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과 국민의힘은 과거 반민족 친일파의 변질 변형 집단이자 일부로, 광주를 피로 적신 권력의 정치적 후예들이다. 이들의 지금 행보는 이유 있는 정치적 비판이 아니라, 역사의 채무를 상대에게 떠넘기는 가증할 수법, 진화한 일진회 방식이다. 일진회 회장 이용구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은 아무래도 일제에 속은 것 같다는 술회가 있었지만, 그때 그의 아들은 이미 일본인 행세하며 살고 있었다. 역사는 활자 속의 상상이 아니라, 핏속에 흐르는 유전자가 정치 행위로 드러나는 문명의 심장이라는 점에서 현재 국민의힘이 걷는 길은 국내 친일 관변·민간 협력단체 350여 개 중 가장 먼저 생겼고 가장 대표적인 일진회 방식이다. 현대 한국 유권자는 이 공식을 깨지 않으면 유권자로서의 한 표는 무의미할 수 있다는 자각, 필요하다.
2026년 8월 13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 국회공개포럼」이 열렸다. 주최는 이진숙 의원실과 새역사국민운동 공동이다. 새역사국민운동의 공동 대표는 뉴라이트 학자인 『반일 종족주의』의 공동 저자인 이영훈이며, 이영훈의 매부가 문재인 시절 국무총리 자리까지 올랐던 출세한 민주당 정치인으로 지난 6.3 지선에 대구시장 후보로 하향 지원했다가 패배한 김부겸이다. 한때 서울의 궁궐 안 권력을 우습게 볼 만큼 강력한 정치기반을 가졌던 대구에 이제는 인물이 전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행사의 허가 권한은 실질적으로 국회도서관장 황정근으로, 도서관장은 국회의장이 임명하는 차관급이다. 이것도 희한한 문제, 역사 왜곡의 산물로 탄생한 대한민국 국회 도서 모음 관장이 차관급이라니, 과연 얼마나 진실을 담은 책들을 진열해뒀을까. 이날 포럼과 관련한 당시 보도·해설에는 조정식 국회의장이 황정근 관장에게 사용 허가 취소를 요구했다는 언급이 나오지만, 그것은 변명일 뿐 조정식을 믿느니, 박지원의 말을 믿을 일이다.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이제 유권자는 대한민국 삼권이 삼류 정치인들의 ‘길고양이 츄르’라는 걸 눈치채고 알아서 행동해야 한다. 물론, 내란의 밤, 천운이 다시 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법망으로 흥한, 일제에 부역한 반민족 친일파들도 법망으로 망하도록 해야 한다.
이 행사 개최를 전후해 국민의힘 정점식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 지도부가 우려를 표하고 취소를 요청했지만, 이진숙은 학술 행사라는 이유로 강행했다. 당 관계자도 “학술 토론회라 막을 수 없었다”라고 했다. 논란이 커지자, 국민의힘 지도부는 당 차원 행사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학술 행사였고, 이진숙도 현장 발언이 본인과 무관하다고 했고 현재로서는 징계를 검토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5·18은 폭동이자 내란”이라는 발언이 나왔다. 멍석을 깔고 불을 지핀 이진숙은 주최자로서 “토론 내용은 나와 관계없다”라고 발뺌하며 “사전 검열을 요구하는 발상”이라고 버텼다. 주최 책임을 발표자 입으로 떠넘기는 이 논법은, 공적 공간을 빌려준 사람의 책무를 지워버리는 편리한 장치다. 내란범과 옹호자들을 처벌하지 못한 이 상황을 연장해 민주당의 발목을 잡으면서 어떻게든 버티면 생존한다는 전략이다.
이 바퀴벌레와 같은 전략에 대해, 김민석 당 대표 후보는 당 대표 선거를 앞둔 2026년 8월 15일 민주당 전남광주 합동연설회에서 이 포럼을 문제 삼았다. 이진숙을 겨냥해 명확하게 “제명할 수 없다면 국회법을 고쳐 1년 자격정지로 국회에서 아웃시키겠다”라며 “여자 전두환도, 여자 히틀러도 대한민국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겠다”라고 말했다.
당 대표 선거를 나흘 앞둔 상황에서 국회에서 야당 의원이 주최하는 반민족 학술 포럼이 개최되었다는 것은, 국회 내의 많은 수가 여전히 정부의 일을 방해하고 당 대표 선거도 직접 훼방하겠다는 의도로 발생한 사건이다. 김민석이 긁어 부스럼이 된 일이 아니다. 열악한 환경을 즐기는 피학적 정치인들이 많은 한국 민주당 정치에서 김민석 후보의 발언은 힘들게나마 민주당의 더러운 생태를 벗어나려는 선언으로 들렸다.
그리고 이틀 후, 당 대표 선거에서 패배했다면 혼자만의 정신 승리로 끝날 발언을, 김민석은 당 대표가 되면서 행동으로 옮겼다. 정족수 200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만큼 현실성은 떨어져도 진일보했으니, 반드시 이진숙의 국회의원 행위를 막아야 한다. 민주당은 입법으로 ‘이진숙 법’을 만들어 이런 자의 국회의원 짓을 막는데 100석이면 족하게 해야 한다. 사실 거대 야당도 거대 여당도 말장난에 요식행위다. 벌어진 학살을 뒤엎는 발언으로 한 번 도발을 던져 보고 아니면 말고 식인 삼류 정치를 고급 유권자들이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을 이진숙은 8월 24일 고심 끝에 김민석 당 대표를 명예 훼손으로 형사고소 기자회견을 했다. 일반인은 꿈도 못 꿀 소송, 언어도단의 행위를 하면서 철저하게 자신을 보호하려는 짓을 계속한다. 이진숙이 내민 카드는 2000년 5.18 기념행사 후 김민석이 간 단란주점이다. 그 단란주점의 이름이 ‘새천년 NHK’라는 건 꽤 도발적이고 자극적이다. 이미 창녀가 된 우리 광주를 보는 심정이 든다. 천하에 무서울 것 없던, 당당하던 대구가 재선충에 병에 걸린 대구의 숲처럼 죽어가는 모습은 한국 정치도 죽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 김민석의 이번 도발은 참으로 통쾌하다. 설전으로 지지 않는 자가 당의 대표가 되었으니, 그가 마이크를 잡을 때마다 가감 없이 저들의 발작 버튼을 눌러줄 것이며, 이에 발작하며 반응하는 자, 과거 친일 반민족 처세가 아니면 생존 불가능하던 시대의 범죄 상이 속속 드러날 것이다.
이진숙이 5·18 토론회에서 나온 왜곡을 ‘표현의 자유’로 감싼 뒤, 김민석 현 당 대표를 상대로 26년 전 술자리를 ‘새천년 NHK 김민석 씨’라는 말장난으로 낙인찍으려는 발상은 한국 정치에 하한선이 없음을 보여주는 전형이며 사실상, 한국 정치는 미래가 없음을 본인이 선포한 것이다. 개의 의리만큼도 안 되는 인격으로 정치인이 될 수 있는 이 선거제도의 구조적 모순을 타개하지 않으면, 이진숙과 같은 정치인은 줄을 설 것이다. 쉽고 더러운 정치, 한동훈, 오세훈 등이 설치며 윤석열, 문재인, 박근혜, 이명박의 길을 갈 것이기 때문에, 김민석 당 대표는 이 문제를 엄중히 처리해야 한다.
2000년 5·18 전야제 뒤 광주 시내 단란주점에서 386 정치인들이 술을 마신 사건은 추했다. 학생운동의 변질을 비웃는 반민주당 유권자들이 침 튀기며 민주당에 반기를 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추모의 밤에 술자리를 택한 것은 근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한국 정치인의 판단 착오이자 도덕적 해이였다. 이진숙의 정치적 위치는 이 조작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그는 한때 좌파였으니, 편하고 좋은 보수 언론·권력 블록에서 성장한 인물이다. 방통위원장 시절부터 진영 대결의 최전선에 섰고, 공영방송과 언론노조를 적으로 규정하는 언어를 반복했다. 그 이력이 검증과 표현의 자유를 말할 때 순수 학문적 호기심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국회라는 상징 공간에서 5·18의 성격을 다시 흔드는 발언이 나오도록 자리를 만든 뒤, 비판이 쏟아지자 ‘민주당이 토론 자체를 금지했다’라고 프레임을 바꾼다. 국민의힘 지도부 역시 ‘당 행사가 아니다’라는 말로 거리를 두면서, 동시에 제명 촉구 결의안을 ‘일당 독재’, ‘말할 자유 박탈’로 규정한다. 다수당의 일방 처리가 위험했던 때는 유권자가 군사 독재 앞에서 형식적인 투표하던 조작 선거 때의 일이다. 지금 민주당이 바른길을 가려 해도 그 시절의 호기가 발목을 잡는다. 사실, 이런 때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는 생각 간절하다.
이진숙의 위험을 고발하는 혀가, 학살 부정에 가까운 발언을 용인하는 혀와 같다면 그것은 원리의 수호가 아니라 자기 진영의 면책 요구다. 대단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대는 한국인들의 가공할 이념을 빙자한 권력욕은 과거 먼 옛날 신분제도와 맞닿아 있다. 혈통에 따라 절대로 일정 신분을 넘을 수 없는 나면서부터 결정되는 인생의 한계에 한이 맺힌 자들, 그들이야말로 어떠한 수단을 쓰더라도 높은 자리로 오르기를 간절하게 원한다. 그깟 불법이나 위법쯤은 안중에도 없다. 주변을 돌아보라. 정치에 기웃거리는 자들치고 직업 변변한 자가 없고, 이념 운운하는 자들 치고 사상과 철학을 익힌 자 별로 없다. 가방끈 얼마든지 길 수 있다. 그러나, 신분과 배움에 미천한 국민의힘,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다.
당 내부의 균열조차 이 점을 증명한다. 책임당원 3천여 명이 이진숙을 윤리위에 제소하며 최고 수준 징계를 요구한 것은, 당원들조차 5·18을 당의 공식 인식과 어긋나게 다루는 일이 감당하기 어렵다고 본 신호다. 그런데도 지도부는 본질을 흐린다. 정점식이 행사 취소를 요청했는데도 강행했다는 지적까지 제소장에 담겼는데, 당은 ‘우려는 공유한다.’라는 모호한 말만 남긴다. 공유하는 우려를 책임으로 바꾸지 않는 정당이, 상대에게는 제명과 자격정지를 운운하는 김민석을 ‘광주를 팔아먹는 위선자’로 몰아붙인다. 그 비대칭이야말로 용렬한 정신세계의 민낯이다.
‘새천년 NHK 김민석 씨’라는 호칭은 그 민낯을 완성하려는 수사다. 상대의 과거를 고유명사처럼 붙여 인격을 축소하고, 동시에 자신들의 원죄는 시야에서 지우려는 것이다. 김재원 최고위원이 “술판을 벌였던 인물들이 아직도 5·18 정신을 주장하며 호의호식한다.”라고 한 말은, 그 수사의 속내를 드러낸다. 호의호식을 비판하려면 먼저 물어야 한다. 누가 광주의 죽음을 국가 서사에서 지우려 했고, 누가 그 지움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았는가. 그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단란주점 간판만 흔드는 것은 심판이 아니라 투사다. 자신의 거대한 그림자를 상대의 작은 얼룩으로 가리려는 행위다. 이진숙이 이런 데에 특화되어 있었는지 몰랐다. 방통위 해산이 만시지탄이지만, 각 방송국에는 이런 용어 생산 담당자들이 꽤 있다. 글 좀 쓸 줄 알아도 중을 서는 방향이 다르다. 좌우로 갈라진 방송국, 미래 한국을 위해서 대대적인 정리가 필요한 동물의 왕국이다.
김민석의 거친 비유는 절제가 부족했을지 모른다고 지레 물러나는 사람도 있겠으나, 우리는 미치도록 절제가 안 되는 강력한 청소부가 필요한 시점이고 그 지도자로서 김민석은 적합한 인물이다. 국민의힘과 이진숙이 과잉을 빌미 삼아 광주의 채권자 행세를 하는 것은 저들의 뿌리가 선동과 세뇌의 일제에 기인한 역사를 그대로 수용한 상징이니, 우리는 맞불을 계속 놓아 정리해 나가야 한다.
광주는 어느 정당의 전유물이 아니지만, 신천지, 통일교가 들어앉아 똬리를 틀은 악의 메신저가 되어 학살 책임 세력의 후예가 상대를 침묵시키는 몽둥이가 되도록 놔두어서는 안 된다. 정 많고 재주 많은 사람의 빛 광주에 산업과 일자리가 넘치고 애 우는 소리가 담을 넘을 때까지, 김민석은 미친 사람처럼 일해야 한다.
이진숙과 국민의힘이 지금 하는 일은 토론의 외피를 쓴 재규정, 주최 책임의 회피, 당내 제소를 무력화하는 모호한 거리 두기, 그리고 상대의 옛 치부를 광주의 이름으로 응징하는 호칭 정치. 이 연쇄가 바로 일제의 조선인 길들이기 방식이었다. 자격이 없는 쪽은 20년 만의 술자리를 가진 쪽이 아니다. 2000년의 술자리를 부끄러워할 책임은 1980년 살육의 책임이 있는 정당과 그 진영에 있다. 그날의 총성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살인마들의 폭력과 그 이후의 왜곡을 역사관으로, 국가 정책으로 집행하고 오랫동안 부정한 세력의 후예에 있다.
후자의 숙제를 팽개친 채, 전자만 꺼내 흔드는 이에게 김민석과 당시 민주당 의원들을 ‘광주를 모독한 자들’로 단죄할 자리는 없다. 단죄의 자리를 자처하는 그 오만이야말로 인간 이하의 파렴치다. 광주를 방패로 들지 마라. 광주는 방패가 아니라 부채(負債)다. 그 부채의 원금을 외면한 채 상대의 이자만 계산하는 정당과 의원에 필요한 것은 반격의 재치가 아니라, 각성이다. 이진숙은 아직 모호한 채 남아 있는 광주에 대한 기억을 재부팅시켜 준 공이 크다.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았다더니, 정신 나간 효녀가 역사에 반역을 되새겨 주었다. 잘한다, 진숙아~
1919년 3월 1일 오후, 서울 종로 인사동 요릿집 태화관에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한 민족대표 33명 중 29명이 참석한 날을 술자리를 가졌다면 해마다 역사를 난도질해 댄다. 태화관 모임 후 일제 순사에 연행되었던 그들 중 해방 후 6. 25 전쟁 중의 피랍자를 제외하면 이갑성은 역사의 증인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않고 후대에 미처 말하지 않고 죽은 죄가 있다. 축배가 있었다고 난잡한 술 파티를 연상하게 하는 말장난에 속지 마라. 증거도 없는 일을 부풀리면서 그날의 사건을 호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 인사동은 지금의 인사동이 아니요, 3.1 운동이 어디서 일어났는지 말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이진숙이 호도하는 용어 맞불에 넘어갈 필요가 전혀 없다.
내란의 실패를 아쉬워하는 반역 두둔하는 세력은 줄을 서 있고, 그들은 너나없이 출세를 지향한다. 과거 여의도 주변 한 호텔에서는 ‘한일의원연맹’ 주도 역사학회가 열렸다. 시절 좋은 때는 후원과 협찬이 많아 지나가는 늙은 거지들도 밥을 얻어먹고 가니, 행사의 본질은 외면하고 어디 가면 빠지지 않는 손님 대접에 날이 새고 밤이 새고, 나라가 망하는 줄을 모르는데 한국인의 성정에 없지 않다. 한일의원연맹은 조사가 필요한 단체다. 이런 기관에 누가 돈을 대고 학회를 지원하는지, 어떤 논문들이 뉴라이트 계열에서 환영받는지, 역사의식 부재자들이 학회에 논문을 투고하고 교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썩은 뿌리를 완전하게 도려내려면 이런 세세한 작업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