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동대구에서 서대구까지의 거리가 직선으로 약 8㎞에 불과하지만, 중간에 대구역까지 총 세 군데에 KTX역이 있는 시기한 지역이다. 아마 대구의 정치인들은 동서 대구 거리를 80㎞쯤으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넓고 컸던 과거 대구의 역사를 생각한 안배였을까. 아니면 ‘철피아’의 정치가 통했던 것일까 모르겠지만, 태평로를 달리며 눈에 들어오는 풍광은 대구 지역의 역사적 서술이 물리적 증거와 일치하지 않는 여타 다른 도시들과 다를 게 없었다.
지난 세기 식민지 시절의 흔적은 한 군데도 찾을 수 없었으며, 곳곳의 박물관과 기념관 정도만이 옛 자취를 알려주는 징표이자 증거로 서 있다. 무엇이 그렇게 태평하였기에 전국에 태평로라는 지명이 서울 경기 대전 전주 제주에도 있는 것일지 지명이 정서에 낯설다. 마치, 영국의 식민지였던 방글라데시나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해피로드’라고 적힌 이정표를 만나는 심정이지만, 이미 대구는 미분양의 무덤이다. 과거 민족주의 우국지사들이 활동하고 항일 지식인들 역시 굉장했던 대구는 예술 문학 등 다방면에 걸쳐 민중 교육과 계몽에 앞장섰던 지방이었지만, 그 대구는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구 서문 시장은 서울 남대문시장보다 훨씬 면적이 크지만, 비슷한 물건을 판다. 과거의 대구 면적은 엄청났었고, 조선은 지방의 화폐가 달라서 동전을 대량으로 들고 말과 나귀에 싣고 이동해야 한다고 불편함을 기록한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말이 사실인가 보다. 그러나 지금 서문 시장은 서울 남대문 시장과 다를 게 없다. 사람들은 비슷한 장사를 하고 비슷한 음식을 먹고 비슷한 욕망으로 아침을 맞는데, 과거 대구 지역 항일운동가들의 가계와 교육의 질, 가치관이 지금과 달리, 민족주의에 있었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바로 이상정(李相定, 1898~1947) 일가를 기념한 ‘이장가(李庄家) 문화관’을 방문해서 느낀 소감이다. 부친 우남 이시우(李時雨, 1877~1908)는 31세에 요절했지만, 이상정, 이상화, 이상백, 이상오 형제를 낳았다. 장남 이상정은 시서화(詩書畵)에 능한 무장 항일 독립운동가였고, 민족 시인 이상화가 차남, 셋째 상백은 역사 학자이면서 일본 와세다대학에 농구팀을 만들어 최초로 일본에 농구를 도입했던 대한민국 초대 IOC위원이었다. 막내 이상오는 명포수로 수렵문화의 개척자로 대한 사격협회장을 역임했다. 4형제의 모친 김해 김씨 김신자(金愼子, 1876~1947)는 대구 경북 여성운동의 선구자다. 네 아들을 천재로 낳았는가, 천재로 키워냈는가.
이런 인물들이 19세기 대구라는 한 지방에 태어났는데 결국 나라는 망했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불가항력의 어떤 힘이 뒤에 있던 게 분명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고착화한 남북 분단을 영구히 지속하려는 반공 교육을 진하게 받은 60대 70대는 실제로 전쟁 참상을 눈앞에서 목격한 경험자들이다. 그들이 선거 때마다 보수를 자처하는 데에는 과거 역사에 개입해 테러와 전쟁을 조장한 세력이 준동했던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도 지금도 말도 꺼내지 못할 만큼의 세뇌와 선동이 늘 참상을 이겼다. 이래서는 고고하고 자존심 강한 민족주의 대구가 ‘고담 대구’된 역사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시우의 부친 금남공 이동진(李東珍, 1836~1905)은 구한말 대구 갑부로 1904년 신교육 보급을 위해 사재로 ‘우현서루(友弦書樓)’라는 사설 민족 교육기관, 즉 사숙을 설립했다. 1911년 일제가 강제 폐쇄하기까지 전국에서 수십 명의 인재를 선발해 무료 숙식을 제공하며 150여 명의 무장 항일 지사를 길러냈다. 한 개인의 의지와 그 자식들이 효심과 애국심으로 부친의 유업을 이었다. 당시 동서양 서적 1만 여권을 갖춰놓고 애국지사를 키워내는 게 가능했던 대구다. 지금의 대구와는 본질에서 다르다.
우현서루가 훗날 대륜중고등학교의 전신인 교남학교로 발전했다 하고 지금 그 터만 남아있지만, 역사성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아파트 단지 사이에서 우현서루의 정신과 그 기운이 느껴지지 않고 무엇보다 과거의 터를 재현해놓았기 때문, 복원이나 재현은 원형이 아니다. 폐허라도 좋으니, 원형으로 후손인 우리가 ‘안심’하고 ‘인정’할 수 있는 증거물을 단 하나라도 보고 싶다.
좌) 우현사루, 우) 교남학교
뜻 있는 선비들이 모여 나라를 위한 인재가 되기 위해 지도자가 되기 위해 애썼던 배경에는 을사늑약 체결과 러일전쟁 발발이라는 혼란이 있었다. 이 시기 1904년은 강화도 조약에서 이미 30년 가까이 지난 때다. 일본이 운양호로 도발해 쳐들어온 이후, 망국의 기운이 짙어져 가는 가운데 이미 한 세대를 지나면서도 탄압에도 포기하지 않고 죽기를 각오하고 사숙하며 숙식을 함께 해 민족 지도자로 살다 가기를 자처한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 바로 대구다.
싸우지 않고 승리하겠다는 고사를 담아 이름 지은 이 교육기관을 ‘근대 도서관’으로 재단한 후대의 평가는 우현서루 출신 우국지사들의 항일 정신과 대구 양반의 정신을 평가절하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역사를 전혀 모르면서 서양 교육의 잣대로 함부로 역사를 논해도 되는 현재의 학문은 식민사관의 잣대다. 식민사관으로 점철된 역사 감각으로는 왜 항일이 30년 이상 이어지고, 지역을 옮겨 다니면서 게릴라전을 이어가고 임시정부를 이동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고 아귀가 맞기를 바라는 마음으로는 대구 역사만 아니라, 그 어떤 현상에서도 본질을 떠올릴 수조차 없을 것이다.
아버지의 뜻을 이은 운영자 소남 이일우(李一雨, 1868/1870~1936)는 국채보상운동과 민족 교육을 주도하면서 우현서루를 운영했고, 동생의 4형제들을 키워냈다. 그 역시 평가받아야 할 위인이다. 황성신문의 주필인 장지연, 장지필, 권일제, 김성수 등도 우현서루 출신 인재였다. 상해 임정의 대통령 박은식, 임정 초대 국무령 이동휘 여운형도 우현서루와 관련이 깊고, 1924년 1월 5일 도쿄 황궁으로 가는 길인 니쥬바시(二重橋)에서 일왕 부자를 암살하려던 의열단원 김지섭(金祉燮, 1884~1928)도 우현서루 출신이다. 갑신정변의 해에 태어난 김지섭은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에 분개해 폭사를 시도했다. 그러나 지구상에 대를 이어 외세에 항거한 나라도 한국인밖에 없지만, 대를 이어 역사를 평가절하하고 희석하는 나라도 한국밖에 없다.
이른 나이에 사망한 아우 이시우를 대신해 백부인 소남 이일우는 동생의 네 아들을 물질적 정신적으로 돌보고 지원했다. 소남과 이상정이 주고받은 서신을 읽자면 등골이 오싹하다.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다른 신분, 결이 다른 지식인들이다. 지금은 거론조차 하지 못할 양반의 기백이 생생하지만, 불과 백 년 전의 순 한문 편지를 읽지도 못하고 영감도 얻지 못하고 그 안에 녹아 있는 효심은 큰아버지와 조카의 관계가 아니라, 친 부자지간 이상으로 두터운 신뢰 관계로 묶여있다는 걸 볼 수 있다. 망국의 때에 동지의식이다. 일그러진 욕망을 거침없이 투출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현대 한국의 파괴된 인간성과 정서를 놓고 볼 때, 어떻게 이런 기개와 정의가 사람들 사이에 관통할 수 있었는지 부러워서 가슴이 아프다. 슬퍼서 치가 떨린다. 미래가 암울하기 때문이다. 이장가 전시관은 가문의 법도가 살아 있어 유지되는 공간이다. 정의감과 도덕, 인륜과 천륜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몸에 밴 채 자랄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성장한 일가의 업적, 대구가 나은 역사 인물들, 그런 가문을 만든 대구가 지금은 다른 의미에서 먹먹하다.
문무를 겸비한 중에서도 특별하게 가문 전체가 출중한 지식인 집안인 이상정 가문은 그야말로 명문가 대구인으로 화가이자, 문장가, 전각의 장인, 군사 전문가이면서 전통적 가치관을 겸비한 애국지사였다. 많은 사람이 배신할 때, 누군가는 ‘민족’에 인생을 걸었기에 지금 우리가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을 완전히 은폐한 시도가 이상정이라는 인물로 상징된다. 이상정을 무슨 대명사로 칭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상정에 대한 구구절절한 사연을 다루지 않겠다. 들쳐 보니, 마리아나 해구만큼 깊은 뜻과 슬픔이 있어서 건드리고 싶지 않다. 언젠가는 온 나라 안이 ‘이상정’이라는 인물을 알게 되고 한 방울의 눈물이라도 흘려주길 빌어 마지않는다.
아름다운 삼천리 정든 내 고향
예로부터 내려온 조선의 터를
속절없이 바리고 떠나 왔노니
몽매에도 잊으랴 그리웁구나.
굽이굽이 험악한 고향길이라
돌아가지 못하는 내 속이로다.
백두 금강 태백에 슬픔을 끼고
두만 압록 양 강 물결에 눈물뿌리며
남부여대 쫓겨 온 백의동포를
북간도 눈보라야 울리지 마라.
굽이굽이 험악한 고향길이라.
돌아가지 못하는 내 속이로다.
시베리아 가을 달 만주 벌판에
몇 번이나 고향을 꿈에 갔더뇨
항주 쑤저우의 봄날과 긴 모래사장의 비에
우리 님을 생각함이 몇 번이런가.
굽이굽이 험악한 고향길이라
돌아가지 못하는 내 속이로다.
상하이 거리 등불에 안개 둘리고
황푸강에 밀물은 부닥쳐올 때
만리장 떠나는 기적소리는
잠든 나를 깨워서 고향 가자네.
굽이굽이 험악한 고향길이라
돌아가지 못하는 내 속이로다.
일크스크 찬바람 살을 예이고
바이칼 호수에 달이 비칠 때
묵묵히 앉아잇는 나의 심사를
날아가는 기럭아 너는 알니라.
굽이굽이 험악한 고향길이라.
돌아가지 못하는 내 속이로다.
부모님의 생각과 나라 생각에
더운 눈물 여침을 적실뿐이네
와신상담 십년을 헤매어도
아ㅡ 나의 타는 속을 뉘라 아리요.
굽이굽이 험악한 고향길이라.
돌아가지 못하는 내 속이로다.
이상정, 망향곡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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飛上
7
대구를 이렇게 아프게, 이렇게 깊게 바라본 글은 오랜만입니다. 공간은 남아 있는데 정신은 사라졌다는 말이 뼈를 때리네요. 이상정 가문을 통해 본 대구의 과거는 ‘역사’가 아니라 ‘부채’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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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아빠
9
읽는 내내 분노보다 허무가 더 컸습니다. 이 정도의 인물과 가문, 이 정도의 민족적 밀도가 있었던 지역이 왜 지금은 기억조차 지워졌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원된 흔적이 아니라, 폐허라도 좋으니 진짜 역사를 보고 싶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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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가네
7
‘근대 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우현서루를 정리해버린 학문적 폭력이 무엇인지 잘 드러난 글입니다. 항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역사관이 결국 지금의 공허한 지역 정체성을 만들었다는 지적, 매우 설득력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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深山
6
이상정의 망향곡을 이 글 끝에 다시 읽으니, 단순한 시가 아니라 한 세대 전체의 유서처럼 느껴집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그들의 삶을 ‘과거’로 밀어내고, 너무 안일하게 현재를 소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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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2144
6
이상정 가문을 읽으며 ‘이 정도면 나라가 안 망하는 게 정상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망했고, 망한 뒤에는 그 정신마저 지워졌다는 사실이 더 참담합니다. 글이 아니라 고발문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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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완
4
대구의 현재를 단순히 보수·진보 프레임으로 설명하는 시선이 얼마나 얄팍한지 이 글이 보여줍니다. 문제는 정치 성향이 아니라, 기억의 단절과 역사 해석의 왜곡이라는 점에 깊이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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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o70
4
복원과 재현이 오히려 역사를 죽인다는 지적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안심하고 인정할 수 있는 증거물’이 없다는 말이 왜 이렇게 절망적으로 들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모형에 만족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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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yoon
4
이 글을 읽고 나니 대구라는 도시는 하나의 장소가 아니라, 잃어버린 가능성의 이름처럼 느껴집니다. 이상정이라는 인물이 더 많이 알려질수록, 우리가 외면해 온 역사도 함께 드러날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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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nggil
3
소남 이일우와 이상정의 서신 이야기는 현대인으로서 차마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게 만듭니다. 효, 의리, 동지의식이 모두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는 자각이 이 글의 가장 큰 충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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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
2
이 글은 대구를 비판하는 글이 아니라, 대구를 애도하는 글이라고 느꼈습니다. 민족주의 대구가 ‘고담 대구’가 되기까지의 설명을 정치나 세대 갈등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오래 남을 문제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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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niru
0
해마다 광복절 즈음이 되면 전재산을 팔아 온 가족이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이주했던 이회영 집안에 대한 이야기가 회자되곤 하며 이를 노블리스오블리제라는 거창한 수식어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측면에서 보면 이상정 가문의 이야기도 그에 못지않은 서사가 있죠!!! 내년부터는 이상정 가문 즉 ‘이장가(李庄家)'의 독립활동을 널리 알리는 캠페인이 필요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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