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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ever the name—Corea or Korea—dignity comes f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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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디미르 올렉산드로비치 젤렌스키는 크리비리흐 출신 유대계 가정에서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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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天下

칼럼
baba77

우크라이나의 민족성과 젤렌스키의 교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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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9. 28
  • 민족성은 도덕적 위험성과 민주주의 저해 가능성 때문에 현대 정치학에서 지양되지만, 합리주의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특정 국가의 습속이나 생존 기술을 이해하는 보조 렌즈로서 여전히 유효합니다.
  • 우크라이나의 스테판 반데라 사례는 약한 제도 위에서 민족주의가 외세를 이용해 독립을 꾀하려다 비극적 결과를 초래하고, 그 기억이 현재까지도 외교적 갈등의 원인이 되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 젤렌스키 대통령의 외교적 행보는 이념적 친미보다는 전쟁 상황에서 자신의 정치적 생존과 국가의 레버리지를 극대화하려는 현실적 전략으로 이해해야 하며, 이는 상대의 '교활함'을 비난하기보다 그 배경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함을 시사합니다.
  • 한국 외교는 우크라이나의 복잡한 역사적 맥락과 현재의 생존 전략을 이해하되, 특정 민족성을 전제로 삼지 않고 국익과 상대의 유인이 겹치는 지점을 찾아 균형 잡힌 접근을 해야 합니다.
민족성이라는 말을 버리는 이유, 그럼에도 남는 것
현대 정치학자들은 민족성이라는 개념을 잘 쓰지 않는다. 도덕적으로 위험하고, 민주주의의 전제인 시민의 합리적 선택을 무너뜨리기 쉽다는 이유에서다. 아랍 사회를 가족 중심적이고 종교적이라고 단정하면, 개인주의에 기초한 민주주의가 성공하기 어렵다는 결론으로 쉽게 미끄러진다. 그러나 합리주의만으로는 윤곽이 잡히지 않는 현상이 있다. 지형과 제국의 변경(邊境)에서 길러진 습속, 약한 제도 위의 생존 기술, 외세를 레버리지로 쓰는 버릇은 민족성이라는 부정확한 말로라도 일단 붙잡아 두지 않으면 외교의 계산에서 빠지기 쉽다. 그래서 이 개념을 언제나 폐기할 수는 없다. 다만 전제로 쓰면 안 되고, 보조 렌즈로만 써야 한다.
 
산악 지형의 그루지야인들은 호전적이고 독립심이 강하며 공동체 연대력이 탁월하다. 외부 세력이 접근하기 쉬운 평원의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그와 달리 침울하고 순종적으로 보이거나 때로는 기회주의적으로 읽힌다. 지형이 습속을 만든다는 가설은 혈액형처럼 고정된 본질은 아니다. 그러나 변경국의 행동을 이해하는 보조 렌즈는 된다.
 
‘히트리 하홀(хитрый хохол)’과 이웃이 만들어 낸 이미지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한국인의 민족성이 저열해서 뭉치지 못하고 파벌 싸움만 한다고 폄하했듯이, 러시아인들은 우크라이나인을 비열하고 배신을 밥 먹듯 하니 절대로 믿지 말라고 한다. 한국인의 저항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변덕스럽기까지 한 기질은, 말 잘 듣고 새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으며 조직에서 눈치만 보는 일본적 습속보다 산업화 초기에는 불리했다. 그러나 디지털 대전환의 국면에서는 오히려 자산이 되기도 한다. 민족성의 평가는 시대의 기술 조건에 따라 뒤집힌다.
 
러시아인들은 우크라이나 사람을 히트리(약삭빠르다)한 하홀(새 대가리 털), 즉 천박할 정도로 이기적인 사람들이라고 낮잡아 부른다. 우크라이나인이 약삭빠르다는 취지의 속된 속담이 대단히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다. “우크라이나 하홀 상인들이 오면, 장사하던 유대인들은 짐을 싸서 떠나버린다.” 속담은 사실이 아니라 인접 제국이 이웃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외교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그 이미지를 진실로 믿는 일이 아니라, 상대가 그런 이미지로 움직인다는 점을 계산에 넣는 일이다.
 
유대인, 우크라이나, 그리고 과장된 계보
우크라이나에는 유대인이 많았다. 제정 러시아의 정주 구역이 이 땅에 걸쳐 있었고, 상인·관료·전문직에서 두각을 나타낸 가문이 적지 않았다. 다만 이들을 키예프 루스가 무너뜨린 하자르 왕국의 돌궐계 후예로 단정하는 이야기는, 한때 유행했으나 오늘날 역사·유전학에서는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동유럽 유대인의 주된 계보를 그 가설로 설명하면 외교적으로도 사실로도 위험하다.
 
러시아 혁명 이후 상당수가 오데사 항구를 통해 뉴욕으로 떠났고, 20세기 후반 미국 금융과 기술 산업에 동유럽계 유대인 이민자가 두드러진 것은 맞다. 소련 해체 뒤 이스라엘과 미국으로 간 사람들이 창업 국가와 기술 혁명을 도운 면도 있다. 그러나 구글과 페이스북을 ‘우크라이나에 남은 유대인의 직계 산물’로 잇는 것은 과장이다. 젤렌스키의 선조가 ‘이민 가지 않고 남은 그 가문’이라는 식의 직선도 증명되지 않는다.
 
르비우에서 선포된 이름, 스테판 반데라
르비우(르보프)는 합스부르크 제국에 속했던 도시로, 동유럽 유대 학문과 랍비 전통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 조금 가난하고 낡아 보이는 프라하 같다. 눈을 뜨면 전차가 돌길을 지나가고, 색이 바랜 대리석 바로크 건물이 늘어서 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이 이 서부 도시들의 복잡한 민족 구성을 점령에 활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르비우 유대 공동체를 ‘우크라이나 유대인과 러시아인을 학살한 나치 유대인’으로 뒤집는 서술은 역사와 반대다. 그 도시의 유대인 다수는 학살의 피해자였고, 협력의 주된 축은 점령 당국과 일부 현지 보조 기구였다.
 
그 르비우에서 20세기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가장 상징적이면서도 가장 위험한 이름이 국가를 선포했다. 스테판 반데라(1909~1959)다. 그는 당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령 갈리치아의 스타리 우흐리니우에서 그리스 가톨릭 사제의 아들로 태어났다. 1차 대전 후 우크라이나 독립 시도가 좌절되고 갈리치아가 폴란드 영토로 편입되면서, 그는 폴란드의 동화 정책과 차별 속에서 급진화했다. 청년기에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OUN)에 가담했고, 드미트로 돈초우의 ‘통합 민족주의’, 민족을 최고 가치로 두고 지도자 원칙과 폭력을 수단으로 인정하는 사상에 깊이 물들었다. 1934년 폴란드 내무장관 피에라츠키 암살을 조직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종신형으로 감형되었고, 1939년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를 나눠 삼키자, 감옥에서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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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1930년 사이의 스테판 반데라
 
1940년 OUN은 온건파 안드리 멜니크의 OUN-M과 급진파 반데라의 OUN-B로 갈라졌다. OUN-B는 독소전쟁을 독립의 기회로 보고 독일 국방군 정보부(압베어)와 협력해 나이팅게일·롤란트 대대를 조직했다. 1941년 6월 30일 독일군이 르비우에 입성하자, 반데라의 측근 야로슬라우 스테츠코가 “우크라이나 국가 부활”을 선언했다. 선언문은 히틀러의 ‘신질서’에 협력하겠다는 문구까지 담았다. 그러나 나치는 독립 우크라이나를 용인할 생각이 없었고, 철회를 거부한 반데라는 체포되어 작센하우젠 수용소의 특별 구역에 갇혔다. 이 수감 사실은 이후 그를 ‘나치에 저항한 인물’로 보는 근거가 된다. 비판자들은 결별의 이유가 반나치 이념이 아니라 독립 불허였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둘 다 부분적으로 맞다. 중요한 것은 이념의 순도가 아니라, 변경의 민족주의가 더 큰 제국의 전쟁을 자기 국가 수립의 창으로 쓰려다 창에 찔리는 구조다.
 
두 얼굴의 기억 정치
가장 어두운 대목은 그 선언과 거의 동시에 시작된다. 존-폴 힘카, 그제고시 로솔린스키-리베 등의 연구가 보여주듯, 1941년 여름 르비우를 비롯한 서부 우크라이나의 포그롬에 OUN-B 민병대가 가담한 사실은 상당 부분 입증되어 있다. 1942~43년 결성된 우크라이나 봉기군(UPA)은 1943~44년 볼히니아와 동부 갈리치아에서 폴란드 민간인을 조직적으로 학살했고, 희생자는 대략 5만~1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 반데라 본인은 수용소에 있었고 UPA의 실질적 지휘관은 로만 슈헤비치였다. 직접 책임의 범위는 논쟁거리다. 그러나 그가 이끈 조직의 이념과 운동이라는 점에서 그의 이름과 분리하기 어렵다는 것이 학계의 대체적 인식이다. 1944년 전세가 기울자, 독일은 반소 전력으로 그를 석방했다. 전후 그는 뮌헨에서 망명 OUN-B를 지휘했고, 1959년 10월 15일 KGB 요원 보흐단 스타신스키의 청산가리 분사총에 암살당했다.
 
소련은 그를 모든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매도하는 욕설(반데라주의자)로 만들었고, 독립 후 서부는 독립투사로, 동·남부는 파시스트 협력자로 갈라 기억했다. 2010년 유셴코의 ‘우크라이나 영웅’ 칭호는 폴란드·이스라엘·유럽의회의 반발 속에 무효화 되었고, 2015년 탈 공산화 법은 OUN과 UPA를 독립 투쟁 조직으로 인정했다. 폴란드 의회는 2016년 볼히니아 학살을 제노사이드로 규정했다.
 
이 기억은 과거로 끝나지 않는다. 2022년 전면전 이후 반데라에 대한 국내 호감은 급상승했고, 2026년 5월 젤렌스키는 특수작전부대에 ‘UPA 영웅’ 명칭을 부여했다. 폴란드는 백수리 훈장을 박탈하며 반발했다. 서부의 돌길을 걷는 이에게 반데라는 제국에 맞선 이름이고, 바르샤바와 예루살렘에는 학살의 이름이다. 어느 한쪽 얼굴만 국가 신화의 중심에 두면, 동맹의 거래 비용이 커진다. 반데라는 우크라이나 민족성의 ‘본질’이 아니다. 그러나 약한 제도 위의 민족주의가 외세를 끌어들여 독립을 사고, 그 대가로 이웃의 시체와 기억 전쟁을 남기는 전형이다. 독일 기업가가 말했던 그 ‘버릇’(일이 안 풀리면 외세를 끌어와 문제를 풀려 한다)의 20세기 고유명사다.
 
젤렌스키를 친미로만 보면 놓치는 것
젤렌스키는 크리비리흐 출신 유대계 가정에서 자랐다. 조부의 가족 상당수가 홀로코스트로 희생되었고, 조부는 소련군으로 독일에 맞서 싸웠다. ‘키예프에서 수만 명을 학살하는 데 부역한 유대인의 후손’이라는 설은 강하게 돌지만, 그의 가계와는 맞지 않는다. 전시 생존자가 가족도 부정(父情)도 저울질할 수 있다는 관찰은, 특정 혈통의 숙명이 아니라 점령과 내전이 반복된 땅에서 나타나는 정치 심리로 읽는 편이 안전하다. 끝없는 불안, 상황에 따른 변신—그것은 음모의 언어가 아니라 약한 제도 위의 생존 기술로 번역될 수 있다. 유대계 코미디언 출신 대통령이 전시에는 반데라와 UPA의 기억 정치를 국가 서사에 편입하는 모순도, 혈통의 배신이 아니라 전시 정권의 레버리지 관리로 읽는 것이 정확하다.
 
윤석열 정부 때는 우크라이나와 밀착해 NATO에 준하는 협력까지 염두에 두었다. 이재명 정부는 균형 감각을 유지하며 러시아와 관계를 복원하고, 북한 문제에서도 돌파구를 열려 했다. 외교·안보팀 위성락 안보실장 같은 러시아 전문가가 있는 것은 자산이다. 다만 러시아를 아는 것과 우크라이나의 문화·정치 습속을 아는 것은 별개다.
 
젤렌스키가 친미를 한다고 해서 미국을 대하듯 우크라이나를 보면 안 된다. 그의 처지에서는 정권을 잃으면 많은 것을 잃는다. 전쟁을 시작한 쪽은 러시아다. 그러나 전면 항전을 선택한 이후, 수십만의 젊은이가 죽고 수백만의 난민이 발생한 책임의 목록은 정전 협상의 조건과 함께 그의 앞에 놓인다. 감옥이나 처형까지 단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출구가 곧 정치적 죽음이 될 수 있다는 점은, 김정은과 체제는 달라도 유인(誘引)의 형태는 일부 닮았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트럼프도 속일 수 있다. 이를 천성의 간사함으로 부르기보다, 전시 지도자의 레버리지 관리로 읽는 것이 외교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만만해 보일 수 있다. 젤렌스키가 북한 포로를 한국 쪽으로 넘긴 것은, 2026년 여름 양 정상이 국제법과 본인 의사, 강제송환 금지를 전제로 다루기로 한 연장선에 있다. 이승만의 거제도 석방과 같은 일방적 기습으로만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2026년 9월 유엔 연설에서 키이우가 이 이슈를 공개하며 국제 사회의 관심을 끌고, 유럽 전쟁을 동북아의 긴장과 연결해 자신의 정치적 공간을 넓히려 했다는 독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서울이 비공개 처리를 요청했음에도 공개한 순간, 포로는 인도 문제인 동시에 한반도를 유럽 전장의 연장 보드로 끌어들이는 카드가 된다. 북한이 발끈하고 러시아가 강경해지면, 그 명분으로 전쟁을 연장하고 레버리지를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데라가 독일군을 독립의 문으로 본 것과 같은 구조의, 훨씬 작은 판이다.
 
부패의 형태가 다른 두 나라
나는 모스크바에서 키예프로 이주한 뒤 독일·오스트리아 기업인들과 교류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거품을 만들고 기업 회계를 부풀려 밸류에이션을 키운 측면이 있었다. 그것을 모르고 떠오르는 동구권 신흥시장이라 여긴 오스트리아 은행들은 큰돈을 넣었다가 잃었다. 수익이 빈약한 현지 기업인들이 오스트리아 쪽을 크림반도로 데려가 요트를 태우고, 밤새 와인과 보드카가 오가게 한 접대는 여러 회고에 나온다. 술 취한 배가 흑해의 잔잔한 물결 위에서 비틀거렸다.
 
볼프강이라는 이름의 독일 기업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편견을 극히 싫어한다. 서구화를 추진하는 우크라이나를 사랑한다. 그런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모두 경험한 기업인·외교관들은 거의 러시아를 더 선호한다. 러시아는 권위적이고 질서가 있어 부패가 수직적이다. 윗사람에게만 로비하면 된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부패가 분산되어, 윗사람에게 주어도 중간에서 일이 샌다. 돈은 날리고 일은 성사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일이 안 풀리면 외세를 끌어와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러시아를 견제하려고 스웨덴 군대를 끌어들여 폴타바의 큰 전쟁을 만들었고, 오스만과 러시아가 크림에서 싸우게 했다. 20세기에는 독일 점령을 독립의 기회로 삼으려 한 세력이 있었고, 지금은 미국을 향해 추파를 던진다.” 민족 비하라기보다 제도 관찰이다. 수직적 부패와 ‘민주적’으로 분산된 부패는 협상 상대를 고르는 법을 다르게 만든다. 반데라의 OUN-B가 압베어와 손잡고 국가를 선언한 장면은, 이 관찰의 가장 선명한 역사적 사례다.
 
불가코프의 언덕, 외교가 듣는 푸념
나는 바에서 나와 미하일 불가코프의 생가가 있는 안드리이 언덕의 비어홀에서 2차를 했다. 불가코프는 『거장과 마르가리타』로, 모스크바에 재림한 예수를 모티프로 한 기념비적 작품을 남겼다. 스탈린에게 편지해 모스크바 국립극장장을 시키지 않을 바에야 외국으로 내보내 달라고 할 만큼 대범했다. 스탈린은 전화를 걸어, 극장 일을 시킬 테니 글이나 더 재미있게 쓰라고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는 러시아 정교 사제의 아들이었고, 혁명 후 내전 시기 우크라이나 쪽에서 야전 의사로 일한 경험이 있다. 키예프에서 태어나 살았으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에는 비판적이었다. 전쟁이 나자, 친러 문인이라는 낙인 아래 그의 동상·기념물이 철거되는 일이 벌어졌다. 반데라의 동상이 서고 불가코프의 동상이 내려간 도시는, 민족의 본질이 바뀐 것이 아니라 전시 기억의 배급이 바뀐 것이다.
 
그날 비어홀의 독일 외교관은 나를 보더니 다가와 말했다. “대사관 영사다. 우크라이나 여자와 결혼한 독일 남자들이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몫을 노리는 태도와 근검함이 몸에 밴 독일 쪽 생활 습관이 충돌한다. 러시아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 도시에 와서 새 삶을 살다가 지갑과 신분증을 잃는 일도 있다. 독일은 우크라이나를 폴란드와 같은 안정된 시장으로 만들려 하는데, 제도가 받쳐 주지 않으면 선의가 당한다. 약삭빠르고 머리 좋은 사람들이 왜 이토록 오래 가난과 비참 속에 머무는지, 그것이 신기하다.”
 
여성과 민족을 일반화하는 푸념은 그대로 받아 적을 이야기가 아니다. 외교적으로 남는 핵심은 따로 있다. 신뢰가 낮은 제도 위에서 외국인의 거래 비용이 커진다는 점, 재능과 국가 성과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데라를 영웅으로만 모시거나 악마로만 모시는 기억 정치 역시, 그 거래 비용을 키우는 방식이다.
 
한국 외교가 읽어야 할 교활함
우크라이나를 미국처럼 대하면 안 된다. 젤렌스키는 이념적 친미 인사이기 이전에, 전쟁을 자기 운명과 묶은 전시 지도자다. 북한 포로는 인도 문제인 동시에, 한반도를 유럽 전장의 연장 보드로 끌어들이는 카드가 될 수 있다. 한국이 할 일은 그를 도덕적으로 단죄하거나 정서적으로 밀착하는 일이 아니다. 키이우가 동북아의 긴장을 자기 레버리지로 쓰지 못하게 하면서도, 포로 인권과 국제법 원칙은 지켜내는 일이다. 모스크바 채널을 복원하되, 그 복원이 줄서기로 오해받지 않게 하는 일이다. 반데라의 이름을 우크라이나 민족의 숙명으로 읽는 순간, 우리는 러시아 선전의 문법에 올라탄다. 그 이름을 지워 버리는 순간, 우리는 키이우가 동맹에 청구하는 기억의 대가를 놓친다.
 
약삭빠른 교활을 비난하는 대신, 약삭빠름이 나오는 자리(변경, 약한 제도, 외세 의존, 전시 생존)를 읽는 쪽이 균형에 가깝다. 민족성은 설명의 보조 가설일 수는 있어도 외교의 전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상대의 유인과 우리 국익이 겹치는 지점이다. 그 지점을 놓치는 순간, 설계하는 쪽은 항상 생존이 급한 쪽이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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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7
우크라이나인을 어떤 민족적 본질로 규정하는 순간 오히려 글의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변경국가의 역사와 약한 제도, 외세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던 조건이 오늘의 정치행동에 어떻게 흔적을 남겼는지를 읽는 일이라고 봅니다. 젤렌스키 역시 선악의 틀보다 전시 지도자로서 어떤 유인을 갖고 움직이는지를 봐야 한다는 지적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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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2274
7
우크라이나를 이해하는 데 민족성이라는 단어보다 중요한 것은 변경국가의 역사와 생존 조건입니다.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외세를 활용해 온 경험이 오늘의 외교에도 흔적을 남겼다면, 한국은 감정보다 그 유인을 먼저 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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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boo
6
한국이 우크라이나와 관계를 맺는 데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연대도 무조건적인 거리두기도 아닙니다. 포로와 인권 문제에서는 국제법 원칙을 지키되, 키이우가 한국의 안보 현실을 자신의 외교적 지렛대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냉정하게 선을 긋는 균형감각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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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경
5
민족성이라는 위험한 개념을 무조건 폐기하거나 반대로 모든 것을 민족성으로 설명하는 양극단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가장 중요한 대목 같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이해하려면 지리와 제국의 역사, 민족주의, 부패한 제도, 러시아와 서방 사이의 지정학을 함께 봐야 합니다. 결국 외교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정확히 읽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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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ro
5
반데라를 영웅으로만 기억하는 것도, 나치 협력자라는 한 문장으로만 규정하는 것도 우크라이나의 복잡한 역사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특히 폴란드인 학살과 유대인 박해, 독일과의 협력, 소련의 선전, 독립 이후의 기억정치까지 함께 봐야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외교적 행동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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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a91
4
젤렌스키의 행동을 ‘교활함’이라는 성격론으로 설명하면 오히려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습니다. 전쟁 중인 지도자에게 생존과 지원 확보는 정권의 존립과 직결됩니다. 한국 외교가 봐야 할 것은 그의 성품이 아니라 행동을 만들어내는 구조와 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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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ral
4
결국 이 글이 말하는 ‘교활함’은 민족적 결함이라기보다 생존전략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도가 약하고 주변 강대국들이 끊임없이 개입하는 공간에서는 외세를 활용하는 능력 자체가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전략을 상대방이 어떻게 이용당하지 않고 국익의 관점에서 관리하느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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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ite85
4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보면 러시아와 서방 어느 한쪽의 설명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폴란드·러시아·독일 사이에서 반복된 지배와 전쟁, 민족주의와 기억의 충돌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외교는 결국 상대의 역사적 경험까지 읽어내는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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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1
젤렌스키를 단순한 친미 지도자로 보는 것도, 반대로 교활한 정치인으로 단정하는 것도 모두 위험합니다. 전쟁의 생존이 곧 정권의 생존과 연결된 지도자라면 행동 하나하나에 국내 정치와 국제적 레버리지가 함께 작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외교가 필요한 것은 감정적 친소가 아니라 이런 유인을 냉정하게 계산하는 능력이라는 주장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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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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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 대해 일부지만 조금 알게 되었네요. 젤라스키 대통령은 자기를 드러내려는 쇼맨십이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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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g Byeon_72828
0
우크라이나인과 결혼했다가 얼마 못살고 이혼한 부잣집 딸의 모친이 전해준 말인데 전 신랑집 부모까지 서울에 찾아와서 이혼 위자료 청구하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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