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낳은 두 박씨(朴氏)
윤석열 정부 시절인 2023년 말, 박지향(朴枝香, 1953년생) 서울대 서양사학과 명예교수가 동북아역사재단 제7대 이사장으로 임명됐다. 임기는 2026년 12월까지 3년이다. 영국사를 전공한 서양 사학자가 동북아 역사 문제와 독도를 다루는 기관의 수장으로 선임된 건 이례적일 뿐 아니라 있어서는 안 될 참사로, 비극은 이미 이때 잉태되었다.
동북아 역사는 동북아 문자인 한문 사료를 해독하지 못하는 자가 수장으로 앉아서는 안 될 자리지만, 누구 하나 피켓 들고 두건 쓰고 시위하는 재단 내 인사가 있었는지 기억을 떠올려보자. 누가 와도 낙하산, 그저 내 자리보전 하나만도 버거운 현실일 노릇이니, 이런 기관의 존립은 무의미한 세금 낭비가 아닐까. 대한민국 국민 중 단 한 사람도 동북아 역사 왜곡을 연구하는 일과 전 세계 식민지 패권 제국의 악의 축이었던 영국과의 관계성을 논하지 못한다. 그 역사를 풀자면 수백여 권의 책이 나와도 모자라는데, 그들의 경영 논리를 체득한 자가 무엇을 위해 임기를 다하려는지 의문이다. 박지향 인사를 역사 교육의 문제로 확장해 보면, 한국인의 의식 수준을 떨어뜨리고 이념의 감옥에 가두는 프로파간다가 왜 되풀이되는지 독자들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윤석열과 김건희는 무식하면서도 욕망을 감출 줄 모르는 뻔뻔함을 오히려 무기로 쓰며 매관매직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자들로, 수치심 따위 모르는 똑같은 자들이 많이 줄 섰을 것이다. 그런데, 있어서는 안 될 인사가 어디 박지향 하나뿐이랴. 서양사 전공자가 동북아재단 이사장에 임명된 것만 이례성을 띤 건 아니었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대규모 인파에 대비한 안전관리계획을 마련하지 않고 재난 안전상황실도 적절하게 운영하지 않아 인명피해를 초래했다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받았던 용산구청장, 박희영(朴熙英, 1961년생)도 주제넘은 인사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국 국적을 선택한 아들 둘을 둔 박희영은 대한민국에서 피선거권을 가질 자격이 없다. 친일 반민족 부역자들을 처단하지 못한 죄도 국가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데, 이렇게 삼류 공직자들이 남발하는 관행을 뿌리 뽑지 못하고 박희영처럼 미국물 먹은 자들이 토착 왜구와 함께하며 윤석열과 김건희를 보좌하도록 한 정치권엔 나이만 먹은 욕망의 화신들만 보인다. 이런 세상에서 국민은 홍위병이요, 개돼지 등신이다. 병역의 의무를 회피하고도 허위사실 공표로 몰아갔던 정치권, 조리돌림이 무서워 찍소리도 못한 민주당도 이제 슬슬 자정 능력을 갖춰야 한다. 결국, 박희영은 5개월의 수감 생활을 끝으로 1심 재판에서 무죄를 받고 보석금 5천만 원과 함께 석방 다음 날 구청장 업무에 복귀하는 쾌거를 얻었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썩은 쓰레기더미 위에 핀 곰팡이와도 같다는 것,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대한민국에서 학벌은 출세의 다른 말이지, 민족주의나 국민 공존의 철학을 펼칠 사명감이 투철한 자를 키워내기 위한 배움의 목적도 수단도 아니다. 싸구려 삼류 인생관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이 출세 지향을 당연시하고, 밑바닥 인생인 김건희 패거리를 만들고 키우고 명예를 거는 저질 부류들은 이제는 공직에 그만 나오도록 법적으로 제재해야 한다. 아, 곰팡이가 여전하지,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이런 자들이 태어나지 않도록 부모가 되려는 젊은 부부가 생각이라는 걸 해야 한다. 어쩌다가 내란이 실패하고 어쩌다가 수출액을 경신해도 체질 개선이 없어 이대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무리다. 지금 불안한 샴페인 잔을 들지 말고 생각이라는 걸 해야 하는 때다.
박지향 사건의 본질
박지향은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공저 참여와 식민지 협력자에 대한 동기 분석·이해 강조, 일본 우익과의 토론을 환영하겠다는 발언 등으로 뉴라이트 성향이라는 평가가 뒤따랐으니, 이런 성향을 잘 알고 일본과의 융화를 위할 요량으로 박희영을 동북아재단에 앉힌 것은 아둔한 윤석열의 인사일 리가 없다. 누가 어느 자리에 앉아야 친일의 텃밭을 넓히고 소문 무성한 내각제까지 갈 수가 있을까. 박지향은 그에 걸맞은 행보를 위한 이론적 발판을 닦을 인물이었다. 역사를 잃은 민족의 비애는 역사를 지켜야 할 연구기관에 가해자의 대변자를 앉히고 피해자를 짓밟은 자를 추앙하는 데서 드러난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건국절 논란도 한 번 지펴볼 만한 주제다-한 번도 제대로 인식한 적 없는 해방 전후 역사를 ‘再’ 해석한 인물이 바로 박지향으로 2004년 가을에 발의하고, 편집위원 4명이 1년 넘게 논문을 선정해 2006년 2월 책세상에서 출간한 책이 바로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다.
박지향은 1, 2권의 공동편집자였으며, 1권의 「머리말」과 2권 5부 「한국의 노동 운동과 미국, 1945~1950」를 집필했다. 한국의 ‘1945~1950’을 미국의 노동 운동과 비교한다는 전제는 무엇을 기준으로 가능했는지 몰라도 역사의 기본기를 제대로 갖췄다면 이 시기의 한국과 미국은 비교가 성립할 수 없다고 본다. 하물며 노동 운동이라니, 정신이 있는 자인가.
서문은 더 하다. 기존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 제시한 민족·민중 중심의 역사관을 재검토하자는 게 ‘재인식’ 출간 목적이다. 민족을 역사의 절대적인 판단 기준으로 삼는 시각을 비판하니, 공동편집자 이영훈과 찰떡궁합이다. 아마도 이영훈을 동북아재단 이사장에 앉히기에는 너무 속이 보였다고 생각했기에 차선책으로 앉힌 게 박지향이 아니었을까 상상해 본다. 김부겸의 매제, 이영훈은 2026년 8월 13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이진숙이 주최한 5·18 관련 포럼에서 “1980년 5월 광주에서 있었던 소요 사태”라고 불렀으며,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것은 “딥스테이트”라는 음모론을 주장했다. 한때는 운동권에서 김근태를 도왔고, 구로공단의 위장 취업과 노동 운동·민주화 운동을 했으며 지곡 서당에서 한문까지 배운 인물이 지금 이승만 TV 유튜버다. 무엇이 전후 한국인들의 정신세계를 이처럼 이념으로 나눠 놓은 것일까.
동북아역사재단은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2006년 9월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진 공공기관이었기에, 박희영의 역사관이 기관 설립 목적과 긴장 관계에 놓인다는 지적이 일찍부터 제기됐다. 입을 가리고 뒤에서만 쉬쉬하는 때에, 2025년 12월, 이재명 대통령의 교육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충돌이 발생했다. 대통령이 『환단고기』를 왜 연구하지 않느냐고 묻자 박지향은 “재야 사학자들의 주장보다 전문 연구자들의 이론이 더 설득력이 있다”라고 답했다. 학계에서 『환단고기』를 위서로 보는 시각이 우세한 것은 항일 무장 독립군들이 역사를 후대에 전하려 찍어낸 환단고기를 환수하면서 역사를 알리려 했던 기억마저 말살했고 그 살육의 증거를 없애기 위해 동원된 일꾼들이 바로 어용학자들이다. 즉, 일제의 역사 왜곡의 주장을 견지하는 주장이 대를 물리며 기정사실로 해 온 것이다. 사실과 기정사실은 다른 것이다.
이 답변이 대통령과 정면으로 충돌한 지 사흘 만인 12월 15일 교육부가 독도·울릉도 관련 사업비 사용 의혹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개시 시점과 업무보고 직후라는 타이밍은 표적 조사라는 의혹을 낳았지만, 본질은 이 표적 조사가 모든 기관에 퍼져 있을 일이라서 환단고기 문제가 발단은 아니다. 그래도 전 같았으면 이 정도에서 기관장을 사퇴하고 물러났겠지만, 내란도 가담한 사법부가 무엇이 두려우랴. 2026년 7월 28일, 교육부는 예산 남용 등을 이유로 박지향에게 직무 정지를 통보했다. 박 이사장은 이에 불복해 본안 소송과 함께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같은 해 8월 21일,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강우찬 수석부장판사)는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했다. 재판부는 “신청인의 직무를 정지시켜야 할 필요성과 상당성이 존재하는가에 관해 충분한 소명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법원은 교육부가 제시한 횡령 등의 사유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고, 직무 정지의 주요 사유로 삼은 예산 전용 역시 규정에 따라 처리된 것으로 본다는 취지였다. 이 결정으로 박 이사장은 직무에 복귀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법원 결정 이후에도 교육부는 해임 절차를 계속 추진했다. 8월 말 교육부는 동북아역사재단에 공문을 보내 이사장 해임 건의 처리를 위한 이사회 개최를 요구했고, 야당 의원들은 청와대 정무수석실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박 이사장 측은 교육부 장관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할 의사를 밝혔다.
민주당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면서도 박 이사장의 역사관과 자격 논란은 해소되지 않았다며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2026년 11월 1일, 교육부의 즉시항고가 기각되면서 박 이사장의 직무 수행 유지가 재확인됐다. 임기는 12월까지 남아 있었고, 본안 소송은 계속 진행 중이다. 법원은 형식적 소명 부족을 이유로 직무 정지의 효력을 정지시켰지만, 조사 개시 시점의 정치적 맥락과 이전 정부 임명 기관장의 이념적 위치를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채 절차적 판단에 머물렀다. 결과적으로 윤석열 정부 시절 임명된 역사 기관 인사 구도가 사실상 유지되었고, 국민이 선출한 정부의 정책 방향은 지연됐다. 민주당은 무능했고, 친일 사법부는 원래 뻔뻔했다. 이 구도로는 대결의 의미가 없다. 현재, 이재명 대통령이 던진 질문은 한국 역사 본질을 꿰뚫은 지적이다. 하나의 질문으로 한국인은 내란을 옹호하고 그 내란의 위계질서에 따르는 자들과, 그에 대적하는 자들로 모세 앞에서 홍해가 갈라지듯, 국론과 국가 정체성은 나뉜다. 한국인은 생각하고 사고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념 앞에서 편을 가르는 기생 동물이다.
사법부의 자기보존
대법원장 조희대 체제하에서 중도·보수 성향 대법관 비중이 확대된 이후, 이러한 관성은 더욱 뚜렷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관 제청 거부, 사법 개혁안에 대한 신중론 강조, 국정감사장에서의 적극적 발언 등 일련의 행보는 ‘사법부 독립’을 내세우면서도 결과적으로 기존 인사권과 위계 구조를 지키려는 태도로 해석된다. 독립성은 외부 압력으로부터의 자유여야 하지만, 그것이 엘리트 네트워크의 자기보존으로 치환될 때 국민 주권과 충돌한다.
더 넓은 차원에서 보면, 최근 사법부의 여러 판단들은 ‘사법의 정치화’가 특정 방향으로 기울어 있음을 시사한다. 일부 정치 사건에서 보이는 선택적 신속 처리, 내란 관련 재판에서의 지연과 감형 경향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이번과 같은 행정 소송에서의 기득권 보호 경향이 겹치면서, 사법부가 민주적 정권 교체의 결과를 완충하거나 지연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법관 대표회의 등이 사법 개혁 법안에 대해 독립성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독립성이라는 가치는 엘리트 네트워크의 자기 보존과 구별되어야 한다. 공공기관의 수장이 국민이 선출한 정부의 정책 방향과 충돌할 때, 법원이 절차의 엄격함만을 강조하며 현상 유지를 선택한다면, 그것은 중립이 아니라 보수적 기득권의 제도적 재생산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역사 기관의 인사와 운영은 행정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어떤 과거를 기억하고, 어떤 미래를 지향할 것인지를 규정하는 정치적 행위다. 박지향 사건에서 드러난 것은, 정권 교체 후에도 이전 정부의 이념적 인사를 쉽게 교체하기 어려운 구조, 그리고 그 구조를 법원이 결과적으로 뒷받침하는 현실이다. 이런 판결이 반복될수록 사법부는 국민의 심판을 받은 정치적 변화를 지연시키는 ‘보수적 안정 장치’로 인식될 위험이 커진다. 절차적 정당성을 넘어, 그 절차가 누구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지를 묻는 비판적 시선이 필요하다. 사법부가 스스로 엘리트 재생산의 기제가 아니라, 민주적 변화와 공적 책임에 응답하는 기관으로 재편되지 않는다면, 국민의 신뢰는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사법부는 민주화 이후에도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했다. 과거 군사정권 하에서 길들여진 관료적 문화와 엘리트 의식은 형식적 독립성 확보 이후에도 내부적으로 재생산되어 왔다. 법관의 임용과 승진이 소수 엘리트 집단 내에서 폐쇄적으로 이루어지는 구조는, 사회 변화와 민주적 요구에 대한 사법부의 응답성을 제약한다. 특히 역사 인식과 같은 이념적 쟁점이 공공기관의 운영과 연결될 때, 법원은 종종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판단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법리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사법부가 어떤 사회적 세력과 가치를 우선시하는가의 문제다.
박지향 사건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교육부의 조사와 직무정지 처분은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법원은 그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형식적 요건만을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이전 정부의 역사 기관 인사 구도가 사실상 유지되었고, 국민이 선출한 정부의 정책 방향은 지연되었다. 이는 사법부가 민주적 책임성보다 엘리트 네트워크의 연속성을 우선시하는 태도로 해석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판단은 역사 왜곡 대응이라는 국가적 과제와 충돌할 위험도 내포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의 역할은 학술 기관을 넘어 국가의 역사적 정체성과 주권 수호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사법부의 보수적 관성은 개별 판결의 문제를 넘어 제도적 차원에서 강화되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 체제 하에서 대법관 구성이 중도·보수로 기울면서, 전원합의체 등 주요 판단에서 진보적 목소리가 약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사법 개혁안에 대한 신중론과 독립성 강조는 형식적으로는 타당하지만, 그것이 기존 인사권과 위계 구조를 고수하는 근거로 활용될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국민은 사법부가 외부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동시에 민주적 변화에 응답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현재의 구조는 이러한 이중적 요구를 충족하기 어렵다.
결국 박지향 사건과 같은 판결이 반복 학습되면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심화 과정을 넘어선 지 이미 오래다. 절차의 엄격함 속에 숨은 그림자는 기득권을 내려놓으면 범죄자로 감옥에 가야 하는 신세다. 더 심각한 것은 그들의 핏속을 흐르는 토착 왜구의 오장육부가 꿈틀거리며 본능에서 거부하는 미래 가치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그 시작이 수천 년 고토를 사수하려는 자와 그것을 강제로 뺏으려는 자의 싸움에서 적의 편을 들기 위해 적으로 태어난 자들이다. 식민지 역사가 만만한가? 역사 기관 어느 곳에서도 사관 문제로 갈등이 일어난 적이 없기에 동북아 역사재단이나 국사편찬위원회에는 민족주의가 없다고 본다. 문제는 기생수를 먹여 살리는 일이 의미가 있는가, 없는가. 그 의미를 찾는 게 빠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