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민 기자의 『미국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흔들리는 제국의 초상』은 2026년 6월에 출간된 책이다. 미국 비판이나 트럼프 개인에 대한 평가를 넘어, 미국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세계의 경찰’이나 자유민주주의의 절대적 수호자로 기능하지 못하게 된 구조적 변화를 정면으로 다룬다. 24년차 KBS 기자이자 2021년부터 3년간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 저자는 아프가니스탄 철군,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 전쟁, 그리고 2024년 미국 대선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그 경험 위에서 그는 묻는다. 왕관을 벗은 미국,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무엇이 미국을 이토록 거침없이 폭주하게 만들었는가. 이 질문은 호기심이 아니라, 미국이 스스로 만들어온 질서가 내부와 외부에서 동시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는 현실에 대한 진지한 탐구에서 출발한다.
저자의 핵심 주장은 명확하다. 오늘날 미국이 보여주는 변화는 트럼프 개인이나 그의 변덕에서 비롯된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트럼프를 두 번이나 선택한 미국 국민의 집단적 의지가 만들어낸 근본적인 대전환이다. 과거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던 초강대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인들 스스로 자국을 절대적 초강대국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고, 국내 문제에 집중하며 글로벌 역할을 축소하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 되었다. 저자는 이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트럼프라는 표면 아래에 깔린 깊은 지형을 읽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을 포함한 오랜 관찰을 통해 그는, 미국 사회 내부에서 이미 패권의 부담을 감당하기 싫어하는 심리적·정치적 전환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는 고립주의의 부활이 아니라, 제국으로서의 정체성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한 징후였다.
1부는 패권의 끝자락을 다룬다.
특히 1장에서 소개되는 엘브리지 콜비와의 인터뷰는 상징적이다. 트럼프 행정부 국방 정책의 핵심 인물인 콜비는 한미 동맹의 이해관계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으며, 한국이 더 많은 방위 부담을 져야 한다고 직설적으로 말한다. 미국은 더 이상 ‘여유’를 가지고 동맹을 무한정 관리할 수 없다는 인식이 전략 엘리트들 사이에 이미 퍼져 있다는 것이다. 이 발언은 압박이 아니라, 미국이 동맹을 ‘보호 대상’이 아니라 ‘비용 분담 파트너’로 재정의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2장은 2021년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전환점으로 지목한다. 이 사건은 미국이 장기 점령과 국가 건설을 감당할 의지와 능력이 없음을 전 세계에 보여준 순간이었다. 수십 년간의 개입 끝에 갑작스럽게 철수한 모습은, 미국이 더 이상 ‘끝까지 책임지는 초강대국’이 아니라는 신호를 동맹국과 적대국 모두에게 동시에 보냈다.
3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미국이 이끌던 국제 질서에 깊은 균열이 생겼음을 분석한다. 미국은 지원을 이어가면서도 직접 개입의 한계를 드러냈고, 유럽 동맹국들과의 입장 차이, 국내 여론의 피로감이 동시에 표출되었다. 전쟁은 미국이 여전히 자원을 동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그 자원의 한계와 정치적 의지의 취약성을 함께 드러냈다.
2부는 내부에서부터 무너지는 제국의 모습을 그린다.
미국은 천문학적인 국가 부채에 짓눌려 있으며, ‘천조국’으로 불리던 군사력 역시 구멍 난 상태다. 방산 산업 기반의 약화, 인력 충원의 어려움, 동시다발적 전선 유지 능력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아메리칸 드림’의 종말이 임계점에 도달했다. 제조업의 공동화, 중산층의 붕괴, 농촌과 소도시의 경제적 쇠락, 극심한 양극화와 정치적 분열이 분노와 좌절을 키웠다. 이 분노가 트럼프를 선택한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저자는 이 내부의 취약성이 국내 문제가 아니라, 대외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요인이 된다고 지적한다. 제국이 외부로 힘을 투사하려면 내부의 결속과 자원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그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중산층의 몰락과 지역 간 격차는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그 결과 미국은 국내 합의조차 이끌어내기 어려운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유지한다는 것은 점점 더 비현실적인 목표가 되고 있다.
3부는 중국과의 경쟁 구도를 다룬다.
미국은 더 이상 전 세계를 관리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반구 전략’으로 축소한다. 서반구를 우선적으로 방어하고, 그린란드·캐나다 북부·파나마 운하 등을 포함한 이중 방어선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그 예다. 이는 고전적인 먼로 독트린의 현대적 부활에 가깝다. 중동에서도 미국은 힘과 명분, 리더십을 모두 상실한 채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2026년 시점의 이란 관련 군사적 긴장이나 베네수엘라 등에 대한 공격적 움직임은 지역 분쟁이 아니라, 중국 견제와 에너지·달러 패권 유지라는 더 큰 전략적 맥락 속에서 이뤄진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적 개입은 오히려 세계 질서의 공백을 키우고, 그 공백을 중국이 메워가는 결과를 낳고 있다. 중국은 재생에너지, 전략 광물, 공급망을 장악하며 페트로달러 질서에 도전하고 있다. 미국이 전선을 줄이는 동안 중국은 그 빈자리를 체계적으로 채우고 있으며, 이는 군사적 대결이 아니라 경제·기술·자원 전반에 걸친 장기 경쟁의 양상을 띠고 있다.
4부는 미국이 마지막으로 건 승부수를 다룬다.
빅테크와 암호화폐, 특히 스테이블코인은 약화된 패권을 연장하는 기술적·금융적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들은 기존의 달러 질서를 보완하거나 대체하는 새로운 도구로 주목받고 있지만, 근본적인 신뢰와 제도적 기반이 흔들리면 그 효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기술이 아무리 앞서 있어도 정치적·사회적 결속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패권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 어렵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동맹의 성격이 이미 바뀌었다고 결론짓는다. 과거 가치와 신뢰를 공유하던 동맹은 이제 이익과 비용을 따지는 ‘거래적 관계’로 변질되고 있다. 한미 동맹 역시 예외가 아니다. 미국이 요구하는 방위비 분담, 기술·산업 협력, 지정학적 기여의 수준이 높아질 수밖에 없으며, 한국은 이에 대한 주체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경고가 핵심이다. 동맹이 더 이상 자동적인 보호막을 의미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스스로의 안보와 이익을 어떻게 정의하고 추구할 것인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 책의 강점은 현장성과 분석력의 결합에 있다. 저자는 우크라이나 부총리, 하마스 대변인, 러시아 망명 외교관 등 핵심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고, 400개가 넘는 참고 문헌을 바탕으로 학문적 깊이를 더했다. 미국 내부의 균열과 외부 전략의 축소를 별개가 아닌 하나의 구조로 연결시켜 보여주는 시야가 인상적이다. 특히 한국인 저자로서 ‘미국 바깥’에서만 볼 수 있는 균열의 핵심을 포착했다는 점이 이 책을 기존의 미국론과 차별화한다. 미국인들이 자국 내부의 논쟁에 매몰되어 있을 때,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패권의 쇠퇴가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임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결국 『미국은 어떻게 무너지는가』는 미국이 스스로 전선을 만들고 전장을 키우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한다. 미국은 여전히 강력한 군사·경제 대국이지만, 내부의 균열과 전략적 선택의 결과로 과거와 같은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이 변화는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들에게 중대한 도전을 제기한다. 대미 의존을 넘어선 새로운 전략적 사고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던지는 질문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흔들리는 제국 앞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미국의 변화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전환이라면, 한국은 그 전환의 파고 속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이익을 지켜낼 것인가.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직접 제시하지는 않지만, 질문 자체를 회피할 수 없는 현실로 만들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