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레지의 《With the Old Breed》를 읽는 일은 태평양전쟁의 역사를 다시 읽는 일인 동시에 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한 인간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일이다. 슬레지는 미 해병 제1사단 제5연대에서 복무하며 펠렐리우와 오키나와 전투를 직접 경험했다. 그는 전쟁터에서 작은 노트에 자신이 보고 겪은 일을 기록했고, 전쟁이 끝난 뒤 그 기록을 바탕으로 회고록을 완성했다. 책은 1981년 출간되었으며, 이후 태평양전쟁을 다룬 참전 회고록 가운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이 책의 가치는 전투를 생생하게 묘사했다는 데만 있지 않다. 오히려 슬레지는 전쟁에서 흔히 사라져 버리는 인간의 모습을 되살려낸다. 지도 위에서 펠렐리우와 오키나와는 작은 섬에 불과하고, 군사사에서는 특정 날짜와 작전명으로 정리된다. 하지만 그 섬에서 싸운 병사에게 섬 하나는 자신의 세계 전체였다.
펠렐리우와 오키나와가 보여주는 태평양전쟁의 또 다른 의미
펠렐리우 전투는 태평양전쟁 전체의 규모에서 보면 작은 전투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슬레지의 기록 속에서 그곳은 결코 작지 않다. 산호섬의 거친 지형과 폭염, 물 부족, 끊임없는 포격 속에서 병사들은 인간의 한계를 경험했다. 전쟁터에서는 전략적 가치가 아무리 작은 섬이라도 그곳에서 죽어가는 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삶 전체가 걸린 장소였다. 오키나와는 더욱 복잡한 의미를 갖는다. 이 전투는 일본 본토 침공을 앞둔 마지막 대규모 전투 가운데 하나였지만, 군대와 군대가 충돌하는 전쟁의 틀을 넘어섰다. 오키나와 주민들 역시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되었다. 전쟁터가 민간인의 생활공간과 겹치면서 전쟁은 더 이상 전투원들만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 지점에서 태평양전쟁의 또 다른 얼굴이 나타난다.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국가가 필요로 하는 것은 군대만이 아니다. 노동력과 식량, 물자와 산업시설, 운송수단과 여성의 노동까지 사회 전체가 전쟁의 필요에 맞춰진다. 제국주의 전쟁에서는 식민지와 점령지의 주민들 역시 그 체제 속으로 강제로 편입된다. 인간은 한 사람의 삶을 가진 개인이 아니라 병력과 노동력이라는 숫자로 변환된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 조선인은 어디에 있었는가?
한국인에게 태평양전쟁을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슬레지가 펠렐리우와 오키나와에서 일본군과 싸우고 있을 때 한반도 역시 일본제국의 전쟁체제 안에 있었다. 하지만 조선인은 미국 병사와 같은 위치에 있지 않았다. 미국 병사는 자신의 국가가 결정한 전쟁에 참전한 군인이었지만 조선인은 독립 국가를 잃은 식민지 주민이었다. 일본은 전쟁이 확대되면서 조선을 제국의 전쟁 수행을 위한 인적·물적 자원의 공급기지로 더욱 강하게 편입시켰다. 1938년 국가총동원법이 제정된 이후 조선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인력 동원이 이루어졌으며, 일본 본토와 전쟁 지역으로 조선인 노동자와 군인, 군무원 등이 이동했다. 이러한 동원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틀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국가적 동원 체제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역사를 숫자로만 기록해서는 안 된다. 수십만, 수백만이라는 숫자 뒤에는 각각의 삶이 있었다.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 가족과 헤어진 사람, 낯선 공장에서 일해야 했던 사람, 전쟁터로 끌려간 사람, 끝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전쟁의 거대한 통계는 그 개인들의 삶을 지워버리기 쉽지만, 역사란 결국 그 숫자 하나하나가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이다.
조선인의 전쟁 피해는 '후방의 피해'가 아니었다.
조선인의 피해를 전쟁에서 후방에서 발생한 간접적인 피해라고 이해해서는 부족하다. 조선인은 일본의 전쟁경제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력으로 동원되었고, 일부는 군인과 군무원으로 전쟁에 직접 편입되었다. 여성들 가운데에는 일본군 위안소 체계에서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조선인의 역사를 피해의 역사로만 기록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강제 동원된 사람들 가운데에는 탈출하거나 작업을 거부하고 파업과 태업을 벌이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한 사람들도 있었다. 식민지 주민은 제국이 요구하는 대로 움직이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 역시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선택하고 행동했다.
이 사실은 중요하다. 식민 지배를 경험한 사람들을 무력한 희생자로만 묘사하면 오히려 그들의 인간적인 주체성을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억압받았다는 사실과 저항했다는 사실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억압이 강할수록 인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존엄을 지키려고 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도 조선인은 피해자였다.
태평양전쟁의 마지막 장면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떠올린다. 1945년 8월 미국이 두 도시에 원자폭탄을 투하했고 일본은 결국 항복했다. 이 사건은 일본 민간인에게 엄청난 피해를 남겼다. 그러나 그 도시들에는 조선인도 살고 있었다. 일본으로 동원되어 노동하고 있던 조선인 가운데 상당수가 원폭 피해를 입었다. 정확한 규모에 대해서는 자료와 추산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조선인 원폭 피해자가 상당수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다.
여기에는 태평양전쟁의 비극적인 역설이 있다. 일본제국의 전쟁을 위해 조선인이 일본 본토로 동원되었고, 그곳에서 전쟁의 마지막 파괴를 경험했다. 식민 지배와 전쟁, 강제 동원과 원폭 피해가 하나의 역사적 사슬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역사를 일본인의 피해만으로 설명해서도 안 되고, 반대로 조선인의 피해만을 강조해서도 안 된다. 일본 민간인과 조선인 노동자, 그리고 다른 외국인 노동자와 포로들이 함께 피해를 입었다는 복합적인 현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태평양전쟁의 '숨겨진 의미'
태평양전쟁을 미국과 일본 사이의 전쟁으로만 이해하면 그보다 훨씬 넓은 역사적 구조가 보이지 않는다. 태평양전쟁은 미국과 일본의 충돌이면서 동시에 일본제국이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서 추진했던 팽창 전쟁의 한 부분이었다. 1931년 만주사변과 만주국 수립, 1937년 중일전쟁의 확대, 중국 본토에서의 전쟁, 동남아시아로의 진출, 1941년 진주만 공격은 서로 고립된 사건이 아니었다. 일본제국의 팽창과 미국·영국 등 기존 열강과의 이해관계 충돌이 겹치면서 전쟁의 범위가 점점 커졌다.
따라서 태평양전쟁에는 여러 전쟁이 중첩되어 있었다. 미국과 일본의 패권 경쟁이 있었고, 일본과 중국 사이의 장기전이 있었으며, 동남아시아 식민지와 점령지에서 벌어진 전쟁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조선과 대만을 비롯한 식민지 주민들은 일본제국의 전쟁체제에 편입되었다. 이렇게 보면 태평양전쟁은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이 아니다. 제국과 제국이 충돌하고, 제국이 식민지와 점령지를 전쟁의 자원으로 활용하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전쟁의 피해자가 된 복합적인 역사였다.
슬레지가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것은 '적'도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With the Old Breed》를 읽으며 생각하게 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적군 역시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슬레지에게 일본군은 분명 자신의 동료를 죽이고 자신을 공격하는 적이었다. 전투의 현실에서 적에 대한 공포와 증오는 실제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전쟁을 기록한다는 것은 그 적을 하나의 괴물로만 남겨두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일본군 병사 역시 국가가 만든 군사 체제 속에서 움직였으며, 그들 가운데에는 전쟁을 선택한 지배층과는 다른 삶의 조건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것이 전쟁을 기억하는 일의 어려움이다. 적을 인간으로 바라본다고 해서 그가 저지른 행위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적의 인간성을 부정한다고 해서 전쟁의 폭력이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적을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전쟁 자체의 비인간성이 더욱 선명해진다.
전쟁은 사람을 죽여야 할 대상으로 만드는 순간부터 인간의 판단력을 훼손한다. 슬레지의 기록이 오래 남는 이유도 그가 전쟁의 영웅적인 장면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증오와 공포 속에서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With the Old Breed》를 읽는다는 것
한국 독자에게 슬레지의 책은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진다. 슬레지가 펠렐리우와 오키나와에서 전쟁을 경험하고 있을 때 조선에서는 무엇이 일어나고 있었는가. 한반도의 사람들은 일본의 전쟁체제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농촌에서 식량 생산을 담당했고, 누군가는 일본 본토의 공장과 광산으로 이동했으며, 누군가는 군대와 군수체계에 편입되었다. 가족을 떠나 낯선 땅으로 간 사람도 있었고, 끝내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보면 태평양전쟁은 결코 한국과 무관한 먼 나라의 전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부모와 조부모 세대가 직접 경험했던 식민지 역사의 한복판이었다.
1945년 8월 15일의 해방은 그 전쟁의 종결과 함께 찾아왔다. 그러나 해방은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이 아니었다. 일본제국이 사라진 자리에는 미 군정과 소련 군정, 냉전과 분단이라는 새로운 질서가 들어섰고, 불과 몇 년 뒤 한반도에서는 또 다른 전쟁이 벌어졌다. 따라서 한국 현대사에서 태평양전쟁을 읽는다는 것은 1945년에서 이야기를 끝내는 것이 아니다. 식민 지배와 해방, 분단과 6·25전쟁이라는 연속적인 역사 속에서 1945년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전쟁사를 기억하는 이유
《With the Old Breed》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전투 장면이 생생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책은 우리가 전쟁을 바라보는 질문 자체를 바꾸게 한다. 우리는 흔히 전쟁에서 누가 승리했는지를 먼저 묻는다. 그러나 전쟁사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다른 질문이 필요해진다. 누가 전쟁을 결정했는가. 누가 전쟁을 수행했는가. 누가 그 전쟁으로 이익을 얻었는가. 그리고 누가 그 대가를 치렀는가. 정치지도자는 전쟁을 결정하고, 군인은 명령을 수행한다. 국가는 국민과 식민지 주민을 동원한다. 그러나 전쟁의 마지막 대가는 이름 없는 병사와 민간인이 치른다.
특히 식민지에서는 그 부담이 더욱 불평등하게 배분된다. 스스로 전쟁의 방향을 결정할 정치적 권리가 없는 사람들이 제국이 결정한 전쟁의 비용을 부담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태평양전쟁은 한국 현대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창이다. 조선인의 강제 동원과 군사동원, 일본 본토의 노동 현장,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피해, 해방과 귀환, 그리고 이후의 분단까지 하나의 긴 역사적 흐름 속에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국가의 역사만 기억한다면 전쟁은 영웅들의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그 전쟁에서 죽은 병사와 강제 동원된 노동자, 고향을 잃은 식민지 주민, 폭격과 원폭을 맞은 민간인의 삶까지 함께 기억한다면 전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결국 《With the Old Breed》가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무거운 질문은 이것인지도 모른다. 전쟁의 승패를 기억할 것인가, 아니면 그 승패를 위해 인간이 치러야 했던 대가를 기억할 것인가. 한국에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질문을 우리의 역사에 다시 던지는 일이다. 그리고 그 질문의 끝에는 태평양의 어느 이름 모를 섬에서 죽어간 병사의 모습과 식민지 조선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제국의 전쟁에 끌려갔던 한 사람의 모습이 함께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