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역사는 현재를 설명하고 미래를 결정하는 집단적 기억이다. 한 사회가 어떤 역사를 기억하고 어떤 역사를 잊는가에 따라 그 사회의 가치관과 정치문화, 나아가 국가의 진로까지 달라진다. 김동춘 교수의 《대한민국은 왜? 1945~2020》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 책을 읽으며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를 끊임없이 분열시키고 있는 계급 갈등과 이념 대립의 근본 원인이 단순한 정치적 의견 차이나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만이 아니라 역사인식의 부재와 왜곡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저자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를 단순한 경제 성장이나 민주화의 성공 서사로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대한민국의 형성과 발전 과정 속에 누적되어 온 모순과 갈등의 구조를 추적한다. 특히 개화와 민권, 독립과 친일, 평화와 반공, 민주공화와 개발독재라는 대립 구도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해 왔으며, 대부분의 역사적 국면에서 국가 권력과 지배 세력이 승리해 왔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시각은 우리가 흔히 배우는 교과서적 역사관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현재의 갈등이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저자의 주장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진보와 보수, 노동과 자본, 남북관계와 안보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현재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그 뿌리가 훨씬 깊은 곳에 있다고 본다.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분단과 전쟁이 사회 전반에 반공 이데올로기를 깊게 각인시켰으며, 산업화 과정에서 국가 주도의 성장 논리가 민주주의와 사회적 평등보다 우선시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오늘날의 갈등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선택의 결과라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 사회가 역사 문제를 둘러싸고 유독 극심한 논쟁을 벌이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역사에 대한 인식이 서로 다르면 현재를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이룩한 성공 국가로 바라보고, 또 다른 사람은 친일 청산 실패와 분단 체제, 독재의 유산을 극복하지 못한 국가로 바라본다. 양쪽 모두 일정 부분 사실에 근거하고 있지만, 문제는 서로의 역사 인식을 인정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는 데 있다.
특히 한국 현대사에서는 의도적인 역사 왜곡과 선택적 기억이 반복되어 왔다. 권력을 장악한 세력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역사만을 강조했고, 불편한 과거는 축소하거나 침묵해 왔다. 그 결과 국민들은 동일한 역사적 사건을 두고도 전혀 다른 기억을 갖게 되었다. 해방 정국, 제주4·3사건, 여순사건, 한국전쟁,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노동운동, 민주화운동 등에 대한 평가가 세대와 이념에 따라 극단적으로 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통의 역사 인식이 부재한 상황에서 사회 통합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저자는 특히 한국 사회의 주류 세력이 형성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친일-친미-반공-성장으로 이어지는 국가 운영 체제가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끌어 온 한 축이었다면, 독립-민권-평화-민주를 추구한 세력 역시 또 다른 역사적 흐름이었다고 설명한다.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특정 세력의 역사만을 중심으로 현대사를 이해해 온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 되기 쉽다. 그러나 패배한 사람들, 침묵당한 사람들,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 역시 역사의 주체였다. 그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작업이야말로 왜곡된 역사 인식을 바로잡는 첫걸음일 것이다.
후반부에서 다루는 재벌 체제, 노동 문제, 교육 불평등 역시 결국 역사 문제와 연결된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계급 갈등은 단순히 소득 격차 때문만이 아니다. 누군가는 경제성장을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했고, 누군가는 성장의 과실을 독점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구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산업화의 성과만 강조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노동 탄압과 사회적 희생을 외면한다면, 현재의 불평등 구조를 이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민주화의 성과만 이야기하고 그 과정에서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의 가치 역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개정판에서 저자가 《반일 종족주의》를 비판하는 이유 역시 역사인식의 문제와 연결된다. 저자는 식민지배의 강압성과 폭력성을 축소하거나 부정하는 시도를 단순한 학술 논쟁이 아니라 정치적 역사 해석의 문제로 바라본다. 이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충분한 검증과 토론이다. 역사는 특정 이념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좌우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역사만을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결국 역사 논쟁이 반복되는 이유는 사실 자체보다 역사 해석을 둘러싼 정치적 대립 때문일 것이다.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겪어 온 계급 전쟁과 이념 전쟁의 근본 원인이 역사인식의 부재와 왜곡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친일 청산 문제, 분단 체제, 독재와 민주화, 노동과 자본의 갈등 등은 모두 과거의 문제인 동시에 현재의 문제다. 과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현재의 갈등도 해결할 수 없다. 역사적 진실을 외면한 채 경제 성장이나 정치적 승리만을 추구한다면 갈등은 더욱 심화될 뿐이다.
물론 김동춘 교수의 해석에 모든 사람이 동의할 필요는 없다. 역사에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할 수 있으며, 하나의 해석만이 절대적 진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려는 태도와 끊임없는 성찰이다. 서로 다른 기억과 경험을 인정하면서도 공통의 역사적 토대를 만들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역사에 대한 성숙한 인식 없이 진정한 국민 통합은 이루어질 수 없다.
《대한민국은 왜? 1945~2020》은 단순한 현대사 교양서가 아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였으며 앞으로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역사를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역사란 과거를 배우는 학문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가 반복되는 계급 갈등과 이념 대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역사적 진실을 직시하고 왜곡된 기억을 바로잡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