복한 트럼프, 썩소를 숨기는 마차도는 2026년 1월 15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양도할 수 없는 수상 자격을, 무엇을 위해서 메달을 넘겼을까?
웃긴 것은 이 사건이 한국에서 크게 희화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 대선의 부정 선거 논란도, 마두로를 끌고 가는 미국의 공권력도, 기껏 쌓은 허식의 공든 탑을 트럼프에 갖다 바친 여자 정치인도 한국 미디어는 외면했다. 강산이 변해도 변함없는 상식 이하의 삼류 정보로 한국인의 정신적 에너지를 땅바닥으로 질질 끌고 가는 미디어는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에게도 선한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다. 난무하는 삼류 언론을 발본색원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부정 선거-야권 지도자 탄압-미국의 개 역할을 자처한 정치인과 언론’으로 철저하게 점철된 병든 사회다. 여론을 선점·선동하고 역음모를 생산해서 지치고 고된 정치적 장애 수준의 인식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 이 상황은 쇄신 불가 정치인들에게 원칙적인 책임이 있다. 그들을 피선거권자로 차악(次惡)을 찾아 헤매는 정치 시스템과 미국이 뿌린 악의 열매에 달콤한 맛을 본 한국인들도 죄 많은 민족이다.
룰라가 이긴 방식
이번 선거 지형을 가른 가장 큰 구조적 균열선은 소득 양극화였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룰라가 1차에서 지고 결선에서 뒤집은 이유를 다 설명하지 못한다. 양극화가 싸움의 판을 만들었고, 실제 승패는 투표 동원과 선거 직전 정책에서 갈렸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최고선거법원은 노동자당 소속 룰라가 51.77%를 얻어 당선됐다고 확정했고, 자유당의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상원의원은 48.23%로 선거에서 패배했다. 10월 4일 1차 투표에서는 보우소나루가 47.03%로 룰라(45.16%)를 앞섰다. 1차 투표에서 진 후보가 결선에서 이긴 것은 브라질 역사상 처음이다. 표는 소득과 지역을 따라 갈렸다. 룰라의 승리는 빈곤 지역, 특히 북동부 유권자의 지지로 확보됐다는 것이 외신의 평가다. 개표 초반에는 보우소나루가 앞섰지만, 룰라의 지지 기반인 북동부 표가 뒤늦게 쏟아지면서 흐름이 뒤집혔다. 룰라 정부의 정책도 이 계층을 겨냥했다. 최저임금을 물가상승률보다 높게 올렸고, 중하위 소득층의 세 부담은 낮추고 최상위층의 부담은 높이도록 세제를 개편했다.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ília: 저소득층 복지제도) 가족수당 인상과 소비자 부채를 민간은행과 재조정하는 대규모 프로그램도 내놓았다.
그런데 왜 1차에서는 졌을까. 같은 경제 문제가 반대 방향으로도 작동했기 때문이다. 플라비우는 1차 투표에서 룰라의 경제정책이 생활비를 끌어올린다는 논리로 노동계층과 중산층을 설득했다. 그는 룰라 정부를, 비대하고 세금이 무겁고 빚을 쌓는 정부로 묘사해 인플레이션 문제와 연결했고, 강경한 치안 메시지도 폭력을 가장 큰 문제로 꼽는 유권자에게 통했다. 즉 양극화는 저소득층을 룰라 쪽으로만 모은 것이 아니라, 물가에 지친 서민·중산층 일부를 우파 쪽으로 밀어내기도 했다.
결선을 뒤집은 결정적 요인은 동원력이었다. 결선 마지막 15일 동안 룰라는 1차에서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과 부동층 공략에 집중했다. 그 결과 1차와 결선 사이에 룰라는 1,030만 표 이상을 더 얻었고 보우소나루는 380만 표 미만을 보태는 데 그쳐, 220만 표 열세가 440만 표 차 승리로 바뀌었다. 여론조사와 데이터를 분석하는 아틀라스인텔(AtlasIntel)의 안드레이 로만(Andrei Roman) CEO도 예상보다 높은 투표율이 룰라에게 유리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아직 설명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1차에서 탈락한 후보, 4명이 결선 전에 모두 플라비우를 지지했는데도, 이들 지지층의 상당수가 룰라 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여 분석가들이 전례를 찾지 못하고 있다. 모세의 기적이라고나 할까. 모두의 플라비우 지지가 대중의 믿음을 룰라 모세에게 향하게 했는지 모른다. 직접선거는 사전에도 중간에도 투표 결과에도 여러 ‘장치(manipulation)’가 작용하는데 탈락 후보들의 플라비우 지지가 유권자의 심리를 강하게 비틀었는지 모른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룰라 정부가 보우사 파밀리아 지급액을 15% 올리고 결선 전에 받을 수 있도록 지급 시기를 앞당겼는데, 비판자들은 이를 현직 권한과 국가 예산의 남용이라고 봤다. 투표 당일에는 투표 방해 의혹과 막판 투표시간 연장이 있었고, 보우소나루 진영은 연장이 룰라에게 유리했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크지만, 투표 연장은 보우소나루 역시 원했던 바다. 룰라 지지자들은 같은 정책을 정당한 분배 정책의 성과로 봤다. 사실, 국민을 위한다는 면에서 룰라던, 보우소나루던 좋은 정책은 누구에게도 좋다. 다만, 내 편일 때 유효하고, 남의 편일 때 나쁜 정책이 되는 게 인간의 심리다. 그런 의미에서 선거 장치의 꽃은 심리전일지도 모른다.
정리하자면, 소득 양극화는 룰라 지지층의 뼈대를 만든 가장 큰 구조 요인이 맞다. 그러나 승부를 결정한 것은 그 지지층을 결선 투표장으로 끌어낸 동원력과 선거 직전의 분배 정책이었고다. 다만, 이 정책이 정당한 성과인지 현직 프리미엄인지는 브라질 안에서도 평가가 갈리니, 향후 룰라의 정책에 따라 브라질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한국의 미래는 정책이 아니라, 이념 반대자의 증오 정도에 달려 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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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p77
7
브라질의 룰라와 보우소나루의 대결을 단순한 좌우 진영의 승패로 읽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외세의 영향력에 기대어 권력을 유지하려는 행태는 브라질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승만 시대부터 이어진 한국 정치의 오래된 병폐를 함께 돌아보게 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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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p56
5
선거에서 패배한 세력이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부정선거라는 의혹을 확산시키며, 언론이 이를 검증하기보다 정치적 프레임으로 확대한다면 민주주의의 토대는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브라질의 사례를 통해 한국 언론이 얼마나 공정하게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지, 또 우리 선거를 어떤 시각으로 보도하는지 되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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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bird4
5
브라질 정치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작동하는 방식과 한국 현대사의 경험을 연결한 시각이 흥미롭습니다. 주권국가의 선거와 정치적 선택은 외부 권력이 좌우할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다른 나라의 민주적 선택에는 개입하려는 이중적 태도부터 돌아봐야 합니다. 한국 역시 예외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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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dong
5
룰라의 승리를 단순히 빈곤층의 결집으로만 설명하지 않고 투표 동원력과 정책, 유권자의 심리까지 분석한 대목에 공감합니다. 결국 선거는 상대를 악마화하는 구호만으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의 삶을 이해하고 실제 변화를 만들어 내며, 마지막까지 유권자와 소통하는 정치가 승리한다는 사실을 한국 정치도 배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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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_Lee
5
민주주의의 위기는 투표제도 자체보다 유권자에게 선택할 만한 정치를 제공하지 못하는 정치권에서 시작됩니다. 차악을 고르는 데 익숙해진 국민에게 책임을 돌리기 전에 왜 최선의 선택지가 사라졌는지 물어야 합니다. 이승만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권력과 언론, 기득권의 유착을 끊지 못한다면 선거를 반복해도 민주주의의 질은 나아지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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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大虎
3
정확한 지적입니다. 국민에게 현명한 선택을 요구하기 전에 정치권이 먼저 선택받을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민주주의의 수준은 투표 횟수가 아니라 국민에게 얼마나 책임 있는 선택지를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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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o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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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문제는 국민의 선택이 아니라 선택을 왜곡하는 정치 구조에 있습니다. 권력과 언론, 기득권이 서로의 이해관계를 지키는 동안 국민은 늘 차악을 강요받습니다. 이제는 정권교체를 넘어 정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개혁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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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_Lee
삭제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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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l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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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보우소나루 부자와 한국의 이승만을 연결한 문제의식이 날카롭습니다. 권력을 잃은 정치인이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외부 세력과 언론이 그 불복을 정당화하는 구조는 민주주의의 가장 위험한 적입니다.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사회는 결국 같은 역사를 다른 얼굴로 반복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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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2
브라질 국민의 선택은 존중하지 않으면서 미국의 정치적 입장에는 지나치게 관대한 한국 언론의 태도를 돌아봐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우리 편이 이겼을 때만 정당한 것이 아닙니다. 언론이 권력의 해설자가 아니라 권력을 감시하는 본연의 역할을 되찾지 못한다면 민주주의의 위기는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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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준
1
이 글에서 가장 주목한 대목은 이승만의 역사적 책임만이 아니라 오늘날 민주당의 무기력까지 함께 비판했다는 점입니다. 과거의 민주화 성과만으로 현재의 정치적 정당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개혁을 외치면서 기득권과 타협하고, 역사적 청산을 미루는 정당은 결국 국민의 신뢰를 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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