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8일 외교부가 박기창 주우크라이나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기로 한 결정한 후 이틀만인 10일 귀국했다. 전쟁 당사자의 절박함을 외면한 냉대가 아니다. 합의의 형식을 먼저 깬 상대에게, 그 형식을 말로만 지키라고 하지 않겠다는 최소 조치다. 정부는 “양국 간 제반 현안이 원만히 해결되기를 기대하며 협의를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장은 단절이 아니라 수위의 조정이다. 2008년 독도 문제로 주일대사를 불러들인 이후 18년 만에 나온 항의성 소환이라는 수식은 무겁지만, 그 무게가 과잉의 증거는 아니다. 초치로 사과를 요구하고, 사과가 요구 수준에 미치지 않자 자국 대사를 거둬들이는 순서는, 외교가 위신을 방치하지 않을 때 쓰는 표준 계단이다.
경과를 다시 놓으면 소환의 위치가 분명해진다. 7월 정상회담에서 양측은 북한군 포로를 국제법과 인도주의, 당사자 자유의사에 맞춰 다루기로 했다. 국정원은 비공개가 처음부터 우크라이나 측이 요청한 공감대였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자국 포로 교환 기회를 포기했다는 국내 비난을 우려한 당사자가 먼저 조용한 처리를 원한 형식이다. 그 형식을 지킨 쪽은 서울이었다. 9월 23일 유엔총회에서 젤렌스키가 포로 두 명의 한국행을 공개하자, 이재명 대통령은 이튿날 예의를 갖춰 아쉽다고 했다. 돌아온 것은 합의 부인이었다. 상대국 국가원수의 말을 허위로 만드는 공보 뒤에, 대통령실 비서실장 쪽에서는 북한의 참전 경험이 한반도 안의 실제 충돌 대비로 이어진다는 취지의 경고가 나왔다. 9월 28일 외교부 1차관이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대리를 초치해 해명과 사과를 요구했고, 10월 2일 대통령은 사실 인정과 공개 사과를 계속 거부하면 추가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10월 6일 조현 장관은 사과가 담긴 메시지를 받았으나 요구 수준과 차이가 있다고 했고, 이틀 뒤 소환이 결정됐다. 감정으로 뛰어오른 계단이 아니다. 공개, 부인, 전쟁 언급, 불충분한 수습이 쌓인 뒤에 나온 다음 칸이다.
전선에서의 오판과 같은 구조가 외교에서 반복됐다는 점이 소환을 정당화한다. 한국에 대한 외교는 그 오판을 노골적으로 반복했다. 8월 젤렌스키는 한국을 콕 집어 방공 체계 지원을 원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살상 무기 지원 금지 원칙으로 사실상 거절했다. 이 거절은 냉대가 아니다. 북한군이 러시아 측에서 참전한 전쟁에 한국산 포대와 요격 수단을 보내는 것은 인도 지원이 아니라, 한반도 확전의 통로를 스스로 여는 일이다. 북한은 그 무기가 누구를 향해 쓰였는지를 참전 경험과 분리하지 않는다. 포로 송환을 인도주의로 다루면서 살상 무기는 보내지 않겠다는 선은, 전쟁 당사자가 아닌 나라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일관된 위치다. 국정원은 우크라이나가 무기 지원 등을 기대하고 포로 한국행을 공개한 것으로 보이며, 어떤 지원도 없었다고 분석했다. 도움을 거절당하자 자신이 먼저 요구한 비공개를 깨고, 포로를 여론전의 카드로 쓴 것이다. 합의를 지킨 쪽을 망신 주어 정책을 바꾸게 하려는 외교는 협상이 아니다. 포로는 사람이고, 송환은 당사자의 의사와 안전을 전제로 한다. 그것을 방공 무기 협상의 지렛대로 공개하는 순간, 인도주의는 구실이 되고 포로는 소품이 된다. 방공망이 절실하다면 해서는 안 될 일의 맨 위에 있는 것이 바로 그 공개였다.
소환은 그 연쇄에 대한 답이다. 우크라이나 외무부가 뒤늦게 한국은 중요하고 외교적 오해를 진심으로 해결하고 싶다고 한 것은 수습이지 해명이 아니다. 압박이 통하지 않자 중요성을 말한 셈이다. 오해라는 단어는 사실과 맞지 않는다. 비공개 요청, 일방 공개, 합의 부인, 한반도 전쟁 언급은 오해가 아니라 행위의 연쇄다. 행위는 사과로만 거둬진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과 중요하게 대하는 것은 다르다. 방산 협력과 재건, 비살상 지원은 신뢰가 남아 있을 때만 열린다. 그 신뢰를 먼저 깨고 사과를 미루는 쪽이 손실을 본다. 자국 대사를 불러들이는 조치는 관계를 끊지 않으면서도, 현안이 일상 외교의 수위로 다룰 수 있는 선을 넘었다는 신호를 보낸다. 기피인물 지정이나 관계 격하보다 아래이고, 초치보다는 위다. 그 중간을 고른 것은 문을 닫지 않겠다는 문장과 맞물린다. 협의를 지속하겠다는 단서는 수사가 아니다. 소환의 목적이 보복이 아니라 사실의 회복이라는 뜻이다.
젤렌스키는 크리비리흐 출신 유대계 가정에서 자랐고, 조부 가족의 상당수는 홀로코스트로 희생되었으며 조부는 소련군으로 독일에 맞섰다. ‘키이우 학살에 부역한 유대인의 후손’이라는 설은 그의 가계와 맞지 않는다. 전시 생존자가 상황에 따라 변신한다는 관찰은 혈통의 숙명이 아니라, 점령과 내전이 반복된 땅의 정치 심리다. 유대계 코미디언 출신 대통령이 반데라와 UPA의 기억 정치를 국가 서사에 편입하는 모순도 혈통의 배신이 아니라 전시 정권의 레버리지 관리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전쟁을 시작한 쪽은 러시아다. 그러나 전면 항전을 선택한 이후 수십만의 젊은이와 수백만 난민의 책임 목록은 정전 협상의 조건과 함께 그의 앞에 놓인다. 출구가 곧 정치적 죽음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체제와 인물은 달라도 유인의 형태는 일부 닮은 자리가 있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상대를 속일 수 있다. 이를 천성으로 부르기보다 레버리지 관리로 읽는 것이 외교다. 그 독법에서 포로 공개는 인도 문제인 동시에, 한반도를 유럽 전장의 연장 보드로 끌어들이는 카드다. 북한이 발끈하고 러시아가 강경해지면, 그 명분으로 전쟁을 연장하고 자기 공간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반데라가 독일군을 독립의 문으로 본 것과 같은 구조의, 훨씬 작은 판이다.
소환은 그 작은 판을 받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한국이 할 일은 젤렌스키를 도덕적으로 단죄하거나 정서적으로 밀착하는 일이 아니다. 키이우가 동북아의 긴장을 자기 레버리지로 쓰지 못하게 하면서도, 포로 인권과 국제법 원칙은 지켜내는 일이다. 모스크바 채널을 복원하되 그 복원이 줄서기로 오해받지 않게 하는 일이다. 대사 소환은 이 세 과제를 한 동작으로 수행한다. 첫째, 살상 무기 거절이 우크라이나 적대가 아니라 한반도 관리였음을 행위로 확인한다. 북한군 참전이 확인된 전쟁에서 한국산 방공 무기의 이전은 우크라이나 영공이 아니라 남북 군사 대치의 변수로 돌아온다. 그 변수를 열지 않은 것은 동맹의 이탈이 아니라 당사자가 아닌 나라의 의무다. 둘째, 비공개 유지는 우크라이나가 먼저 요청한 형식의 준수였고, 요청한 쪽이 깨고 지킨 쪽을 거짓말쟁이로 모는 구도에서 시정과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사실의 회복이다. 소환은 그 요구가 공보로 소멸하지 않는다는 표시다. 셋째, 추가 조치의 예고는 위신이 방치될 때 같은 수법이 반복된다는 판단에서 나온다. 포로 공개가 무기 지원을 끌어내지 못하자 수위를 올린 상대에게, 선은 말로만 그어지지 않는다. 넷째, 인도 지원의 문 자체를 닫지는 않았다. 자유의사와 국제법이라는 7월의 원칙은 그대로다. 정부는 포로가 한국행을 희망하면 수용하고 강제 송환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닫힌 것은 협박으로 원칙을 바꾸라는 요구뿐이다.
수직적 부패와 분산된 부패를 대비한 기업가의 관찰도, 민족 비하가 아니라 협상 상대를 고르는 법으로 읽을 때 소환의 효용을 설명해 준다. 윗사람에게만 로비하면 되는 질서와, 윗사람에게 주어도 중간에서 일이 새는 질서는 거래 비용이 다르다. 약한 제도 위에서 외국인의 선의가 당하기 쉽다면, 서울이 취할 대응은 정서적 신뢰가 아니라 형식의 고정이다. 비공개를 문서로 확인하고, 공개가 나오면 초치하고, 부인이 나오면 소환하는 계단은 그 고정이다. 약삭빠름을 비난하는 대신, 약삭빠름이 나오는 자리—변경, 약한 제도, 외세 의존, 전시 생존—를 읽고, 그 자리가 한반도로 넘어오지 못하게 막는 쪽이 균형에 가깝다. 민족성은 설명의 보조 가설일 수는 있어도 외교의 전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상대의 유인과 우리 국익이 겹치는 지점이다. 그 지점을 놓치는 순간, 설계하는 쪽은 항상 생존이 급한 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