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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ever the name—Corea or Korea—dignity comes f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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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 2만 리’에 등장하는 잠수함 Nautilus, by Alphonse de Neuville(1835~1885), Édouard Riou(1833~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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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ny365

조선민담집 신화(神話)•전설(傳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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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0. 06
51. 대홍수와 인류 3
옛날 대홍수가 일어나 세상은 모두 바다가 돼버렸고 인간이 전부 멸절해 버린 일이 있었다. 그때 단 두 명의 남매가 살아남아 백두산처럼 높은 산의 최고봉에 표착했다.
 
이윽고 홍수가 물러가 오누이는 세상으로 내려와 봤지만, 인간의 그림자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만일 이대로 가면 인간의 종은 멸종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남매가 결혼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남매는 오랫동안 여기저기 인간을 찾아다녔는데, 그러던 중 점차 나이를 먹게 되었다. 할 수 없이 그들은 각각 맷돌 한 짝을 들고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봉우리 꼭대기로 각각 올라가 누이는 맷돌 상반부 중앙에 구멍이 있는 암 맷돌(雌臼)을 갈고, 오라비는 맷돌 하반부 중앙에 돌기가 있는 수 맷돌(雄臼)을 갈았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하늘의 神에게 기도했다. 그런데 맷돌의 양편은 이상하게도 골짜기 밑바닥에서, 마치 사람이 일부러 짝을 맞춘 것처럼 딱 맞았기 때문에 남매는 거기서 하늘의 神의 뜻을 깨닫고 둘이서 결혼해 인간의 종을 다시 지속해 나갔다.
 
그들 남매는 실로 오늘날 인류의 조상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어쩌면 그들 남매는 두 개의 봉우리에서 청솔가지를 각각 불태운 불태웠는데, 그 연기가 이상하게도 공중에서 서로 만나 합쳐졌기 때문에 하늘의 神의 뜻을 알고 오누이끼리 결혼했다고 하는 말도 전화 전해진다.
 
1923년 8월 11일 咸興郡邑 何(荷)東里 金浩榮氏談
 
이 이야기는 당연히 ‘신화·전설’ 제19화에 들어가야 할 내용인데 나의 실수로 인쇄소에 전하는 것을 잊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여기에 끼어두게 되었다. 진실로 독자의 양해를 구한다.
 
 
*대홍수 신화는 난생설화(卵生說話)와 함께 현생 인류 모든 문명에 유사한 내러티브다. 이런 이야기들을 고고학적 그리고 문헌적 관점에서 일관되게 연구 재료로 취급해왔다면 인류는 벌써 인간의 본질에 관한 의문을 풀고 전쟁에 동원되는 야만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학문은 종교로 대치되고 일하고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해 대부분 인류는 넋이 나간 채 산다.
 
설화는 고고학과 기록으로, 맷돌의 암수처럼 쌍으로 묶어 연구되어야 마땅한데 기록 따로 유적·유물 따로국밥이다. 그마저도 서양 식민지 제국주의 시대에 훔쳐 가 타국의 박물관에 멋대로 전시되어 있는데, 그들은 과연 유물만 훔쳐 가고 기록은 그대로 두었을까. 천만의 말씀, 맷돌 손잡이 ‘맷손’을 ‘어처구니’라고 부르는 이유는 모르지만, 인간의 문명은 어처구니가 사라진 채 암수가 뒤엉키고 친남매가 성욕을 푸는 존재들이다.
 
손진태는 대홍수 설화 한 꼭지를 누락시켰다고 독자에 사과하기까지 했지만, 그의 사죄에는 화가 치민다. 목숨을 걸고 일제에 맞서 단편적으로나마 역사를 전하려 했던 그가 왜, 누구에게 사과해야 한단 말인가. 선량한 사람은 죽어서 들짐승의 먹이가 되어도 찾지 못하는데, 악인은 죽어서 국립묘지에 있다. 이 나라는 과연 현 인류 문명의 기원인 대홍수와 난생 인류의 역사를 마주할 자격이 있을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學者’와 죽음이 두려운 ‘惡者’의 대결에서 끝은 대홍수로 청소가 되는 길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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支配者
8
대홍수와 남매혼 이야기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인류가 멸망 이후 어떻게 다시 공동체를 만들 것인가를 상상한 원형적 서사로 보입니다. 신화와 고고학, 민속학을 함께 놓고 비교한다면 한국 설화의 의미도 훨씬 넓게 읽힐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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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soojin
6
손진태가 누락된 설화 한 편을 뒤늦게라도 기록해 남긴 것이 오히려 귀중합니다. 편집상의 실수에 대해 사과하는 그의 태도보다, 일제강점기에 민족의 구전자료를 수집하고 기록했다는 역사적 맥락을 더 크게 평가해야 한다는 글의 문제의식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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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ongwol
5
맷돌의 암수와 두 봉우리의 결합이라는 설정이 흥미롭습니다. 단순히 남매가 결혼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가 하늘의 뜻에 따라 하나가 되어 생명을 이어간다는 상징으로 읽을 수도 있겠습니다. 민속학적으로도 깊이 살펴볼 만한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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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hyun89
4
세계 여러 지역의 대홍수 신화가 서로 놀라울 만큼 닮았다는 사실은 인간 사회가 자연재해와 멸망에 대해 어떤 공통된 기억을 형성해왔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다만 신화의 유사성을 곧바로 동일한 역사적 사건의 증거로 연결하기보다는 전승의 이동과 독립적 발생을 함께 검토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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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ngchul
4
이 글에서 말하는 대홍수는 단순한 신화 속 재난이 아니라, 문명이 무너진 뒤 인간이 무엇으로 다시 인간이 되는가를 묻는 이야기처럼 읽힙니다. 맷돌의 암수와 두 봉우리의 결합은 생명의 재생을 상징하고, 흩어진 기록과 유물을 함께 복원해야 한다는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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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an
4
손진태의 사과를 바라보며 오히려 오늘의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기록 하나를 빠뜨린 것을 미안해한 학자의 마음과, 정작 기록할 가치가 있는 역사 자체를 지워버린 시대의 폭력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설화를 되찾는 일은 결국 잃어버린 인간의 기억을 되찾는 일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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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3
손진태의 자료 수집을 오늘날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화는 그냥 옛사람들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세계와 인간의 기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여주는 생활사적 자료입니다.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질 기억을 붙잡았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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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鎭
2
마지막의 ‘대홍수로 청소가 되는 길’이라는 표현은 매우 강렬합니다. 그러나 홍수의 비극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뒤에 다시 인간이 시작되었다는 점 아닐까요. 결국 이 설화가 전하는 것은 멸망의 공포보다도, 모든 것이 사라진 뒤에도 인간은 다시 관계를 만들고 문명을 시작한다는 생존의 이야기로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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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a
2
대홍수 뒤에 남은 것은 두 사람뿐이었지만, 그들은 다시 인간의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글의 마지막 분노도 결국 파괴를 원하는 마음이라기보다, 거짓과 망각으로 뒤엉킨 문명을 한 번 씻어내고 인간다운 세상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절박함으로 읽힙니다. 신화가 오래 살아남는 이유도 바로 이런 인간의 근원적 질문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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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미
1
수메르의 길가메시의 서사시, 그리스 신화, 그리고 기독교 창세기 대홍수와 같이 우리나라도 비슷한 설화가 있었다니 참 귀한 사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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