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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기는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은 없다.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당국의 정책이 드러나 숨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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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PinkPepper

동아일보 1920년 7월 22일 학우회 순회강연단 해산명령과 언론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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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9. 16
  • 일제 총독부가 동양 평화와 조선 안녕을 명분으로 강연을 해산한 것은,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여 조선인의 생명력을 말살하려는 기만적인 행위임을 비판합니다.
  • 총독부가 말하는 '융화'는 조선 민족의 문화와 정체성을 파괴하고 일본에 동화시키려는 의도를 숨긴 것이며, 사이토 총독의 과거 발언과 현재 정책의 모순을 지적하며 비난합니다.
  • 강연 해산의 명분이 불분명하고 자의적임을 강조하며, 당국이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조선인을 기만하고 있음을 폭로합니다.
  • 조선인의 생명은 사상과 언론의 자유에 있음을 역설하고, 당국의 정책이 아무리 은폐하려 해도 결국 그 본질이 드러날 것임을 경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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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년간 해외 유학 중인 학생들의 이번 여름 순회 강연단은 18일 경성에서 개회 중 해산을 명령 당했다. 해산명령 이유서에 이르기를, ‘조선의 병합은 동양 평화를 유지하고 조선의 안녕을 보장하기 위는 것으로 역대 총독 모두 이 방침에 따라 일선융화(日鮮融和) 및 조선인의 복리를 꾀했다. 특히 사이토(斎藤) 총독은 부임 이래 주야로 내정개선에 노력하고 이 같은 대방침의 실현에 진췌(盡瘁: 몸이 여위도록 몸과 마음을 다해 애씀)했다’라고 쓰여 있다.
 
동양의 평화와 조선의 안녕이 조선을 합병하는 것으로 유지된다는 것은 그 근거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사실상 조선에 안녕이 있는가는 모르겠지만, 개인의 생명은 그 육체가 금수 또는 기계처럼 존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상의 해방과 언론의 자유에 따라 그 의지를 표시하고 움직이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기에 만일 사상을 억제해서 해방되지 못하고 언론을 압박해서 자유가 없다면, 여기서 의지의 표시도 멈추고 움직임도 끊어진다. 동작이나 의지가 멈춘 육체에 무슨 인생으로서 생명이 있겠는가?
 
이처럼 민족의 생명도 그 민족의 의지가 멈추는 일 없이 활동이 끊어지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민족 전체의 생명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인류로서의 생명을 향유(享有) 하는 것이 아니다. 조선 민족에게 사상의 해방과 언론의 자유가 없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조선에는 개인으로서 인생의 생명이 없고, 전체로서도 역시 인생의 생명도 없다. 다만 기계처럼 다만 금수와 같이 또는 노예와 마찬가지로 고통과 신음의 구생십사(九生十四)의 참담한 생활을 영위할 뿐이다. 그렇기에 안녕의 보장은 그 민족의 생명이 있고 나서의 문제다. 생명의 실재(實在)를 유린(蹂躪)하면서 안녕을 보장한다는 건 궤변이다. 아니 일종의 농락(弄絡)하는 구실에 불과하다.
 
조선의 안녕을 보장한다는 말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또 역대 총독이 이 방침 아래 일본과 조선의 융화 및 조선의 복리를 꾀하겠다고 말하는 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지금은 이 문제를 피하겠다) 그러나 융화(融和)라는 것은 동화(同化)를 의미하는 것이다. 조선의 문화와 도덕과 언어와 문자와 정신의 전통을 파괴하고 또 박멸 함으로써 조선 민족을 야마토 혼(大和魂)을 가진 일본인으로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그 수단 방법으로서 옛날(昔日) 이중경찰제도에 더해 경찰행정관, 경찰재판관, 심지어는 경찰교육관, 경찰은행가를 설치하고 일어 교육을 강제했다. 그러나 그 노력은 뜻한 바를 뜻한 바와 같은 성공을 뜻한 바처럼 성공하지 못해 사이토(斎藤) 총독은 신임(新任)에 앞서 전 총독 등의 실책(失策)을 일본을 위해 정계 또는 학자에게 극론(極論)하고 각 방면으로 공격했다. 사이토(斎藤) 총독은 융화 불가능을 간파하고 이 정책의 개선에 노력했을 뿐 아니라, 본지 창간호에 축사를 보내 동화정책이 무의미해서 불가능하다는 것을 논했다. 따라서 지금 사이토(斎藤) 총독이 융화(融和)라고 하는 큰 방침 아래 이것의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처사다.
 
사이토(斎藤) 총독은 철두철미하게 언실(言實) 상부(相符) 하지 않는 인물이란 말인가. 그 부하가 상관의 언행이 맞지 않도록 농락하는 것인가. 그런데 주야로 내정(內政) 개선에 노력한다고 하는 ‘개선(改善)하는 내정(內政)’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 무슨 내정(內政)인가. 전 총독 등이 행한 모든 무단(武斷)정치의 언론 압박, 인권 유린 정치를 개선한다는 것이니, 과거의 총독 시대에는 조선인의 안녕 보장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백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행이 부합하지 않는 것을 다시 폭로하는 것은 과연 개선(改善)인가 아니면 개악(改惡)인가. 개선한다면 그 실상이 있을 터이고, 이번에 (강연단)해산이 개선이라고 한다면 개선일 것이니, 두말할 필요가 없다.
 
또 해산 명령서에 이르기를, 강연단은 평소 수학하는 학술상의 지식을 피력하겠다고 신청하고 반드시 국법(國法)을 지키고 국헌(國憲)을 존중하며 한뜻으로 문화 선전에 종사하고 결코, 정치를 논의하고 치안을 유린(蹂躪)하는 일이 없다고 선서해서 총독부는 기꺼이 그 계획을 용인했다고 한다. 용인은 가하다. 그러나 강연단이 각지를 순회하며 치안을 유린(蹂躪)한 일이 있는가, 없는가. 만일 있다고 한다면 그 사실은 반드시 형식으로 드러나, 치안법 조문에 대조해 별도의 처분이 있어야 하며 더욱이 관용 없는 법률이 당국의 치안법 옹호 정책상 명확한 사실이다. 그러한 처분이 없으니, 그러한 형식은 없는 것이다. 이 형식이 없다는 것으로 각지의 강연단의 내용과 행동은 반드시 치안 유린에 저촉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또한, 평소 습득하는 학술상의 지식을 피력하는 것을 용인한다는 것이라면, 그들이 평소에 수학한 정치, 법률, 경제, 문학, 역사를 각지 강연에 실제로 피력하는 것을 볼 필요가 있으니, 전혀 당초(當初)의 선언에 반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을 반대한다고 나서고 또 경성(京城)에서는 한층 불온(不穩)한 언사를 사용해 치안을 유린(蹂躪)하는 것을 매우 큰 것으로 여기고 마침내 금지했다고 한다. 또 해산 이유 명령서에 이르길, 각 변사의 연설은 모두 조선의 독립을 내용으로 하는 반어(反語) 또는 은어(隱語)를 사용하고, 또는 예를 다른 나라에서 취해 불온사상을 선동하는 것이 심하다고 한다.
 
각지에서 강연한 내용보다도 경성에서 강연한 것이 한층 불온한 언사를 사용했다고 한다. 따라서 타지의 강연 내용은 치안을 유린(蹂躪)하지 않고 오히려 치안 보장에 도움이 되었다는 바가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한층 불온한 언사를 사용한다고 하는 경성의 강연을 보기 봄에 있어 그 내용이 매우 평온하고 말로 평화를 설파하고 또 애타(愛他)를 주장하였다. 평화와 애타가 치안을 유린(蹂躪)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전쟁과 베타(排他)로 치안을 유지해야만 할 것이다. 당국은 이것으로 치안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인가.
 
또 반어, 은어를 사용해 풍자거나 다른 나라에서 예를 취해 불온사상을 선동한다고 한다. 반어, 은어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예를 다른 나라에 든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경성(京城)의 변사(辯士)는 제대(帝大) 법과 출신이니, 배운 것은 법률, 역사, 시대의 사조가 배태(胚胎)한 학술이다. 그 학술을 강연하는 것을 기뻐하며 용인했다고 말할 수 있으니, 역사를 말하는 데 있어 예를 다른 나라에서 취할지 못할 것은 무엇인가. 시대의 사조를 설파할 때 어떻게 반어, 은어가 없을 수 있겠는가.
 
목하(目下) 시대사조를 직설한다면 실로 당국의 주장낭패(周章狼狽: 당황해서 어쩔 줄 모름)는 형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당국은 시대사조에 배태하는 학술을 직설해버린다면 민족자결은 어떻고, 세계 노동문제는 어떤 것이며, 노동당(勞動黨)의 약소민족에 대한 태도는, 이 젊은 과격파의 세력은 어떠한 것이고, 그 용인은 어떻다고 직설하지 않았다고 나무라는 것인가.
 
습득한 학술 강연을 용인받았다고는 하나, 그것을 직설하지 않고 은어 또는 반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 변사의 용심(用心)이 오히려 당국의 용심(用心)보다도 잘 숙고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도리어 이에 반해 오늘 금지된 이유 소이라고 하는 반복 많은 당국의 시대 학술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중략)
 
당국자들이여, 일본의 학해(學海)를 보라. 당국자들이 사량(思量)하는 학술 시대는 이미 과거가 되었다. 시대착오가 왜 그렇게 심한가. 그러나 자칭 현명한 당국자들이 어떻게 시대의 학술을 알지 못하는가. 다만 당국자들은 사이토(斎藤) 총독의 초지(初志)를 무시하고 그 동화정책의 무의미하고 불가능하다고 주장을 철폐하게 하고 일구이언하는 호인물(好人物)을 만들어내 역대 총독의 압박정책을 부활하고 저 융화의 실현을 기도하려고 열중함에 따라 시대의 학술을 곡해(曲解)하는 것이다.
 
슬프다, 사이토(斎藤) 총독이여, 당국자들이여. 그 태도와 정책을 분명히 하고 가식과 허위의 무차별 일시동인(一視同仁: 누구나 평등하게 사랑을 베풂) 선정덕정(善政德政) 등의 뱀의 혀를 놀리며 조선인을 기만(欺瞞)하지 말라.
 
숨기는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은 없다.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당국의 정책이 드러나 숨길 수 없다.
 
 
*이 기사는 1920년 7월 18일 오후 1시에 열린 재동경(在東京) 조선 유학생(朝鮮 留學生) 학우회(學友會)의 단성사(團成社) 순회 강연단 해산명령에 대한 동아일보의 논평이다. 학우회는 쉽게 동창회와 같은 뜻이지만, 식민지 종주국으로 유학 간 재일(在日) 유학생들이 모여 시국 강연을 주도한 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기사는 경성의 강연이라는 점만 강조되어 있지만, 은어와 반어와 타국의 예가 무엇인지는 설명하지 않고 있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수 없던 시대, 식민지 지배의 압제는 내 땅을 빼앗긴 사건의 경위를 말해서도 안 되고, 글로 써서도 안 되었다.
 약 4천여 명이 모인 집회를 해산시키자, 동아일보가 기사에 회고한 과거의 이중경찰제도, 경찰행정관, 경찰재판관, 경찰교육관, 경찰은행가 설치와 강제적인 일어 교육은 무엇을, 어떤 시대를 의미하는 것일까. 1920년 시점에서도 한 참 전인 과거의 일로 묘사했다. 그 시대는 언제 어느 땅에서 벌어진 행정 제도였을까. 식민지는 영토를 빼앗겼어도 빼앗겼다고 말하는 않는 법이다.
 애초에 조선합병의 근거가 동양 평화와 조선의 안녕이 될 수는 없다. 조선인 개인 혹은 전체에게 사상과 언론의 자유가 없으면서 기만적인 정책으로 일관하고, 그에 동원된 인원들이 시대를 넘어 지금도 연명하고 귀신처럼 달라붙어 있다. 기사는 『중용(中庸)』에 나오는 구절, 막현호은(莫見乎隱)이며 막현호미(莫顯乎微)거늘, 고군자신기독야(故君子愼其獨也)라를 인용해 역사를 돌려 말했다. 숨은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게 없으며, 미세한 것보다 더 뚜렷해지는 것이 없으니, 고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를 삼간다고 했다. 문자 쓰고, 머리도 쓰고, 육체적 힘도 막강했던 조선인들이 왜 나라를 빼앗겨야 했을까. 우리가 아는 조상의 무능이 전부일까. 은유와 반어를 왜 타국의 사정에 비유해야 했을까. 잘 숨겼다고 한 역사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날이 오면, 고향을 등지던 사람들에게 삶은 어떤 것이었을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 배신의 과거가 펼쳐질 것이다.


아래는 동아일보 기사의 해제와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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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년(多年) 해외에 부급(負)하여 형창설옥(螢窓雪屋)에 여식(旅食)의 간난(艱難)함과 이속(異俗)의 냉처(冷凄)함을 감내하고 침하(枕下)의 빈삭(頻數)하는 향몽(鄕夢)에 고정(孤火丁)의 경경(耿耿)하는 미광(微光)으로 흉억(胸臆)의 만종수(萬種愁)를 위안하며 고산(故山)의 부모 형제─의려(依閭)의 망(望)과 척령(鶺鴒)의 회(懷)로 신포(晨脯)에 배회(徘徊)하며 동가(東家) 조서인탄(弔西隣嘆)에 장일일(腸日日)에 구회(九回)하니, 창천(蒼天)이 막막하고 공산(空山)이 적적(寂寂)이라. 성성(猩猩)의 애규성(哀呌聲)을 때때로 화답함이 복계(服界)에 역력함을 혹은, 정(情)에 소(訴)하며 혹은 이(理)에 곡(哭)하여 묵도(默禱)와 애원으로 신명(神明)을 규호(叫呼)타가 서안(書案)을 대좌하여 용천(湧泉)의 냉루(冷淚)를 강억(强抑)하고 다시 그 학과(學課)를 수독(修讀)할 새 생명의 새 흥분이 새 예기(銳氣)를 기동하여 멀리 침음(沈陰)한 암흑에 사무친 사랑의 고산(故山)을 돌아보며 오직 흉중에 비장한 광명의 확대에만 열중하던 순결 천진의 학생들이 미려한 애정과 청담한 이지로 그 비장한바 광명을 시험하고 고산에 문화의 복음을 전선(傳宣)하여 암흑의 제일루를 타파하려고 학생의 빈핍한 재원으로 여비에 충(充)하고 단촉(短促)한 휴가일자에 굴지하여 고대하는 부모의 슬하로 포복(匍匐)하여 속추(屬趨)코자 하는 간절한 정경을 제지하여 과문불입(過門不入)하며 원려(遠旅)의 피로를 사(辭)치 아니하고 극도형로(棘道荊路)에 의연히 등정함은 무슨 타의가 유함이리요. 오직 천의를 체득하고 세계의 대세를 설파하고 그 적성(赤誠)과 백열(白熱)을 진(盡)하여 정의로 무기를 삼고 박애로 군병을 삼아 조선 문화에 세계 문화에 공헌하는 제일보로 장차 인도(人道)의 대원(大原)을 천명하려는 고아순직(古雅順直)한 적심(赤心)의 발작뿐이로다.
 
(현대어: 여러 해 동안 해외에서 책 보따리를 지고 유학하면서, 차디찬 창가와 눈 덮인 집에서 객지 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낯선 풍속 속에서 받는 냉담한 태도를 견디어 왔다. 베갯머리에서 자주 일어나는 향수 때문에, 외로운 등불이 쓸쓸히 비추는 희미한 빛 아래에서 가슴속에 맺힌 온갖 시름을 달래었다. 고향의 부모와 형제들이 문에 기대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과 형제를 그리워하는 척령(鶺鴒)의 심정을 품고, 아침저녁으로 마음이 배회하였다. 동쪽 집의 조문할 일과 서쪽 이웃의 탄식할 일을 생각하면서 날마다 창자가 아홉 번이나 뒤틀리는 듯하니, 푸른 하늘은 아득하고 빈 산은 적막하였다. 원숭이의 슬픈 울음과도 같은 비통한 소리를 내며, 때로는 감정에 호소하고 때로는 이치에 기대어 울었으며, 묵도와 애원으로 신명(神明)을 부르짖었다. 그러다가 책상 앞에 앉아 샘처럼 솟는 차가운 눈물을 억지로 누르고 다시 학업을 닦기 시작하면, 생명의 새로운 흥분이 다시 새로운 예기를 일으켰다. 멀리 침울한 암흑 속에 사무쳐 있는 사랑하는 고향을 돌아보며, 오직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던 광명을 넓히는 일에만 열중하던 순결하고 천진한 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름다운 애정과 맑고 담담한 이성으로 자신들이 간직해 온 그 광명을 시험하고, 고향에 문화의 복음을 전파하여 암흑의 첫 번째 보루를 깨뜨리려 하였다. 그래서 가난한 학생들의 재원으로 여비를 마련하였다. 짧은 휴가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며, 자신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의 슬하로 기어가듯 급히 달려가고 싶은 간절한 정을 억누르고, 집 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않았다. 또 먼 여행의 피로를 마다하지 않고, 가시덤불과 형극으로 뒤덮인 험난한 길에 의연히 길을 떠났으니, 여기에 무슨 다른 뜻이 있었겠는가. 오직 하늘의 뜻을 깨닫고, 세계의 대세를 분명하게 설명하며, 자신들의 뜨거운 정성과 불같은 열정을 다하여, 정의를 무기로 삼고, 박애를 군사로 삼아, 조선 문화와 세계 문화에 공헌하는 첫걸음으로서 장차 인도(人道)의 큰 근원을 밝히려 했을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고아하고 순직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실한 적심(赤心)의 발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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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그 소리나 그 포부(抱負)가 장강 대해(長江大海)의 거류(巨流) 심파(深波)와 같이 도도(滔滔)하고 또 웅혼(雄渾)하여 비록 인(人)을 가경(可驚)할 만한 명론탁설(名論卓說)의 일직 연쇄(一直連鎖)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 성(誠)은 실로 신명(神明)을 감(感)할 만한 진적(眞赤)의 충심이니 그와 같은 적성(赤誠)과 진충(眞衷)을 대한(大旱)에 운예(雲霓)와 같이 갈망하는 조선 사회에서 그 일행의 소도(所到)마다 애정이 유로(流露)하고 화기가 융융함은 세(勢)의 귀결이요, 이(理)의 당연이라. 어찌 인위로 가히 능할 바이리요. 실로 천(天)이로다. 그런데 지난 19일 본지에 보도함과 같이 동 18일 경성(京城)에서 삼엄(森嚴)하고 위숙(威肅)한 다수 경관의 감시하에 그 일행은 아무 허위와 가식이 없이 적성(赤誠)을 토로하는 중, 마침내 강연의 중지와 집회의 해산을 당하였을 뿐 아니라, 동 강연단은 해산명령을 피(被)하여 예정한 각 지방의 순회를 부득(不得)케 되었도다. 오인(吾人)은 이에 그 해산한 이유를 논하건대 해산명령의 이유서에 하였으되, 조선의 합병은 동양의 평화를 유지하고 조선의 안녕을 보장하기 위하여 행한 바로 역대의 총독이 개(皆) 차(此) 방침 하에 일선융화(日鮮融和)및 조선인의 복리를 도(圖)하였고 특히 재등(齋藤) 총독은 부임이래, 일야(日夜) 내정의 개선에 노력하여 차(此) 대방침(大方針)의 실현에 진췌(盡瘁)하였다하니, 동양의 평화와 조선의 안녕이 조선을 합병함으로 유지한다함은 그 근거가 나변(那邊)에 재(在)한지, 사실상 조선에 안녕이 유(有)한지 미지하거니와 개인의 생명은 그 육괴(肉塊)가 금수(禽獸)나 기계와 여히 존재함에 부재하고 다만 사상의 해방과 언론의 자유로 그 의사를 표시하고 동작을 주행(做行)함에 재(在)한지라. 그런 고로 만일 사상을 억제하여 해방치 못하고 언론을 압박하여 자유(自由)치 못하면 이에 의사의 표시도 쉬고 동작의 주행(做行)도 그칠 것이니, 동작이며 의사가 휴식한 그 육괴에 무슨 인생의 생명이 유하다 할 수 있으리요.
 
(현대어: 그리하여 그들의 말소리와 포부가 장강대하의 거대한 물줄기와 깊은 물결처럼 도도하고 또 웅혼하였다. 비록 여덟 사람이 펼친 말이 사람을 놀라게 할 만한 명론탁설이 한 줄기로 곧게 이어진 연쇄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 정성만은 실로 신명도 감동시킬 만한 참되고 붉은 충심이었다. 그와 같은 적성과 열정을, 큰 가뭄에 구름과 무지개를 바라듯 갈망하던 조선 사회에서, 그 일행이 이르는 곳마다 애정이 흘러나오고 화기가 넘쳐흐른 것은 형세상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귀결이요, 이치상 당연한 일이었다. 어찌 이것을 인위적인 힘으로 능히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그런데 지난 19일 본지에 보도한 바와 같이, 18일 경성에서 삼엄하고 위엄 있게 배치된 다수 경찰관, 곧 종로경찰서 경찰의 감시 아래에서 그 일행은 조금의 허위나 가식도 없이 자신의 적성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마침내 강연 중지와 집회 해산을 당하였을 뿐 아니라, 그 강연단 자체가 해산 명령을 받아 예정되어 있던 각 지방 순회까지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우리는 그 강연단을 해산시킨 이유를 논해 보고자 한다. 해산명령의 이유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조선의 합병은 동양의 평화를 유지하고 조선의 안녕을 보장하기 위하여 행한 것이며, 역대 총독은 모두 이 방침 아래 일선융화와 조선인의 복리를 도모하였고, 특히 사이토 총독은 부임한 이래 밤낮으로 내정의 개선에 노력하여 이 큰 방침의 실현에 온 힘을 다하였다.” 그러나 동양의 평화와 조선의 안녕이 조선을 합병함으로써 유지된다고 한다면, 그 근거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 실제로 조선에 ‘안녕’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개인의 생명이란 그 육체 덩어리가 금수나 기계처럼 단순히 존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상의 해방과 언론의 자유를 통하여 자기 의사를 표시하고 자기의 행동을 실행할 수 있는 데 인간 생명의 뜻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사상을 억제하여 해방시키지 못하게 하고, 언론을 압박하여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면, 그 결과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는 것도 멈추게 되고 행동하는 것도 그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행동도 멎고 의사도 쉬어버린 그 육체 덩어리에, 도대체 무슨 인간의 생명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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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이 민족의 생명도 그 민족의 의사가 쉬지 아니하고 활동이 그치지 아니한 이상(以上)에 비로소 그 민족의 전체적 생명이 존재할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또한 진정한 인류의 생명을 향유(享有)치 못할 것이니, 조선 민족에게 사상의 해방과 언론의 자유가 무(無)함은 재언(再言)을 요할 바 아니라. 그런즉 조선인에게는 개인으로나 전체로나 사상의 해방과 언론의 자유가 무(無)하니 개인으로도 인생의 생명이 무(無)하며 전체로도 또한 인생의 생명이 무(無)하고 다만 기계와 같이, 오직 금수와 같이 또는 노예와 같이 고통과 신음으로 구생십사(九生十死)의 참담(慘憺)한 생활을 영작(營作)할 뿐이로다. 그런즉 안녕의 보장은 그 민족의 전체적 또는 개인적으로 인생의 생명이 유(有)한 이상(以上)의 문제이랴. 그 생명의 실재는 유린(蹂躪)하면서 안녕의 보장을 운운함은 괴변(怪變)도 아니요, 일종의 농락(弄絡)적 구실에 불과하니 조선의 안녕을 보장한다는 말은 도저히 오인의 이해를 요할 바 아니며 또 역대의 총독이 차(此) 방침하에 일본과 조선의 융화 및 조선의 복리를 도하였다 하니 복리를 도하였다 함은 하(何)를 지칭함인지 본문제의 범위가 아니므로 번론(煩論)치 아니하나 그러나 융화라 함은 동화를 의미함이라. 조선의 문화와 도덕과 언어와 문자와 정신과 전통을 파괴 또는 박멸(撲滅)하고 이에 조선 민족으로 하여금 대화혼(大和魂)을 가진 일본인을 작(作)하려 함이니 그 수단과 방법으로 석일(昔日) 이중경찰제도에 더욱 경찰행정관과 경찰재판관이며 심지어 경찰교육관, 경찰은행가를 설치하고 일어 교육을 강제하였으나 그 노력은 여의한 성공을 수(遂)치 못한지라.
 
(현대어: 이와 마찬가지로 민족의 생명도 그 민족의 의사가 멈추지 않고 활동이 끊이지 않아야 비로소 그 민족 전체의 생명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정체되어 버린다면, 또한 진정한 인간다운 생명을 갖추지 못하게 될 것이다. 조선 민족에게 개인적 해방과 언론의 자유가 없다는 것은 굳이 다른 민족과 비교하여 말할 필요조차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조선인에게 개인적으로나 전체적으로나 사상의 해방과 언론의 자유가 없다면, 개인으로서도 인간다운 생명이 없는 것이며, 민족 전체로서도 또한 인간다운 생명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만 기계와 같고, 곧 금수와 같으며, 노예와 같이 고통과 신음 속에서 죽고 사는 참담한 생활을 이어갈 뿐이다. 그렇다면 ‘안녕의 보장’이라는 것은 그 민족이 전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인간다운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뒤에야 논할 문제이다. 그 생명의 실재를 짓밟으면서 ‘안녕을 보장한다’고 운운하는 것은 단순히 이상하게 여길 만한 정도의 일이 아니라, 일종의 죄악적인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조선의 안녕을 보장한다’는 말은 도저히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또 역대 총독들이 이러한 방침 아래 일본과 조선의 융화 및 조선인의 복리를 도모하였다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복리를 도모하였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이 문제의 범위를 벗어나므로 여기서는 논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융화(融和)라는 것은 곧 동화(同化)를 의미한다. 즉 조선의 문화와 도덕, 언어와 문자, 정신과 전통을 파괴하거나 박멸하고, 조선 민족으로 하여금 ‘야마토 혼(大和魂)을 가진 일본인’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지난날의 이중적인 경찰제도에 더하여 경찰이 단순히 치안만 담당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실상 행정관·재판관의 역할까지 맡게 하였으며, 심지어 교육과 금융 영역에까지 경찰적 통제를 미치게 하였다. 또 일본어 교육을 강제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뜻대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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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재등(齋藤) 총독이 신임(新任)할 때에 전 총독들의 실책을 일본의 위정가 또는 학자를 막론하고 각반(各般)으로 공격하였으며 재등(齋藤) 총독도 융화의 불가능함을 간파하고 그 정책의 개선에 노력할 뿐만 아니라 본지 창간호에 축사를 송(送)하여 동화정책의 무의미하고 불가능함을 논하였으니 지금 재등(齋藤) 총독이 융화라 하는 대방침하의 실현에 노력한다 함은 요해치 못할 바이라. 재등(齋藤) 총독은 철두철미 언실(言實)이 불상부(不相符)하는 인물인가. 그 부하가 상관으로 하여금 언실이 합치 못하도록 농락함인가 그리고 일야(日夜) 내정의 개선에 노력한다 하니 그 개선하는 내정은 여하한 내정인고. 도시 전 총독들의 무단정치(武斷政治)로 언론을 압박하고 인권을 유린하던 그 정치를 개선한다 함이니 고로, 과거 총독 시대에 조선인이 총독 정치로 안녕의 보장이 있지 못하였음을 자백하는 바이로다. 그러나 언실이 상부치 못함을 또다시 폭로하나니 과연 개선인가 억위(抑威) 개악인가. 개선이면 개선의 실이 유할지니 금차 강연단의 해산인가. 만일 그 강연단 해산으로 개선이라 하면 그 개선은 가히 알 개선이라, 다시 하언을 비(費)할 필요가 유하리요. 또 하였으되 강연단은 평소에 수득(修得)한 학술상의 지식을 피력할 사(事)를 신청하고 반드시 국법을 수(守)하며 국헌에 준하여 일의(一意) 문화의 선전에 종사하고 결코 정치를 논의하고 치안을 문란하는 사(事)가 무(無)하기를 서(誓)하였으므로 총독부는 희열하여 그 계획을 용인하였다 하니 용인은 가(可)라. 그런데 강연단이 각자로 순회하며 치안을 문란한 사(事)─유(有)한가 무(無)한가. 만일 유(有)하였으면 그 사실은 과연 형식으로 폭로되어 치안법의 조문에 대조하여 별반의 처분이 유하였을 것은 관유(寬宥)가 무(無)한 법률에 더구나 당국의 치안법 옹호(擁護)정책으로 명확한 사실이라.
 
(현대어: 그러므로 사이토 총독이 새로 부임하였을 때에는, 전임 총독들의 잘못된 정책에 대하여 일본의 정치가들이나 학자들을 막론하고 여러 방면에서 비판을 가하였다. 사이토 총독 자신도 융화정책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점을 간파하고 그 정책을 개선하는 데 힘썼을 뿐 아니라, 본지 창간호에 축사를 보내어 동화정책은 무의미하고 또한 실현 불가능하다는 취지까지 논하였다. 그런데 지금 와서 사이토 총독이 다시 ‘융화’라는 대방침의 실현에 노력한다고 하니, 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사이토 총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말과 실제가 서로 맞지 않는 인물인가? 아니면 그의 부하들이 상관으로 하여금 말과 실제가 서로 맞지 않도록 농락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또 밤낮으로 내정의 개선에 노력한다고 하는데, 그들이 말하는 ‘개선된 내정’이란 과연 어떠한 내정인가? 결국, 이는 전임 총독들이 무단정치로 언론을 압박하고 인권을 유린하던 바로 그 정치를 개선하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과거 총독 시대에 조선인이 총독 정치 아래에서 안녕을 보장받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그러나 실제 내용은 그 말과 들어맞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모순을 다시 드러내고 있다. 과연 이것이 개선(改善)인가, 아니면 도리어 개악(改惡)인가? 진정으로 개선이라면 그 개선의 실제가 있어야 할 터인데, 이번 강연단의 해산이 바로 그 ‘개선’이란 말인가? 만일 강연단을 해산시킨 것이 개선이라면, 그런 개선은 차라리 ‘완전한 개선’이라고 불러도 되겠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다시 무슨 말을 더 보탤 필요가 있겠는가. 또 강연단은 평소에 배운 학술상의 지식을 펼쳐 보이겠다고 신청하였고, 반드시 국법을 지키며 국헌에 따르고, 오직 문화의 선전에 종사하며, 결코 정치를 논의하거나 치안을 문란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맹세하였다. 그러므로 총독부는 이를 기쁘게 받아들여 그 계획을 허가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허가한 것 자체는 옳다. 강연단은 애초에 정치 선동이나 치안 교란을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서약했고, 그런데 강연단이 각 지방을 순회하면서 실제로 치안을 문란하게 한 일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 없었는가. 만일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 사실은 마땅히 일정한 법적 형식에 따라 처벌되었을 것이며, 치안법의 조문에 비추어 별도의 처분이 있었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더구나 당국이 치안법을 엄격히 수호한다고 자처하고 있으니 이는 더욱 명백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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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러한 처분이 무(無)하니 그 형식이 무(無)함이며 그 형식이 무(無)하니 각지에 강연단의 강연한 내용이며 행동이 조금도 치안 문란에 촉(觸)하지 아니함을 가히 알 바이며, 평소의
수득(修得)한 학술상의 지식을 피력함을 용인하였다 하니 저들이 평소에 수득(修得)한 학술은 하(何)요. 정치며 법률이며 경제며 문학이며 역사 등이라. 각지에서 강연한 실제를 견(見)하면 전혀 당초의 선서에 반하였고 또 경성에서는 일층(一層) 불온의 언사를 용(用)하여 치안을 문란함이 빈대(頻大)하므로 드디어 금지하였다 하고, 또 하였으되 각 변사(辯士)의 연설은 실개(悉皆) 조선의 독립을 내용으로 삼아 반어 또는 은어를 용하며 혹은 풍자하고 혹은 예를 타방(他邦)에 취하여 불온사상을 선동함이 실로 심하다 하니 각지에서 강연한 것보다 경성에서 강연한 것이 일층 불온의 언사를 용함이라 함이라. 고로 타지에서 강연한 내용이 치안을 문란치 아니하고 도리어 치안의 보장에 보익이 됨을 가히 알 바이니 하고(何故)요. 하면 일층 불온한 언사를 용하였다하는 경성 강연(京城講演)으로 보면 그 내용이 극히 평온한 가운데 언언(言言)히 평화를 설(說)하였고 또 애타(愛他)를 도(道)하였으니 평화와 애타가 치안을 문란(紊亂)하는 것인가. 만일 당국은 배타(排他)요, 전쟁이라 이 배타(排他)와 전쟁으로 치안을 삼는다 하면 애타와 평화는 당국과 정반대이니 물론 치안의 문란이 될 것이라.
 
(현대어: 그런데 실제로 그러한 처분이 없었다. 그렇다면 처벌할 만한 구체적인 형식이나 사실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형식이 없었다는 것은, 각 지방에서 강연단이 행한 강연 내용이나 행동이 조금도 치안 문란에 저촉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또 당국은 학생들이 평소에 습득한 학술상의 지식을 펼쳐 말하는 것은 허용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평소에 습득한 학문이란 무엇인가. 정치이며, 법률이며, 경제이며, 문학이며, 역사 등이다. 그런데 당국은 각 지방에서 실제로 이루어진 강연을 보면, 그것이 당초의 서약과 전혀 달랐으며, 또 경성에서는 한층 더 불온한 말을 사용하여 치안을 문란하게 한 정도가 상당히 컸기 때문에 마침내 강연을 금지하였다고 한다. 또 해산 명령이유서는 이렇게 말했다. “각 연사의 연설은 모두 조선의 독립을 그 내용으로 삼고, 반어 또는 은어를 사용하며, 때로는 풍자하고 때로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끌어들여 불온사상을 선동하는 정도가 실로 심하다.” 그렇다면 당국의 설명에 따르면, 각 지방에서 한 강연보다 경성에서 한 강연이 한층 더 불온한 언사를 사용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거꾸로 생각하면, 다른 지방에서 한 강연의 내용은 치안을 문란하게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치안을 보장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왜 그런가. 당국이 한층 더 불온한 말을 사용했다고 지적한 바로 그 경성 강연을 살펴보면, 그 내용은 극히 평온한 가운데 이루어졌고, 또한 남을 사랑하라는 뜻을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평화와 애타(愛他), 곧 타인을 사랑하자는 것이 치안을 문란하게 하는 것인가. 만일 당국이 배타와 전쟁을 그 원칙으로 삼아, 배타와 전쟁으로 치안을 유지하려 한다면, 애타와 평화는 당국의 입장과 정반대가 되는 것이므로, 그런 논리 아래에서는 물론 그것이 ‘치안 문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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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당국은 배타와 전쟁으로 치안(治安)을 삼는가. 그리하고 반어 또는 은어를 용하여 혹은 풍자하고 혹은 예를 타방에 취하여 불온사상을 선동함이 심하다 하니 반어와 은어는 하를 지칭함이며 예를 타방에 취한다 함은 하를 운함인고. 경성에서 강연한 변사는 제대(帝大) 법과 출신이니 그 학(學)한 바가 법률, 역사며 시대의 사조로 배태한 학술이라. 그 학술로 강연함을 희열하여 용인하였다 하니 역사를 말할 때에 어찌 타방의 예를 취하지 못하며 시대의 사조를 술(述)할 때에 어찌 반어와 은어가 무하리요. 목하 시대의 사조를 만일 직설거(直說去)하면 실로 당국의 주장낭패(周章狼狽)는 형언할 수 없을 것이라.
 
그러하되 당국은 시대사조로 배태한 학술을 직설거하여 민족자결은 여하하니 세계노동문제는 여하하고 또 노동당에서 소약민족에 대한 태도는 약시(若是)하니 과격파의 세력은 여하하고 그 내용은 여하하니 하고 직설거하지 아니함을 책함인가. 수득한 학술로 강연함을 용인하였으나 그 수득(修得)한 바를 직설치 아니하고 은어 또는 반어를 용함은 그 변사의 용심(用心)이 과연 당국의 용심(用心)보다 이상으로 숙고함을 가히 알 바이거늘 도리어 차를 금지하여 처음 용인이라는 취지에 반대하는 행동을 취하니 그 반복이 무상함은 여하간 당국의 시대 학술은 하를 운함이지 지(知)치 못할 바이라. 전제군주의 무단압박으로 인민의 자유와 권리를 용인없이 박탈하던 기사적 봉건시대의 학술을 운함인가. 당국 제공이여, 일본의 학해(學海)를 관하라. 제공의 사량(思量)하는 학술 시대는 이미 과거이라. 시대의 지만(遲晩)이 어찌 그리 심한고. 그러나 자칭 현명(賢明)하는 제공(諸公)이 어찌 시대의 학술을 부지(不知)하리요. 오직 제공(諸公)은 초지(初志)를 무시하고 재등(斎藤) 총독으로 하여금 동화정책의 무의미 불가능이라는 주창을 철폐케 하여 일구이언하는 좋은 인물을 작하고 역대 총독의 압박정치를 부활하여 그 융화의 실현을 기도하려 함에 열중함으로 마침내 시대의 학술을 곡해(曲解)함일지로다.
 
슬프다. 재등(斎藤)총독이여. 당국 제공(諸公)이여, 그 태도와 정책을 명백히하고 가식과 허위로 무차별이니 일시동인(一視同仁)이니 선정덕정(善政德政)이니 하는 사(蛇)의 설(舌)을 농(弄)하여 조선인을 기만치 말지어다. 막현호은(莫見乎隱)이며 막현호미(莫顯乎微)어늘, 황차(況且) 무시폭로(無時暴露)하고 무처불현(無處不現)하는 당국의 정책을 어찌 가히 은휘(隱諱)하리요.
 
 
(현대어: 그렇다면 당국은 배타와 전쟁으로써 치안을 삼는다는 말인가. 즉, 설마 총독부가 배타와 전쟁을 좋아해서 평화와 박애를 불온하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리고 당국은 학생들이 반어나 은어를 사용하고, 때로는 풍자하며, 때로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끌어다가 불온사상을 선동하는 정도가 심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반어와 은어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며, 다른 나라의 사례를 든다는 것은 또 무엇을 뜻하는가. 경성에서 강연한 연사는 제국대학 법과 출신이다. 그가 배운 학문은 법률과 역사이며, 또한 그 시대의 사조 속에서 태어난 학문이다. 그러한 학문을 가지고 강연하였고, 또 사이토 총독의 허가 아래 강연하였는데, 어찌 반어나 은어가 전혀 없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지금 이 시대의 사조를 만일 있는 그대로 직접 말한다면, 당국이 당황하고 허둥대는 모습을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당국은 시대사조 속에서 배태된 학문을 직접 말하여, “민족자결은 어떠한가, 세계 노동문제는 어떠한가, 또 노동당이 약소민족에 대하여 취하는 태도는 이러하며, 과격파의 세력은 어떠하고 그 내용은 어떠하다” 하는 식으로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은 것을 도리어 칭찬해야 하지 않겠는가.
 
당국은 학생들이 평소 습득한 학문을 가지고 강연하는 것은 허용하였다. 그런데 그 배운 바를 직접 말하지 않고 은어나 반어를 사용한 것은, 연사가 오히려 당국의 입장을 당국 자신보다도 더 깊이 생각하고 조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런데도 도리어 이것을 금지하여, 처음에는 허용하겠다고 한 취지와 정반대되는 행동을 취하니, 그처럼 태도가 이랬다저랬다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도대체 당국이 말하는 ‘시대의 학술’이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다. 혹시 전제군주의 무단적인 압박으로 인민의 자유와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빼앗던 봉건시대의 학문을 말하는 것인가. 당국자들이여, 오늘날 일본의 학계를 보라. 그대들이 생각하는 그러한 학문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어찌 그토록 심한가. 그러나 스스로 현명하다고 일컫는 그대들이 어찌 오늘날 시대의 학문을 모르겠는가. 결국, 그대들은 처음의 뜻을 무시하고, 사이토 총독이 ‘동화정책은 무의미하고 실현 불가능하다’라고 했던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게 만들어, 한 입으로 두말하는 이상한 인물로 만들고 있다. 또 역대 총독들의 압박정책을 부활시켜 이른바 ‘융화’를 실현하려는 데 열중한 나머지, 마침내 오늘날의 학문과 시대사조까지 곡해하고 있다.
 
사이토 총독이여, 당국자들이여. 그대들의 태도와 정책을 분명히 하라. 가식과 허위로 무차별이니, 일시동인이니, 선정덕정이니 하는 말을 뱀의 혀처럼 놀려 조선인을 기만하지 말라.
 
아무리 숨긴 일이라도 결국 드러나고,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결국 분명해지는 법이거늘, 더구나 때를 가리지 않고 폭로되고 곳곳에서 드러나는 당국의 정책을 어찌 능히 감출 수 있겠는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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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ang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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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총독부가 내세운 ‘조선의 안녕과 동양의 평화’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 논리였는지 글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언론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평화를 말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지적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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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ma
7
1920년이라는 시점에 학생들의 학술 강연조차 ‘불온’하다는 이유로 해산시켰다는 사실이 당시 식민통치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법률·역사·경제·문학 같은 학문을 말하는 것조차 통제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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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light
6
‘융화’와 ‘동화’의 차이를 따져 묻는 대목이 매우 날카롭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를 존중하는 융화가 아니라 조선의 문화와 정신을 없애 일본인으로 만들려는 동화라면, 그것을 복리나 선정을 위한 정책이라고 포장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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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ma
5
더 생각하게 되는 부분은 학생들이 왜 반어와 은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느냐는 점입니다.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회라면 학문과 시대사조를 직설적으로 논하면 되지만, 그것이 위험한 상황에서는 우회적인 표현이 저항의 언어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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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댁
5
100여 년 전 신문이 ‘안녕’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인간의 생명과 사상의 자유라고 주장했다는 사실이 깊이 남습니다. 역사는 거창한 사건만으로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말할 수 있었는지, 말하려는 사람의 목소리를 누가 막았는지에서도 드러납니다. 마지막의 ‘숨은 것은 결국 드러난다’는 메시지가 글 전체를 관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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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
5
식민지 지배의 언어가 참 교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복리’, ‘안녕’, ‘융화’, ‘선정’처럼 누구나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단어를 앞세우면서 실제로는 언론과 사상을 통제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당시 신문이 그 말의 내용과 현실을 하나씩 따져 물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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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이
4
학생들의 강연을 단순한 정치적 선동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정치·법률·경제·문학·역사 등 자신들이 공부한 내용을 사회와 나누려 했다는 점에서, 당시의 강연은 지식인들이 시대를 해석하고 사회와 소통하려는 행위이기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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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cheon
4
이 글에서 가장 무서운 대목은 ‘치안’이라는 명분이 무엇이든 금지할 수 있는 논리로 변하는 과정입니다. 실제로 치안을 어지럽힌 구체적인 행위가 있었는지 따져보지도 않고 강연 자체를 문제 삼는다면, 법과 질서라는 이름이 오히려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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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colo
4
작가가 이 글을 통해 단순히 1920년의 언론탄압을 소개하려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당시 총독부가 내세운 ‘안녕·융화·선정’이라는 공식 언어와 실제로 벌어진 강연 해산·언론 통제를 나란히 놓음으로써, 식민지배가 어떤 언어로 자신을 정당화했는지를 독자에게 되묻게 하려는 의도가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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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석
4
특히 마지막에 ‘숨겨진 것은 결국 드러난다’는 중용의 구절을 끌어온 것이 작가의 역사 서술 의도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과거의 억압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시 사람들이 왜 직접 말하지 못하고 은어와 반어를 사용해야 했는지, 그리고 그런 시대의 흔적이 어떻게 후대에 드러나는지를 보여주려 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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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yana
3
‘평화와 애타가 어떻게 치안 문란이 될 수 있는가’라는 반문이 오래 남습니다. 지배 권력이 말하는 질서와 시민이 생각하는 평화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아주 간결하게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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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주
2
100년 전 신문의 문장을 오늘 읽으면서도 낯설지 않다는 것이 오히려 씁쓸합니다. 권력은 자신에게 불편한 목소리를 ‘불온’이나 ‘질서 훼손’이라는 말로 규정하기 쉽고, 그래서 역사를 읽을 때는 정책의 이름보다 실제로 무엇을 허용하고 무엇을 금지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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