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응(李昰應), 1821(純祖20)~1898(高宗35)
1800년대 인물을 정리하면서 흥선대원군 이하응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근대사의 가장 핵심을 피하고 식민사관과 정면 대결을 외면하는 비겁한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갓을 쓰고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기세 좋게 거리를 활보했을 조선의 콧대 높은 양반들이 서양인들과 일본인들이 무기를 들고 설치던 망국 정황에 어떤 심경으로 어떤 대처했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대원군과 아들 고종, 그리고 며느리 민비는 조선 멸망의 대표적인 왕족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탓인지 모두 악한 인물로 치부하면서 별로 다루고 싶지 않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이런 역사에 대한 고정관념은 식민지 시대에 기록된 타자의 시선을 정사로 수용한 지난 백 수십 년을 회고하지 않은 한국 역사학계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며 한국인의 정체성 문제와도 직결되는 심각한 난제다.
잘 들여다보면 고종-민자영-이하응은 과하다 싶을 만큼 비 상식적 언행으로 평가되어 있다. 그러나 그런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앞뒤가 맞지 않는 연구를 계승한 연구가 한국 역사학계의 주류이자 대세를 이뤘기 때문에, 많은 역사 인물들이 偉人이 아닌 惡人으로 점철되었다. 그래서 대중은 그런 왕족을 비난하는 시각이 당연한 줄 알고 한국인의 정체성 밑바닥에는 자연스레 우리 뿌리의 상징을 부정하는 자기부정이 깔려 있다. 역사 인물에 대한 과도한 포장을 넘어 날조로 일관하는 일본 역사의 서술 방식도 큰 문제지만, 그들의 첨삭을 비교 검토할 만한 지식도 연구체계도 없이 반대로 과도한 자기 비하의 역사관만을 종용당한 우리도 정상적이지 않다. 한일 양국은 모두 역사의 과도한 과대 망상과 자기 비하로 인해 정상이 아닌 망상 장애와 같은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살고 있다. 역사가 아무런 가치도 영향력도 없다고 생각하는 논점 자체가 이미 심각한 정신 장애를 겪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라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고서점에서 십만 원을 주고 산 朝鮮彙報(1893년) 에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에 관한 내용이 실려있지만, 앞뒤를 다 자르고 설명하기 싫어 자료로 첨부한다. 비난 받는 인물을 홀로 엄호할 자신도 열정도 없기 때문이다. 1893년이면 이하응 생존에 나온 책이다. 과연 생몰년 만이라도 사실이라면 일본인들은 어떤 경로로 어떤 정보를 가지고 이하응에 관해 이런 내용을 작성할 수 있었을까.
독자들은 아마 ‘오리는 태어나서 처음 본 존재를 엄마라고 생각한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오스트리아인 동물행동학자로 1973년에 노벨 의학 생리학상을 받은 콘라트 로렌츠(Konrad Zacharias Lorenz, 1903~1989)의 刻印(imprinting)설이다. 지구의 한편에서 문명이 기울 때, 저편에서는 동물의 본능을 연구한 과학과 이성의 진보가 있었다. 전쟁과 전쟁 수행 과정의 인간 심리와 동물의 비교 연구가 한창일 때 우리는 멸종 앞에 내몰렸던 존재로서 서구의 역사관과 그 역사관을 빌려 쓴 일본의 역사관 앞에 당당할 수 있는 재간이 없다. 사실 재간이 없는 게 아니라, 돈에 미쳐서 역사를 바로 볼 필요를 못 느낀 것이다. 그러다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역사 狂人이 되었다. 식민지 피 지배의 압제가 남긴 유산은 역사를 잃은 정신병이다.
우리 역사 인물에 대한 과한 비난과 자조가 사실은 ‘오리 엄마’설과 같은 동물 본능에 기초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하응을 다룬 내용만 보더라도 식민지 지배 논리에 입각한 과한 비 논리와 과한 비 상식이 판을 쳤던 당시 출판물의 기조가 지금도 살아 움직이며 우리의 뇌를 잠식하고 있어 섣불리 그의 존재에 대해 가타부타하기 싫다. 일제의 과도한 역사 기술의 과유불급을 주장하는 연구자는 설 토대가 없는 연구 풍토가 이미 짜인 판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또한, 비 논리와 비 상식을 알아챌 만큼 연구할 수 있는 능력자도 길러내지 않아 온 지금의 학계 풍토 역시 이미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는 역사 왜곡의 큰 틀에서 볼 때, 극히 일부의 궤(track)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역사 연구의 기반이 식민사관 외에는 설 수 없도록 이 나라가 움직여왔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가.
거꾸로 말하면 위 세 명의 일생만 역추적해도 최소한 근대 역사 만이라도 바로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는 소리다. 그러나 지금은 설명하고 싶지 않다. 비난 받는 조상과 활개 치는 식민사관 입방아에 조리 돌림을 당할 생각이 없다.
식민사관의 주입은 오리에게 가짜 엄마를 보여 준 효과와 같다. 한국인에게 역사는 오리의 바이블이 된 지 오래다. 모두의 엄마는 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을 텐 데 어디 감히 그 세뇌 당한 본능을 거스를 용기를 낼 수 있겠는가. 사실에 근접하려는 노력의 시도를 귀를 열고 들어볼 독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