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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Koreans are refugees like animals in the zoos. Corea, Korea, Corean, Korean, Coreans and Koreans. Whatever they 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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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제묘(關帝墓)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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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ny365

조선민담집 신화(神話)•전설(傳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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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9. 19
48. 수탉 전설(雄鷄 傳說, 羽衣 傳說)
옛날 어느 곳에 한 젊은이가 모친과 단둘이 살고 있었다. 서른이 될 때까지 장가를 가지 못했다. 그는 매일 산에 올라 아침부터 밤까지 나무를 베어 이것을 내다 파는 가난한 삶을 사는 나무꾼이었다. 어느 날, 늘 하던 대로 산에서 벌목하고 있었는데, 어딘가에서 사슴 한 마리가 뭔가에 쫓기듯 나무꾼 쪽으로 달려와 “살려주십시오!” 하고 숨이 차 애원하자, 나무꾼은 불쌍한 마음이 들어 사슴을 나뭇더미 사이에 숨기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하고 일을 계속했다.
 
얼마 있자 저쪽에서 한 명의 포수가 그 역시 숨을 몰아쉬며 달려와 “사슴이 이쪽으로 도망쳐 온 것을 보지 않았나?” 하고 나무꾼에게 물었다. “응 봤어요. 그러나 그 사슴은 저쪽 길로 해서 도망가 버렸다오.” 하고 나무꾼은 저쪽 방향 산길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포수는 나무꾼이 가르쳐준 대로 길을 향해 사슴을 쫓아 달려갔다. 포수가 보이지 않게 되어 되자 나무꾼은 사슴을 꺼내주자, 지금까지 나뭇더미 사이에 숨을 죽이고 있던 사슴은 나무꾼에게 정중하게, 나무꾼의 지혜로 위험한 순간을 넘겼다고 매우 기뻐하며 여러 번 인사하며 나무꾼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산의 산신령인데 오늘 모처럼 놀러 나왔다가 사냥꾼에게 들켜 큰일 날 뻔했네. 자네는 내 생명을 살려주었기 때문에 나는 그 은혜를 갚아야만 하니, 뭔가 사양 말고 소원을 말해 보라”라고 말했다.
 
나무꾼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이렇다 할 소망이 떠오르지 않아 달리 갖고 싶은 것도 없었지만, “나는 아직 나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으니, 나에게 아름다운 신부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하고 소망했다. 그러자 사슴은 “그런가? 그것은 잘된 일일세. 이 산을 끝까지 올라가면 그곳에 하나의 큰 연못이 있을 것이야. 그리고 그 연못 속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이 지금 목욕을 하고 있을 터, 선녀들은 모두 옷을 연못 주변에 벗어 놓기 때문에 그중에 젊은 선녀 속옷을 몰래 숨겨버리게. 그러면 선녀들이 목욕을 마치고 하늘로 올라가려 할 때 옷이 없는 선녀는 날 수 없게 될 거야” 선녀는 그 옷이 없으면 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네가 선녀를 꿰어서 집으로 데려가 아내로 삼으면 된다. 그러나 결코 그 옷을 아내에게 보여 주면 안 되네. 그것을 보게 되면 선녀는 그 옷을 입고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이야. 그러나 만일 아이들이 4명 태어났을 때는 그 옷을 돌려줘도 상관없어. 세 명까지라면 둘은 양쪽 팔에 끼고 한 명은 다리 사이에 끼고 하늘로 올라가 버릴 수 있지만, 네 명이라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한 명이라도 어린아이를 남겨두고서 떠날 수 있는 엄마는 없기 때문이야”라고 가르치고 아까 온 길을 통해 산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무꾼은 사슴이 가르쳐준 대로 한동안 그 산을 올라가 보니 과연 큰 연못이 나타났고 연못에서는 아름다운 선녀들이 발가벗고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못 주변에는 큰 바위 위에 흰색 명주처럼 아름답고 흰 선녀들의 옷이 벗어 놓여 있었는데 그는 발소리를 죽여 나무 사이나 풀 아래로 숨어 들어가 한 선녀의 속옷을 훔쳐 바위 뒤에 숨겨놨다. 목욕을 마친 다른 선녀들은 각자 자기의 옷을 입고 날아가 버렸지만, 한 젊은 선녀는 날 수 없었다. 그녀는 발을 동동거리며 옷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무꾼은 바위 뒤에서 나타나 “옷은 내가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선녀는 그것을 돌려달라고 애원했지만, 나무꾼은 “내 아내가 돼준다면 돌려주겠다”라고 하고 듣지 않았다. 그녀는 할 수 없이 나무꾼의 집으로 가 나무꾼의 아내가 되었다. 이 둘 사이에는 세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장남은 경성(京城)에 가서 과거를 보고 급제했다. 부부 사이는 매우 돈독했고 그동안 아내도 한마디 그 옷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남편도 그것으로 안심했기 때문에 옷에 관한 것은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 무렵 어느 날 아내는 남편에게 술을 권하며 “우리 사이엔 벌써 세 아이가 태어났어요. 나는 처음에는 하늘에 하늘로 올라가고 싶어서 올라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인간 세상이 오히려 즐겁고 좋아요. 가끔 나의 그 시절 속옷이 그리우니, 언젠가 나의 그 시절 속옷을 어떻게 했는지 좀 보여 주세요. 단지 옛날의 추억일 뿐이니 보고 싶어요”라는 뜻으로 말했기 때문에 남자는 술이 약간 취해서 기분이 좋아진 데다 아내가 말하는 것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그 옷을 속옷을 꺼내 보아 보였다. 그러자 선녀는 그것을 입자 곧, 두 명의 아이는 양팔에 끼고 막내는 다리 사이에 끼고 천장을 뚫고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나무꾼은 다시 옛날의 나무꾼이 되어 홀로 쓸쓸하게 산에 들어가 나무를 캐면서 불행한 자신을 떠올리고는 도끼를 버리고, 버려진 물건처럼 땅바닥에 드러누워 한숨을 쉴 뿐이었다. 한동안 매일 이런 식으로 보낸 어느 날, 다시 사슴이 나타나 “그렇게 한탄할 필요가 없다. 다시 한번 그 연못으로 가 봐라. 그곳에 하늘에서 두레박이 내려올 것이다. 선녀들은 그때 일이 있고 난 뒤, 연못으로 내려오지 않기 때문에 두레박에 물을 길어 가지고 올라 하늘에서 목욕하기로 했다. 두레박에 물을 한가득 길어 하늘을 하늘로 끌어 올리려고 할 때, 그 물을 다 버리고 자네가 그 두레박에 타고 하늘로 올라가면 아내와도 아이들과도 만날 수 있다”라고 가르쳤다.
 
나무꾼은 그 말대로 과연 하늘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는 천상의 물건들이 매우 아름다워 그 광경에 놀라 바라보자, 이윽고 선녀들이 나타나 “어, 인간 냄새가 나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를 발견하고는 매우 놀라 어떻게 된 일인가 물었고. 그는 이러저러한 시종을 말하면서 마침내 하늘의 신 앞으로 불려 나가, 거기서 아내와 아이들과도 만났다. 그의 아내는 하늘의 신의 딸이었다고 한다. 나무꾼은 천상에서 매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좋은 옷을 입고 한동안 아무런 걱정 없이 살았지만, 어느 날 문득 홀로 남겨두고 온 모친을 떠올리며, 갑자기 모친이 그리워져서 어떻게든 한번 모친 곁으로 돌아가 보고 싶어져 그것을 아내에게 상담했다. 그러자 아내는 몇 번이고 이를 말리며 “만일 당신이 지상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이곳에 올 수는 없을지도 몰라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무꾼은 어떻게든 뜻을 굽히지 않고 오히려 “금방 다녀올 테니….”라고 간원해 아내는 할 수 없이 이를 마지못해 허락하며 “하늘의 용마(龍馬)를 한 마리 내어 드릴 테니 이것을 타고 가십시오. 이 말을 타면 순식간에 지상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한 발자국이라도 땅을 밟게 되면 영원히 하늘로 올라올 수는 없을 테니, 어떤 일이 있어도 말 위에서 일을 끝내고 결코 땅을 밟아서는 안 됩니다”라고 여러 번 되풀이해 말했다.
 
나무꾼은 하늘의 용마를 타고 순식간에 모친의 집에 도착했다. 모친은 오랜만에 만난 아들을 매우 기뻐하며 맞이했다. 그가 모친에게 작별을 알리자, 모치는 그를 멈춰 세우며 “너에게 먹일 생각으로 마침 호박죽을 끓였으니, 한 그릇이라도 먹고 가라” 그는 모친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어 잠시 기다려 모친이 가져온 죽을 사발(沙鉢)째 말 위에서 받아들었다. 그런데 사발은 죽의 열기로 매우 뜨거웠기 때문에 그는 손을 바꾸려고 하다가 잘못해서 사발을 말 등에 떨어뜨려 쏟고 말았다. 말이 깜짝 놀라 뛰어오르자, 그는 말에서 떨어져 땅을 밟아 버렸다. 하늘의 용마는 큰 소리로 울며 하늘 높이 올라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나무꾼은 다시 하늘로 돌아갈 수 없어 매일 바깥으로 나가 하늘을 바라보며 울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죽었다. 그리고 수탉이 되었다. 오늘날 수탁이 곧잘 옥상 지붕 위에 올라가 목을 빼고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우는 것은, 그의 나무꾼 시절 영혼이 수탉이 되었기 때문이고, 가능한 높은 곳에서 하늘을 바라보기 위해 지붕 위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1923년 8월 京城 방정환(方定煥, 1899~1931)君談
 
 
49. 관제묘(關帝墓) 기원
경성(京城)에는 동쪽과 서쪽 두 곳에 관제묘가 있는데 그 기원은 다음과 같다. 선조(宣祖) 때 임진년(壬辰年) 왜병(倭兵)의 선봉장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부산에서 경성까지를 마치 무인 지대처럼 오래 달려 남대문 외곽까지 쳐들어왔다. 그리고 왜장(倭將) 가토 키요마사(加藤清正) 역시 이어서 도달해 동대문 외곽까지 쳐들어왔다. 이때 선조 대왕은 군신을 모아 북방으로 몽진(蒙塵)하시고 성(城)안에는 다만 홀로 남은 시민과 성을 지키는 장졸뿐이었다.
 
행장(行長)과 청정(清正)이 경성(京城)을 함락하기 전의 일, 한 명의 성을 지키는 장군의 꿈에 관운장(關雲長)의 영혼이 나타나 “내일은 내가 왜병과 싸울 심산이나, 청정(清正)이 타고 있는 말이 무서우니, 너희들은 다만 그 말을 죽여 달라. 나머지는 나 혼자 맡아 처리할 테니”라고 말했다. 이튿날 과연 왜병은 대거 성을 공격해 관제는 지금의 南廟(南關王廟)가 있는 곳까지, 나타나 적토마(赤兎馬)를 타고 청룡도(靑龍刀)를 휘두르며 왜병을 추풍낙엽처럼. 마치 풀을 베듯 싸우고 죽이면서 지금의 東廟(東關王廟)가 있는 곳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조선의 장졸들에게는 청정(清正)의 말을 죽일 방책이 없었다. 그런데 관제의 음조(陰助: 넌지시 뒤에서 도와줌)를 알게 된 청정(清正)은 매우 놀라, 즉시 자신의 말 목을 베고 그 피를 관제를 향해서 뿌렸다. 그러자 관제의 현령(顯靈)은 즉시 사라져 버리고 왜병은 홍성(閧聲: 싸움의 함성)을 올리며 성안으로 쇄도했다(塊靈은 禽獸의 피로 물리칠 수 있다고 한다).
 
난(亂)을 평정한 선조 대왕은 경성(京城)으로 환어(還御)해 관제의 음조(陰助)를 듣고 마음 아파하며 그의 그 뜻에 감격하셔서 즉시 예조(禮曹)에 명령해 관공(關公)이 나타난 곳과 사라진 곳에 각각 묘를 세우게 했다. 그것이 지금의 남묘(南廟)와 동묘(東廟)다. 그런데 또 전국에 고(詔)해, 각 부군현(府郡縣)에 관제묘(關帝廟)를 세우게 해 춘추 두 차례 제사 지내도록 했다는 이야기로 임진왜란 이전에는 관제를 기리는 일이 조선에는 없었다고 한다.
 
1927년 8월 京城府 館洞72. 金泰卿氏寄
 
 
50. 체부동 옥함가(體府洞 玉函家)
경성(京城)의 체부동(體府洞)에 가서 옥함(玉函: 옥으로 만든 함) 집을 물어보면 누구라도 이를 모르는 자가 없다. 이 집의 툇마루 밑에 이상한 옥함이 하나 숨겨져 있다고 알려지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꽤 옛날 일이다. 어느 날 한 명의 지나가는 도인(道人)이 그 집에 가서 들어가 하룻밤을 묵게 해달라고 청했는데, 마침 그때 주인은 살림이 매우 궁핍해 손님에게 밥을 차려 낼 수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 이유를 말하고 이를 거절했다. 그러나 도인은 제발 묵게 해 달라고 간청을 해서 손님 방도 없이 가족들이 있는 내실로 안내했다. 도사(道士)는 주인의 빈곤함을 동정하며 적지 않은 마제은(馬蹄銀: 元·明·淸 시대 기본 통화인 은(銀)을 주화가 아닌, 말발굽 모양의 은괴로 만들어 유통, 무게 50량(약 1,8㎏))을 품에서 꺼내 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출발 때 도인은 또 하나의 보자기를 꺼내 그 집 마루 아래에 밀어 넣고 “내가 떠난 뒤 이것을 옮기거나, 열어 보거나 하는 일이 있으면 당신의 집은 완전히 멸망할 것이니, 부디 조심해 주십시오”라고 주인에게 말했다. 그러나 주인은 기이함을 참지 못하고 도인이 가버린 후, 몰래 그 보자기를 풀어 보았다. 그 안에는 하나의 옥함이 나왔고, 함 안에는 갑옷(甲冑)과 보검(寶劍)이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옥함 안쪽의 뚜껑에는 ‘某人開見(모인개견: 아무개가 열어 봄)’이라고 쓰여 있어 이것을 열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과연 그날로부터 주인은 병을 얻어 얼마 못 가 죽었고 가족들도 이어서 죽어버렸기 때문에 그 친척들은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라고 해서 이것을 잘게 부숴버리자고 상의하고 그 함에 손을 대자, 즉시 검은 구름이 피어오르며 뇌성병력(雷聲霹靂)과 함께 큰 비가 쏟아져 내렸기 때문에 모두 놀라 손을 떼고 그로부터 함에 대해서는 다른 마음을 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후 이 집의 주인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들어가기 전에 우선 지난 주인으로부터 옥함(玉函)에 대해 자세히 들었기 때문에 손을 대는 일 없이 옥함은 보물을 숨긴 채 지금도 여전히 그 집에 남아있다고 한다. 이를 열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이며, 또 그것은 언제 어느 경우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이상한 일이다.
 
같은 날 金泰卿氏寄
 
 
*독자들은 조선의 민담을 모아 편찬한 손진태가 6.25 전쟁 시작과 더불어 납북되어 그 이후의 행적을 모르는 인물이라는 상징성을 잘 모르는 모양인데, 6. 25는 남과 북에 각각의 괴뢰 정권을 세우기 위한 서구의 획책이었다. 그깟 민속학자, 역사학자 타이틀의 손진태 한 사람으로 뭘 할 수 있겠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하나하나 따져보면 각계각층의 인물이 사전에 기획된 대로 북으로 끌려갔다.
 
이 역사적 사건의 해석을 음모론으로 치부하고 웃어넘기는 분들께서는 저차원의 프리퀀시 세계에서 머물다 갈 확률이 높아 다시 태어나는 윤회의 때를 만나도, 그 영혼은 결코, 고차원에서 출생하지 못한다. 한국 역사는 한반도 면적 안에 묶어둘 단순한 역사가 아니지만, 지금처럼 단순해진 탓은 수백 년에 걸쳐 역사를 희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은 저들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민속과 역사가 노출을 금지한 세상에서 손진태의 아이디어는 민담집이라는 이름으로 역사를 조금씩 흘리는 방식을 취했다고 보인다. 예로 들자면, 현재 한국이 갑작스러운 군사 공격으로 미국의 51번째로 편입되고 대통령을 끌어 내리고 꼭두각시를 내세워 행정과 제도를 모두 미국식으로 바꾸기 시작했다고 치자. 여기에 반기를 들거나 불만을 표하는 자는 모두 감옥으로 끌려가고 암살당하고 미행당하며 결국에는 실종되는 시대라고 치자. 이 살벌한 시대는 순식간에 한국적 미풍양속과 관행을 모두 사라지게 만드니, 뜻과 용기 있는 지식인이 은유로 한국은 이런 나라였다는 전설이 있다고 이야기책을 냈다고 보자는 것이다.
 
손진태의 현실 디스토피아 시대에 목숨을 건 행동은 사후에 모두 폄훼되고 한낱 월북 민속학자로 치부되지만, 모든 문물이 남의 잣대로 평가되고 기록되었다고 이 글들의 내용도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는 이질감을 극복하지 못하면 한국인은 역사 속으로 사장되고 말 것이다. 이 글들 안에는 역사의 한 장면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수탉이 하늘을 보고 우는 이유와 계림의 역사성을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에 비유한 방정환은 스트레스로 인한 고혈압으로 죽었다. 나무꾼과 선녀 등 많은 전설이 인도에도 있지만, 이 유사성을 연구하지 않는 것이 바로 식민사관이다. 관제묘는 지금의 동묘 시장에 가져다 붙였지만, 동작구에 남묘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인가, 전설인가 대중은 역사에 관심이 없다. 이 동관묘를 팔아먹은 자, 이토 히로부미의 양딸이자, 애첩인 배정자의 정부(情夫)이자, 남편인 현영운(玄映運, 1868~?)이었다. 배정자가 김건희라면, 현영운은 윤석열이다. 그 정도 인물 선에서 현대 한국이 돌아가고 있으니, 이 나라의 미래는 뻔하다.
 
임진왜란은 선조의 굴욕이고 패배한 전쟁인데, 여기서는 난을 평정했다고 나오고 중국의 전설적 인물인 관운장이 조선의 수호성인처럼 묘사된다. 남의 연호를 쓰고, 남의 신이 전장에서 지켜주고, 남의 속국이었다는 역사를 믿도록 세뇌당한 한국인은 단순한 모순을 만나도 그 무거운 역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체부동의 옥함집은 어디에 있었던 동네인가. 역사가 바뀌고 흡수되면 공간도 바뀐다. 지금 바야흐로, 남의 역사가 된 과거가 다시 뒤집힐 마지막 기회가 다가왔는데, 국민 스스로 옥함을 깨고 있다. 내가 잡지 못할 권력이라면 절대 남에게 넘기지 않는 한국인들, 모두 자기가 ‘某人開見’의 주인공이라고 착각해 나라가 망하고 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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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77
6
민담을 단순한 옛날이야기로 읽지 않고, 그 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은유했는지를 살펴보자는 문제의식은 흥미롭습니다. 특히 손진태와 방정환의 기록을 오늘의 역사 인식과 연결해 보는 시각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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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ma
4
역사는 승자의 기록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문헌에 크게 등장하지 않는 민담과 전설에도 민중이 기억했던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자료를 가볍게 넘기지 않고 다른 사료와 교차해 읽어보자는 글의 문제의식이 상당히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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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an
3
손진태라는 인물과 그의 민속학적 작업을 분단 이후의 역사와 함께 바라보는 시각이 인상적입니다. 월북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연구와 수집 작업까지 평가절하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남과 북의 단절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문화와 기억이 무엇인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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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n73
1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를 단순한 설화로만 보면 반복되는 이야기 구조만 보이지만, 다른 지역의 유사한 설화와 비교하면 훨씬 넓은 문화교류의 가능성이 보입니다. 한국의 고유성을 강조하는 것과 동시에 주변 문명과의 교류까지 함께 살펴야 우리 역사를 제대로 복원할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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