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보수 언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재명 정부를 비판하는 기고문이 실렸다. 기고문은 한국이 미국에 맞서 좌향좌하고 있으며, 이재명 정부가 한미 동맹을 약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산 공군기지 압수수색, 쿠팡 개인정보 유출 수사, 통일부 장관의 발언 등을 근거로 제시하며 한국 정부의 외교·안보 노선이 미국의 전략적 이해와 충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고문의 필자들은 이재명 정부를 ‘급진 좌파’로 규정하고 한국 정치의 향후 방향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런데 이 기고문을 잘 따져보면 한국이 갑질을 하고 있어서 을인 미국이 힘들다는 의미로 들린다. 마치 미국에 주미한국군이 가 있는 것처럼, 한국 기업 쿠팡이 미국 국민의 정보를 유출한 실수를 범한 것처럼 징징대면서 몽니를 부린다. 적어도 기고문을 쓰는 작가라면, 논리가 이상하게 흐르다 못해, 헤게모니가 역전된 글로 가는 모순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일까. 실제는 아닌데 왜 이렇게 느껴질까. 미국이 급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과연 어디까지 정당한 것일까. 미국 보수세력이 한국 정치에 대해 보여주는 태도는 동맹국에 대한 조언이나 우려의 수준을 넘어 사실상 내정 간섭에 가까워, 오히려 이 논란은 미국 보수 언론과 정치권이 한국의 주권과 민주주의를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지, 자신들의 정치 행태가 바른지 되묻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보호령이 아니지만, 해방 후의 주한미군 정치의 시작은 또 하나의 식민지 총독부를 방불케 하는 관청의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81년 전의 이야기이다. 시간을 흘렀고, 한국 국민은 희생하고 노력했으며 미국의 과도한 간섭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한국 국민은 독립된 주권 국가의 시민이며, 정부는 한국 국민의 선택으로 구성된다. 한국의 대통령을 누가 선출할 것인지, 어떤 정당이 집권할 것인지, 어떤 정책을 추진할 것인지는 한국 유권자들이 결정할 문제다. 미국 보수 진영이 특정 정권을 ‘급진 좌파’라고 규정하고 그 정권의 존립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존중이라기보다 자신들의 이념적 기준을 타국에 강요하는 행위에 가깝다.
더욱이 미국이 한국 정치에 대해 보이는 이중적 태도는 오래전부터 반복됐지만, 역대 어느 한국 정부도 그에 반발하거나 시정하지 못했다. 관행과 실력 모두에서 패배, 아니 도전의 의사가 없었다. 이승만 정권에서 시작된 국회의원의 자질은 박정희로 넘어가면서 실로 무능한 사욕 추구의 삼류 정치인들을 양산했고, 민주화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은 그들을 보고 답습해 정치와 역사의 바로잡기에는 무관심했다. 이러한 내부 부패를 틈타 미국은 마음껏 그 지위를 누려왔다. 알아서 기는 한국 정치인들의 머리만 쓰다듬어 주어도 두 손을 조아리고 말 잘 듣는 개 노릇을 자처한 한국을 상대하기는 쉬웠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와 보조를 맞출 때는 민주주의의 모범 국가라고 칭찬하지만, 독자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곧바로 친중, 반미, 좌파라는 낙인이 등장한다. 이는 동맹을 수평적 관계가 아닌 상하 관계로 인식하는 냉전적 사고의 잔재다. 동맹은 협력 관계이지 종속 관계가 아니다. 미국의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곧바로 반미 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산 공군기지 압수수색 문제를 보자. 한국 수사기관이 국내법에 따라 수사를 진행하는 것은 주권 국가의 당연한 권한이다. 미국 보수 진영은 이를 마치 한미 동맹을 위협하는 행위인 것처럼 묘사했지만, 법 집행과 동맹은 별개의 문제다. 미국 역시 자국 내에서 발생한 사안에 대해 외국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 역시 자국 법률에 따른 수사를 진행할 권리가 있다. 이를 문제 삼는다면 그것은 동맹의 문제가 아니라 주권의 문제다.
쿠팡 개인정보 유출 수사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이 미국 자본과 연결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사를 면제받을 수는 없다. 개인정보 보호와 소비자 권익은 어느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중요한 가치다. 미국 기업이라고 해서 예외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법치주의 훼손이다. 그런데도 일부 미국 보수 인사들은 이러한 사안을 한국 정부의 반미 성향과 연결한다. 법적 문제를 정치적 프레임으로 해석하면 한국의 사법부가 알아서 정리해주고, 외교 라인에서 철저하게 고립되게 만든다. 지금까지 외교부에는 애국자가 생존할 수 없었고, 국정원에도 애국자는 없다. 이런 현실에서 국가의 체질을 바꿀 지도자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불가능을 뛰어넘으려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며, 특히, 미국과 일본을 추종하는 삼류 인생들, 하류 인생들은 똥과 된장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제 그 구분이 시작되었다. 지구 환경의 파괴와 그 결과가 주는 현실적 데이터를 통해서 과연 한국인이 만들어 온 시스템의 지속 가능 현상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있다. 인간에게 민주주의는 가장 이상적인 제도인가? 아이큐 두 자리의 인간이 유권자로서 투표하는 게 바람직한가? 감히 생각하지도 못할 질문이지만, 인간, 그렇게 똑똑하지 않다. 우리는 현 인류 문명 쇠퇴기를 가속화 할지 말지를 결정할 시대를 살고 있으니, 모든 인간이 같은 깊이로 사고한다는 착각을 심어 놓은 지난 세기, 지지난 세기의 살육에 대한 책임이 있는 자들로부터의 정치 간섭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그래야만 그다음 산을 넘는다.
문제는 미국 보수 진영이 한국의 정치적 선택 자체를 불편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한국 국민이 어떤 정당을 선택하든 그것은 민주주의의 결과다. 그런데 특정 정당이 집권하면 한미 동맹이 위험해진다고 주장하고 헌법 개정 논의까지 문제 삼는 것은, 사실상 내정 간섭이다. 늘 그래왔지만, 과거에는 미숙한 자존감 탓에 알지 못했고, 지금은 한국 유권자의 선택을 의심하는 미국 보수의 태도에 의문을 품을 수 있다.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미국이 정작 동맹국의 민주적 선택에 대해서는 불신을 드러내는 모습, 동시에 전쟁을 수행하는 위협성을 잘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 내 보수 진영이 동북아시아를 바라보는 시각과도 관련이 있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에게 한국은 독립적 행위자라기보다 미국의 대중국 전략을 수행하는 전초기지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자국의 국익을 중심으로 정책을 조정하면 곧바로 의심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한국의 외교는 미국의 국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한국의 국익을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듯 한국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미국은 오랫동안 자국의 필요에 따라 동맹 정책을 바꿔 왔다.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할 때도 있었고, 통상 문제에서 한국 기업을 압박할 때도 있었다.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에서도 미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한국 기업들에 불리한 정책을 추진한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한국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이 자국의 이익을 이야기하는 순간 그것을 동맹 이탈로 규정하는 것은 일방적인 논리다.
미국 보수 언론의 태도는 한국 사회 내부의 정치 갈등을 국제화한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한국의 여야 갈등은 한국 국민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 외국 언론이 특정 정파의 논리를 사실상 대변하면서 한쪽 편에 서는 모습은 국내 정치에 불필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건강한 동맹 관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정한 동맹은 상대방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관계에서 출발한다. 미국이 한국을 진정한 동맹으로 생각한다면 한국 정부의 정책을 비판할 수는 있어도 한국 국민의 선택 자체를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 더욱이 한국의 내정 문제를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종속시켜 해석하는 태도는 21세기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의 관계에 어울리지 않는다. 영원한 동맹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걸 이제 아이큐 두 자리 국민도 알게 해야 한다. 질 낮은 정치인과 질 낮은 정치로는 버티기 힘든 세상이 오고 있다.
이번 WSJ 기고문 논란은 단순한 언론 논쟁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도 일부 미국 보수세력이 한국을 독립된 주권 국가가 아니라,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주는 시대착오적인 사건이다. 한국이 냉전 시기의 약소국이 아니듯, 미국도 과거의 미국이 아니다. 절반의 분단국으로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를 가진 민주주의 국가이며, 스스로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가진 주권 국가다.
미국 보수세력이 한국 보수 수준과 동급 이미지인 ‘진상’으로 각인된다면 진정으로 미국이 원하는 ‘동맹’의 기준에는 부합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전 세계 어디에도 미국의 ‘동맹’은 일시적이되, 뒤통수를 얻어맞는 상황으로 변질하면서 미국 스스로 자기 목을 죄게 될 것이다.
한국 정부가 자기 발아래 있기를 바라는 구시대 정치 감각에서 벗어나, 한국 국민의 선택을 존중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동맹은 명령과 복종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 존중과 평등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세계만방에 자유와 평등을 가르쳤던 미국은 이제 한국 정치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워싱턴도 아니고 월스트리트저널도 아니고, 오직 대한민국 국민의 몫이라는 걸 인정함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