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선택은 전선에서도, 한국을 향한 외교에서도 이득이 되지 않았다. 러시아 석유 시설을 향한 깊은 타격은 수도 키이우의 피해를 줄이지 못했고, 북한군 포로 송환의 일방 공개는 방공 지원이 절실한 나라의 신뢰만 깨뜨렸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외부의 탄약과 방공, 재건 자금이 필요해지는데, 젤렌스키 정부는 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대를 압박의 대상으로 돌렸다. 이재명 정부의 대응은 그 파탄에 대한 감정적 반격이 아니다. 합의의 형식과 한반도 안정을 지키려는 최소 조치다. 실책의 소재는 서울이 아니라 키이우에 있다.
전선에서 한계는 이미 숫자로 드러났다. 9월 중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향해 1,000대가 넘는 드론을 띄웠다. 젤렌스키는 핵심 석유 시설과 물류 시설을 타격했다며, 잔혹한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장은 평화였지만 수단은 확전이었다. 러시아 국방부는 1,100여 대를 요격했다고 밝혔고, 모스크바 시장은 수도로 날아온 450대를 격추했다고 했다. 사상 최대 규모라는 수식은 붙었으나, 모스크바의 정치적 중심이 흔들렸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정유 시설의 불기둥은 하루의 뉴스였고, 전선의 위치는 그대로였다. 깊은 타격이 러시아의 전쟁 수행 의지를 꺾는다는 가정은, 적어도 이 가을에는 성립하지 않았다.
맞은편의 반응은 억제가 아니라 보복의 밀도를 높이는 쪽이었다. 러시아의 제트 추진 드론은 6월 350대에서 8월 2,800대로 늘렸고, 시속 400~600킬로미터대라 요격률이 종전 90퍼센트 안팎에서 60퍼센트대로 떨어졌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값싸고 빠른 무기가 수도의 방공망을 일상적으로 관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9월 5일에는 국가보안국 청사가 침공 이후 처음으로 맞았고, 27일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대사 관저로 쓰이던 건물이 피해를 봤으며, 28일 대낮에는 국립과학아카데미가 공격받아 사망자가 발생했다. 정부 청사와 대사관이 몰린 볼로디미르스카 거리 일대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비껴간 곳으로 여겨졌다. 확전을 피하려고 국가기관은 직접 때리지 않는다는 암묵적 선이 있었다는 현지 전문가의 말은, 그 선이 깨졌다는 평가이기도 하다.
이것은 우크라이나의 정유 타격이 러시아의 수도 공격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오히려 안전지대로 남아 있던 정부·외교 시설과 다리를 표적으로 끌어들였다. 도발이 레버리지를 만든다는 전제는, 피해가 모스크바가 아니라 키이우로 되돌아온 순간 무너진다. 미국 특사 일정에 맞춰 키이우 공습을 일시 중단하는 장면이 보여 주듯, 실제 숨 고르기는 드론 숫자가 아니라 외부의 정치 일정에서 나왔다. 전쟁 4년 차에 필요한 것은 한 번 더 깊은 타격이 아니라, 이미 기울어진 소모전을 관리할 외교다.
한국에 대한 외교는 그 오판을 노골적으로 반복했다. 7월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재명 대통령과 젤렌스키가 첫 정상회담을 했을 때, 양측은 북한군 포로 문제를 국제법과 인도주의, 당사자 자유의사에 맞춰 다루기로 했다. 한국 정부는 그 원칙에 따라 송환 계획을 비공개로 유지한다는 입장이었다. 비공개는 한국이 일방적으로 씌운 조건이 아니다.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에, 비공개가 처음부터 우크라이나 측이 요청한 공감대였다고 보고했다. 포로의 안전과 의사, 송환 과정의 관리를 위해 당사자가 먼저 조용한 처리를 원한 것이다. 그 형식을 지킨 쪽은 한국이었다.
8월 젤렌스키는 한국을 콕 집어 방공 체계 지원을 원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살상 무기 지원 금지 원칙으로 사실상 거절했다. 이 거절은 냉대가 아니다. 북한군이 러시아 측에서 참전한 전쟁에 한국산 포대와 요격 수단을 보내는 것은 인도 지원이 아니라, 한반도 확전의 통로를 스스로 여는 일이다. 북한은 그 무기가 누구를 향해 쓰였는지를 참전 경험과 분리하지 않는다. 포로 송환을 인도주의로 다루면서 살상 무기는 보내지 않겠다는 선은, 전쟁 당사자가 아닌 나라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일관된 위치다. 재건과 비살상 지원, 인도 협력의 문은 그 선 안에서도 열려 있다. 한국이 닫은 것은 포대가 아니라 확전의 입구였다.
젤렌스키 정부는 그 선을 압박의 소재로 뒤집었다. 9월 말 포로의 한국행을 국제무대에서 공개했다. 국정원은 우크라이나가 무기 지원 등을 기대하고 공개한 것으로 보이며, 어떤 지원도 없었다고 분석했다. 도움을 거절당하자, 자신이 먼저 요구한 비공개를 깨고, 포로를 여론전의 카드로 쓴 것이다. 합의를 지킨 쪽을 망신 주어 정책을 바꾸게 하려는 외교는 협상이 아니다. 배신에 가깝다. 포로는 사람이고, 송환은 당사자의 의사와 안전을 전제로 한다. 그것을 방공 무기 협상의 지렛대로 공개하는 순간, 인도주의는 구실이 되고 포로는 소품이 된다. 우크라이나가 한국에 절실히 필요한 것이 방공망이라면, 해서는 안 될 일의 맨 위에 있는 것이 바로 그 공개였다.
10월 2일 이 대통령이 밝힌 경과는 우크라이나 측이 비공개를 요구해 합의했는데 일방적으로 공개했고, 대한민국 대통령이 최대한 예의를 갖춰 아쉽다고 했더니 합의 사실이 없다며 상대국 국가원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으며, 합의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했더니 도리어 남북 간 군사 충돌이 임박하였다며 한반도 전쟁 발발을 거론했다는 것이다. 부다노우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북한의 참전 경험이 한반도 안에서의 실제 전투와 충돌 대비로 이어진다고 경고한 발언이 그 배경이다. 포로 송환을 빌미로 한국 대통령의 말을 부정하고, 한반도 전쟁을 운운하는 것은 지원 요청이 아니다. 협박이다. 도움을 구하는 나라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라의 안보 불안을 자극하는 것은 외교의 기본을 버린 행위다. 사실인정과 공개 사과를 계속 거부하면 추가 조치를 해 나가겠다고 한 것은 과잉이 아니다. 국민과 국가 위신에 관한 문제로 묵과할 수 없다는 선언은, 어떤 정부라도 해야 할 최소 대응이다. 합의를 부인당하고 전쟁 발발을 기도한다는 말을 들은 국가원수가 침묵한다면, 그때 외교가 무너진다.
우크라이나 외무부가 뒤늦게 한국은 중요하고 외교적 오해를 진심으로 해결하고 싶다고 한 것은 수습이지 해명이 아니다. 압박이 통하지 않자, 중요성을 말한 셈이다. 오해라는 단어는 사실과 맞지 않는다. 비공개 요청, 일방 공개, 합의 부인, 한반도 전쟁 언급은 오해가 아니라 행위의 연쇄다. 행위는 사과로만 거둬진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과 중요하게 대하는 것은 다르다. 방산 협력과 재건, 비살상 지원은 신뢰가 남아 있을 때만 열린다. 그 신뢰를 먼저 깨고 사과를 미루는 쪽이 손실을 본다. 한국은 포로를 인도주의로 다루겠다고 했고, 살상 무기는 보내지 않겠다고 했으며, 합의 파기와 허위 부인, 한반도 전쟁 언급에만 선을 그었다. 세 판단 모두 일관된다. 일관되지 않은 것은 거절을 배신으로 되돌린 키이우의 외교다.
이재명 정부의 타당성은 여기서 더 분명해진다. 첫째, 살상 무기 거절은 우크라이나 적대가 아니라 한반도 관리다. 북한군 참전이 확인된 전쟁에서 한국산 방공 무기의 이전은 우크라이나 영공이 아니라 남북 군사 대치의 변수로 돌아온다. 그 변수를 열지 않은 것은 동맹의 이탈이 아니라 당사자가 아닌 나라의 의무다. 둘째, 비공개 유지는 우크라이나가 먼저 요청한 형식의 준수다. 요청한 쪽이 깨고, 지킨 쪽을 거짓말쟁이로 모는 구도에서 시정과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감정의 과잉이 아니라 사실의 회복이다. 셋째, 추가 조치의 예고는 위신의 문제가 방치될 때 같은 수법이 반복된다는 판단에서 나온다. 포로 공개가 무기 지원을 끌어내지 못하자 한반도 전쟁 운운으로 수위를 올린 상대에게, 선은 말로만 그어지지 않는다. 넷째, 인도 지원의 문 자체를 닫지는 않았다. 자유의사와 국제법이라는 7월의 원칙은 그대로다. 닫힌 것은 협박으로 원칙을 바꾸라는 요구뿐이다.
젤렌스키 정부의 착오는 전선에서는 깊은 타격이 러시아를 억제한다고 보고, 외교에서는 포로 공개가 한국의 무기 정책을 꺾는다고 봤다. 둘 다 상대의 보복과 제약을 무시했다. 러시아는 성역을 깨고 다리와 대학을 때렸고, 한국은 합의 부인을 사과 요구와 추가 조치로 받았다. 결과는 키이우의 안전지대 소멸과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라와의 공개 갈등이다. 여론이 협상 쪽으로 기운 수도에 필요한 것은 한 번 더의 도발이 아니다. 자신이 깬 합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이다. 그 순서를 뒤집는 한, 우크라이나의 확전성 외교는 러시아도, 한국도 움직이지 못한다. 움직이는 것은 자신의 고립뿐이다. 절실한 도움을 절실한 방식으로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지금 키이우에 남은 거의 유일한 외교적 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