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은 왜 과학 문명이 싹트고 동양은 그렇지 못했나?”
유럽 철학사를 볼 때 유럽 대륙의 객관적 관념론(觀念論)과 영국의 주관적 경험론(經驗論)이 경쟁하면서 발전해 온다. 관념론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시작으로 인간의 경험을 넘어선 객관적 실재(實在)가 있다는 믿음이다. 초월적인 존재가 객관적인 형태로 존재한다는 견해이다. 이 초월적인 존재는 감각기관에 의해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유(思惟) 작용을 통해 파악된 것이다. 실제 세계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 다만 이상적 존재를 믿고 추구할 뿐이다. 창조주를 정점에 두는 종교에 가깝다. 플라톤을 통해서 서구 문명의 그 철학적 기반을 형성한 것은 경험적이고 과학적으로 보이는 서양인들이 사고의 저변에 종교적 도그마를 깔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과학 문명이 발달한 21세기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과학적 사실을 무시한 독단적인 이데올로기가 언제라도 올라올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에서 부는 White Supremacy와 Racism은 서양인의 비과학적인 성향을 반증한다. 백인이 여타 인종보다 유전학적으로 우수하다는 점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없다.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합리론(合理論)을 설파한다. 초월적인 신의 존재에 대해 의심한다. 철학은 합리적이어야 하고 그 합리성을 구현하는 방식은 의심이다. 의심해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존재를 출발점으로 사유(思惟)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주장한다. 창조주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그는 의심한다. 그리고 그가 남긴 명언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이다. 그는 신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의 실재성도 의심했다. "2+3=5"와 같은 수학적 진리도 의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카르트는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 그의 신은 교회의 권위를 통해 강요된 중세의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이성을 통해 발견한 신이다. 그는 유한하고 불완전한 인간은 결코 무한과 완전이라는 개념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다고 말한다. 완전하고 선한 신이 존재하므로 우리가 이성을 통해 명석하고 판명하게 인식한 수학적 진리나 외부세계는 가짜가 아니라 진짜임이 보증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성적 회의(懷疑)를 통해 신을 의심하면서도 다시 신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신을 경험적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다. 감각기관을 통한 경험적 확인보다는 관념적 확신을 더 선호한 결과인 것 같다. 인간의 이성이 가지는 근원적 한계, 즉 우주의 처음과 끝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바라볼 수 없었던 이유인 것 같다. 그리고 성경의 창조주는 그 처음과 끝을 이야기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존재를 믿는다는 점에서 적어도 철학적인 면에서는 플라톤의 아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세의 맹목적 신관(神觀)을 부정하고 이성과 사유를 통한 신관을 정립한 것은 근대 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실제 그는 이성에 의한 합리적 의심을 통해서 서구의 수학, 물리학, 의학, 생리학 그리고 광학을 발전시켰다.
이에 반해 영국의 경험론(經驗論)은 경험을 넘어선 객관적인 실재를 부정한다. 모든 것은 주관적으로 경험된다. 결국, 각자의 경험은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무엇이 실재하는가'라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 실험을 통해 증명할 수밖에 없었다. 증명은 다수 사람의 동의를 받는 것이며 합의된 증명이 실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론의 바탕은 필연적으로 토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결국 합의(合意)의 정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합의의 기본은 다수결(多數決)의 원칙이다. 그러면서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추후에 합의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런 사조를 고려하면 영국에서 근대 민주주의(民主主義)가 싹텄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던 것 같다. 20세기 철학자 Karl Popper가 과학을 검증 가능한 명제에 국한시키고 검증 가능하지 않은 명제들을 과학의 영역에서 배제시켜 버린다. 검증 가능한 특정 명제를 진리로 받아들일 때, 언제나 오류율(통계적 유의 수준)을 전제시킨다. 그의 친구 비트겐슈타인이 주장하는 "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하라는 명제"에서 말할 수 없는 것은 사실로 확인될 수 없는 것이며 이것은 검증 가능하지 않은 비과학적인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검증 가능한 것은 경험적으로 일일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주관적 경험 사실은 동일할 수 없다. 진리를 발견하는 과정은 언제나 실험자들 사이의 토의를 전제한다. 과학적 진리의 과정도 필연적으로 민주적 토의를 거치게 되는 것이다. Karl Popper가 그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열린 사회의 적을 대화와 토론을 허용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말한 것은 영국의 경험 철학과 민주주의 사상의 핵심을 간파한 말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한 것은 대륙의 관념론이 정립되기 전이며 진리에 대한 확신이 없었으며 필연적으로 많은 대화를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처럼 왕의 권위를 자연발생적으로 인정하는 천명(天命)사상이 없었으며 정치 권력을 종교화할 수 있는 자연발생적인 문화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합의 정신은 실체가 애매한 관념을 인정하지 않고 진리를 찾아가면서 대화의 장을 열어두는 사조에서 싹터 왔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제자백가(諸子百家)가 수많은 쟁명(爭鳴)을 통해서 그들의 사상을 확립할 수 있었던 것도 주나라 황실이 와해되면서 왕에 대한 천명(天命)사상이 와해되는 과정에 새로운 사상들이 꽃 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합리적이며 자연발생적이고, 경험적인 근거도 가지지 않은 중국 주나라의 천명사상이 얼마나 사람의 생각을 억압했는지를 반증한다. 동양은 왕권을 위한 천명사상 때문에 민주 혁명을 20세기가 되도록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인위적인 것이었으면 논쟁이 가능하나 선험적(先驗的)인 천명사상은 민중들 사이에 논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20세기 서구의 침략이 올 때까지 왕조체제 이외의 정치 형태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것은 동양의 비극이다.
대륙의 관념론이나 영국의 경험론이 객관주의와 주관주의라는 측면에서 기본적인 차이가 있으나 그들의 관심이 사물의 본질에 있었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것은 다르게 말하면 물질에 관한 관심을 꾸준히 가져왔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서구의 사상이 사물의 본질을 파악해서 활용하려는 의식은 꾸준히 싹트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대상에 대한 분석이 필요했으며 물질과 자연의 법칙을 발견해서 실생활에 이용하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 대륙이든 영국이든 물적인 진보는 과학적인 혁명으로 싹을 피우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실재성에 대한 관념론보다는 경험론적인 시각을 가진 영국이 과학적 사실을 실생활에 적용함으로써 산업혁명(産業革命)이 일어나고 결국 세계의 패권(覇權)을 쟁취하게 된 것이다.
반면에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의 유학(儒學)은 12세기 송나라 때부터 동북아 전역을 사상적으로 장악한다. 주희(朱熹)가 주자학(朱子學)을 체계화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이기론(理氣論)으로 우주를 설명하고 인간이 어떻게 윤리적으로 살아야 하느냐에 대한 답을 갈구한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법으로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주장한다. 사물을 관찰해서 원리를 발견하고 참다운 앎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주희의 최초 관심은 자연적 사물이었다. 그러나 결국은 자연의 현상에서 어떻게 인간의 행동 규범을 배울 것인가의 문제로 종착된다. 자연적 대상을 출발점으로 해서 인간의 수양론(修養論)으로 귀착되는 것이다. 자연적 사물을 주제로 진리를 탐구하고 완벽한 도덕적 인간, 성인(聖人)을 갈구했다는 점은 유럽 대륙의 객관적인 관념론이 완전한 신의 존재를 받아들인다는 면에서 닮아 있다. 두 사상 모두 윤리적 완성체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서양의 신은 주자학의 성인(聖人)과 윤리적인 면에서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15세기 명(明)의 왕양명(王陽明)은 자연 대상을 문제 삼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문제 삼고 있다. 마음의 체득을 통해서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려 했다. 그의 수행의 목적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이다. 아는 것은 행함의 시작이요, 행하는 것은 아는 것의 완성이다.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은 진짜로 아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안다는 것은 양지(良知)를 말한다. 가르치지 않아도 아는 것을 말한다. 그 대상은 양심(良心)이다. 그 양심이 인(仁), 의(義), 예(禮), 지(智)라고 말했다. 그가 불가적(佛家的) 사유를 하면서도 유가(儒家)라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는 또한 격물치지(格物致知)를 말하기는 했으나 주자와는 해석이 다르다. 물질에 대한 욕심을 바로잡아 참다운 지식에 이른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이런 해석은 무욕(無慾)을 전제로 보편적인 인간의 길, 도(道)를 이야기하는 도교(道敎)나 탐욕을 번뇌(煩惱)의 시작으로 전제하고 수행으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불교(佛敎)와 매우 닮았다. 그러나 사회적인 관계를 중시하고 인간관계를 유교적인 윤리로 만들어나가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는 유학자임이 틀림없다. 양명은 그의 학문을 성인(聖人)이 되는 공부로 정의한다. 이 점은 격물치지를 바탕으로 윤리적인 완전한 인격자, 즉 성인(聖人)이 되기를 추구했던 주자와 동일하다.
12세기 주희의 주자학이 동북아 전체를 장악한 이래 20세기 서구에 의해서 식민지화될 때까지 동북아의 학문적, 정치적 주류는 격물치지(格物致知)를 바탕으로 성인(聖人)이 되고자 했던 주자학이었다. 15세기 양명은 주자학의 독주를 막고 유학의 해석을 폭넓게 한 점에 의의가 있다. 주자가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을 분리해서 생각했다면, 왕양명은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을 하나로 보았다는 점은 당시 부패한 관리들에게 내려치는 철퇴와도 같았을 것이다. 이 시대에도 그의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정신은 여전히 매우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선생이 말씀하신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라는 말은 왕양명의 지행합일 사상과 궤를 같이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기서 동양의 성리학(性理學)과 양명학(陽明學)이 유럽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과 그 발전 양상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동서양의 두 사조 모두, 실재에 대한 관념론과 경험론의 긴장 관계 속에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이 서양은 물질의 본질을 밝혀 분석하고 모르는 사실을 하나씩 밝혀 결국은 실생활에 이용하려고 했다면 동양은 자연 대상을 연구의 시초로 삼되 결국은 궁극적인 관심은 어떻게 성인(聖人)이 되느냐였다. 이렇게 보면 근본적인 관심 자체가 다른 학문 사조다. 서구가 축이 되는 관념론과 경험론의 두 사조가 물질 그 자체에 관심이 있었다면 동양의 두 사조는 자연 사물에 관한 연구를 성인(聖人)이 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 주자는 물질 현상 속에 도덕적인 원리를 발견하려고 했으며 양명은 물질을 욕심을 배제하는 수양(修養)의 수단으로 사용하려 했다. 동양의 학문은 윤리적인 완성자인 성인(聖人)이 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러한 사조를 고려할 때, 동양이 필연적으로 물질적 풍요와 과학적인 발전이 서양만큼 될 수 없었다는 점은 충분히 예견될 수 있는 부분이다.
서구의 물질문명은 결국 군사적 무기의 발전으로 가게 되고 동양은 서구의 침략에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동양의 성인(聖人)에 대한 집착은 물질문명에 대한 경시를 가져오고 결국은 대포를 앞세운 서구의 침략이라는 필연적 결과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성인(聖人)을 추구하는 유학(儒學)이 동양의 주요한 사회, 정치 철학으로 자리 잡는 한, 세계 패권 구도 속에 동양의 위치는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다. 현재 유학의 문제는 어떻게 성인(聖人)이 되고자 하는 학문에서 과학 문명을 중시하는 학문으로 변형되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성인(聖人)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유학에서 탄생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고 본다. 윤리적인 인간이 성인(聖人)이 아니라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물건을 만들어 내는 인간을 성인(聖人)으로 정의하는 새로운 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것은 과학자가 그 정점에 있어야 함이 분명하다. 새 물건을 만들어 내는 과정, 수단과 방법의 도덕성 그리고 새로운 발명이 자연환경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동양사상의 2500년 축적된 윤리성이 과학자의 인격의 저변을 형성해야 할 것이다.
20세기 이후 꾸준히 답습해 온 서구의 문명을 철학적인 기반 없이 발전시킬 것이 아니라 동양 사상의 윤리적인 기반 위에 세워 보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 본다. 인격의 완성체라는 성인(聖人)이 되어야 한다는 윤리적 구속에서 벗어나 일부 수행자(修行者)의 인격 도야(陶冶)가 아니라 과학의 합리주의를 기반으로 해서 물질문명을 더욱 발전시키며 사회 대중을 계몽(啓蒙)할 수 있는 윤리 사상을 창조하는 데 전념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윤리적 존재가 성인(聖人)이 아니라, 인간을 편리하게 만드는 과학기술을 만들어 내는 누구나 존경받는 성인(聖人)이 될 수 있음을 확인시키는 것이 이 시대의 주요한 유교 문명권의 사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주체적이며 세계를 주도하는 도덕적 과학 문명이 동북아에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