品
Logo
Corea든 Korea든, 품격은 이름보다 먼저다
Whatever the name—Corea or Korea—dignity comes first.
Whatever the name—Corea or Korea—dignity comes first.
지금
Now
751 Diaspora
유산
Heritage
인문
Humanity
未冷尸
Mirengsi
정치
Politics
언론
Media
Thumbnail
9월 18일 대통령이 고개를 숙인 기자회견.
category-icon

뉴욕 컬럼

칼럼
andante

진보는 왜 진보를 물어뜯는가

Views
0
2026. 09. 21
  • 대통령의 사과를 향한 진영 내부의 공격은 개혁을 명분 삼아 권력과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기득권화된 진보 세력의 자기모순적 행태입니다.
  • 조선 시대 사화와 당쟁부터 현대 정치사에 이르기까지, 내부 분열과 상호 비방으로 국력을 소진하고 위기를 자초했던 역사적 패턴이 현재에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 진영 내부의 갈등은 민생 문제 해결과 국가적 위기 대응이라는 본질적 과제를 외면하게 만들며,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외부 기득권 세력에게 오히려 이득을 안겨줍니다.
  • 진정한 진보는 서로를 공격하는 대신, 권력의 사과를 개혁의 동력으로 삼아 민생과 국가의 미래를 위한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추석을 얼마 앞둔 이 밤, 대통령이 고개를 숙인 사과가 온라인 커뮤니티와 방송, 당내 발언 속에서 다시 조롱과 의심의 재료가 되는 풍경을 보면 가슴이 먼저 먹먹해진다. 국민 앞에 “부족했다”라고 말한 사람을 향해, 같은 진영이라 불리던 이들이 칼을 거두지 않는 이 장면은 정쟁이 아니다. 이 땅의 역사가 여러 차례 반복해 온 병증이다. 왜 진보는 진보를 공격하는가. 무능 때문만은 아니다. 더 아픈 진실은, 한때 개혁을 자처하던 세력의 일부가 이미 자리를 지키고 체면을 지키며 영향력을 재생산하는 보수력으로 굳어버렸다는 데 있다. 진보의 가면을 쓴 기득권은 정권 교체 그 자체를 목표로 삼지 않는다. 그들은 정권이 바뀌어도 자신의 발언권과 도덕적 독점권이 흔들리지 않기를 원한다. 그래서 대통령이 낮아질수록, 사과할수록 더 세게 밀어붙인다. 낮아진 상대는 공격하기 쉽고, 사과는 약함의 증거로 재해석되기 때문이다.
 
이 습관은 어제 생긴 것이 아니다. 조선의 사림은 훈구파를 비판하며 등장했으나, 자리를 차지한 뒤에는 서로를 물어뜯었다.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는 모두 ‘올바른 선비’가 ‘그릇된 선비’를 쳐내는 명분을 걸쳤다. 동인과 서인, 남인과 북인, 노론과 소론의 대립은 처음에는 학문과 의리의 다툼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은 누가 더 순수한가, 누가 정통인가를 가리는 생존 게임이 되었다. 선조 앞에서 동인이 서인을 공격하고, 광해군 시기 북인이 남인을 베고, 숙종 대 환국이 반복될 때, 나라의 병력과 재정도, 민생도 그 싸움의 뒷전이었다. 임진왜란이 터지기 전에도 당파는 전란의 조짐을 함께 막기보다 상대 당의 허물을 먼저 찾았다. 왜적이 바다를 건너오는 동안에도 조정은 누가 옳았는지를 따졌다. 병자호란 앞에서도 척화와 주화의 명분은 자주 당파의 칼집이 되었다. 결과는 알려진 대로다. 내부의 칼이 먼저 나라를 깎고, 외세는 그 틈으로 들어왔다.
 
같은 패턴은 망국의 문턱에서도 반복됐다. 개화파와 수구파의 대립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개화파 안에서도 온건과 급진이 서로를 배신자로 불렀고, 독립협회가 해산될 때 지식인들은 외세보다 가까운 동지를 먼저 의심했다. 대한제국이 숨이 꺼져가던 시절, 위정척사의 언어와 개화의 언어는 각각 자기 진영의 순수성을 증명하는 도구가 되었다. 나라를 살리는 일보다 ‘누가 더 애국적인가’를 겨루는 버릇이, 결국 국권을 지키는 힘을 소진시켰다.
 
해방 공간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제를 함께 미워하던 독립운동가들이 임시정부 안에서 갈라섰다. 이승만과 김구, 좌와 우, 그리고 좌 안의 좌가 서로를 향해 기회주의자, 타협주의자, 밀정의 낙인을 찍었다. 해방된 조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것은 외세를 밀어내는 단합이 아니라, 누가 민족의 정통인지를 가리는 내부 재판이었다. 그 재판의 승자가 곧 민생의 승자가 되지는 않았다. 분단의 칼은 바깥에서만 온 것이 아니다. 안쪽에서 먼저 갈라진 자리가 그 칼을 받아 안았다.
 
현대 정당사도 이 습관을 고치지 못했다. 4·19 이후 민주당은 구파와 신파로 쪼개져 스스로 무너졌고, 군사정권은 그 분열을 호재로 삼았다. 김대중과 김영삼이 군부 독재에 함께 맞서던 시기의 동지애도, 권력의 문턱에 이르자 갈라졌다. 1990년의 3당 합당은 보수 쪽의 이합집산으로 기억되지만, 민주 진영 역시 이후 수십 년 동안 ‘누가 더 순수한 민주파인가’를 놓고 서로를 배신자로 만들어 왔다. 노무현 탄핵 정국에서 열린우리당이 갈라져 나온 것은 개혁의 확장처럼 보였으나, 동시에 같은 뿌리를 둔 세력이 서로를 낡은 것으로 규정하는 시작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말기에서 이재명 집권기로 이어지는 친문과 친명의 골은, 그 오래된 버릇의 최신 버전이다. 증축이 아니라 재건축이라는 비유, 핵심 지지층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이라는 진단은 새 언어처럼 들리지만, 내용은 조선 당쟁의 ‘사문난적’ 낙인과 닮았다. 너는 우리 편이 아니라는 선언이, 개혁의 이름을 빌릴 뿐이다.
 
9월 18일 기자회견은 그 점을 다시 선명하게 드러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지율 하락을 “결국 제 부족 탓”이라 했고, “국민은 언제나 옳다”고 했으며, 연임 의사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특검의 공소 취소 조항을 삭제해 진상 규명에 집중해 달라는 말까지 했다. 정치적으로 계산된 수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형식은 국민 앞에 무릎을 꿇는 쪽이었다. 그런데 같은 날,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말 아닌 실제 개혁을 해내야 신뢰가 생긴다”라고 했다. 검찰개혁이 유약해져 지지율이 떨어졌다는 진단은 이미 며칠 전부터 반복됐다. 개혁을 더 밀어붙이라는 요구 자체는 진보의 언어다. 문제는 그 언어가 대통령의 사과와 겹치는 타이밍에, 사과 자체를 무력화하는 방패처럼 쓰인다는 점이다. 집권 세력 내부에서 민심이 흔들릴 때 가장 먼저 칼을 꺼내는 사람이, 자신이 맡은 지방정부의 민생과 재정 논란 앞에서는 책임을 돌리는 모습은, 많은 지지자에게 원칙이 아니라 자기 정치로 읽힌다.
 
정청래와 김용민을 비롯한 일부 의원들의 행보 역시 같은 결이다. 검찰개혁의 속도, 경찰 견제, 인사 기준을 둘러싼 강경 발언은 지지층의 선명성을 자극한다. 그러나 선명성이 개혁을 밀어 올리는 동력이 되지 못하고 당·정·청의 호흡을 끊는 견제구가 될 때, 그것은 이미 개혁이 아니라 진영 내부의 서열 싸움이다. 유시민과 김어준의 언어는 더 오래, 더 깊게 스며든다. 지식인의 비평처럼 들리는 문장이 대통령의 사과를 비하하고, 일부 커뮤니티에서 조롱의 연료가 될 때, 지식은 이미 선동이 된다. 사과하는 권력을 조롱하는 습관은 약자에 대한 연민이 아니다. 자신이 도덕의 상위에 서 있다는 착각이다. 사림이 사림을 칠 때도 늘 그 착각이 있었다. 나는 공이고 너는 사라는 확신이.
 
이 갈라치기가 나라를 개혁하고, 경제를 살리고, 선진국 지위를 지키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는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동산 민심은 여전히 날카롭고, 인사 참사는 연이어 터지며, 반도체와 에너지와 환율과 안보의 시계는 국내 진영 싸움과 무관하게 돌아간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누가 더 순수한 진보인가를 가리는 재판이 아니다. 집값이 숨통을 트는지, 청년이 일자리를 갖는지, 권력이 특권을 내려놓는지, 나라가 외부 압력 앞에서 주권적으로 서는지를 묻는 것이다. 진영 내부의 칼질은 그 질문을 덮는다. 덮을수록 남은 보수 기득권과 일부 언론은 손쉽게 ‘역시 저들은 서로를 물어뜯는다’라는 프레임을 가져간다. 조선의 당쟁이 외척과 훈구 세력, 나중에는 외세에 어부지리를 준 것과 같다.
 
더 답답한 것은 그 내부 균열의 틈으로 오래된 외부 세력이 스며든다는 감각이다. 친일 잔재와 기득권 언론의 언어, 정교 유착 의혹으로 이미 사법의 심판대에 오른 신천지와 통일교 네트워크, 그리고 그 주변의 자금과 조직이 대통령 흔들기에 가세한다는 정황은 소문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정교 유착 수사에서 교단 수뇌부가 기소되고, 불법 정치자금과 신도 조직 동원 의혹이 드러난 바 있다. 문제는 그 수사마저 ‘누구의 편인가’로만 소비된다는 점이다. 진보가 서로를 물어뜯는 동안, 개혁의 대상이어야 할 기득권과 사이비 권력은 어부지리를 얻는다. 대통령 죽이기가 곧 기득권 지키기가 되는 역설이다. 망국 전야에 당파가 서로를 역적으로 부를 때, 실제로 나라를 잠식한 세력은 그 싸움 바깥에 있었던 것과 같다.
 
이 땅의 진보가 자신을 스스로 배신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개혁을 명분 삼아 동지를 적으로 만드는 일이다. 사림이 사림을 친 습관, 임시정부가 서로를 의심한 습관, 야당이 야당을 쪼갠 습관, 친노와 친문과 친명이 서로를 낡은 것으로 규정한 습관은 이념이 아니다. 자리를 지키려는 관성이다. 진보가 보수화된다는 말은 이념이 오른쪽으로 갔다는 뜻이 아니다. 개혁의 언어를 집어삼킨 기득권의 본능이 남았다는 뜻이다.
 
그래도 이 글의 끝은 저주가 아니라 소망이어야 한다. 조상들이 남긴 것은 당파의 승리 기록이 아니라, 나라가 끊기지 않기를 바란 마음이다. 당쟁의 기록은 두껍고, 그 때문에 무너진 나라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나라가 다시 일어선 까닭은, 서로를 치는 버릇보다 나라를 잇는 마음이 겨우 남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사과를 조롱하는 대신, 그 사과가 진짜 개혁으로 이어지는지를 감시하는 것이 시민의 일이다. 추미애든, 정청래든, 유시민이든, 당내 의원이든, 그들의 발언이 민생과 주권과 미래를 앞당기는지, 아니면 단지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고함인지를 가리는 것이 진보의 자기 점검이다.
 
지금은 서로를 물어뜯을 때가 아니다. 숙인 고개를 일으켜, 그 손으로 기득권을 실제로 깨는지를 지켜볼 때다.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조상의 보살핌으로라도, 이 나라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이 남아 있는 한, 갈라치기는 결국 민심 앞에서 초라해질 것이다.

댓글
( 0 / 500 )
조성철
7
진보가 진보를 공격하는 순간 개혁의 동력은 내부 소모전으로 바뀝니다. 비판은 필요하지만 동지를 적으로 만드는 순간부터 개혁은 멈춥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가 더 순수한가를 가리는 경쟁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실제로 바꾸는 성과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봅니다.
( 0 / 500 )
do_hyun
10
조선의 당쟁부터 현대 정치의 계파 갈등까지 반복되는 장면이 참 씁쓸합니다. 명분과 원칙을 앞세우지만 결국 자리를 둘러싼 경쟁으로 변질되면 국민은 뒷전으로 밀립니다. 진보라면 먼저 자기 진영의 권력욕과 도덕적 우월감부터 돌아봐야 합니다.
( 0 / 500 )
이민혁
8
대통령의 사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고 개혁의 속도가 부족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과하는 순간마저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비판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잘못을 바로잡도록 요구하되, 그 과정에서 정권 자체를 무너뜨리는 데만 몰두해서는 안 됩니다.
( 0 / 500 )
dany
6
‘진보가 보수화된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개혁을 말하면서 자신의 영향력과 지위를 지키려는 순간 기득권의 행태가 나타난다는 지적이 와닿습니다. 서로에게 칼을 겨누기보다 개혁의 결과로 국민에게 답해야 할 때입니다.
( 0 / 500 )
最强童顔
6
결국 국민이 평가하는 것은 누가 더 진보적인 말을 많이 했느냐가 아니라 삶이 얼마나 달라졌느냐일 것입니다. 집값, 일자리, 경제, 안보와 주권 같은 현실의 문제 앞에서는 진영 내부의 선명성 경쟁이 아무런 답이 되지 못합니다. 개혁의 기준을 다시 국민에게 돌려야 합니다.
( 0 / 500 )
marina
5
같은 진영 안에서 서로를 향해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기 시작하면 정치가 아니라 종파 싸움이 됩니다. 진보의 가치가 민주주의와 개혁이라면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하면서도 공동의 목표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국민은 내부 전쟁보다 국정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0 / 500 )
열화
4
진보의 가장 큰 적은 때로 보수가 아니라 진보 내부의 오만일 수 있습니다. 개혁을 주장하면서도 자신만 옳다는 확신에 빠지면 결국 국민과 멀어집니다. 비판과 견제는 필요하지만 그 목적은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국정을 만드는 데 있어야 합니다.
( 0 / 500 )
Eulji6
4
역사에서 당파 싸움이 남긴 교훈은 분명합니다. 명분을 앞세운 내부 분열이 반복되면 정작 나라의 문제를 해결할 힘이 사라집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진짜 진보인가를 따지기보다 국민에게 무엇을 해냈는지를 놓고 평가해야 합니다.
( 0 / 500 )
한라산
2
결국 역사는 누가 상대 진영을 가장 많이 공격했는지를 기억하지 않을 것입니다. 국민의 삶을 얼마나 바꾸었고, 기득권을 얼마나 실제로 개혁했으며, 나라의 미래를 얼마나 준비했는지를 기억할 것입니다. 진보가 진보답게 남으려면 자기 진영부터 끊임없이 성찰해야 합니다.
( 0 / 500 )
U_love90
1
대통령이 고개를 숙였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입니다. 사과가 보여주기인지, 실제 변화로 이어지는지를 냉정하게 지켜보면 됩니다. 사과마저 조롱하고 정치적 공격의 소재로 삼는 것은 감시와 비판의 본래 목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 0 / 500 )
최유미
0
공감합니다. 가장 무서운 적은 내부에 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불법계엄 개입 및 옹호하고 선거법 위반한 국힘당 의원들만 신난 상황입니다. 아직 해결해야 알 개혁들도 남았있습니다. 검찰, 언론 개혁이 이뤄진 대한민국을 꼭 보고 싶어요.
( 0 / 500 )
신고내용

신고내용을 선택해주세요
회원비난/비하/욕설글 및 댓글도배성 게시물저작권 침해/불법자료 유출허위사실유포개인정보 유출.사생활 침해무단광고/홍보음란물 및 도박 불법 광고물범죄행위 관련 글불법행위 관련 소개물품 판매 및 사기글악성코드 및 스파이웨어 유포기타 사유 및 운영진 판단
ID
PasswordShow password
비밀번호를 잊으셨나요?

Sign in with Google

All information provided by us is free of charge and is for the public good.

ⓒ 2022. P-UM.net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