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혁신대학은 새 이름이지, 새 원리는 아니다. 교육부가 성장 가능성 있는 사립대를 골라 등록금·입시 규제를 완화하고 포괄 재정을 몰아주겠다는 구상은, 일정 수준 이상 대학을 글로벌 교육·연구 거점으로 키우겠다는 말이다. 선정 기준과 대학 수, 지원 규모, 특례 범위는 아직 없다. 그러나 방향은 분명하다. 돈만 주는 사업이 아니라 대학 운영의 핵심 규제를 특례 대상으로 올리겠다는 점, 연구지원을 개인·과제 단위에서 대학 단위 포괄지원으로 바꾸겠다는 점이 차이라고 한다. 대학 특성에 따라 연구중심, 지역·산학연, 교육혁신, 성인·직업교육으로 재원을 나누는 방안도 함께 거론된다.
그 차이가 작지 않아 보여도, ‘잘하는 대학을 골라 지원한다’는 문장 자체는 20년 넘게 반복됐다. 1999년 BK21이 세계 수준 대학원을 목표로 사업단을 집중 투자한 이후 NURI, LINC, PRIME, CK, ACE가 이어졌다. 2019년에는 목적별 사업을 대학혁신지원사업으로 묶으며 일반재정 비중을 키웠다. 가장 가까운 최근작은 글로컬대학30이다. 비수도권 대학을 선별해 5년간 대학당 약 1천억 원을 주고 규제개혁을 우선 검토한다는 점에서, 재정과 특례를 한 대학에 묶는 구조가 같다. 초점이 다를 뿐이다. 글로컬대학은 지역·산업의 동반 성장을 내세웠고, 자율혁신대학은 공개된 스케치만 보면 성장 가능성 있는 사립대의 글로벌 도약에 가깝다. 지방을 살리겠다는 말과 사립 강자를 더 강하게 만들겠다는 말은 같은 정책처럼 들려도 도착지가 다르다.
과거 사업의 성적표는 이 차이를 더 선명하게 만든다. BK21은 논문 편수와 연구 제도의 골격을 바꿨다. 양적 성과는 뚜렷했으나 질적 도약과 사업 종료 뒤 자생 구조는 대학마다 갈렸다. NURI는 지방대 인력양성과 지역 선순환을 내걸었다. 교육만족도와 일부 대형 사업단의 취업률은 움직였지만, 일자리의 질과 출신 지역 잔류율에서는 전환이 확인되지 않았다. PRIME 역시 단기 정원 재배치와 산업연계 지표는 바꿀 수 있었으나 장기 경쟁력이나 지역 정착으로 이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정부가 특정 기능에 자원을 쏟으면 그 기능의 숫자는 올라간다. 그 숫자가 인구가 빠지는 지역의 대학을 지탱하는 구조로 남는가는 다른 문제다.
그 다른 문제의 핵심이 학령인구다. 통계청 추계에서 6~21세 학령인구는 2022년 750만 명에서 2040년까지 337만 명이 줄어든다. 18세 인구는 48만 명에서 26만 명으로 떨어진다. 2040년 18세는 2022년의 54.7% 수준이다. 지금의 모집인원을 유지한 채 서울·수도권 대학이 먼저 채운다면 지방권 대학은 정원의 상당 부분을 비워 두게 된다. 유학생과 성인학습자로 구성을 넓히는 길은 열려 있으나, 18세 인구 반토막을 메울 대체재가 되기는 어렵다. 유학생은 교육 질, 주거, 체류 관리라는 별도의 비용을 동반하고, 성인학습자는 학령기 정원과 같은 방식으로 재정을 채우지 못한다. 대학들이 이미 등록금 인상으로 숨구멍을 찾는 이유도 여기에 가깝다. 2026년 4월 공시 기준 4년제 일반·교육대학 192곳 중 67.7%가 등록금을 올렸고, 사립대 평균 등록금은 연 823만 원대다. 법정 인상 한도는 직전 3년 평균 물가의 1.2배로 더 조여져 있다. 규제 완화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배경이자, 동시에 학생 부담으로 전가될 위험이다.
그래서 이번 구상은 혼자 오지 않았다. 사립대학구조개선법이 2026년 8월 15일부터 시행됐다. 재정진단으로 경영위기대학을 지정하고, 이행계획을 받아 구조개선을 명령하며, 회생이 어려우면 해산·청산 경로를 연다. 이행 대학에는 자산 처분과 적립금 사용 제한을 완화하고, 해산 법인에는 잔여재산의 일부를 해산정리금으로 주거나 공익·사회복지법인 출연을 허용한다. 폐교 교직원과 편입을 포기한 학생에게는 잔여재산 범위의 위로금을 마련했다. 한쪽에서는 문을 정리할 절차를 만들고, 다른 쪽에서는 가능성이 보이는 사립대에 규제와 재정을 몰아주겠다는 이원화다. 같은 시기 혁신지원사업은 성과를 못 내면 최대 5년 퇴출을 명시하고 정원 감축 대학에 가산점을 준다. RISE는 지자체·대학·중앙의 협력으로 지역 인재양성의 권한을 아래로 내리려 한다. 정책 언어는 자율과 혁신이지만, 실제 지형은 선별 육성과 선별 퇴출이 동시에 진행되는 압축 조정기다.
자율혁신대학의 실효성은 그래서 이중으로 읽어야 한다. 선정된 소수 대학의 연구 산출, 국제화, 학사 유연성, 산학 계약은 올라갈 수 있다. 과거가 그것을 보여주었다. 관건은 등록금·정원·학제 규제를 실제로 얼마나 푸는지, 포괄 지원이 사업 종료와 함께 사라지는 한시 보조금에 그치는지다. 더 어려운 지점은 선정되지 않은 대학이다. 사립대 전체의 위기를 이 정책이 되돌리기는 어렵다. 인구가 줄어드는 시장에서 모든 대학의 현재 규모를 유지하는 반등은 산술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글로컬대학이 이미 비수도권에 재정과 특례를 밀어 넣은 상황에서, 자율혁신대학이 다시 성장 가능성 있는 사립대를 고르면 수도권 중상위 사립과 지방의 상대적 강자가 겹칠 가능성이 크다. 그때 지방의 중하위 사립대는 구조개선법의 대상이 되고, 그 지역의 고등교육 접근권은 대학 하나의 경영 문제가 아니라 지역의 공공 인프라 문제가 된다.
지방대학을 살리는 정책은 대학 지원사업의 확장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목표는 둘로 나눠야 한다. 글로벌 연구·교육 수월성은 소수에 집중하되, 지방대 정책의 1차 목표는 그 지역의 필수 고등교육과 평생직업교육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어야 한다. 모든 지방대를 서울대의 복제본으로 만들려는 순간 정책은 실패한다. 거점국립대, 특성화 사립, 전문대학의 역할을 권역 단위로 재배치하고, 중복 학과는 줄이되 간호·보건·공학·교육·공공서비스처럼 지역 일자리와 붙은 기능은 지켜야 한다.
정원 감축과 재정 보전은 한 세트여야 한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데 등록금 의존 구조를 그대로 두면 남는 선택은 질 하락이거나 부실 운영이다. 감축한 정원만큼 운영비를 보전하지 않는 구조조정은 지방대만 먼저 말린다. 규제 특례 역시 홍보용이 아니라 운영 단위로 열려야 한다. 학제 유연화, 공동학위, 계약학과, 성인학습 전담 트랙, 유학생 질 관리가 알맹이다. 등록금 자율화는 국가장학·지역인재장학·생활비 지원과 같이 움직이지 않으면 과실은 대학 재정에 남고 비용은 가계로 전가된다. 유학생과 성인학습자는 보조축이지 주축이 될 수 없다. 학령기 정원 규칙을 그대로 적용한 채 성인학습 전환을 말하기도 어렵다.
실패의 출구도 분명해야 한다. 구조개선법은 그 시작이다. 다만 해산 특례가 법인 재산 회수 통로로 변질되지 않도록 비리 관련자 배제, 학생 편입, 교직원 보상, 연구 기록 이관을 실제로 집행해야 한다. 좀비대학을 방치하는 것도, 급히 문을 닫아 재학생을 거리에 세우는 것도 정책이 아니다. 성과 지표 역시 논문·취업률·충원율의 단기 합산에서 벗어나, 사업 종료 뒤에도 기능이 유지되는지, 졸업생이 지역에 남는지, 지자체와 기업의 대응 투자가 집행됐는지를 봐야 한다.
자율혁신대학이 실패하는 가장 쉬운 길은, 이를 지방대학 위기의 해법처럼 포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해법이 아니라 선별이다. 선별은 필요할 수 있다. 인구가 반으로 줄어드는 나라에서 모든 대학 간판을 보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선별의 기준이 이미 강한 사립대의 글로벌 지표에만 맞춰지면 지방은 고등교육의 공백 지대가 된다. 지방대학을 살린다는 것은 대학 간판을 모두 남기는 일이 아니다. 그 지역 청년이 수도권으로 나가지 않고도 배울 수 있는 전공과, 다시 돌아올 일자리와, 대학이 지역의 병원·공장·공공기관과 연결되는 구조를 남기는 일이다. 정부의 이번 전략은 그 구조의 일부를 강화할 수 있다. 구조 전체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선정 대학의 숫자보다, 특례의 실제 범위와, 탈락 대학이 있는 지역의 학생을 누가 어떻게 받느냐가 이 정책의 성패를 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