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모 국회의원을 후원하면서 국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영수증을 받고 볼 일을 마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는데, 어떤 사람이 차에서 내려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여자였는데 순간 스쳐 지나가는 기운이 더럽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힐끗 돌아보고 떠오른 생각은 국회에 웬 잡상인 같은 사람이 출입하는 걸까 의문이 드는 동시에 내가 진심으로 응원한 이 국회의원도 같은 부류일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쳐 후원금 5백만 원을 돌려받고 싶은 기분에 싸였다. 국회는 신성한 입법기관이라고 애써 위안 삼지만, 국민의 대표기관에 이런 상서롭지 못한 기운의 사람이 드나들어도 되나 싶었다.
그 여자는 옷차림과 신발, 머리 모양새에 지갑을 손에 쥐고 올라가는 뒷모습까지 과거 시장통에서 보던 일수 꾼이나 여자 사기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라는 것은 체취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면서 경험한 삶의 무게가 지니는 기운이라는 것도 있다. 그 에너지는 나이를 먹으면 성숙도에 따라 품위로 또는 천박함으로 드러나는 법인데, 그 여자는 정말이지 놀랄 만큼 더러운 기운을 내풍기고 있었다.
요즘은 예의와 절제를 갖춘 사람 찾기가 어렵다. 의식 있는 사람도 많이 없고 젊은 사람들을 야단치는 어른도 찾기 힘들다. 누군가에게 정치적 소신을 말하면 서로 손가락질 주고받는 세상이 되었으니, 그저 제 목숨 하나 부지하고 살기도 쉽지 않은 악한 때다. 그렇다고 국회에 여자 잡상인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 드나든다 생각하니, 국회의사당 건물에서 국회의사당역 주변, 국회를 지키고 있는 젊은 남녀 경찰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상한 기운과 이상한 분위기에 압도되지는 않았나 혼돈에 싸인 채 돌아왔다. 그 여자는 나중에 알고 보니, 최민희였다.
박근혜 탄핵집회 두 번째 날, 세종문화회관 쪽 광화문 광장 한쪽에서 명품 청바지를 입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며 큰 소리로 떠드는 주진우가 멋져 보이던 날이다. 반대편에도 사람들이 점점 광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자, 어떤 회색 양복 입은 남자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로 주변 사람들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주어 없는 탄핵 응원 구호를 내뱉기 시작했다. 정치인인가? 시민인가? 양복 입은 정치 고관여 층처럼 보이는 그 사람의 얼굴에서는 사기꾼 냄새가 짙었다. 뭐, 이런 시민도 다 있나 싶었다. 국민이 참여하는 촛불 집회를 격려하는 시민이라면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일부로 시위에 집중해야 하지만, 그는 목소리를 키우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주변의 반응을 대놓고 곁눈질했고 그 모습은 얼핏 무슨 허접한 프락치같은 인상이었다.
그는 당이 전략공천을 배제한 정청래로, 그의 지역구 마포을은 손혜원에게 20대 국회의원의 임기를 선사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손혜원이 이해충돌과 부동산 차명 매입 등의 문제로 탈당하고 다음 선거에 출마하지 않으면서 다시 정청래에게 돌아갔고, 결과적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소중한 임기를 갉아먹은 계기가 되었다. 손혜원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쯤 정청래가 까먹은 1년의 황금 같은 시간 동안, 개혁에 힘을 쏟은 이재명의 정치력을 지켜보면서 겉으로만 번지르르한 정치가 아닌, 실속과 현실의 정치를 보고 배울 수 있지 않았을까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본다. 당이 배제한 정청래를 다시 불러들인 손혜원의 안목도 문제지만, 당은 당대로 똥이 묻은 개였다.
국회의원 지역구 거래는 장사치의 상거래와는 비교도 안 되게 더러워서 민심과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판단력으로 정치한다고 생각 들지 않는 게 오늘날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당은 국민이 반대하는 ‘내각제’를 양당제로 끌어가는 한쪽의 패나 마찬가지다. 상대 패인 국민의힘이 더 더러워서 국민이 울며 겨자 먹기로 이 시스템을 감내하는 신세라는 점에서 현실 내각제는 충분히 공고한 아성을 구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내란을 추종한 국민의힘은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해산해야 할 집단이지만, 버티고 있는 것 역시 전적으로 민주당에 그 책임이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로 기생충처럼 버티는 이자들이 대통령을 볼모로 삼아 자신들의 이권과 사익에만 충실하다는 점, 국민이 안다고 뭐가 달라지나 싶지만, 달라진다.
무식한 자들이 권리를 뺏기면서 분노에 눈이 떠지고 유식하게 되듯, 노조의 일원이 회사를 책임지는 오너의 입장이 되듯, 국가는 저절로 굴러가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다만, 대한민국 여의도 300명 만은 연 세비 11억과 알파에 인생이 붕 뜬 채, 죽을 때까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혈안이 되어 정작 중요한 정치 행위의 목적을 상실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재명 임기 중에 국회의원 공천방식을 원점에서 재논의하지 않고는 이 나라의 정치 부조리는 모순이 극에 달해 버티지 못할 것이다.
적폐를 개혁하려는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는 최일선이 바로 민주당이다. 국가 권력을 엄호하지 않고, 보좌하지 않고, 억지로 만들어낸 적폐들의 사법 리스크를 강 건너 불구경하면서 미리 탄핵, 미리 레임덕을 외치는 친문 세력의 기득권 나누기에 동참하는 게 민주당 수박들이다. 그들은 딴지를 걸고 걸며 국회의원 배지 수성에만 혈안이고 그것이 그들의 현실이다. 이 더러운 구조를 알고서는 초선으로 정치계를 떠나거나, 덜 더러워서 밀려난다. 이것이 현실 대한민국 국회 입성 자들의 한 단면이다. 내가 후원한 국회의원, 민형배 역시 그가 보여준 정치 행보는 민주당에 나라 생각하는 의원이 열 손가락을 다 채우지 못할 것이라는 실망 이상의 어느 것도 아니다. 모두 개인의 영달만을 생각하는 이 자들이 어떻게 그 힘든 유세 기간을 참아내며 그 자리에 올랐는지, 인간의 본질에서 정치적 약점을 제외한 필요한 정치 제도를 따로 떼어 AI에 의뢰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아마도 한국 정치는 반면교사로 작용할 주요 데이터라는 점에서 모범적인(?) 사례로 쓰일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그에게 앉을 의자 하나 내주지 않아, 100분 내 편히 누워보는 시청자의 눈을 불편하게 했고, 거론할 가치조차 없는 자격 미달 기자의 삼류 질문 공세를 들으며 대답하는 대통령에 시청자는 귀가 놀랐다. 최소한의 예의와 최소한의 양심조차 남지 않은 이 나라의 정치 시스템을 만든 것은, 모두 국민의 이름이었다. 대통령의 굴욕에 시청자의 눈과 귀가 호강하는 자들도 있었겠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정치로 시작해 정치로 망하는 최초의 국가로 역사에 기록되는 순간을 전 세계가 지켜 보고 있었다는 점 기억하기 바란다.
대통령을 대하는 국민의 태도는 곧 국민 스스로 국가를 대하는 태도다. 창녀와 살던 윤석열에 수치심을 느끼며 분노에 떨어야 했던 국민이 추위와 공포를 이겨내고 내란을 막아 주었건만, 지금 민주당의 작태는 가짜 약을 파는 약 장사다. 대통령을 존중하는 것은 권력자를 숭배하는 일이 아니라, 국민이 스스로 세운 국가의 제도와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일인데, 그 대의정치를 위해 뽑아 놓은 자들이 나서서 대통령의 안위와 국가의 안위를 좀 먹고 있는 이 현상은 총체적인 정신병이다. 나라 안팎에서 벌어지는 국제 관계는 3차 대전의 초입에서 누가 주도권을 쥐는가에 따라 이 나라의 운명이 달려 있다. 파키스탄마저 전쟁 참여를 망설이는 순간인데, 국내는 이재명 죽이기에만 혈안이고, 이것이 대세이고 필연인 양 쏠리는 여론은 정치인도 국민도 어른 없는, 정신병에 걸린 나라다. 국민과 국가가 정신 이상자의 기괴한 형태를 어디까지 끌고 갈 셈이란 말인가.
힘없고 연약한 민초(民草)의 힘으로 억지로 이끌어온 이 나라, 이재명이 곧 국민이라는 사실을 보고서도 믿지 않으니, 죽어도 왜 죽은 줄 모르고 떠도는 귀신이 된 수많은 항일 민족 지식인들이 한강에서, 여의도에서, 멀리 중국 영토가 된 그곳에서 울면서 내려다보고 있다. 나라를 잃을 때, 사람의 정신이 미쳐 돌아버릴 정도의 잔인한 행위와 계획이 세계사 차원에서 일어났던 기억을 죽은 귀신만이 안다. 조상들은 지금 우리를 도와주고 싶어도 돕지 못하는 현실, 우리 국민 스스로 뇌 내 장벽을 쌓고 막고 있다는 걸 우선 깨달아야 한다.
친문의 탄생은 쉽지 않았지만, 그들은 이재명을 제2의 노무현으로 만들고 있으니, 다시 장례식 준비를 하기 싫다면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 장례준비위는 정청래가 하고 싶겠지만, 그러지 못해서 대통령 기자회견에 맞춰 문재인을 만나고 입원한 정청래다. 죽이지도 못하지만, 살릴 가치도 없는 인간 종자들이 국회 주변에서 이렇게 하루살이 떼처럼 모여 있는 꼴은 그만큼 이 나라의 장래가 어둡다는 증거다. 문재인과 김어준, 김어준에게 빌붙은 정청래 이하 주변인들 모두 기득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권력투쟁에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기생충이다. 뻔뻔한 정청래는 중병인 ‘난가병’ 치료를 마치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
소프트웨어는 그만하면 국가로서의 존립이 가능하다. 국방도 국민의 일부가 군인이며 장군이고 특전사니 시스템을 운영하는 주체라도 소프트웨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최대 약점은 국체의 정체성과 그 시스템인 정치력인 하드웨어가 진부한 상태를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이재명 외에는 없다. 불과 십 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의 적은 외부에 있었지만, 이제 적은 안에 있다. 바로 우리 눈앞에 있는 민주당 수박과 서툰 민주당의 지도력이 바로 국민의 적이요, 원수요, 민족의 발목을 잡는 원흉이다.
이재명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국민으로서 유일하게 현실을 직시해온 인물이다. 공장 노동의 독한 약품으로 후각을 잃고 먹는 음식을 맛있게 먹기 쉽지 않다. 장애를 입은 팔의 신경통을 무릅쓰고 세계 정상들과 만나 악수하며 소통하기도 벅찰 것이다. 한국인들의 가장 큰 단점은 꽃이 진 뒤에야 봄이 왔더라는 후회하는 멍청함을 반복하는 노예근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국민 대다수는 살기 위해 새벽부터 부지런 떤다. 그들이 나라를 지켰듯이, 대통령을 지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