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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ever the name—Corea or Korea—dignity comes f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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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no

Zainichi 32. 일본의 우월의식과 혐한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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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1. 16
혐한의 방어기제
일본의 ‘혐한(嫌韓)’은 그 역사적 기원이 상당히 오래라, 전쟁 책임 회피 수준이나 가해자의 방어 심리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의 심리를 가장 궁금해야 하고 연구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사람들은 한국인들인데, 어째서인지 한국은 혐한의 발전사 따위는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아 대응할 학자가 없다. 가끔 북한에서 날리는 일본에 대한 육두문자 섞인 비난에 남한 사람들이 시원해하거나, 근본 없는 냉소를 보내는 수준, 한심한 노릇이다. 식민사관도 뉴라이트도 기관에서 민간까지 일본의 연구를 짜깁기해서 우려먹는 수준이며 자체적으로 어용 사관의 틀을 세운 금자탑도 없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세뇌와 선동의 개돼지로 사는 꼴이 부끄러운 줄 모른다.
 
정부는 정책적으로 교묘하게 식민지 역사를 숨겨왔고 민간은 입시 교육 시장에만 혈안이 되어 과거 전통 문명의 파괴가 인류에 미치는 영향, 아니 한국인 자신들에게 미치는 악영향 따위 관심이 없다. 대신 스스로 존재 가치가 하락한 현실을 기정사실로 여기는 자기 비하가 뿌리내렸다. 정보와 지식이 없어 언론과 뉴스 수준도 낮아 객관화가 어렵다. 일본이나 미국의 눈치를 보니, 그들의 잣대를 인용한 뉴스와 글이 난무한다. 해방 이후 친일파 제거 없이 식민지 잔재를 교묘하게 숨긴 여러 권력의 누적된 부패로 말미암아 수 세대가 지난 지금 나라에 주인 의식조차 없다. 총체적으로 볼 때, 식민지 피지배 민족으로 재건에 성공한 예가 없다는 인류사를 증명하는 듯하다.
 
일본의 지배 권력은 임진왜란과 메이지(明治) 유신 등을 거치면서 외부 세계에 대한 공격으로 내부 발전을 꾀해온 지극히 기괴한 집단이다. 임진왜란에서 메이지 유신까지 약 300년의 물리적 시간이 필요했는데 이렇게 집요하게 수백 년을 남을 침략하기 위한 국가 형태로 발전해 왔다는 점과 그런 일본의 국가 발전이 한때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점에서 다들 겁먹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뒤에서 부추긴 존재가 그늘에 가려진 것은 나름대로 성공이다.
 
대신, 일본의 최대 피해자인 한국이 주도권을 쥐고 왜 이런 악업이 지속해왔는지를 풀지 못한 것은 유감이다. 그들은 내부 문제를 주변국 침략과 같은 외부 요인을 통해 해결하려는 나쁜 습성을 지속해서 업그레이드해 왔다.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더라면, 일본을 형성한 뒤 배경과 함께 한국의 패인도 짚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 두 가지를 해방 후, 미군 정치와 친일파 정권이 틀어막았다.
 
이 과정에서 ‘혐한’은 일본 사회의 내부 문제를 외부로 돌리는 데 상당히 유용한 책임 전가 수단의 상징적 단어가 되었고 걸핏하면 제멋대로 한국인을 깎아내리는 표현으로 쓰이며, 전범국의 욱일기 도발처럼 모멸감과 치욕적인 현실이 시대별 코드에 맞게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문화적으로 한국보다 뒤진 지 오래다. 한국인들은 배고픈 가난이 사무치겠지만, 일본은 문화가 사무치는 나라다. 역사를 훑어본다면 후져진 일본의 문화 자긍심은 돈보다 중요한 생명 같은 것이다. 그런데 야금야금 치고 올라오는 문화 강국 한국이 그들에게도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여전히 추앙하고 겁내고 두려워하는 민심은, 절대 일본의 국가 메커니즘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고 미래 예측 또한 불가능하다. 결과적으로 한국인은 과거를 뺏겨서 급기야 스스로 정체성을 버리는 데 동참했으니, 미래가 불투명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짓눌린 불안의 실체에 대해 본능적으로 궁금할 의구심을 억누른 정치를 정치로 극복하지 않은 한, 역사는 그 자취를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혐한 이론화 작업
앞서 혐한의 주요 이론적 배경에는 메이지유신을 상징하는 계몽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1835∼1901)의 ‘탈아론’(脫亞論)이 자리 잡고 있다고 밝혔다. 탈아론은 일본의 문명화에 대한 문제점을 자신들의 내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한국과 중국 같은 ‘어리석은’ 이웃 나라와의 관계를 단절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문명을 개화로 풀었지, 전통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남의 전통을 뺏어 자기 것으로 만들면 개안이 되고 개벽하는 줄 알았다.
 
이 주장을 냉정하게 들여다본다면 서구 계몽주의가 주장한 백인들의 식민지 패권주의가 고스란히 일본에 넘어가서 특정 민족을 집중포화하도록 합리화한 사실을 볼 수 있다. 서구가 일본에 심어준 프레임이든, 일본이 자체적으로 소화한 프레임이든 인종에 대한 문제 제기가 전근대적 신분 위계질서에서 전향하게 한 것은 분명하다.
 
지금은 오히려 인종 문제의 원조였던 서양이 나서서 인종차별을 법적으로 제재하지만, 과거 한때는 인종 청소가 전쟁 수행의 목표이자, 이유였다. 서양이 인종 문제를 조장하고 뒷받침하면서 일본이 이를 가장 열광적으로 따라 하도록 부추긴 데에는 그만한 낚싯밥이 있었을 것이고 일본에 원초적인 열등감이 따라다녔을 것이다. 히틀러의 나치즘은 인종적 우월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은 기초상식이다. 그 상식이 일본의 상식이 되고 법이 된 역사가 조선인 제노사이드의 단초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히틀러-나치-일제-조선이 지리적으로 인문학적으로 연결이 안 되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증거가 있다. 1936년 10월 21일 자 조선일보에는 히틀러가 조선에 수재의연금을 전달했을 만큼, 가까웠다. 히틀러가 인종주의자인 것은 맞지만,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가 증오한 건 오로지 유대인 또는 유대인 공산주의자?
 
탈아론의 핵심은 ‘일본이 더 강해지려면 내부의 문제점들을 스스로 해결하고 쇄신하는 것이 아니라, 타국을 침략해 당면한 과제들을 일거에 해소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라는 것이다. 자신의 주제를 돌아보지 않고 철저하게 남의 것, 남의 탓에 열중하는 그릇된 시대 정신을 볼 수 있는데 일본의 부흥을 ‘자강(自強)’이 아니라 ‘탈아(脫亞)’에서 찾는 그들의 저열한 속셈은 결국, 군국주의 집단의 전쟁 광기를 불러일으키는 결정적 촉매가 됐다.
 
필자는 일본의 광기가 자국민을 전쟁광으로 교육하고 그 광기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희석하거나, 또는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데 보태는 역할을 해줄 것이라 착각했던 당시 일본의 위정자들이 떠오른다. 일본 독자적으로 전제정체가 가능했겠는가 하는 의문이 있다. 광기를 정치에 이용한 국가에 식민지 지배당한 한국인의 변질한 광기도 아울러 짚어나가야겠지만, 어쨌든 이런 일본인들의 ‘외부 덤터기 수법’은 현대에는 통하지 않는다. 과거처럼 밀실에서 정치가 진행되지 않고 전쟁마저 생중계되는 세상에서 일본의 과거는 현대 정치의 혼란 속에서 역설적으로 어설픈 말장난에 불과했던 걸 증명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혐한은 식민지 지배 부인
지난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 4명에게 신일철주금(新日鐵住金)이 각각 1억씩, 총 4억의 위자료 지급을 명령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일본은 이 판결이 1965년 한일 협정의 근간을 흔드는 판결로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면서 한국 정부에 시정을 요구했다. 1965년 한일협정은 조약 조인 및 비준을 반대하는 국민의 분노에 부딪혀 이미 수년 전부터 학생들이 주도한 시위와 투쟁에 시민, 지식인, 야당이 참여해 1964년 6.3항쟁, 1964년 6월 계엄령 선포로 이어졌던 대규모 시위와 투쟁 사건이었다.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의 사과와 배상 없는 굴욕적인 조약 내용에 반대하며 박정희 정권의 매국적 외교를 규탄한 역사적 사건이지만, 여지없이 좌절된 국민의 의지를 꺾은 대표적인 독재정권의 무식한 폭정이기도 했다.
 
다음 해인 2019년 10월 1일 자로 일본은 문제가 된 이 신일철주금, 즉 신닛테쓰스미킨(新日鐵住金)의 회사명을 과거 일본 제국주의 시절 사용된 이름인 일본제철, 즉 닛폰세이테쓰(日本製鐵)로 바꿨다. 그러니까 일본은 배상의 책임은 1965년 조약에 맞추고, 자신들은 회사명을 일제 강점기로 후퇴시킨 것이다. 일본제철 사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중국 철강업계의 약진과 세계에 퍼지고 있는 보호무역주의 기조에 맞서기 위해서는 인도 등 신흥국 시장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하면서 “일본이라는 명칭을 다시 사용함으로써 세계 속에서 성장하겠다는 뜻을 나타내려 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개가 풀을 뜯어 먹는 소리다. 불평등조약의 시작은 조일수호조규, 즉 강화도조약, 조미수호통상조약 등 셀 수없이 많다. 짧게 잡을 때 이렇다. 근대사의 불평등조약의 진의를 모르면서 박정희 따위의 하찮은 삼류 정치가 자국민의 자존심과 자존감을 낮게, 더 낮게 끌어내리는 데 그만 익숙해져 버린 타성이야말로 가장 나쁜 사회적 감정이다.
 
반면 언론과 방송은 한결같이 2018년 판결을 고무적인 사례라고 떠들며 형식적이며 허세적인 판결에만 의미부여를 하고 얼렁뚱땅 넘어가 버렸다. 그러나 그 판결은 강제 징용자 전체가 소송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겼고 당시 문재인 정부의 치적이 된 이 판결을 이어받은 적통 윤석열은 대한민국의 미디어가 과거사 문제에 대해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는 데 방점을 둔 사이, 한술 더 떠, ‘제삼자 변제’라는 말도 안 되는 해괴한 방법을 동원했다. 당시 전체 생존 피해자는 모두 124명, 다 죽고 남은 자의 숫자다. 재판진행자는 4명뿐이지만, 남은 120명이 소송을 걸까 봐 두려운 나머지 지레 재단을 만들고 ‘입틀막’하려고 했다. 의사 능력이 떨어진 노령의 피해자들에게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라는 유령 같은 단체를 만들어 ‘이면 확인서’를 받아내 배상금을 수령시켜 피해자들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초래했다. 이 사건은 하나의 연속된 사건이지만 언론과 방송이 단발적으로 다루며 시간이 가면 자연스레 잊히도록 했다.
 
윤석열 정부는 일본에 정치적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음으로서 ‘과거의 악행’에 ‘법적’으로 자유로운 일본을 만들어주었다. 그동안 법정 이자가 불어나 인당 3억 원이 넘었고 2024년 기준 이미 배상금을 받은 피해자는 대략 11~12명 정도, 대다수는 아직 받지 않았거나 지급 대기 중이다. 이 지리멸렬한 판결이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을 더럽히고 그 가치를 더 하락시키고 있다는 걸 문제 삼는 정부는 여태 없다.
 
어딘가 기시감이 들지 않는가. 김건희 리스크 때문에 계엄을 했다는 식과 비슷한 공식이다. 죄를 짓고 또 다른 죄로 죄를 덮는 이이제이를 실천하려면 배수의 진을 쳐야 하는데 윤석열은 정치적으로 아둔하다. 그가 대한민국 검사였고 검찰청장이었으며 나경원의 저서에 따르면, 윤석열은 ‘주식전문가’다. 나라가 썩었다. 가장 부패한 검찰과 미디어 때문에 머리 나쁜 인간 밑에서 굴종적 삶을 이어가야 하는 것은 운명이 아니다. 한국인들은 잃어버린 역사로 인해 역사의식이라는 게 존재했는지조차 잊었다. 개인 간 배상 의무의 싹을 자른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 협정도, 강화도조약도 무효다. 원천 무효를 주장할 역사 지식이 없어서 이렇게 삼류 부역자들에게 끌려다니는 바보짓을 언제까지 이어가야 할까.
 
한국의 언론과 사법부는 자국민을 능멸하면서 조직의 이권에만 혈안이 된 오랜 적폐 집단인 것을 대한민국 국민이면 세 살 아이도 안다. 그러나 세 살 아이가 서른이 되고, 환갑이 지나도록 정치가 스스로 걷어내지 못하고 있는 역사의 무게는 일본이 혐한을 슬로건으로 식민지 지배 자체를 부인하려는 데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일본이 이렇게 자국 문제를 끊임없이 외부와의 갈등과 대립을 통해 해결하려던 국가적 전략을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設)과 정한론(征韓論), 탈아론(脫亞論) 등으로 마치 그럴듯한 학설인 양 선전하며 역사적 명맥으로 꾸준히 이어져 온 사실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식민지 지배는 부정해야만 한다
일본인들은 ‘침략의 가치’를 묵인하고 옹호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어 전범국의 도태된 양심이 초래하는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지울 길이 없는 이상한 나라로 변질하고 있다. 변화한 시대적 감각에 맞추어 볼 때 후쿠자와 유키치는 발전적 근대를 위한 계몽 사상가가 아니라 침략의 로드맵을 짚어준 어용 선동가로, 그의 탈아론은 메이지 일본의 부흥과 문명 발전이 타국 침략, 즉 대륙 진출 야욕에 있음을 천명한 지상 최대의 작전이었고 그의 상징성은 마치 잠재된 침략적 습성에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듯 명분 축적용에 불과했다.
 
우리는 혐한을 단순히 일본인들이 한국을 무시하고 혐오한다는 협소하고 편협한 관점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자국의 안녕과 안보, 발전을 위해 주변국과 끊임없이 긴장 관계를 조성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혐한을 통해 자국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침략적 근성과 책임 전가 속성은 단지 오래된 습성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혐한의 본질은 민간의 사소한 감정 대립을 통해 과거 침략 시절을 부인하고 한일 양측의 물리적 정서적 거리 두기의 한 축이다.
 
혐한을 일부 선동된 국민의 정서적 일탈 행위 정도로 가볍게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국가 안보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점은 빗나간 짐작이다. 우리가 일본의 혐한을 일부 선동된 국민의 정서적 일탈 행위로 가볍게 받아들이고 넘어간다면 언젠가는 제3의 ‘조선 침략’이 될 수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혀야 진짜 식민지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게 된다는 점을 명확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실 한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태도는 반일이라는 감정적 요소가 주로 지배하는 측면이 있다. 일본이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 사과하기는커녕 오히려 식민지 근대화론을 들이대며 적반하장 식의 역사 인식을 보일 때 많은 한국인의 반일 감정이 폭발한다. 분노의 감정을 폭발시키면 진짜 봐야 할 게 보이지 않는다. 아이러니한 것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뉴라이트의 식민사관이 한국인들의 주장이라는 점이다. 한국인이 한국인의 세뇌와 정보 통제를 담당하는 제일선의 동량이라는 점에서 고질병이 된 정치적 감각마비가 사회적 분열, 나아가 국가 발전의 저해 인자다. 분열과 자기 비하 속에서 활동하는 기생충이 이질감을 극복하고 동질성 속에서 희석되는 구조다.
 
그 증거는 반일 정서가 상당히 강하긴 하지만 한국인의 반일에는 일본의 혐한과 같은 다른 민족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과 멸시, 저주의 감정은 없고 오히려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태도는 이율배반적이다. 노골적인 반일 감정으로 일본에 대해 비이성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일본 문화를 향유하고 ‘일제’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반일의 거부감’도 거의 없고 오히려 그들의 성실함과 근면함을 본받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국인들에게 일본은 애증이 교차하는 일종의 ‘회색지대’이지, 결코 일방적인 혐오와 저주의 반일 감정만이 지배하는 적색 지대는 아니다. 이것은 내면적 동질감, 생물학적 동질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식민지가 무서운 건 강간범의 아이를 낳고 키우는 탁란의 실생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실존의 모순을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바로 여기에 한국의 반일과 일본의 혐한에 대한 차이점이 있다. 한국인들은 일본에 대해 해맑게 나이브하게 접근하지만, 일본인들은 그렇지 않다. 사실 한 국가(일본)의 국민이 뚜렷한 이유 없이 이웃 나라(한국) 사람들에 대해 끊임없이 역사적으로 혐오와 증오심을 견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고, 그런 사실은 매우 미스터리한 측면이 있다. 정한론, 탈아론으로 혐오 이론을 끊임없이 발전시키며 한국에 대한 혐오 정서를 뿌리 깊게 확산시킨 것은, 한국인의 반일 정서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더 집요하고 공포스럽게 집착하는 일종의 저주이자 ‘악감정’이다. 일본인들은 왜 유독 한국에 대해 그토록 증오하고 혐오하는 정서를 역사적으로 이어온 것일까.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 과거부터 아시아에 대한 우월의식을 역사적으로 축적해나간 정신적 우월성인 탈아론, 즉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편입된다는 ‘탈아입구(脫亞入歐)’ 사상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는 방법이다. 말 그대로 지리적으로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편입되면 인종적 우월성이 확보되고 증명된다는 의미를 새겨봐야 한다. 왜구로 시작한 해적 국가 일본은 서유럽 해상 제국과 그 변천의 궤를 같이해왔다. 서유럽 선진국을 하찮다 하지 못하지만, 과거에 그들은 해상에서 노략질하던 해적의 후손들이다. 이들과 동질성을 공유하고 싶은 일본의 탈아입구는 사상이 아니라, 지리적 승부처이며 혐한은 곧 지리적 이동 역사를 숨기고 감정적 대응으로 핵심을 비껴가겠다는 심산이 작용한 고도 세뇌다.
 
즉, 혐한은 곧 역사 왜곡을 희석하는 방어기제다. 식민지 피지배 민족인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떻게 길들여 왔는가. 그것은 바로 혐한의 대상으로서 목표가 된 우리 스스로 자기비하에 빠진 삶이 증명하는 역사 인지 부조화다. 그 견인차는 종교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정신성을 훼손하면서 제 살 깎아 먹도록 진화 발전한 역사의 수레바퀴 밑에 깔려 망국의 역사를 부정하고 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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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네
8
이 글은 반일 감정을 부추기기보다는 역사 인식을 회복하자는 문제의식이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감정적 분출이 아니라 구조적 분석이라는 점에서 불편하지만 꼭 읽어야 할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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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joon
8
일본의 혐한을 단순 감정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략과 방어기제로 본 시각이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탈아론을 현재 혐한 정서와 연결한 대목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불편함 자체가 이 글의 가치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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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kim
8
이 글의 핵심은 혐오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잊혀진 역사를 다시 직시하자는 데 있다고 봅니다.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이런 문제 제기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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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n
6
혐한을 일본 사회의 문제로만 한정하지 않고, 한국 사회 내부의 자기비하와 연결하신 부분에 깊이 공감합니다. 읽는 내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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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5
글을 읽고 나니 일본보다도 한국 사회의 무력감과 자기비하가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혐한을 분석하는 글이 결국 한국의 자화상이 되는 아이러니가 씁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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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56
5
혐한보다 더 무서운 건 우리가 스스로 역사 인식과 주체성을 포기해 왔다는 지적입니다. 언론, 사법, 교육을 동시에 겨눈 점에서 단순한 반일 글이 아니라 자기비판으로 읽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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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5
탈아론과 현대 혐한 정서를 연결해 설명하신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의 혐한이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오랜 사상과 국가 전략의 연장선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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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York
4
일본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한국의 언론과 사법 구조를 함께 짚으신 점이 이 글의 강점이라고 느꼈습니다. 외부 비판에 머무르지 않고 내부의 책임을 함께 묻는 태도가 설득력을 높인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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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민족
4
이 글의 핵심은 ‘혐오’가 아니라 ‘기억’이라는 점에 공감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게 만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할 방향으로 감정을 유도하는 구조를 해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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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5
한국 언론과 사법부에 대한 비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네요. 일본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내부의 부역 구조를 외면해 온 현실을 정확히 짚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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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azzang
3
읽다 보니 화살이 결국 우리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더 아프고, 그래서 더 설득력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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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g Byeon_72828
1
일본인들 몇명을 접하고 시간들여 우정을 나누고 싶으나 그들이 한국인과 너무나 다르다는 느낌을 자주 느꼈습니다. 상당히 계산적이고 이득과 실을 즉시 표시하는 대인 관계에 오래 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신회 관계가 아니고 힘의 관계 로는 삭막한 세상 버티기 힘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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