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26일 밤 궁정동에서 울린 총성은 18년 유신체제의 형식적 종언을 알렸으나, 그 총성이 겨냥한 권력의 본질은 형태만 바꾸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김재규가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라고 말한 순간, 그는 적어도 자신의 행위가 더 큰 국민 희생을 막고 자유민주주의의 문을 열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의 공백은 신군부에 의해 신속히 메워졌고, 이후 군부독재는 검찰 권력으로, 검찰 권력은 사법부의 제도적 장벽으로 이전되었다. 이재명 대통령 재임기에 벌어지고 있는 대법관 재제청 거부와 공석의 장기화, 선거법 사건 파기환송을 둘러싼 갈등, 업무추진비와 인사권을 둘러싼 논란은 정권과 사법부 사이의 마찰이 아니라, 해방 이후 청산되지 않은 권력 구조가 선출된 권력의 개혁 시도를 어떻게 가로막는지를 보여주는 최신 사례다. 이 구조가 깨지지 않는 한, 우리는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선 실질적 주권 국가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10·26의 총성은 끝났으나, 그 총성이 남긴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법부의 연속성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재판소 체제에서 비롯된다. 1909년 기유각서 이후 한국의 사법권은 일본에 위탁되었고, 통감부 재판소를 거쳐 조선총독부 체제에서는 재판소가 총독에게 직속된 행정 부서의 하나로 편제되었다. 사법 독립이란 개념 자체가 식민 통치의 보조 장치로 왜곡된 채 이식된 것이다. 해방 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이승만 정권과 친일 경찰의 방해로 무력화되면서, 총독부 출신 판검사들이 신생 대한민국 사법부의 주축을 형성했다. 그들은 이승만 독재, 박정희 유신, 전두환 신군부에 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기여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재판 거래 논란과 현재 조희대 체제에서 나타나는 선출된 권력에 대한 저항은, 이러한 역사적 관성 위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법관 집단의 체제 순응적 의식과 기회주의적 체질은 개인적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식민지 사법제도가 왜곡한 법치 개념이 청산되지 않은 결과다. 따라서 현재의 사법 갈등을 ‘사법부 독립 수호’ 대 ‘정치적 개입’이라는 이분법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놓치는 일이다. 진정한 사법 독립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국민 주권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면서도 민주적 통제를 수용하는 데 있다. 이 균형을 제도적으로 재설계하지 않는다면, 사법부는 앞으로도 기득권의 마지막 방어선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 법 하나 고치는 일이 어려운 이유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그 법이 오랫동안 특정 세력의 이익을 보호해 온 역사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더 깊은 층위는 국민 의식의 분열과 역사적 기억의 왜곡에 있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 성장을 절대적 가치로 미화하고, 유신과 군부독재의 억압적 측면을 외면하는 인식은 여전히 광범위하게 남아 있다. 이러한 인식은 개인적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전후 한국 사회가 냉전 질서와 외세 의존 속에서 국가 정체성을 형성한 역사적 결과이기도 하다. 분단과 주한미군 주둔, 전작권 미회복이라는 구조적 제약이 지속되는 동안, 내부의 권력 기득권은 ‘안보’와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자신의 지위를 정당화해 왔다. 친일·친미 프레임을 거부한다고 말하면서도, 외세에 의한 분단과 주권 제약을 구조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모순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 명분은 점점 힘을 잃고 있다. 경제 성장의 과실이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청년 세대의 좌절이 심화되며, 저출생과 지역 소멸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과거의 성장 신화만으로 현재의 제도적 저항을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동시에, 이 문제를 ‘세뇌된 국민’이나 ‘개돼지’라는 단정으로만 접근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구조적 기득권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상당수 국민이 그 구조를 수용하거나, 적어도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성은 특정 세력에 대한 증오나 모멸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것은 권력의 연속성을 사실로서 직시하고, 그 연속성을 끊는 제도적·시민적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박정희 찬양의 마지막 세대가 사라져도, 새로운 형태의 기득권이 또 다른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특정 인물에 대한 감정적 애착을 넘어, 권력의 형태가 바뀌어도 본질이 유지되는 구조를 식별하는 능력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가.
첫째, 사법제도의 역사적 기원을 공적으로 재검토하고, 인사권과 재판 독립의 관계를 재설계해야 한다. 대법관 제청 과정에서의 충돌이 반복되는 것은 헌법이 규정한 권한 분배가 현실의 권력 역학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선출된 권력이 사법부 구성에 일정한 민주적 영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개별 재판에 대한 외부 개입을 엄격히 차단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사법 농단의 재발을 막기 위한 투명성 강화와 책임성 확보가 병행되어야 한다.
둘째, 역사 교육과 공적 기억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10·26 사건을 권력 암투나 개인적 배신으로만 가르치지 않고, 유신체제의 한계와 이후 신군부의 등장, 그리고 그 유산이 현재까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구조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김재규에 대한 재심이 진행 중인 지금이야말로, 그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공적으로 다시 논의할 수 있는 기회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가혹행위와 졸속 절차의 문제를 넘어, 유신체제가 남긴 제도적 유산이 어떻게 지속되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셋째, 외세 의존 구조와 내부 기득권의 연결고리를 끊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 전작권 회복과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자주적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내부의 안보 담론은 계속 기득권의 방패로 사용될 수 있다. 자주적 국가 운영의 의지가 시민 사회와 정치 세력 모두에서 명확히 표명될 때, 사법부를 포함한 국가 기구의 권력 행사 방식도 변화할 여지를 갖게 된다. 분단의 원인을 외세의 개입에 두고 민족의 자결을 강조하는 관점은, 내부 권력 구조의 개혁과 분리될 수 없다. 외부를 탓하면서 내부를 방치하는 태도는 결국 또 다른 종속과 정체를 낳을 뿐이다.
이재명 정부 시기에 사법부와 행정부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는 것은, 역설적으로 민주화의 다음 단계에 진입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한 이후, 남은 과제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제도적 특권을 국민 주권 아래로 끌어내리는 일이다. 이 작업은 필연적으로 저항을 수반한다. 그러나 그 저항을 ‘사법부 독립’이라는 추상적 가치로만 포장하거나, 반대로 ‘내란 잔당’이라는 정치적 낙인으로만 처리하는 것은 모두 문제 해결을 지연시킬 뿐이다. 중요한 것은 구체적 사실과 제도적 결과를 중심으로 논쟁을 이어가는 것이다. 대법관 공석이 장기화될 때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가 실제로 침해되는가, 특정 사건의 파기환송이 정치적 중립을 훼손했는가, 업무추진비 집행이 법적 기준을 위반했는가 등의 질문을 회피하지 않아야 한다. 동시에, 이러한 개별 사안이 더 큰 권력 구조의 연속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보수 기득권 세력이 군부와 검찰, 사법부를 동원해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려 한다는 해석은 음모론이 아니다. 그것은 선출된 권력과 선출되지 않은 권력 사이의 구조적 긴장이 반복되어 온 역사의 연장선상에 있다.
답은 과거의 재평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제도를 국민 주권에 복속시키는 실천 속에 있다. 역사적 사실을 꾸준히 직시하고, 제도 개혁을 구체적인 시민적 요구로 전환하며, 자주적 국가 운영의 비전을 일상적 정치 담론 속에 자리 잡게 하는 오랜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 실천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10·26은 비극적 사건이 아니라, 미완의 민주화를 완성하는 출발점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군부독재의 그림자가 검찰과 사법부를 거쳐 지금까지 드리워진 이유를 직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다시 같은 질문을 반복해야 할 것이다. 진실은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구조를 보는 눈과, 그 구조를 바꾸려는 의지 속에서만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