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대홍수와 인류 3
옛날 대홍수가 일어나 세상은 모두 바다가 돼버렸고 인간이 전부 멸절해 버린 일이 있었다. 그때 단 두 명의 남매가 살아남아 백두산처럼 높은 산의 최고봉에 표착했다.
이윽고 홍수가 물러가 오누이는 세상으로 내려와 봤지만, 인간의 그림자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만일 이대로 가면 인간의 종은 멸종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남매가 결혼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남매는 오랫동안 여기저기 인간을 찾아다녔는데, 그러던 중 점차 나이를 먹게 되었다. 할 수 없이 그들은 각각 맷돌 한 짝을 들고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봉우리 꼭대기로 각각 올라가 누이는 맷돌 상반부 중앙에 구멍이 있는 암 맷돌(雌臼)을 갈고, 오라비는 맷돌 하반부 중앙에 돌기가 있는 수 맷돌(雄臼)을 갈았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하늘의 神에게 기도했다. 그런데 맷돌의 양편은 이상하게도 골짜기 밑바닥에서, 마치 사람이 일부러 짝을 맞춘 것처럼 딱 맞았기 때문에 남매는 거기서 하늘의 神의 뜻을 깨닫고 둘이서 결혼해 인간의 종을 다시 지속해 나갔다.
그들 남매는 실로 오늘날 인류의 조상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어쩌면 그들 남매는 두 개의 봉우리에서 청솔가지를 각각 불태운 불태웠는데, 그 연기가 이상하게도 공중에서 서로 만나 합쳐졌기 때문에 하늘의 神의 뜻을 알고 오누이끼리 결혼했다고 하는 말도 전화 전해진다.
1923년 8월 11일 咸興郡邑 何(荷)東里 金浩榮氏談
이 이야기는 당연히 ‘신화·전설’ 제19화에 들어가야 할 내용인데 나의 실수로 인쇄소에 전하는 것을 잊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여기에 끼어두게 되었다. 진실로 독자의 양해를 구한다.
*대홍수 신화는 난생설화(卵生說話)와 함께 현생 인류 모든 문명에 유사한 내러티브다. 이런 이야기들을 고고학적 그리고 문헌적 관점에서 일관되게 연구 재료로 취급해왔다면 인류는 벌써 인간의 본질에 관한 의문을 풀고 전쟁에 동원되는 야만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학문은 종교로 대치되고 일하고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해 대부분 인류는 넋이 나간 채 산다.
설화는 고고학과 기록으로, 맷돌의 암수처럼 쌍으로 묶어 연구되어야 마땅한데 기록 따로 유적·유물 따로국밥이다. 그마저도 서양 식민지 제국주의 시대에 훔쳐 가 타국의 박물관에 멋대로 전시되어 있는데, 그들은 과연 유물만 훔쳐 가고 기록은 그대로 두었을까. 천만의 말씀, 맷돌 손잡이 ‘맷손’을 ‘어처구니’라고 부르는 이유는 모르지만, 인간의 문명은 어처구니가 사라진 채 암수가 뒤엉키고 친남매가 성욕을 푸는 존재들이다.
손진태는 대홍수 설화 한 꼭지를 누락시켰다고 독자에 사과하기까지 했지만, 그의 사죄에는 화가 치민다. 목숨을 걸고 일제에 맞서 단편적으로나마 역사를 전하려 했던 그가 왜, 누구에게 사과해야 한단 말인가. 선량한 사람은 죽어서 들짐승의 먹이가 되어도 찾지 못하는데, 악인은 죽어서 국립묘지에 있다. 이 나라는 과연 현 인류 문명의 기원인 대홍수와 난생 인류의 역사를 마주할 자격이 있을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學者’와 죽음이 두려운 ‘惡者’의 대결에서 끝은 대홍수로 청소가 되는 길이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