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1885년 톨스토이의 단편 제목은 어쩌면 그가 원고를 작성하던 시기에 이미 미래는 암흑과 같은 날들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 인류의 이타심을 끌어낼 수 있는지 그 여부를 뒤에 올 자들에게 귀띔 해줬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본질과 인간성에 대한 이해를 위해 20세기 어느 한 ‘Corean’의 삶을 함께 감상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아일랜드계 부친과 독일계 모친인 미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그레이스는 켈리는 20세인 1949년에 할리우드에 데뷔했다. 아일랜드계와 독일계의 결혼조합은 미국인의 조상이 된 근대 서유럽의 식민 역사가 숨어 있는데, ‘하얀 깜둥이’로 백인 대접받지 못한 이들의 역사는 여타 인류의 식민지 과거처럼 제대로 규명되지 않고 희생자에게는 기억 상실을, 가해자에게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 쾌재를 불러왔다고 생각된다.
그레이스 켈리가 배우로 데뷔하던 해에 모나코 대공이 된 레니에 3세는 1955년, 촬영차 모나코에 온 그녀를 만나 사귀기 시작해 이듬해 1956년 봄 모나코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12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 청혼은 세기의 결혼으로 알려졌고 20세기 여성들의 신분 상승에 대한 꿈을 한껏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름난 잔치가 배고프듯 고가 선물로 포장된 여배우로서의 삶은 영화 ‘상류사회’를 끝으로 은퇴했다. 이 영화에 끼고 나온 결혼반지가 뭍 사람들에 회자하기 전, 이보다 더 큰 이득을 노리고 발 빠르게 행동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는 제이슨(한국 이름 이민석)이라는 미국 이민자로, 그레이스 켈리가 모나코에서 결혼한다는 걸 알고 모나코로 도박 여행을 떠났다. 주사위를 개조한 사기도박으로 크랩스에서 연거푸 돈을 따 유유히 카지노를 빠져나간 제이슨 리는 다음날 주간지 새터데이 이브닝(1956년)에 ‘몬테카를로에서의 도박사기극’이라는 기사로 신문에 났다. 그는 프랑스 경찰에게 잡혀 공항에서 체포되고 구속되었다.
AP통신 1956년 4월 28일 자에는 몬테카를로 도박사기극 제이슨 리가 2월 21일 니스에서 체포되어 징역형에 처했다는 기사가 났다. 제이슨 리의 가족은 필라델파아 출신 미국 시민권자인 그레이스 켈리에게 부탁해 미국 시민권자인 제이슨 리를 풀어달라고 이 부탁했다. 이것은 제이슨 리와 그레이스 켈리가 특별한 관계였기 때문이다. 제이슨 리는 시카고에서 불법 도박장을 경영하고 있었고, 할리우드에서 여배우로 성공하기 위해 모종의 계약 또는 스폰서 또는 패트론 관계였던 때문에 신세를 진 적이 있는 그레이스 켈 리가 제이슨 리를 도울 것으로 안 과감한 베팅이었을 수도 있다.
시카고 교민들은 그레이스와 제이슨의 염문, 알 카포네와 제이슨의 관계 등을 떠들었지만, 글쎄다. 아버지뻘인 제이슨은 아시안으로 미국에서 성공하기 위해 일찌감치 할리우드 여배우들의 뒤를 봐주며 백이 주류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키워나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레이스 켈리뿐 아니라, 다른 할리우드 여배우들도 제이슨 리의 사면을 원했고 결국, 석 달 만에 풀려났다.
서술의 중심을 누구에게 둘 것인가에 따라 이야기 전개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 그레이스 켈리가 주인공일 경우 대중의 눈을 끌기 쉽지만, 1896년 조선에서 태어나 대한제국이 되는 소설로 점철된 비극의 땅에서 말도 글도 제대로 익히기 전에 부친과 미국행 이민선을 타고 간 이민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면 독자는 아마도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다. 피하고 싶고 지루한 터부시되는 근대 굴종의 역사에 관심을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의 시선이 아니라, 글을 읽는 독자가 어떻게 그를 수용할지는 이미 정해진 수많은 선동 역사와 세뇌 교육이 밟고 지나가 누더기가 된 비루한 패자의 역사관이다. 사실은 거짓이 되고, 거짓은 팩트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쉽사리 고칠 수 없다.
제이슨 리는 미주 한인 기자와 교민 사이에서 전해지던 전설 같은 아니, 소설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알 카포네의 12명의 심복 중 한 명이며 그에게 시카고 금싸라기 땅을 받았다는 소문이 남아 있다. 미국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회 사무총장 등이 이민 역사를 정리 발굴하면서 방송을 탔고, 이 불행한 조선인의 파란만장한 일생은 미래에 언젠가 나의 일이 될 수 있고 너의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가장 논리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문체로 그때까지 남아 있던 인간의 품위로서 시대 감성을 조용하게 물었는지 모른다.
제이슨 리는 1896년 조선에서 출생해 초기 이민선을 타고 부친 이창건과 단둘이 미국으로 갔다. 이미 그곳에는 중국인도 일본인도 사탕수수밭에서 일했다고 하는 것으로 미루어 하와이 이민이다. 1903년 최초 하와이 이민선이 100여 명을 태우고 제물포항에서 출발했는데 그중에 이창건, 이민석 부자가 포함되었는지 명부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대략 8세에 이민선에 올랐다면 1904년 일수도 있다.
후술할 도산 안창호 일가와의 친분이나 도산과 같은 평안도 사투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이슨 리는 도산과 동향 사람이다. 평양에서 이민선을 타기 위해 하와이행을 결심하려면 개신교 선교사들의 적극적인 이민 장려를 빼고 생각하기 어렵다. 이 시기는 망국의 현장에서 민초와 부역자의 길이 극명하게 달라지는 시점이라, 무엇을 논해도 기승전 헬조선이다. 이민을 장려한 미국인 선교사를 높이 평가할 것인가, 공인된 인신매매로 볼 것인가. 식민사관은 그 평가조차 자유롭지 않다.
부자는 모진 이민 생활에 지쳐 3년 만에 미국 본토로 가는 밀항선을 타고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시카고로 갔다고 하지만,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와이에서의 이민 생활은 노예나 다름없어 자유가 전혀 없고 가죽 채찍으로 맞으면서 감시 아래 일했는데 어린 아들과 미국행 선박으로 밀항한 예는 자료를 확인하지 못했다. 시카고에서 타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부친은 귀국을 결심하지만, 어린 제이슨은 잔류를 선언했고 결국, 부친은 떠나고 아들은 고아원에 맡겨져 심한 인종차별을 경험하게 된다.
제이슨 리의 손자 로버트 김(현재 생존한다면 약 78세)이 모은 자료에는 조부 제이슨 리와 그의 부친 이창건, 그리고 제이슨 리의 아들 3부자의 사진이 남아 있다. 모두 양복 차림으로 보아, 이창건은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일본으로 갔을 수도 있고 다시 하와이로 돌아가 모진 노동을 견뎌냈을 수도 있다. 다시 돌아갈 고국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들은 타국에서 성공한 케이스로 묘사되지만, 그들의 이동은 불확실하며 불행한 디아스포라의 선험으로 상징된다.
그들이 고국을 떠날 때 당시 집조(執照)라고 부르던 여권에는 대한제국을 ‘Korea’로 영문 표기했다. 발행 기관은 수민원(綏民院)으로 오늘날의 외교부 성격의 기관이지만, 1902년에서 다음 해까지 운영되다가 폐지된 임시 기관이다. 이민 추진은 미국인 주한미국공사 알렌(H. N Allen)과 사업가 데쉴러(Deshler), 언젠가는 이 인신매매 이민의 성격이 더 확실해질 것으로 보는데, 공식적인 외교문서에는 한참 뒤까지 ‘Coera’로 표기되는 점도 주의해야 할 사항이다. ‘Korea’와 ‘Coera’의 표기 차이는 시기적으로 중복되는데 전혀 다른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만,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당시 시카고는 마피아의 본거지로 알 카포네가 주름 잡던 갱스터의 시대였는데 이 틈에 조선인 출신 이민자가 끼어 있었다는 게 도저히 상상되지 않는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 속한 조선인의 인생은 출생부터 우여곡절이 가득했다. 제이슨 리는 번화가에 속하는 Clark ST 북쪽 1358번지에서 재향군인 휴게소 간판을 걸고 가장 큰 비밀 도박장 운영하고 있었다. 클락 스트릿 남쪽은 마피아 조직이 집접 운영했으며, 북쪽은 개인에게 임대 준 것이다. 1940년대 중반의 일이다.
이곳은 1960년대 재개발로 주택가가 되면서 철거되고, 카지노 운영 흔적이 사라졌다. 행정구역도 완전히 사라졌다. 한국인 제적 등본 중에는 일제 강점기에는 있던 주소가 완전히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경우가 있다. 주로 역사 지명이지만, 그 경우와 비슷한 경우다. 그렇다고 제이슨 리의 도박장 경영이 신기루 같은 소문은 아니다. 당시 인종차별법이 있었는데 어떻게 일개 아시안이 시카고 마피아와 나란히 불법 도박장을 운영했던 것일까.
시카고 트리뷴에는 제이슨 리의 기사가 다수 실렸다. 1953년 1월 30일 자 기사에는 동양인으로 도박장을 설립해 운영했으며 시카고 정치권과 연계되어 있었다는 일본인 직원의 증언이 있다. 불법 활동 단속 담당인 바울러 시의원이 도박장 허가서를 발부했고, 그 대가로 사업 이윤의 일부를 정기적으로 상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리가 마피아 조직원이라는 단정적 언급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남쪽 거리는 마피아가 북쪽 거리에는 제이슨 리의 도박장이 있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매달 1만 5천 달러 소득을 올리는 가장 큰 도박장이 시카고 마피아와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은 충분히 상상된다. 제이슨 리의 이윤 40%는 바울러 시의원의 몫이라고 시카고 트리뷴은 전했다.
‘Chicago Confidential 시카고의 비밀(Jack Lait&Lee Mortimer Crownpublishers 1950)’이라는 책에는, 한국인 제이슨 리가 시카고 모든 동양인 도박장을 관할하고, 그 대가로 이윤을 마피아에게 상납했다고 나온다. 따라서 제이슨 리와 시카고 마피아는 비즈니스 관계였다. FBI는 여러 번 도박장을 급습하지만, 번번이 시카고 경찰이 사전에 알려줘 체포가 무산되었다가 1952년 급습으로 카지노는 결국, 폐쇄되었다. 당시 시카고에는 소수의 아시안뿐, 코리안은 거의 없었는데 맞고 자란 그가 어떻게 정치권 불법 로비를 서슴지 않은 인물이 된 것일까. 아시안의 파워는 이때부터 재조정된다. 한반도는 전쟁으로 혼이 나간 민족이 죽어 나가고 있을 때, 그의 업장은 문을 닫아 강제 조정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자문할 필요가 있다. 한국인은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이지만, 어째서 강요받은 역사 인식 내에서 민족적 자부심이나, 민족의 개념을 완전히 상실한 변질한 민족이 된 것일까. 인간에게 과연 조국이란 무엇인가. 동족이란 무엇인가. 이런 생각조차 허락하지 않는 뇌의 기능 마비에 대해 '오래된 무엇'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고, 왜 공격의 대상이어야 했을까. 이러한 인종적 민족적 특징에 대해 재검토하지 않는다면 서양이 그토록 원한 ‘코리안 해체’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한국인의 소멸은 인류 문명의 소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제 아무리 똑똑한 식물도 뿌린 대로 거두기 마련이다. 변질의 변질을 거쳐도 원형 보존의 법칙은 예외가 없는 것은 진리에 가깝다.
제이슨 리는 1911년경 리버사이드로 갔다. 그곳은 한인들이 몰려 살던 지역으로 거기서 도산 안창호를 만나 보살핌을 받게 된다. 1914년 18세이던 제이슨 리는 입대하고 하와이에 파견되었다. 그는 부대에서 군사 물자를 빼돌려 하와이 동포를 도왔고, 이때 모은 돈으로 카지노 사업 밑천을 마련했다고 알려진다. 본능적으로 돈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이 청년은 정상적 삶을 추구해 한때 캘리포니아 땅을 사서 농장을 경영하지만 실패했고, 유타주로 가서 구리 광산도 매입해 운영하지만, 이것도 실패했다.
해방 후에도 더러 광산이나 선박으로 망한 사람이 있는데 이런 종류의 사업은 일제가 주로 식민지 지배 지역에서 등골을 빼 먹던 사업이다. 식민지가 문화이자 사회현상이 되니 개인은 가치관의 혼돈과 정체성의 혼란으로 그 피해는 물질적 정신적으로 걷잡을 수 없다. 이 피해는 대를 물리고 불행을 초 래했는데 아마도 그래서 더욱 식민사관이 공고하게 우리의 뇌를 묶어두고 있는지 모른다. 이 불행의 늪을 안전하게 건너 현재 편안한 대한민국의 기득권으로 행세하는 부류 중에는 떳떳하지 못한 민족 배반자의 유전자가 섞여 그 존재가 드러나는 걸 막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몇 년간 리버사이드의 도산 안창호의 집에서 함께 산 제이슨 리에 대해 도산의 맏딸 수잔 안은 다음과 같이 추억한다. 제이슨이 어떻게 리버사이드에 오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모친(이혜련 여사)이 어머니가 없는 제이슨의 어머니 역할을 했다. 가족처럼 지냈고, 시카고 카지노의 경리 역할을 부탁해 도산의 차녀 수라 안이 2년간 제이슨을 도왔다. 이때도 한인 사회에 내연 관계 소문이 났었지만, 제이슨과 도산 가문의 관계는 좋았고 2년 후 수라는 돌아와 제이슨의 돈으로 문 게이트라는 중식당을 개업했다.
베벌리 힐스에서는 문 게이트를 필립 안이 세웠다고 알려졌으나, 실은 제이슨이 세운 것과 다름없다. 후에 중국인 동업자가 식당 경영에 참여했다고 알려지고 오빠인 배우 필립 안의 명성을 이용해 식당이 입소문 나면서 코리안과 차이니즈는 동일시된다. 그렇게 차이나와 코리아는 주객이 전도되어 갔다. 역사의 둔갑도 역사다. 필자의 추측으로는 아마도 문 게이트는 도박장을 잃은 제이슨의 제2의 투자처였을 것이며 도산의 가족을 사업적으로 후원하는 한편 한인 사회 아지트가 된 레스토랑을 통해 사업확장을 도모하며, 한인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왔다고 보인다.
제이슨의 부인 멀이 리는 LA에서 한국 최초 골동품 상점 경영했고 그 덕에, 손자 로버트 김의 집에는 많은 한국 골동품이 남아 있다. 한인들이 이고 지고 살림을 챙겨 이민을 올 때 가져온 세간들은 양반 귀족의 사치품에서부터 일반 서민의 가재도구까지 다양하다. 이렇게까지 해서 이민 가야 했던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LA에는 6.25 사변 때 주둔한 궁궐에서 획득한 전리품으로 손자들 대학 학비까지 마련했다는 퇴역 군인 출신 골동품상이 산다. 조선인, 한국인의 유전자와 유물은 세계만방으로 흩어지며 다른 이들의 생명의 자양분이 자, 부의 기초가 되고 만 운명, 정작 우리 자신은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해봤는가.
애국부인회 일원으로 한인 사회와 독립운동을 위해 활동했으며, 한인들의 재정지원가였던 제이슨 리의 처 멀이 리와 제이슨 리는 도산 부부를 통해 인간성과 애국심을 키웠다. 1949년 제이슨은 시카고 유학생 연합회가 초청한 한국 무용단의 5회에 걸친 시카고 순회공연을 도왔고 장물 시계를 단원들에게 선물하기도 했으니, 오늘날과 달리 그들 부부에게 물질은 수단이었을 수 있다. 제이슨 부부나 도산 일가가 고국에서 근대를 설계하던 일원으로 살았다면 그들의 인생은 어떤 삶을 그려냈을까. 그리고 후손인 우리는 어떤 자부심과 반성을 하며 오늘을 살고 있을까. 이런 상상을 불허한 근대사의 혁명은 단순하게 식민사관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피플 뉴스 매거진 1997년 11월 16일 자에는, 최초의 동양인 마피아를 기억하며, 손자의 조부 추억 기사가 실렸다. 그가 잊힌 건 역사를 잃어버린 고국에서이지, 미국이 아니다. 그는 전설도 가십도 아닌, 실존했던 인물이다. 도산의 뒤에서 도박으로 돈 벌어서 독립자금을 지원했고, 1세대 이민자들의 한인 사회를 도왔으며 한인들의 주류 사회 진출을 위해 애쓴 인물이다.
그는 나파밸리 재향군인 공동묘지 1차대전 참전용사 묘지에 묻혔다. 1914년에 참전해 10년간 복무해 상사로 제대했고, 재향군인 병원에서 미국인으로 죽었다. 그가 사망했을 때, 국가를 위해 전쟁에 참여한 베테랑에게 주는 예우로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는 생전에 자신이 받게 될 이 총성을 자랑스러워했다고 손자는 말하지만, 전투의 스트레스 반응인 셀 쇼크(shell shock)가 영광스러운 총성으로 바뀌며 세뇌된 인간의 자부심으로 추켜세워주는 국가의 악습은 횡포이자, 인간 기만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깨닫고 죽는 자는 많지 않다.
제이슨 리의 묘비에는 스코필드(Schofield) 제8 야전포병대(8th Field Artillery)라고 새겨져 있다. 그가 근무한 지역은 일제 강점기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가 보고서를 작성한 제암리와 수촌리 학살과 연관 있는 곳으로 추정되며, 세균학자이기도 스코필드가 전쟁에서 얻은 자료는 모두 이 1919년 3.1 만세 운동의 일환이다. 학살과 보고서, 이민자의 로열티는 인간의 비극적 서사의 큰 축으로 필자는 그를 불법으로 돈 번 의협심 많은 이중성으로 평가하고 싶지 않다. 불법적인 이민역사를 기정사실로 한 대한민국의 그릇된 역사 인식을 뛰어넘어 자신의 인생을 개척한 국경 넘은 프론티어로 볼 생각도 없다.
인간에게 국가라는 잣대로 재단하기에는 무궁한 인류애가 어디까지 허락되고 어디에서 한계를 짓게 되는지 그의 발자취를 따를 뿐이다. 1차 대전-3.1운동-제암리 학살-2차 대전 미군의 전쟁 역사가 한 획으로 이어지는 역사는 우리에게 많은 걸 숨긴다. 그가 이민 갔던 하와이 사탕수수밭은 어디였을까. 독자들은 한반도를 지배하는 자와 그들의 꼭대기에 있는 실체의 허술함을 알 때까지 제이슨 리, 그레이스 켈리, 도산 일가의 인생 역정을 다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상 세계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인의 위상에 대한 넋두리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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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alisa
6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제이슨 리라는 인물을 통해 본 근대 한인의 디아스포라는 교과서 어디에도 없던 역사네요. 불법과 애국, 생존과 배신의 경계에서 인간이 무엇으로 사는지 다시 묻게 됩니다. 이런 글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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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kroad
7
한 개인의 파란만장한 삶이 이렇게 민족사, 세계사와 겹쳐질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영웅도 악인도 아닌 회색의 인간을 통해 인간성과 국가, 충성의 의미를 묻는 방식이 오래 남네요. 쉽게 소비되지 않는 글이라 더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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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수
7
그동안 배워온 이민사·독립운동 서사가 얼마나 단선적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균열을 내는 글입니다. 이런 시선이 더 많이 공유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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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K
6
이 글의 핵심은 불법이냐 합법이냐가 아니라,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남는가라는 질문 같았습니다. 국가·도덕·민족을 넘어 인간성에 대해 이렇게 진지하게 묻는 글은 드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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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742580
5
한 편의 장편 논픽션을 읽은 느낌입니다. 인물과 시대, 사유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도 감정에만 기댄 글이 아니라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쉽게 쓰지 않고, 쉽게 읽히지도 않게 쓴 용기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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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g Byeon_72828
5
한국인은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하지만 온갖 외부 침입과 내란으로 혼이 나간 사람들 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질문도 제대로 못하고 껍데기 인생을 엮어온 자들에게 깊은 연민을 갖게 됩니다. 처음 접하는 미국에 있는 한인 디아스포라 기사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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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el89
5
제이슨 리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역사에서 삭제된 인물을 다시 불러내는 작업 자체가 존엄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 글은 평가보다 복원이 먼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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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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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나서 한동안 멍해졌습니다. 제이슨 리의 삶이 특별해서라기보다, 그가 ‘우리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이 결국 지금의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처럼 느껴집니다.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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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45
4
과거 이야기인데도 자꾸 지금의 한국 사회가 겹쳐 보였습니다. 성공과 생존, 애국과 배신을 너무 쉽게 재단해 온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읽고 나면 생각이 멈추지 않는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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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온
3
일부 서술은 자료적 근거가 더 보강되었으면 합니다. 제이슨 리와 마피아, 그레이스 켈리와의 관계는 팩트와 추정이 섞여 보여요. 그럼에도 ‘코리안 해체’라는 문제 제기는 충분히 토론할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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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4
한 개인의 삶을 통해 이민, 식민, 국가, 인간성이라는 거대한 질문을 던지는 글입니다. 역사 서술이 이렇게 문학적이고도 불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래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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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松
4
사실과 추정, 기억과 기록의 경계를 솔직하게 드러내며 독자에게 판단을 맡기는 태도가 이 글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느꼈습니다. 쉽게 읽히지 않지만, 그래서 더 가치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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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랑18세
3
이 글은 ‘이민 성공담’이나 ‘비극 서사’로 환원되지 않는 디아스포라의 실존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뿌리를 잃은 채 살아남아야 했던 삶이 어떻게 윤리와 선택을 뒤틀고 재구성하는지, 제이슨 리의 삶은 그 복합성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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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3
국가·민족·충성이라는 개념이 아직 정립되기도 전에 국경 밖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정체성 혼란을, 판단 없이 끝까지 따라가 준 글입니다. 디아스포라를 ‘떠난 사람’이 아니라 ‘남겨진 역사’로 읽게 만든다는 점에서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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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2
제이슨 리라는 인물을 영웅이나 범죄자로 단순화하지 않고, 시대의 균열 속에서 살아간 인간으로 바라본 시선이 인상 깊습니다. 한국 근현대사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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