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클리셰. 일본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고루한 표현이다. 지리적으로는 부산과 대마도의 직선거리가 49.5km에 불과할 정도로 가깝다. 하지만 정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느끼는 거리감은 495,000km쯤 될 것 같다. 왜 그럴까. 흔히 일본을 섬나라 기질로 표현하면서 외지인에 대해 배타적이고 그들끼리 단결력이 무척 강하고 천황을 중심으로 수직 사회에 최적화된 나라라고들 한다.
물론 한국인에게도 일본 섬나라 기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들을 유독 이질적인 민족으로 생각하며 밀어내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 뿌리 깊은 적대감의 근저에는 아마도 일제강점의 피해의식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에게 일본은 곧 ‘반일’(反日)과 동격을 이룬다. 대부분 한국인은 일본과 반일을 동일시할 만큼 섬나라 일본에 대해 큰 반감이 있다. 정치의 보수와 진보를 구분할 때도 친일파와 극일파로 나눌 정도로 한국 사회의 모든 가치 기준은 ‘반일’의 강을 타고 흐른다. 아마도 여기에는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역사적 우월의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상들은 일본을 ‘왜구’로 부르며 우리보다 문화나 경제가 훨씬 뒤진 미개한 나라라고 생각했다. 그런 ‘비 문명국가’ 일본에 어쩌다 나라를 빼앗겼으니 자존심의 스크래치 정도가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든 반드시 경쟁에서 이겨야 할 ‘타도의 대상’이 된 것이 사실이다. 2025년, 1945년 광복절 80주년임에도 아직도 우리는 일본 식민지배를 두고 역사적 혼란과 내분에 빠져 있다.
일본이 조선을 강점하면서 온갖 비문명적 착취와 경제적 수탈을 한 것도 우리에게는 엄청난 피해이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식민지배라는 질기고 질긴 역사적 유증과 후유증이 아직도 우리 사회를 무겁게 짓누르며 ‘망령의 사슬’이 된 것이 더욱 두렵게 느껴진다. 아직도 한국인에게 반일은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역사의 무자비한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인에게 반일이 있다면 그와 동격은 아니지만, 일본인에게는 ‘혐한’(嫌韓)이라는 유사한 ‘반한’ 감정이 있다. 일본인들이 한국인의 ‘반일 감정’에 대해 ‘그토록 일본을 싫어하고 혐오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는 침략자의 안일하고 자기 편의적인 인식을 보여주지만, 한국인 또한 일본인들이 가진 ‘혐한’에 대해 극도의 반감과 분노를 나타내기도 한다.
으레 우리가 ‘혐한’이라고 하면 근거 없는 역사적 사실에 일본인들의 배타적인 사고와 사실 왜곡이 얹힌 ‘가짜뉴스’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인이 ‘반일 감정’을 내보이는 것은 일제강점을 당한 것에 대한 분노와 반감이 서려 있기에 용인되고 당연하게 여기지만, 일본이 한국을 혐오하고 ‘혐한’을 나타낸다는 것은 일부 극우주의자들의 준동쯤으로 여기며 하찮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의 ‘혐한’은 한국인이 가진 생각보다 훨씬 더 깊숙이 일본 사회를 지배하고 관통하는 하나의 사회적 흐름이 돼 가고 있다. 애국주의에 불타는 일부 우익그룹의 ‘한국 무조건 까기’ 차원이 아니라, 역사적 기원에 근거한 구체적인 사회적 현상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일본인들이 ‘혐한’을 단순히 극우의 일방적 주장이 아니라 보다 보편적인 이슈로 받아들이게 된 이유는 바로 그 ‘역사적 기원’에 있다. 그래서 일본 사회에 숨어 있는 혐한의 바이러스를 찾기 위한 첫 번째 출발점도 그 역사적 기원 규명이 돼야 한다. 사실 한국인들은 ‘백제가 그 우수한 문화를 미개한 일본에 전수해주었다’라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일본인들보다 우리가 우월하다는 막연한 심리적 ‘정신 승리’ 상태를 견지해왔다. 그런데 이 백제 문화 전수 역시 일본의 연구 결과다. 일본의 입맛에 맞게 요리된 날조된 역사 담론을 들고나오는 한국을 바라볼 때 일본은 편치 않다. 그 꺼림칙한 원죄와 뒤통수를 당기는 죄의식은 한국이 사실 그대로의 역사를 알 때까지 저들의 죄책감과 방치된 자의식을 계속 자극할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일본 또한 아주 오래전부터 ‘한국 멸시, 조선 멸시’의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의 조선 멸시 경향은 정한론으로 나타나 임진왜란의 철학적 동력이 되었고 그 후 식민지근대화론 등의 조선 침략 정당성의 근간이 되기도 했다. 정한론은 모두 수백 년 날조의 스킬을 터득한 일본이 문명의 새 장을 열었던 것을 자축하는 하나의 의식이다. 남의 것을 빼앗아 자기 걸로 만든 후, 왜구의 피를 씻어냈다고 하는 문명 자축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다. 문명개화를 위해 누군가를 살상하고 얻어낸 학문이 학문일 수 없고 역사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혐한은 향후 한일관계를 새롭게 규정지을 결정적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일본이 조선 침략의 철학적 배경으로 삼은 정한론이 식민지배의 근거가 되었다면 이 혐한은 앞으로 일본이 다시 한번 대륙 진출과 침략적 야욕을 드러낼 ‘숨은 발톱’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이번 시리즈에서 확인시켜볼 예정이다.
‘일본 發 혐한 바이러스’(부제:일본 지배계급의 비틀린 정치공학 도서출판선인 2021)의 저자 이현주 전 외교관은 자신의 저서에서 와세다 대학 일본어 수업의 한 에피소드를 소개한 바 있다. 일본 역사 수업 시간에 일본인 선생님이 일본의 고대문화를 설명하면서 한반도의 도래인들이 철기 등 여러 기술을 가지고는 왔지만, 주로 일본이 한반도에 문물을 전해주고 지배한 적이 있다고 설명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 근거로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4~6세기경에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 남부의 임나 지역에 통치기구 임나일본부를 세워 지배하였다는 학설)을 예로 들어주었다고 한다.
사실 임나일본부설은 당시 국제관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조작의 혐의가 짙은 내용과 사료에 모순이 있다는 점에서 현대에는 한일 양국 모두 ‘일본서기’ 속 임나일본부를 그대로 믿지 않고 한정적인 역할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상황이 이럼에도 일본의 명문 대학의 역사 시간에 임나일본부설을 외국인에게 역사적 기정사실처럼 가르치는 경향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를 단순히 한 일본어 선생님의 ‘과욕’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일본인들이 지금도 여전히 그들이 한반도에 그 우수한 문명을 전수해주고 오래전에 한반도 일부를 지배까지 했던 ‘우월적인 민족’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사실 임나일본부설은 고고학적 발굴이 많이 이뤄진 대륙 기마민족의 일본 정복설과 고대 중국과 신라가 일본의 서부 지역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을 모두 ‘왜’(倭)로 인식했던 역사기술에 근거해볼 때 그 신빙성과 사실성이 떨어지는 ‘설’이다. 그러나 굳이 임나일본부설을 들이대며 그들의 조상들이 한때 한반도를 지배했었다는 ‘정신 승리’를 하는 바로 이 지점이 2005년부터 발현된 혐한 바이러스와 그 DNA가 연결돼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좀 더 속을 들여다보면 한반도가 일찍부터 일본의 터였던 역사는 있다. 말 못 할, 그러나 실효 지배했던 역사, 그것이 고대사 임나일본부던 근대 조선 반도이던 핵심은 모든 역사가 내러티브화 해버린 현재로서는 어떤 게 사실이냐를 놓고 싸우는 게 무의미할 정도다. 한마디로 엉망진창이 된 역사다.
일본인들은 한국이 고대 우수 문화를 그들에게 전파한 역사적 사실을 애써 부인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 대해 느끼는 막연한 우월의식과 비슷한 감정이다. 근세의 일본 지식인들이 중국을 열등한 ‘잊을 수 없는 타자’로 설정하면서 일본의 우월성을 찾아내고 과도한 일본예찬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고대부터 일본인들에게 그 ‘잊을 수 없는 타자’가 되어 온 것은 조센징이었다. 우리가 어떤 역사를 거쳤던 엑기스를 뽑아내 일본화하고 근대 중국 침략과 함께 대륙까지 넘본 행위는 조선 침략과 동시에 진행된 일이다.
고대 ‘왜인들’은 그러한 콤플렉스 때문에 선진 문물과 제도는 중국으로부터 직접 도입한 것처럼 교묘하게 변조했다. 가야를 의미하는 가라(韓)의 한자를 唐(당)이나 漢(한)으로 쓰고 ‘가라’로 읽는 식으로 지명이나 사람의 이름을 원래의 것과 비슷한 발음의 다른 한자로 위장했다(‘일본 發 혐한 바이러스’ p34 이현주 도서출판선인 2021). 일단 위장된 중국의 이미지, 강역, 제도사 및 행정 역사는 뇌리에 박혀버렸다.
고대로부터 일본인의 심리 깊숙한 내면에는 부인할 수 없고 잊을 수 없는 타자 ‘조선’이 숨어 있었지만 지금도 그들은 그 역사적 사실을 거부하고 부인하려 한다. 심지어 왜곡하고 비틀어버리는 성향마저 서슴지 않고 내보이는데 그런 역사 심리적 콤플렉스의 발현이 바로 ‘혐한’의 뿌리가 되는 것이다. 자신들이 고치고 날조하고 첨삭하고 나서 이제 그 허점에 스스로 빠진 것, 그러나 일본의 논리를 수용한 한국인의 역사 부재 인식을 혐오하는 그들의 심정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의 거짓말을 믿고 잘 따르는 신자를 보는 사이비 교주의 분노라고나 할까. 반박하지 않는 완벽한 알리바이에 왜 화를 내는 것인지, 도그마를 찬양하던 시대의 악습이 바로 일본의 혐한 아래 잠자는 역사 인식 부조화가 있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콤플렉스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식 ‘저항’ 심리는 조선 멸시론으로 강고하게 이어져 왔다. 사실 조선은 초기만 해도 이종무 장군의 대마도 토벌 등으로 ‘왜’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누렸다. 15세기 초에서 15세기 말까지만 해도 무로마치 막부의 말기로서 힘이 약해진 막부가 조선과 대결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시기 세계는 요동치기 시작했고 대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과거의 질서는 깨질 운명에 처했다.
15세기 중엽부터 조선과 일본의 경제력 격차가 커지고, 16세기 말 임진왜란 직전 시기부터는 급속히 그 차이가 확대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본 사회는 서민들 간에 읽고 쓰기와 주판이 보급되고 상업과 금융업이 발달하였고 일본의 국력이 점차 강해지면서 양국 사이의 힘의 역전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고 규정지었다.
조선이 일본에 일방적으로 멸시당하는 처지가 된 것은 일본과의 국력 격차 확대에 따른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임진왜란을 통해 ‘조선은 일본의 정복 대상’이라는 인식이 정착하도록 고려말에서 조선 초 그리고 임진왜란 직전에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일본의 물정을 직접 눈으로 본 조선의 지식인들은 일본의 경제적 번영과 도시의 화려함에 놀라고 감탄했다고 기록물을 남겼다.
특히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일본이 조선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일본의 조선 멸시 관념은 더 자기 확증이 강한 고정관념으로 굳어졌다. 정한론의 원형인 일본 신공황후의 신라정벌 이야기는 허구적 이야기이지만,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진화해나갔다. 일본의 지배계급은 배타성과 혐한의 원형을 담고 있는 한반도 정벌에 관한 설화에 계속해 덧칠했다. 이 덧칠이 먹힌 게 근대의 일본 제국주의 역사관이다.
그리고 근대 역사학자들은 설화와 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왜곡시키는 ‘만행’을 스스럼없이 저지르게 된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그것을 일본 민중들에게 주입했다. 그렇게 해서 지난 1500년간에 걸쳐 덧칠돼온 한국에 대한 배타적 이미지가 ‘혐한 바이러스’가 되었다(‘일본 發 혐한 바이러스’ p51 이현주 도서출판선인 2021).
앞으로 전개될 일본의 ‘혐한’ 시리즈는 극우 일본인이 한국에 대해 느끼는 막연한 적개심과 반감을 소개하는 차원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일본인들의 구체적이고 일반적인 정서라는 점을 밝혀낼 것이다. 특히 우리는 지난 2005년을 전후해 일본에서 발현한 ‘혐한 바이러스’를 정확하고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초반 한국드라마 ‘겨울연가’로 일본에 한류가 처음 발흥했지만,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2005년을 기점으로 ‘혐한’이라는 강력한 반작용이 나타난 것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한류의 거대한 물결에 대한 반감과 배타적 인식으로 시작된 ‘혐한’은 그 후 일부 극우단체들의 단골 소재가 아니라 일반 국민의 보편적인 정서에도 부합하는 진화를 거듭하게 된다. 우익성향이 강한 아베 정권이 ‘혐한’을 일본의 주요 국가운영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불순한 의도 때문에 일본인들은 극우들의 혐한 이슈를 점차 정치, 사회의 보편적 주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아베 정권의 혐한 이슈에 길들여진 것이라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일본인들도 한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그들을 추월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본격적인 견제심리가 작동한 것이 ‘혐한’의 한 줄기로 나타난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음 회에서는 일본의 대표적 조선 멸시론자였던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를 중심으로 일본 지배 엘리트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는 ‘혐한 바이러스’를 계속 추적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