品
Logo
Corea든 Korea든, 품격은 이름보다 먼저다
Whatever the name—Corea or Korea—dignity comes first.
Whatever the name—Corea or Korea—dignity comes first.
지금
Now
751 Diaspora
유산
Heritage
인문
Humanity
未冷尸
Mirengsi
정치
Politics
언론
Media
Thumbnail
후티는 예멘과 사우디아라비아 남부, 이라크 일부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
category-icon

천하天下

칼럼
baba77

후티는 하늘에서 떨어진 민병대가 아니다

Views
0
2026. 09. 22
  • 후티는 베버의 국가 정의에 부합할 정도로 북예멘을 통치하며 세금, 징병, 법정을 운영하고 군사력을 행사하는 실질적인 정치체입니다.
  • 그럼에도 후티를 '반군'으로 부르는 것은 그들이 기존 질서에 도전하며 시아파 평등주의를 확장하려는 의지를 가진 세력임을 강조하고, 국제 사회가 이들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 후티의 홍해 장악은 글로벌 유가와 금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세계 경제에 파급 효과를 일으키며, 이는 예멘 문제가 더 이상 국지적 갈등이 아닌 국제적 안보 및 경제 변수임을 보여줍니다.
  • 후티의 행보는 수니-시아파 갈등, 이란-사우디 패권 경쟁, 중동 기득권과 피억압 세력의 대립, 미국과 반미 세력 간의 인정 투쟁 등 복합적인 역사적, 지정학적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 예멘은 고대부터 제국들의 지배를 온전히 받지 않고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해 온 '정복될 수 있어도 소화되지 않는 땅'이며, 후티는 이러한 예멘의 저항적 역사와 독립 정신을 계승하는 최신 발현입니다.
국가를 정의할 때 특정 지역에 대한 폭력의 독점을 기준으로 삼는 막스 베버의 이론을 따른다면, 후티는 반군이라기보다 이미 국가에 가깝다. 그들은 수도 사나를 포함한 북예멘 고원과 홍해 연안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세금과 징병과 법정을 운영하며, 미사일과 드론과 해상 봉쇄로 바깥 세계에 자신의 의지를 관철한다. 후티의 군사력은 소말리아 해적들과 다르다. 해적은 항로를 훑고 달아나는 약탈자고, 후티는 영토와 이념과 동맹을 가진 정치체다.
 
그러나 호칭은 늘 순수하지 않다. 후티가 북예멘에 만족하지 않고 남예멘과 사우디에까지 시아파의 평등주의 이슬람을 확신시키려 한다면, 그들을 여전히 반군으로 부르는 편이 더 정확하고 더 쿨하다. 국가로 인정하는 순간 후티는 현상 유지의 책임자가 된다. 반군으로 남을 때만이 기존 질서—리야드의 왕정, 걸프의 석유 엘리트, 워싱턴의 동맹 회로—를 흔드는 세력으로 남는다. 이름 자체가 이미 정치다.
 
후티가 홍해를 장악하고 이라크 남부의 시아파 민병대와 호흡을 맞추어 사우디를 드론과 미사일로 두드리자, 유가는 다시 꿈틀거렸다. 호르무즈가 막히거나 위태로워진 2026년의 중동에서, 사우디가 기댄 우회로는 홍해였다. 동서 송유관이 얀부로 흘러가고, 얀부가 흔들리면 세계 유가가 흔들린다. 물가가 뛰면 중앙은행이 움직인다. 쿠팡 사외이사를 지낸 케빈 워시가 연준 의장 자리에 앉은 미국은, 중동의 산악 세력이 쏘아 올린 드론의 파편을 금리라는 추상적 언어로 받아낸다. 예멘의 해안 포대가 서울의 장바구니와 뉴욕의 채권 시장을 동시에 건드리는 세계가 이미 와 있다.
 
후티의 사우디 공격은 수니와 시아파의 내전을 예고한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이것은 마호메트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와 그의 아들 후세인의 죽음을 소환하는, 이슬람 종갓집이 누구냐는 역사의 전쟁이다. 이란과 사우디 사이의 지정학적 패권전쟁이다. 중동의 기득권 세력과 피억압 세력 사이의 계급투쟁이다. 미국을 추종하는 사우디·걸프 국가들과 미국을 거부하는 세력들 사이의 인정투쟁이다. 네 겹이 한 전선에 겹쳐 있다. 후티를 “이란의 대리인”이라고만 부르는 말은 편리하다. 그러나 그 편리함 때문에 예멘이라는 공간의 독자적 무게가 지워진다.
 
예멘의 지도를 보자. 예멘은 아라비아반도의 남서쪽에 있다. 홍해와 아프리카 동부와 인도양과 걸프를 잇는 교차로다. 좁은 목인 바브엘만데브는 아시아와 유럽을 수에즈로 연결하는 숨구멍이고, 그 숨구멍을 누가 쥐느냐가 곧 누가 물가를 쥐느냐와 통한다. 로마제국은 인도의 비단과 향료를 끌어오기 위해 예멘의 모카항에 눈을 두었다. 홍해는 한때 유대인들의 지중해이기도 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팔레스타인에서 밀려난 유대인들의 일부가 남쪽으로 내려와 예멘의 해상 교역망에 스며들었다. 4세기 말, 히미야르 왕국은 다신교를 버리고 유대교, 혹은 유대교에 가까운 엄격한 일신교를 국가 종교로 삼았다. 5~6세기, 이 남아라비아의 유대 왕국은 주변의 기독교 부족과 동로마의 영향권을 밀어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홍해 건너 에티오피아의 기독교 왕국 악숨을 움직여 히미야르를 치게 했다. 유대 왕 유수프 두 누와스(드후 누와스)가 나즈란의 기독교도를 탄압한 것이 명분이었다. 악숨의 군대가 홍해를 건너왔고, 히미야르의 유대 왕국은 무너졌다. 그러나 그 땅의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예멘과 남아라비아의 부족들은 이후 이슬람이 동로마와 사산조 페르시아를 중동에서 밀어내는 정복 전쟁에서 큰 병력을 보탰다. 예멘은 이슬람의 변방이 아니라, 이슬람이 제국이 되는 과정의 한 엔진이었다.
 
15세기 이후 중동의 패권을 잡은 오스만 제국도 예멘을 완전히 삼키지 못했다. 셀림이 시리아의 총독에게 예멘을 정복하라 하자, 그 총독이 난색을 표했다는 전언이 전해진다. 교역상 중요한 곳이지만 너무 멀고, 산악이 험준하고, 사람들의 독립심이 강하다는 이유였다. 실제 역사도 그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스만은 16세기에 들어갔다가 17세기에 자이디 이맘 세력에게 고원을 내주었고, 19세기에 다시 들어갔다가 제1차 대전 끝에 다시 물러났다. 예멘은 점령될 수는 있어도 소화되지는 않는 땅이었다. 후티를 말하기 전에 이 정도를 알아야 한다. 후티는 갑자기 나타난 민병대가 아니라, 정복되지 않는 고원의 최신 이름이다.
 
우리나라의 중동학은 매우 빈곤하다. 중동을 오래 지배한 영국에서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엘리트들이 비잔틴 역사를 먼저 읽고 그 위에서 중동을 연구했다. 동로마의 행정과 교리와 변경 부족을 알고 나면, 이슬람 이후의 언어·정체성·지정학이 따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 전통의 대표가 토인비이고, 사막을 사랑한 아라비아의 로렌스다. 물론 로렌스가 조국이나 사막보다 남자의 엉덩이를 더 사랑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서양 중동학이 입체적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문화와 정치 언어와 지정학을 한 시야에 넣는다. 한국에서는 주로 아랍 국가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중동학을 하므로, 이슬람 도래 이전의 지층이 현재에 어떤 힘을 남기는지 분석하는 데 한계가 있다. 7세기 초 이슬람이 오기 전, 지중해 연변은 동로마, 이라크와 이란 쪽은 사산조 페르시아가 지배했다. 호남과 경상도가 한국 정치의 오래된 골처럼 남듯, 중동에서 시아파와 수니파의 균열은 여전히 현대 정치의 틀이다.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은 오늘날에도 중동 정치의 뼈대다. 그러나 그 본질은 교리와, 마호메트의 피를 얼마나 이어받았느냐의 논쟁만은 아니다. 본질은 630년 마호메트 사후 이슬람 정복자들이 페르시아를 점령하면서 발생한 지정학적 변동이다. 무슬림 정복자에게 정복당한 민족들은 대부분 아랍화되었다. 그러나 페르시아인들은 언어와 문화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핍박받는 피지배자의 이슬람인 시아파를 받아들였다. 시아파는 미륵이 도래한다고 믿는 기복적이고 메시아적인 종파다. 전 세계 이슬람의 10분의 1 정도인데, 대부분 이란과 그 주변의 걸프 국가, 시리아에 집중되어 있다.
 
638년 알카디시야 전투 이후 사산조 페르시아는 무너졌고, 마지막 황제는 사마르칸트 인근으로 도망가 당나라에 원군을 청하기도 했다. 우마이야 왕조가 중동을 지배했지만, 한 세기쯤 뒤 이란 지방의 시아파들이 봉기했고, 페르시아의 관료·기술자·군인들이 압바스 왕조를 세웠다. 그 수도 바그다드는 사산조의 수도 크테시폰 외곽이다. 이슬람은 종교적 엄격주의와 평등주의가 강한 전통을 갖는다. 정치적 폭력은 있어도 개인적 폭력과 범죄는 상대적으로 적다는 이미지가 오랫동안 따라다녔다. 오스만이 중동을 장악한 시기, 그리고 냉전 시기에는 수니-시아 갈등이 가려졌다. 그러나 냉전이 막을 내리며 그 갈등은 사담 후세인과 호메이니의 대결로 다시 태어났고, 미국이 사담을 제거한 뒤에는 사우디와 이란의 패권경쟁으로 부활했다.
 
미국은 사우디 편이다. 그러나 9·11의 주범 알카이다와 IS를 키운 온상 중 하나는 바로 사우디 왕정 세력이었다. 왕정은 자신의 폭압적 체제를 지키기 위해 급진 수니 세력을 활용하고, 미국의 민주주의가 안으로 스며들지 못하게 막아왔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견제하기 위해 사우디와 손을 잡는 형국이다. 이런 구도 안에서 예멘의 후티는 단순한 이란 하청이 아니다. 중동 토속의 풀뿌리 저항운동에 가깝고, 굳이 우리 역사의 언어로 옮기면 중동판 동학군이다. 다른 점은 후티가 이란의 지원을 받아 최첨단 군사력과 상당한 행정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후티의 저항이 사우디로 번져 왕정이 약화되는 것 자체에는 관심이 적어 보인다. 미국의 관심은 이란을 잡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후티는 미국과 타협해 자기 세력을 확보하는 스몰딜을 할 수 있다. 후티는 이란과 달리 핵 개발을 하지 않고, 아사드 시기 시리아처럼 러시아와 깊게 묶여 있지도 않다. 홍해를 잘 관리해 미국의 이해에 부합하게 한다면, 미국은 이란에 집중하기 위해 후티 전쟁에는 거리를 둘 수 있다. 이 점 때문에 사우디는 미국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러시아나 중국과 거래해 자국 안보를 강화하려 한다. 사우디 왕가의 그 조바심이 한국 방산기업들에게는 기회가 된다.
 
후티는 북부 사다 지방의 자이디 시아파에서 나왔다. 자이디는 이란의 십이이맘파와 뿌리가 같지만, 교리와 정치 전통이 다르다. 이들은 예언자 가문의 정당한 지도력을 내세우면서도, 산악 부족의 자치와 외부 지배에 대한 거부를 신앙처럼 간직했다. 후세인 알후티가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살라프화·사우디화·미국화에 반대하는 부흥 운동을 일으켰을 때, 구호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미국에 죽음, 이스라엘에 죽음, 유대인에게 저주, 이슬람에 승리. 알리 압둘라 살레의 장기 집권이 아랍의 봄 이후 무너지고, 2014~2015년 후티가 사나를 접수했을 때, 그들은 단지 수도를 점령한 것이 아니라 정규군과 정보기관과 미사일 창고를 함께 접수했다. 사우디가 주도한 개입은 후티를 말려 죽이지 못했다. 오히려 후티를 ‘저항의 축’ 안으로 밀어 넣었다. 하마스와 헤즈볼라가 소모된 공백을 후티가 메웠다. 이란은 기술과 부품과 교리를 보냈고, 후티는 그것을 예멘의 지형과 부족 네트워크와 결합해 자신들의 무기로 만들었다.
 
존재감이 없던 산악 세력이 홍해를 장악한 결정적 전환은 2026년 여름과 초가을에 일어났다. 이란을 둘러싼 더 큰 전쟁이 호르무즈를 위태롭게 하자, 사우디의 원유는 동서 송유관을 타고 홍해의 얀부로 몰렸다. 후티는 그 숨구멍을 보았다. 7월, 사우디 연계 선박과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이 재개되었다. 9월 10일 모카가 떨어졌다. 다음 날 하니시 제도와 바브엘만데브 한가운데의 페림(마윤) 섬이 넘어갔다. 로마가 탐냈던 그 모카항이, 유대 왕국이 홍해를 내해처럼 쓰던 그 바다가, 오스만도 완전히 닫지 못한 그 해안이, 후티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후티는 국제 상선 전체를 막겠다고 하지 않는다. 사우디 선박만 제외하면 통행은 자유롭다고 말한다. 선택적 봉쇄는 더 교활하다. 모두를 적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한 나라의 생명줄을 쥔다. 중국이 이란에 후티를 말리라고 전하고, 미국과 후티가 오만에서 비밀리에 얼굴을 맞댄다는 보도가 나오는 이유다. 후티는 이제 예멘 내전의 당사자가 아니라 에너지 안보의 변수다.
 
앞으로의 길은 세 갈래로 보인다. 첫째, 후티가 홍해 길목의 임대인으로 남는 길이다. 선박을 선별 공격하고, 사우디와 미국과 중국을 각각 다른 가격에 협상하며, 북예멘의 사실상 국가를 국제사회가 못 본 척하게 만드는 길. 둘째, 남하와 사우디 타격을 멈추지 않는 길이다. 타이즈와 마리브를 밀고, 아덴으로 가는 허리를 끊고, 얀부와 공군기지를 계속 두드린다. 이 길은 수니-시아파 전면전의 문턱을 낮춘다. 셋째, 과잉 확장 끝에 고원으로 되밀리는 길이다. 예멘 정부군과 사우디와 외부 지원이 해안을 되돌리고, 후티는 다시 사다와 사나의 산속으로 접힌다. 어느 길이든 베버의 기준은 이미 충족되어 있다. 폭력의 독점은 북예멘에서 작동한다. 다만 후티가 시아파 평등주의를 남과 사우디에까지 확신시키려 하는 한, 그들을 반군으로 남겨두는 호칭이 더 잘 맞는다. 반군은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이고, 국가는 이미 끝난 질서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후티를 이해하는 일은 미사일 제원표를 읽는 일이 아니다. 예멘이라는 교차로가 수천 년 동안 제국을 삼키지 않고 뱉어낸 방식을 읽는 일이다. 로마도, 악숨도, 오스만도, 사우디도 그 산을 끝까지 소화하지 못했다. 후티는 그 소화 불량의 최신 증상이다. 홍해의 물결과 유가의 눈금과 연준의 금리가 그 증상을 세계 언어로 번역하고 있을 뿐이다. 종가의 전쟁, 패권의 전쟁, 계급의 전쟁, 인정의 전쟁이 한 해협에서 만난다. 그 해협의 이름은 바브엘만데브이고, 그 땅을 여전히 반군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들이 아직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댓글
( 0 / 500 )
88kda
9
후티를 단순히 ‘이란의 대리군’이나 ‘테러조직’이라는 한 문장으로 규정하면 예멘이라는 공간의 역사와 부족사회, 자이디 전통을 놓치게 된다는 지적이 인상적입니다. 특히 로마·악숨·오스만까지 거슬러 올라가 후티의 현재를 설명한 방식이 흥미롭습니다.
( 0 / 500 )
seeu79
8
홍해의 작은 해안 분쟁이 왜 유가와 물류비, 물가와 금리까지 연결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글입니다. 예멘의 지리적 위치가 단순한 중동의 변방이 아니라 세계 에너지와 해상교역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새삼 생각하게 합니다.
( 0 / 500 )
555k
6
후티를 국가와 반군의 중간에 있는 정치체로 바라보는 관점이 흥미롭습니다. 영토를 통치하고 세금을 걷으며 군사력을 행사한다면 사실상 국가적 기능을 수행하지만, 국제적 승인과 전쟁의 종결이라는 측면에서는 여전히 반군이라는 이중성이 존재하겠지요.
( 0 / 500 )
woo
5
무엇보다 후티를 오늘의 뉴스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무장세력으로 보지 않고 예멘의 오랜 산악 정치문화와 외부 제국에 대한 저항의 역사 속에 위치시킨 점이 좋았습니다. 다만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을 설명할 때는 종교적 차이와 현대의 국가·민족·계급·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서로 얽혀 있다는 점을 조금 더 구분해서 볼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
( 0 / 500 )
이정훈90
5
후티를 이해하려면 예멘 내전만 들여다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이디 전통, 부족사회, 사우디와 이란의 경쟁, 홍해의 지정학이 겹쳐 있으니 어느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세력입니다. 복잡하지만 그래서 더 공부할 가치가 있는 주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 0 / 500 )
고고준
4
특히 ‘폭력의 독점’이라는 베버의 국가론을 후티에 적용한 부분이 흥미롭습니다. 국제적으로 국가로 승인받았느냐와 별개로 실제로 영토를 통치하고 행정과 군사력을 행사한다면 사실상의 국가 기능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는 문제를 던지는군요.
( 0 / 500 )
이준호
3
‘후티는 소화 불량의 최신 증상’이라는 표현이 오래 남습니다. 제국과 왕조가 수없이 지나갔지만 산악지대의 정치적 자율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오늘의 후티 문제도 단순한 군사작전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0 / 500 )
october79
3
예멘을 중동의 변방으로만 생각했던 시각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글입니다. 바브엘만데브와 홍해를 통해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가 연결되는 지리적 조건을 생각하면 예멘의 혼란이 결코 예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설명에 공감합니다.
( 0 / 500 )
89철민
1
핵심 질문은 ‘후티가 무엇인가’보다 ‘우리는 왜 후티를 그렇게 부르는가’인 것 같습니다. 반군, 테러조직, 이란의 대리세력, 사실상의 국가라는 명칭마다 바라보는 세계가 달라집니다. 홍해를 둘러싼 현재의 충돌을 이해하려면 무기와 군사력뿐 아니라 역사와 지리, 에너지와 국제정치까지 함께 봐야 한다는 데 공감합니다.
( 0 / 500 )
신고내용

신고내용을 선택해주세요
회원비난/비하/욕설글 및 댓글도배성 게시물저작권 침해/불법자료 유출허위사실유포개인정보 유출.사생활 침해무단광고/홍보음란물 및 도박 불법 광고물범죄행위 관련 글불법행위 관련 소개물품 판매 및 사기글악성코드 및 스파이웨어 유포기타 사유 및 운영진 판단
ID
PasswordShow password
비밀번호를 잊으셨나요?

Sign in with Google
열린국회정보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열려라국회국회입법예고참여연대참여연대

All information provided by us is free of charge and is for the public good.

ⓒ 2022. P-UM.net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