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은 꿀만 만들지 않는다
프랑스 경제학자 얀 물리에 부탕(Yann Moulier-Boutang)은 현대 자본주의를 설명하면서 꿀벌의 ‘꽃가루받이’에 주목했다. 양봉업자가 시장에서 판매하는 것은 꿀이지만, 꿀벌이 만들어내는 가치는 꿀에만 있지 않다. 벌이 꽃과 꽃 사이를 오가며 수행하는 수분은 농업 생산과 생태계의 재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시장에서 가격이 매겨지는 꿀은 그 거대한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이 비유를 오늘의 경제에 가져오면 흥미로운 장면이 나타난다.
디지털 시대의 부는 공장과 기계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의 교육과 지식, 언어와 문화, 관계와 신뢰, 데이터와 오픈소스, 대학과 공공연구, 도로와 통신망 같은 사회 전체에 흩어진 자원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 기업은 그 꽃밭에서 사업한다. 문제는 시장이 그 결과물의 가격은 정교하게 계산하면서도, 그 결과물을 가능하게 만든 꽃밭의 가치는 충분히 계산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꿀은 회계장부에 올라가지만 꽃가루받이는 장부 밖에 남는다. 그래서 묻게 된다. 오늘날의 거대한 부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
세 마리 곰의 해부, 아니 세 개의 장부를 펼쳐보자
이 렌즈로 우리 시대의 세 거부를 들여다보자. 제프 베이조스, 마크 저커버그, 일론 머스크. 그러나 처음부터 이들을 ‘공유부를 약탈한 사람들’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세 사람에게는 분명한 기업가적 능력과 기술혁신, 막대한 자본투입과 위험 감수가 있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서비스와 산업적 변화 역시 사회적 가치다. 그러므로 질문은 “이들이 나쁜가?”가 아니다. 이들의 성공을 가능하게 한 사회적 기여와 이들이 사회에 돌려준 기여를 함께 계산할 수 있는가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그 장부가 없었다는 데 있다.
베이조스의 꽃밭
제프 베이조스의 발밑에는 값을 치르지 않은 꽃밭이 겹겹이 깔려 있다. 인터넷은 미국 국방부와 대학 등의 공공 연구를 비롯한 긴 역사적 축적 위에서 태어났고, 아마존의 물류는 국가가 구축해온 도로와 항만, 통신 인프라를 이용한다. AWS 역시 수많은 개발자와 연구자가 축적해온 오픈소스 생태계와 인터넷 기술 위에 세워졌다.
아마존의 추천 시스템과 플랫폼은 수억 명의 소비자가 남긴 검색과 클릭, 구매와 리뷰를 통해 더욱 정교해진다. 수백만 입점업체가 상품과 시장을 만들어내는 동안 플랫폼은 그 거래의 중심에서 수수료와 데이터를 얻는다. 그러나 여기서 “아마존은 남의 것을 가져갔다”고 끝내서는 안 된다. 아마존 역시 엄청난 자본과 노동을 투입했다. 물류센터와 배송망, 데이터센터를 구축했고, 클라우드 산업의 표준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아마존이 사회로부터 받은 것은 얼마이고, 사회에 새롭게 만들어낸 것은 얼마인가. 현재의 회계장부에는 이 둘이 같은 방식으로 기록되지 않는다.
저커버그가 사유화한 것은 관계망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더욱 흥미롭다. 베이조스에게 물류라는 실체가 있다면, 저커버그가 다루는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콘텐츠는 대부분 이용자가 만든다. 이용자가 콘텐츠를 만들고, 이용자가 그것을 보고, 이용자끼리의 관계망이 플랫폼의 가치를 키운다. 광고주에게 판매되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관심과 행동, 그리고 그 관계망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가꾸어온 가장 오래된 공유지 가운데 하나인 사회적 관계망이 디지털 플랫폼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단순한 약탈로 설명할 수 없다. 저커버그는 사람들이 이미 갖고 있던 관계를 디지털 공간에서 연결하고 확대했고, 수십억 명이 무료로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문제는 그 관계망에서 발생한 경제적 가치가 누구에게 얼마나 돌아가느냐이다. 그 관계망은 과연 전적으로 플랫폼의 사유재산인가. 오늘날 데이터 경제가 던지는 핵심 질문이다.
머스크의 역설
일론 머스크는 가장 역설적인 사례다. 그는 정부의 비효율을 비판하며 ‘정부 없이도 해낼 수 있는 기업가’라는 이미지를 구축해왔지만, 그의 성공을 정부와 공공부문의 기여를 빼고 설명하는 것 역시 정확하지 않다. 테슬라는 미국의 전기차 정책과 세제지원, 환경규제와 배출권 제도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스페이스X 역시 NASA와 미국 정부의 장기간 우주개발 투자, 기술적 축적과 정부계약의 중요한 수혜자다. 그렇다고 스페이스X를 단순히 정부기술을 가져다 돈을 번 기업이라고 말하는 것도 틀렸다. 재사용 로켓의 상용화와 발사비용 절감은 상당한 기술혁신이었고, 실패 위험을 감수한 민간자본 투입도 분명했다.
따라서 머스크의 경우야말로 공공부와 민간 혁신을 하나의 장부에서 함께 계산해야 한다. 정부가 무엇을 제공했는가. 기업은 무엇을 추가했는가. 그리고 그 결과 사회 전체에 얼마만큼의 편익이 발생했는가.
유형은 셋이되 질문은 하나다
세 사람의 사업은 서로 다르다. 베이조스는 물류와 클라우드, 저커버그는 사회적 관계망과 데이터, 머스크는 전기차와 우주산업이다. 그러나 공통점이 하나 있다. 개인의 기업가적 역량만으로 부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동시에 사회적 공유부만으로 그들의 성공을 설명할 수도 없다. 부는 그 둘의 결합에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현재의 경제회계는 이 결합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다. 기업의 매출과 이윤은 정확하게 기록하지만, 기업이 사회로부터 받은 비시장적 자원과 사회에 돌려준 비시장적 가치는 여러 장부에 흩어져 있다. 그래서 논쟁은 감정싸움이 된다. 한쪽은 “기업가의 천재성”을 말하고, 다른 쪽은 “사회가 만든 것을 사유화했다”고 말한다. 둘 다 일부는 맞을 수 있다. 장부가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경제지표 ‘수분지수’를 상상한다
얀 물리에 부탕의 문제의식에는 곧바로 하나의 질문이 따라온다. “수분의 가치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도대체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바로 여기서 어려워진다. 측정되지 않는 가치는 정책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과세도 어렵고, 보상도 어렵고, 기업 간 비교도 어렵다. 그래서 하나의 지표를 상상해보고자 한다. 이름하여 ‘수분지수(受粉指數)’다. 일기예보에서 말하는 꽃가루 농도 지수가 아니다. 경제주체가 사회의 공유부에서 얼마나 가치를 받아갔고, 동시에 얼마나 많은 가치를 사회에 돌려주었는지를 기록하는 공유부 정산지수다. 영어로 표현한다면 Commons Contribution Balance Index(CCBI) 또는 Net Pollination Index(NPI) 정도가 될 것이다.
모든 경제주체에게 가상의 ‘공유부 계좌’를 만든다. 사회에 기여한 것은 입금한다. 공유부를 이용한 것은 인출한다. 그리고 최종적인 순잔고를 계산한다. 다만 중요한 원칙이 있다. 공공자원을 이용했다고 해서 그것을 전부 부채로 계산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기업에 100을 지원했다고 해서 무조건 100을 인출로 기록해서는 안 된다. 그 100이 1,000의 세수와 고용, 기술혁신, 소비자 편익을 만들어냈다면 그 사회적 효과도 함께 계산해야 한다. 따라서 수분지수는 ‘누가 사회를 착취했는가’를 판정하는 도덕점수가 아니라, 사회와 경제주체 사이의 순기여를 측정하는 회계장부가 되어야 한다.
무엇을 인출하고 무엇을 입금할 것인가
인출 항목에는 공공 연구와 기술의 활용, 정부의 보조금과 세제지원, 도로·항만·전력망·통신망·주파수·위성궤도 같은 공공 인프라의 이용, 이용자의 콘텐츠와 데이터, 그리고 환경오염이나 사회적 비용 같은 외부비용이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입금 항목 역시 똑같이 중요하다. 고용과 임금, 세금, 기술개방, 오픈소스 기여, 산업 생태계 창출, 지역경제 파급효과, 소비자 편익, 생산성 향상 등을 기록해야 한다. 특히 소비자 잉여가 중요하다.
기업의 매출은 소비자가 지불한 가격만 보여준다. 하지만 소비자가 그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얻은 편익은 가격보다 훨씬 클 수 있다. 무료 검색서비스와 SNS, 저렴해진 클라우드 서비스, 발사비용을 낮춘 우주산업의 가치는 기업의 매출액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따라서 수분지수는 기업의 사회적 비용만 계산하는 지표가 아니다. 기업이 사회에 만들어낸 편익도 함께 계산하는 지표다. 그래야 공정한 장부가 된다.
위키피디아와 세 거부의 계좌
이런 방식으로 보면 위키피디아는 흥미로운 사례다. 수많은 사람이 지식을 생산하고 수정하지만 그 지식은 인류 전체에 무료로 제공된다. 오픈소스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개발자들이 공개한 코드 위에서 다시 수많은 기업과 서비스가 탄생한다. 이런 활동의 경제적 가치는 엄청나지만 전통적인 회계장부에는 충분히 나타나지 않는다.
반대로 아마존, 메타, 스페이스X의 계좌에는 공공 연구와 인프라, 이용자 데이터와 같은 사회적 자원의 이용이 기록되는 동시에 물류혁신, 클라우드 인프라, 무료 소통 서비스, 우주산업 혁신, 고용, 세금과 소비자 편익도 기록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세 사람의 계좌는 흑자인가 적자인가. 아직 모른다. 나는 그것을 미리 단정하고 싶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제대로 계산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수분지수는 ‘부자 처벌지수’가 아니다
이 지표가 성공하려면 반드시 피해야 할 함정이 있다. 수분지수는 부자의 재산을 빼앗기 위한 지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업의 성공을 죄악시하는 지표가 되어서도 안 된다. 같은 잣대를 모두에게 적용해야 한다. 대기업도 계산하고 중소기업도 계산한다. 정부도 계산하고 공공기관도 계산한다. 플랫폼도 계산하고 시민단체도 계산한다. 대학도 계산하고 개인도 계산한다. 사회로부터 적게 받고 많이 돌려준다면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반대로 막대한 공유부를 이용하면서 사회적 환원이 상대적으로 작다면 그만큼 정산을 요구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디지털세나 공유부 배당도 단순한 ‘부자 증세’가 아니라 공유자산 이용에 대한 정산이라는 논리로 다시 설계할 수 있다.
ESG 다음에는 공유부 회계가 필요하다
오늘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틀이 ESG다. ESG가 기업에게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에 얼마나 책임 있게 행동하는가?” 를 묻는다면, 수분지수는 “사회와 무엇을 주고받았는가?” 를 묻는다.
공공 연구를 얼마나 활용했는가. 시민의 데이터를 얼마나 활용했는가. 공공 인프라를 얼마나 이용했는가. 사회에 얼마나 많은 기술과 고용과 세수와 소비자 편익을 돌려주었는가. 환경과 사회에는 어떤 비용을 남겼는가. 이것을 하나의 장부에 올려보자는 것이다. ESG가 ‘책임의 회계’라면 수분지수는 ‘공유부의 정산 회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숙제는 많다
가장 어려운 것은 측정이다. 오픈소스 개발자의 기여를 얼마로 계산할 것인가. 이용자의 데이터는 얼마의 가치가 있는가. 공공 연구와 기업의 독자적 혁신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정부 보조금이 만들어낸 사회적 편익은 얼마인가. 소비자 잉여는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 그리고 지표가 만들어지는 순간 사람들은 그것을 조작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완벽한 하나의 숫자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항목을 공개하고, 계산방식을 공개하고, 독립적인 검증을 받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숫자의 정확성 못지않게 계산 과정의 투명성이 중요하다.
GDP도 처음부터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무엇을 생산으로 볼 것인지 끊임없는 논쟁과 수정이 있었다. 공유부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측정방법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부족하더라도 측정을 시작하고 계속 개선하는 편이 낫다. 재지 않았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가치가 있다.
한국이 첫 장부를 만들 수 있다
나는 한국이 이 실험을 시작하기에 좋은 나라라고 생각한다. 높은 수준의 행정 전산망과 데이터 인프라를 갖추고 있고, 공공 연구개발 투자 규모도 크다.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조선, 플랫폼 등 공공과 민간의 결합이 강하게 나타나는 산업도 많다. 처음부터 모든 경제를 계산할 필요는 없다. 몇몇 산업부터 시작하면 된다.
반도체 산업이라면 공공 연구개발, 산업용 전력과 용수, 인력양성, 인프라, 세제지원 등을 한쪽에 기록하고, 수출과 고용, 세수, 기술혁신, 산업 파급효과 등을 다른 쪽에 기록할 수 있다.
플랫폼 산업이라면 이용자의 콘텐츠와 데이터, 공공 통신 인프라 이용을 기록하고 소비자 편익과 고용, 세금, 서비스 제공 등을 함께 기록할 수 있다. 그렇게 산업별 실험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기업과 산업의 공유부 장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꽃밭에도 장부를
경제학은 오랫동안 생산과 소비, 소득과 이윤을 정교하게 측정해왔다. 그러나 그 생산과 소비를 가능하게 만든 사회적 토대는 상대적으로 장부 밖에 있었다. 교육은 누가 만들었는가. 인터넷은 누가 만들었는가. 오픈소스는 누가 만들었는가. 공공 연구의 비용은 누가 부담했는가.
사회적 신뢰와 언어와 문화는 누가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축적했는가. 오늘날 플랫폼 기업이 활용하는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가. 이 질문들에는 아직 충분한 회계장부가 없다.
그래서 한쪽에서는 기업가의 천재성만 이야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회가 만든 것을 기업이 모두 가져갔다고 말한다. 그러나 둘 다 충분하지 않다. 기업가의 기여도 계산해야 하고, 사회의 기여도 계산해야 한다. 기업이 받은 것도 기록하고, 기업이 돌려준 것도 기록해야 한다. 그것이 공정한 장부다.
머스크와 베이조스와 저커버그가 벌인지 곰인지 지금 당장 판정할 필요는 없다. 먼저 장부부터 만들자. 그들의 성공이 얼마만큼 개인의 천재성과 위험 감수에서 왔고, 얼마만큼 사회 전체가 오랫동안 가꾸어온 공유부에서 왔는지 계산해보자. 그리고 그들이 사회에 돌려준 것까지 함께 계산하자. 그 결과 흑자라면 인정하면 된다. 적자라면 정산하면 된다. 이것은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시장이 지금까지 가격으로 포착하지 못했던 생산의 조건을 더 정확하게 보여주는 일이다. 경제학의 오래된 격언에 따르면 측정되는 것만 관리된다.
그렇다면 이제 한 문장을 더 붙이자. 재지 않았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가치는 얼마나 되는가. 지난 세기의 경제학이 꿀단지의 무게를 재는 데 집중했다면, 21세기의 경제학은 꽃밭의 가치까지 계산해야 한다. 꿀벌에게 꿀만 만들라고 할 수 없다. 꽃가루받이가 사라지면 꿀도 사라진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홀로 가치를 창조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경제의 절반을 놓치게 된다. 그렇다고 사회만이 가치를 창조한다고 생각해도 나머지 절반을 놓친다.
부는 꽃밭과 벌, 그리고 채밀기의 결합에서 나온다. 이제 그 모두를 장부에 올려보자. 꿀단지의 무게만 재지 말자. 꽃밭을 누가 만들었고, 누가 꽃가루를 옮겼으며, 누가 그 열매를 만들었고, 누가 얼마를 가져갔는지도 기록하자. 그 장부의 첫 페이지를 여는 상상. 그것이 바로 ‘수분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