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보다 못한 이재명을 역사에 남기려는 대한민국
이쪽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낮다고 걱정하니, 저쪽에서는 벌써 탄핵을 논한다. 유물론 정치를 행하는 구식 사고가 팽배한 한국의 대통령 지지율이 20대 10%대까지 주저앉았고(원래도 높지 않았지만), 서울·수도권과 중도층에서 이탈이 두드러졌다. 정당 지지도마저 일부 조사에서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앞서는 역전 양상을 각종 여론조사가 떠들어 댄다.
조속한 내란 청산을 예상했던 국민이라면 민주당의 처세가 한심하지만, 본질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다들 짬짜미였기에 누가 누구를 쉽게 정죄하지 못한다. 수박이 여전하다는 이야기니 몇몇 뜻 있는 민주당 위원들만 속이 타고 욕받이가 된다. 한국 정치의 속성이 이러니 근본 해결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데 다들 딴소리만 한다. 수도권 지지율은 부동산 경기 저하 탓이며, 20대는 한국 정치의 막장 세대라서 그렇다. 원인은 전부 과거에 있다.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후보가 되고 그들이 펼치는 선거 유세는 행사도 이런 행사가 없을 정도다. 조직과 돈이 없으면 절대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지 못한다. 그 엄중한 현실에서 소년공이 도지사가 되고 시장이 되어 대통령이 된 입지전적 인물인데 다들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났으니, 현재 20대가 환갑이 될 무렵이면 이 나라는 가치 전도가 국정 위기 정도가 아니라, 국가의 존망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준이 될 수도 있다. 정치적 극단을 야단치는 어른이 없는 나라가 한때 동방예의지국이었다니, 그 시대는 전설과 같은 현란하고 허무한 수사일 뿐이다.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직시해보자. 일단 대한민국 여론조사는 신용할 가치가 없는 악성 제도의 하나라는 데에 대중의 확실한 지지가 필요하다. 여론의 역사가 곧 일진회(一進會)의 역사인데 친일 반민족 정치를 쇄신할 정부가 들어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일단 민주 진영이 정권을 잡았다고 해도 저들의 회유나 방해 세력의 획책은 일반적인 상식을 초월하는 수준이라는 것을, 소위 ‘문조털래유’를 통해 많이들 깨달았을 것이다. 대중 기만을 위해 놀리는 세 치 혀가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사람들이 현재 기성세대의 대표주자들이다. 이것은 수치스럽고 불안한 미래 한국의 청사진이지, 그들의 혀에서 나오는 판단으로 지금 정권을 흔들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누구든 지금 이재명을 흔들어 제풀에 개혁을 막는 짓은 윤석열의 내란을 국민이 되받아 그 유지(?)를 이어가는 셈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삼류 언론과 이등 국민의 견인작전
이재명 정부는 윤가가 싸지른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인수위도 만들지 않고 국민을 상대로 진을 쳤던 용산, 그곳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기획된 당 대표’ 정청래가 팀 신천지, 팀 유사 언론과 정부 다스리기 또는 정부 지휘를 준비했다는 사실을 대중은 한참 뒤에 알았다. 수년간의 정치 공작이 정치를 후퇴시켰는데 이재명 임기 1년 차는 반 이재명 세력의 삼류 여론정치로 허송세월했으니, 숙주를 찾아 기생하는 정치 버러지 사이에서 방황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도 이미 때가 늦다.
내가 못 잡은 권력이라면 차라리 개에게 주겠다는 한국인의 심리, 문조털래유는 뭍 대중의 지지를 개인의 영달 수단으로 이용했던 자들인 만큼 수치심을 알아야 사람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중은 정치에 무관심하다. 부모, 형제, 부부, 부모·자식 간에도 정치는 사회적 터부(social taboo)다. 혈연 간에도 그런데, 남이면 더하다. 이런 사회에서 남녀가 만나 섹스하고 자식을 낳는 것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닌 기형적이고 병든 사회의 생존방식이다. 정치 이념이 민족을 완전하게 분열시킨 집단과 공생하며 개인의 삶을 위해 요식행위에 불과한 선거제도가 투명할 것이라는 믿음도 안일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인이 나이브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들이 선 정치적 토대가 취약하다는 걸 인지하지 않고 피하면서, 먹고 즐기고 똥을 싼다.
2016년, 민중 개돼지의 나향욱 사건은 그가 정직한 공무원이라는 것을 증명한 첫 사례는 될 수 있어도, 마지막 아니다. 그의 파면은 법이 막았고, 강등도 무겁다고 소송한 나향욱은 2025년에 국립국제교육원 기획조정부장에 재직 중이었다. 그의 눈에 국민이 개와 돼지로 보인 역사는 해방 후, 반민특위를 쓸어버린 이래 이 땅에 정의가 사라졌다는 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만 보일 문제다. 그때 정치가 정의를 실현할 정치인들을 몰살했다는 점, 정의를 바라고 노력하는 선량한 시민의 팔다리를 잘라 개돼지처럼 꿀꿀거리게 만들었다는 점, 그러니, 독자들의 인생 여정도 그 안에서 각자 개돼지를 면할 수 있는지 따져 볼 일이다. 나향욱의 신분제 인식은 자기 자신을 포함하지 않고 한국 사회의 근본적 부조리의 원인을 무시한 무지한 인식의 한계 특권을 내포하고 있었다. 전통적 신분제의 몰락을 초래한 식민지 피지배기의 신분 역전과정과 해방 후 잔존 일본인의 한국 호적 투탁(投託) 역사, 이 모든 신분의 맨 밑바닥에서 갈 곳을 잃은 영혼을 거둬 수확한 사이비종교 내 신분제와 관련해 정식으로 공론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의 발언을 덮은 이 사회는 스스로 국민 개돼지를 자인한 것이다.
이 세기말적 상황에 편승해온 국민이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을 바로 세우지 못하는 이등 공신이라는 점, 국정 소신을 인내하지 못하는 국민의 후진성이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이 되었으니, 자녀 세대가 보고 배울 정치는 없다. 권리가 의무를 압도하는 유물론적 가치관에서 선거제도의 악습은 선거 결과가 귀 기울일 가치가 없는 요식행위로 전락해, 이 통과의례가 필요한 자들만의 리그가 되었다. 그래서 자녀에게 정치를 가르치지 못하고 인성과 도덕을 가르치지 않고 남들보다 잘살고 돈 많이 벌라고 가르친 건 바로 이 사회가 준 생존법이다. 정치가 부모에게, 부모가 제 자녀들에게 요구한 것은, 바로 친일 반민족주의자들의 사고방식이고 그 헤리티지를 물려받은 20대들에게 이재명은 진흙 위에 핀 연꽃이 아니라, 밟고 올라서야 할 질투의 대상이다. 나보다 나은 모든 인간을 혐오하도록 낳고 키워지고 길러진 교육이 이재명의 탓인가, 자문할 때다.
대한민국의 고질병, 교육과 부동산은 해방 이후, 친일 반민족 일당과 친미 반민족 일당이 국정을 운영했던 결과다. 부동산과 교육은 권력자들의 신분 상승 길이자, 그들의 비즈니스다. 부동산도 사학재단도 그들이 품고 키워온 열매지만, 대다수 국민이 그 제도 안에서 소외되는 이유를 이재명에게 뒤집어씌우면 대중이 알아서 분노해 다시 세상은 개돼지를 다스리는 주인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다. 국민은 판단력이 뛰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지능적인 노예다. 삶의 노예, 역사의 노예, 외면한다고 바뀌지 않는다. 근본을 해결하지 않고 여기까지 살아왔으면서 단번에 이재명에 해결을 바란다. 유사 정치인과 유사 종교, 유사 언론가에 휘둘렸던 지난 수십 년을 반성도 하지 않으면서, 성공과 확신과 희망을 이재명에게 요구한다. 무례하고 무엄하면서 무식한 줄을 모르는 그들, 바로 우리 국민의 자화상이다.
우리가 누구랴. 식민지 피지배를 벗어났는데, 동족 학살로 살해공범이 된 전쟁의 피해와 가해를 한몸에 겪은 생물학적으로도 분열된 자해공갈단으로서 영혼마저 털린 민족이다. 분노를 터뜨릴 곳은, 정치 외에 없다. 또는 神과 만나는 극적인 소속감을 주는 교회로 달려간다. 그러니, 교육은 안중에 없다.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는가, 배울 게 없다는 것을 배운다. 그러는 동안에도 기득권의 사업 수단인 부동산과 교육 시장은 저절로 굴러간다. 쫓기듯 자녀들은 학원을 전전하게 되고 그들의 사다리 맨 아래서 인생을 허비한다. 서른여섯 살 국회의원이 매년 세비로 노다지를 캔다. 매일 싸우며 나랏돈 땡겨 먹은 놀이에 젖은 정치 풍토를 선거철마다 동의해왔으니, 국민의 삶과 분노가 정치로 향하지 않을 수 없다. 불행 중 다행히도 한국인들은 지능적인 노예다. 노예는 노예지만, 남처럼 한번 거들먹거리고 살아봐야 직성이 풀린다. 50억 클럽이 안 되면 5억 클럽이라도, 그게 잘 안 되니, 멀쩡한 임금 밥상 뒤엎는 데까지 왔다. 차라리 전쟁이라도 나서, 있는 놈들, 가진 것들의 재산이 공중 분해되었으면 싶다. 이 상황을 부채질하는 여론이 얼마나 신이 나서 국정을 흔드는지, 귀가 마비되고 정신이 혼미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중우정치의 희생양에서 벗어나자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 못난 등신들의 세상이 좋다고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온다. 와서 놀다 가지 않고 살러 올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을 테니, 부동산은 점점 오를 것이고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세상은 직업의 생태계와 가치관을 완전히 바꿀 것이니, 얕은 지혜로 자식의 앞길을 재던 팔자 좋은 어머니들은 자식들이 미쳐 날뛰고 그 탓을 부모에 돌리는 자녀의 발광에 뒤로 쓰러지게 될 것이다. 자식의 사교육비에 제대로 먹지도 놀지도 입지도 못했다는 하찮은 넋두리는 나이 들어 가난으로 돌아와 질병만이 기다릴 것이다. 미래는 우직하게 제 길 간 사람의 것이지, 요란하게 돈만 좇은 자의 세상이 아닐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인들은 등신들이 제 살 깎아 먹으면서 팔다리 없어진 줄 모르는 중우정치(衆愚政治, ochlocracy)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한국인들은 원래 대범하고 용기 있고 은근한 뒷심을 발휘하던 미덕이 몸에 밴 민족이었는데 식민지 착취가 노예로 만들고, 그 노예를 보면서 자란 나향욱이 그 시대를 청산하지 못하고 견인하면서 과거의 기상과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다 잃었다. 재촉하고 성급하며 남이 잘되는 꼴을 참지 못한다. 친일 반민족, 친미 반민족주의자들이 설치지 못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나라와시(慣わし)가 생물학적 체질이 된 경우다. 정치적 판단의 질적 저하로 합리적 숙의를 상실한 대중정치가 집단적 정치 자해로 귀결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1999년 반민족문제연구소가 낸 친일파 99인의 서문에서 소장 김봉우는 제14대 대통령 선거만 해도 역대 선거 중 가장 깨끗한 공명선거였다고 평가하지만, 선거풍토는 옛날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고 개탄했다. 14대 대선 풍토를 예로 들며 ‘부산지역기관장 대책회의’를 들었다. 이 모임은 노태우 정권 마지막 내각 현승종 때까지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김기춘이 모임을 주도해 “민자당 김영삼 후보의 당선을 위해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언론을 매수하고 폭력사태를 꾸며내야 한다.”라는 상식 이하 발언을 했다고 개탄했다. 이때는 이 정도가 한국 사회의 정치적 수준과 법 기능과 역할이 타락했다고 본 사건이었으니, 지금 돌이며 보면 귀여운 수준이다. 김영삼이든 누구든 선거는 돈과 조직이다. 돈과 조직에 끼여 사는 유권자가 반성해야 정치의 질이 높아지지 않을까. 김기춘의 말로는 박근혜 정부 때 그 죄상이 드러났고, 박근혜 당시 국정 농단 무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수의(囚衣)를 입혔다. 박근혜 이후 법이 바뀌어 수의를 아끼게 된 것은 모두 죄를 지을 태세 전환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김봉우 소장이 김영삼 시대도 개탄하며 분노했다는 게 더 어이가 없다.
해방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근본 원인은 미군 정과 친일세력이 결합하여 민족세력을 제거하고 분단체제를 구축한 데 있다. 친일세력은 반공과 좌우 대립을 이용해 단독정부 수립과 권력 장악에 성공했으며, 분단구조를 통해 지배력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했다. 이러한 역사적 토대 위에서 한국 정치는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설득과 타협의 과정이 아니라, 진영의 생존과 권력 유지를 위한 투쟁으로 변질했다. 그 결과 지지율과 편 가르기가 정책과 원칙을 대신하고, 시민들마저 자기 진영의 잘못은 축소하고 상대 진영의 잘못은 확대하는 왜곡된 정치 문화를 당연한 기준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과거사를 단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 민주당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삼류 여론정치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소임을 지지율 관리자로 만들면 그 부작용은 전부 국민의 몫이 된다는 사실, 유권자 스스로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