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은 단순한 감정적 도발이 아니라, 일본이 자신들의 역사 왜곡과 식민 지배의 진실을 은폐하려는 정치적 방어 기제로 작동하는 것이다.
일본은 자신들의 해적적 기원과 서양 세력의 앞잡이 역할을 했던 역사를 숨기고, 식민 지배의 공간적 범위를 축소하여 지정학적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한국의 독재 정권들이 민족주의를 이용해 일본 혐오 감정을 조장하고, 일본 역시 혐한을 통해 자국민을 통제하며 기득권을 유지하는 정치적 쇼를 벌여왔다.
과거 서구와 일본이 한국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던 것은 한국인 스스로 내수용 역사에만 매몰되어 외부 시선을 이해하지 못했고, 일본은 자국 역사마저 왜곡하는 교육 탓이 크다.
겉으로 보이는 혐한의 단순함에 속는 한국인
한물간 혐한이지만, 한물간 식민지 패권의 메커니즘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어 짚고 넘어가야 두 번 겪지 않는다. 혐한을 한국인에 대한 감정 도발과 아울러 제2의 침략을 위한 준비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단식 해석이다. 보통 일본의 혐한파들이 가지는 여러 편견과 선입견들은 대부분 허위이거나 중상모략에 가까운 혐오 발언들이기 때문에, 사실에서 그렇지 않은 한국인들이 자의적이고 악감정이 실린 막말들을 상대할 가치가 없어 거들떠보지 않는다. 한국인들이 저들의 저차원적 의식세계에 동요하지 않는 대신, 현대 일본의 즐기고 누릴 문화가 많아 그쪽에 경도되어 있지만, 사람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이유는 훨씬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무언가를 선동·호도하기 위해 혐한이 존재한다는 ‘혐한의 역할론’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즉, 혐한이라는 더러운 에너지가 실은 다른 어떤 사실을 숨기는 방어기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보통은 이렇게까지 꼬아서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대범하고 호방한 대륙적 기질이 남아 있는 한국인들은 그 숱한 식민지 압제가 가져온 노예적 근성에도 불구하고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원래 이 정도의 톨레랑스는 당연한 정서다. 하지만, 언제까지 일본의 얕은수에 끌려다니면서 ‘불결하고 비겁하고 신용할 수 없고 준법정신도 결여된’이라는 혐한파 독설에 인이 박인 이미지를 감내할 필요가 있을까.
혐한파들이 주장하는 한국인들의 역사 인식, ‘한국인들은 역사를 모르며, 그들은 역사를 마음대로 날조한다.’라고 하는 주장은 혐한파가 존재하는 이유인 동시에 목표다. ‘한국인들은 스스로 피해자라고 강조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한다.’라는 공격은 도둑이 제 발 저린 심리다. 정작 피해당한 한국 국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해방 이후 독재 정부의 자국민 억압과 왜곡된 역사 인식 방침이 되려 일본의 혐한을 부추기는 역할을 해오기도 했지만, 이것은 사실 양국이 짜고 치는 정치적 쇼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이야말로 자신들의 역사 왜곡을 숨기고, 한국은 그들의 역사 왜곡에 편승해 일부 기득권 세력만을 위한 지속 가능한 정치 수작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혐한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악의 패배다.
역사 왜곡을 뒤집어씌우는 이유
그러면 과연 일본은 무슨 역사를 왜곡했으며, 왜 자신들의 왜곡을 거꾸로 피해자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인가? 첫째, 일제는 35년 동안 조선을 식민지 지배하다가 패전한 게 아니다. 일제가 조선의 근대화를 끌어냈다는 식민사관이 잘못된 역사관점일 뿐 아니라, 훨씬 더 오래전에 서양 패권의 앞잡이로서 서구가 조선 땅을 쳐들어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역사를 기록에서 감췄다. 일제는 수백 년 이어온 왜구 활동으로 서양과 이른 시기 접촉을 통해 성장한 인류 범죄사의 해적(海賊, sea robber)이 진화한 문화다. 그들은 약탈과 수용을 반복하며 집단으로 진화했고 그 역사를 자못 자랑스러워 하는 서술을 견지해왔다. 오랜 세월에 걸친 혼혈로 인종의 유사성을 무기로 삼게 되자, 근대에 본격적으로 자행된 혼혈 정책을 식민지 정책의 기치로 내세우며 식민지 압제 동안에 한국인의 전통과 문화를 멸절시켰다.
둘째, 저들 범죄의 공간적 영역은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는다. 즉, 식민지 압제의 역사를 한반도 내에 붙들어 매둔 역사 왜곡 서술의 죄가 핵심이다. 이것이 현재에 발목을 잡게 되면 그것은 지정학의 문제로 비화한다. 그래서 혐한이라는 자폭 기제로 역사 왜곡 사실을 모르는 한국인들의 감정을 손상하는 짓을 이어나가야 했다. 현재, 일본에서 한류는 유행 이상의 주류 문화이기 때문에 일본으로서는 더는 과거를 방어할 수단이 없다. 현대 지정학상, 한국인의 일제 식민지 피지배 기간이 한반도를 벗어난 강역이라는 것이 증명된다면, 일본은 감당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는 외교적 압박을 받게 되기 때문에 한국이 식민사관을 벗어나는 사고력의 증진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중요한 사명이 있고, 혐한으로 귀결되는 저차원의 역사 호도 작전이 필요했던 이유다.
최종적으로는 일본 혼자서 조선을 침략한 게 아니라서, 일본의 혐한 활동과 독도 도발 등은 국제 사회를 향한 ‘나, 혼자 죽지 않는다’라는 신호다. 해방 직전까지 중국 내에 남아서 활동한 광복군 등을 폭사시킨 세계적 범죄는, 현재 3차대전의 전장인 우크라이나, 러시아, 이란, 그리고 주변 아랍국가에서 어떤 형태로 전쟁이 전개되는지 그 전모를 완전하게 알기는 어려운 것처럼,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마지막 살육이 있었는지 알기 어렵다. 방송으로 중계하는 현대전도 그 실상은 보여주고 싶은 준비된 시나리오대로 보여준다는 사실, 전 세계 대중은 전쟁터의 총알받이이자, 시청자의 처지를 벗어날 수 없어서, 전쟁은 언제 어디에서 일어나도 남의 일이 아니다.
구한말, 조선을 둘러싼 세계적 암투에 대해 한국인은 전혀 지식이 없다. 체득한 것은 오로지, 그 혼돈의 백여 년 동안 민족의 역사와 기억이 완전하게 지워진 사실도 모르는 무지와 그것을 바탕으로 주입된 식민사관이다. 그동안 해적에서 학자가 된 일본 제국주의는 역사를 적절하게 정치 경제 사회 외교적으로 안배해 전면에 내놓는 일의 선봉에 섰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립 중앙 도서관의 수장고에는 조선 총독부 도서관장의 관인이 없는 과거의 책은 한 권도 없다. 재분배된 역사가 검열과 이중출판을 통해 세상의 상식과 지식이 되었고, 일본은 세계가 싸지른 똥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과분한 짐을 떠안았다.
이미 역사는 ‘조선을 지배한 일본’이 정론이기 때문에, 과거 악행의 장소성이 규명될 때 받아야 하는 압박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이 전쟁광일 때는 아시아 전역을 손에 넣는 청사진에만 들떠 패배와 역사 기록 날조가 인류사에 미치는 영향력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질 낮은 혐한이 판을 쳤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문명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 전파된다. 다시 회복하는 한국인의 민족정기는 해묵은 혐한 따위 안중에도 없지만, 그럴수록 일본은 목이 타들어 간다.
1903년 미국 공사 호러스 알렌(오른쪽에서 네번째)이 대한제국 주재 각국 공사들을 미국 공사관으로 초청해 회의 후 찍은 기념사진, 독일 프랑스 중국 영국 벨기에 공사 참석, 일본 공사 불참. 있는 것은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은 있는 것이니, 부재에서 존재를 볼 필요가 있다.
집단 범죄인 전쟁의 가해와 피해는 결국 공멸일 뿐
이제 인간의 범죄가 집단으로 이루어지는 전장(戰場)에서 어떻게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 이론이 성립하는지 보자. 일본의 혐한을 대표하는 극우는 대다수 한국인이 일제 강점기 35년 동안 일본에 커다란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피해자 코스프레’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들은 특히 한국 정치인들이 ‘한국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면서 지속적으로 국민에게 대일 악감정을 유지하도록 계속 유도하고 있다고 본다. 이것은 양국이 동일하다. 한국은 일본을, 일본은 한국을 서로 멀리하도록 보이지 않는 선을 둔다. 그래야 정치적으로 한일 양국의 기득권이 일차적으로 세력을 유지하면서 상대에 적절한 공격 도구로 상대에 대한 혐오의 감정을 사용한다. 증오심을 정권 유지의 방법으로 쓰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혐한파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3년 2월 집권한 이래 미국 유럽 중국에서 일본이 가해자임을 강조하고, 일본이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것을 비판함으로써 한국이 피해자라는 점에 초점을 맞춰 유리한 입장을 구축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박근혜를 들어 역대 한국 정권을 놓고 볼 때도 가장 노골적으로 ‘한국이 피해자라는 것을 호소했다’라고 하며, 이것이 일본인의 의식을 상당히 강하게 자극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일본의 혐한파는 무엇을 주장하는가’ p53 오구라 기조 한정선 역 제이앤씨 2015).
그러나, 잘 생각해야 한다.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이다. 군사 독재로 이승만에 이어 수많은 항일 지식인을 죽이고 민족주의의 뿌리를 뽑았던 인물의 딸이다. 그런데 그런 자의 딸을 비난하면서 피해자인 척한다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했을까. 박근혜의 일본 비판은 국내 친일파들의 비난을 사지 않았다. 만일 박근혜의 발언을 이재명이나 노무현이 했으면 벌써 국내 여론이 난리가 났을 것이고 일본에서도 벌써 정치적 수법으로 복수했을 것이다. 일차적으로 박근혜는 자기 주도적 정치 발언을 할 정도의 머리가 되지 않아, 그 발언은 누군가 지시한 아군끼리 위장 내분을 벌여 적을 기만하고 힘을 빼는 고육계(苦肉計)라고 볼 수 있다.
이명박 임기 말, 좋지 않은 여론을 피하고자 독도에 가서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했던 쇼와 비슷한 것이다. 국내의 친일 극우는 이명박의 독도행이 한반도 내 역사관을 공고히 해주는 역할을 하므로 미디어가 반겨 지지율 반등을 얻어냈다. 만일, 같은 취지의 내용을 민족주의를 정치 지향점으로 두는 좌익 인사가 발언했다면 그다음 날로 발언자의 신상과 흠결이 침소봉대되어 죽일 놈이 되었을 것이다. 과거 식민지 피지배를 경험한 민족들은 현실 정치에서 자국 정부가 국민을 기만하는 이 이간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런 위장 정치술은 실제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써 왔던 방식이다. 대한민국 육군의 시작이 미군 정 조선경비대에서 출발했지만, 그 초기 지휘부는 일본군과 만주국군 출신자들이 주도했기 때문에, 독재 정부를 구성했던 이들 정서의 바탕에는 동족을 애틋하게 품는 살뜰한 마음보다, 일제 시대의 민중 압제 방식이 훨씬 자연스럽고 향수마저 품고 있다. 그 시대 정서를 이유로 자신들의 권력욕에 반하는 자들을 자살로 몰거나, 사회적 매장을 당하기에 족한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이 소위 민정수석이라는 자리의 역할이었던 과거를 떠올리면 된다. 그러니, 지금 국방 개혁에 거품을 물고 반대하는 자들이 남북한 통일보다 친 일본, 친 미국 스텐스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한술 더 떠서 혐한파들은 한국인들이 사과와 배상을 계속 요구하는 것을 ‘억지 주장’이라고 미리 철벽 방어를 친다. 한국은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때 일본으로부터 피해보상을 받았음에도 끊임없이 더 무엇인가를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정치인들의 선동’이 자리 잡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언제나 식민지 피해보상을 해달라고 징징댄다고 공격한다. 이런 주장은 일본이 정식 외교에서 할 수는 없기에 저질 혐한파에 먹잇감을 주는 것이지만, 그 덕에 일본인들의 의식세계도 함께 저질이 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일본 정부도 자국민을 도구로 사용했던 제국주의 시절 관습을 버리지 못하는 거로 보인다. 아니 오히려 전보다 더 강력한 국민 통제를 이어간다. 이것은 중국도 마찬가지지만, 자국민 중 절반은 조선계 한국계인 관계로, 신뢰할 수 없는 자국민을 경계하는 일본 정부의 이중 안전장치가 혐한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제는 혐한이 사라졌다. 제 밑 들어, 남 보이기식 감정싸움으로 일본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물질적 정서적 가난이다. 매춘과 쥐떼가 창궐하는 도쿄를 상상할 수 없던 때에는 감히 식민지 영토 이야기는 꺼낼 수도 없었다.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과 이명박, 그리고 독재자의 딸 박근혜 같은 종자가 치하하는 한국이어야만 혐한도 존재할 수 있고, 그 수준 이하의 논리가 먹혔다. 이제 일본의 정치는 드러나는 진실 속에 자국민 안의 폭발과 분노, 자멸만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사실 일본인들은 2000년경까지 일상생활에서 한국이라는 나라를 거의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일본의 대학생들은 한국이 동아시아의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이것은 서양도 마찬가지다. 지금, 유럽이나 북미 백인들이 한국에 와서 편의점 바나나 맛 우유를 마시는 걸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만, 그들은 88올림픽 때까지만 해도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위치도 문화도 몰랐다. 여기서 한국인들에게 질문, 수천 년 역사를 가진 한국인들은 왜 그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외부 세계에서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몰랐다는 말을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는가, 눈여겨보면 여기에 답이 있다. 1980년대까지 서구와 일본의 한국인에 대한 인종 차별은 경험해본 본 사람만 안다. 정작 한국인은 내수용 역사만 믿고 살아와 타자의 시선을 어떻게 해석할지 전혀 몰랐다고 본다. 1980년대까지도 한국보다 태국 대만이 더 잘사는 나라였다는 사실, 물질적 가난 극복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지, 역사를 상실한 정신적 결함을 무시하고 있었다.
일본이 한국을 잘 몰랐던 이유 중 하나는, 일본사 통사 서술을 사실로 믿고 암기하고 그 내용으로 수험을 치른 누적된 역사 교육 탓이라고 본다. 일본사는 고고학과 문헌이 서로 따로 노는 학문 간 단절이 심하다. 제국주의 시대, 각자 열심히 맡은 바 임무를 다했지만, 사실과 소설의 혼돈을 불러올 만큼 과한 역사 날조를 국사에 편입했다. 사실 역사와 서술된 기록 역사가 현실에서 영속하는 역사성을 반영하지 못할 때 인간은 이상해지는 경향이 있다. 마치, 뼈대 있는 양반 가문의 후손인 줄 알고 족보를 암기하는 한문 교육을 받고 자랐는데 실상은 근본 없는 후손이라 본능에 꿈틀거리는 절제되지 않는 비윤리적 언행이 튀어나오는 사람의 이중성과 같은 것이다. 없는 데 있고, 있는 데 없어지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의 성립은 인간을 도태시킨다.
실제로 일본의 일류대학 출신이 중국과 한국과 일본의 위치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걸 목격한 적이 있다. 그래서 지도를 펴 놓고 중국이 어디 있는지 묻자, 스스럼없이 불확실한 지명 인식을 털어놓았다. 일본은 한국 역사만 왜곡 서술한 게 아니다. 자국 역사 또한 남의 역사를 가져다 썼기 때문에, 과도하게 많은 문명과 문화를 중첩 서술해, 시대마다 장르가 다른 사극처럼 되어버려 현실 세계에서 다 소화하지 못한다. 이것은 거의 전반적인 인류 공동의 비극이 되어 가고 있다. 세계가 작정하고 영토 전쟁을 벌이면서 어느 한 나라만 조졌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모든 문명은 파괴되고 다시 쓰이고 조작되었다.
이토 히로부미와 아베 신조가 조선인 피가 섞인 인물일 수 있다는 의문에서 시작된 ‘자이니치’의 개론은 여기서 막을 내린다. 다시 인물 소개로 돌아가, 일본을 구성하는 생물학적 유전자의 코리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찰하겠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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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n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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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한을 단순한 감정적 악담으로만 보면 그 배경에 있는 정치적·역사적 맥락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 인상적입니다. 특히 가해와 피해의 프레임을 서로 이용하면서 국민의 감정을 동원해 온 정치의 구조를 함께 바라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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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02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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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혐한을 한국인에 대한 단순한 적대감으로만 설명하지 않고, 역사 서술과 기억의 문제까지 연결해서 바라본 점이 흥미롭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감정적으로 일본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떤 역사를 어떤 목적에서 기록하고 유통했는지를 끊임없이 따져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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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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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를 바라볼 때 너무 오랫동안 양국의 국내 정치가 만들어낸 프레임 안에서만 생각해 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혐오와 반감이 서로를 자극하는 구조에서 벗어나려면 감정적인 대응보다 역사 자료와 국제정세를 함께 살펴보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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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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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마지막 부분의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라는 질문이 오래 남습니다.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세계에 알려진 지금의 한국만 볼 것이 아니라, 왜 오랫동안 한국의 역사와 존재 자체가 외부 세계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는지를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중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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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jae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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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한을 혐오 표현 몇 마디의 문제로 축소하면 왜 그런 담론이 반복해서 등장하는지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역사 기억과 국가 정체성, 국내 정치가 서로 얽혀 있다는 점을 봐야 합니다. 감정에 반응하기보다 그 구조를 읽어야 한다는 글의 취지가 와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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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nghy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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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둘러싼 한일 간의 갈등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서로 상대방 국민 전체를 하나의 이미지로 만들어 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혐한도, 한국의 반일 감정도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함께 성찰해야 한다는 대목이 특히 의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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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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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결국 일본을 비난하는 글이라기보다 역사 기억을 누가 만들고 누가 이용해 왔는가를 묻는 글로 읽힙니다. 과거의 혐한에 똑같은 감정으로 대응하기보다 그 안에 숨은 역사와 권력의 구조를 제대로 들여다보자는 결론에는 충분히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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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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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피해자인가’라는 논쟁에만 머물면 정작 중요한 질문을 놓치게 됩니다. 어떤 사건이 있었고, 그것이 어떤 자료로 기록됐으며, 이후 어떤 방식으로 기억되고 재구성됐는지를 따져야 합니다. 역사 문제를 감정이 아니라 기록과 구조의 문제로 보자는 주장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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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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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역사를 제대로 안다는 것은 우리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역사 서술까지 의심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역사 왜곡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한국 사회가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해 왔는지도 함께 돌아보자는 문제의식이 오래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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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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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가 일본 사회에서 일상적인 문화 현상이 된 지금도 과거의 역사 인식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게 됩니다. 문화적 교류가 활발해질수록 오히려 불편한 역사까지 차분하게 검증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성숙한 한일 관계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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