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2심 무죄 판결과 전투적 민주주의
'명태균 여론조사비 대납 의혹'으로 기소된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서 1심의 벌금 1,000만 원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핵심 쟁점에 대한 직접 증거가 명태균 씨의 진술뿐이고, 그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같은 녹취와 같은 진술을 두고 1심은 유죄를, 2심은 무죄를 택했다. 같은 재판부는 이달 7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명태균 여론조사 무상 제공 사건에서도 1심의 징역형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시민들이 고개를 갸웃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 시장 측이 명 씨와 여러 차례 만났고, 여론조사 결과가 캠프에 공유됐으며, 후원자가 비용을 냈다는 정황은 법정에서도 부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은 형사재판의 대원칙이고, 특검이 상고한 만큼 최종 판단은 대법원의 몫이다. 그러나 판결에 대한 시민의 신뢰는 법리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사법부가 지금 어떤 맥락에 서 있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멈춰 있는 또 하나의 사건
서울고법 형사7부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파기환송심을 맡은 재판부이기도 하다. 2025년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사건 회부 9일 만에 유죄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대선을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이 사건은 현재 헌법 제84조의 대통령 불소추 특권에 따라 기일이 '추후 지정'된 채 멈춰 있다. 문제는 이 정지가 법률로 확정된 것이 아니라 재판부의 판단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재판부가 헌법 84조의 '소추'를 공소제기에만 한정된다고 해석해 재판을 재개한다면, 현직 대통령에게 당선무효형이 선고되는 사태도 이론상 배제할 수 없다. 그것은 단순한 형사재판이 아니라 국민이 선거로 내린 결정을 법원이 뒤집는 헌정 위기다.
나는 구회근 부장판사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단정하지 않는다. 다만 상식에 비추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 잇따를 때, 시민들이 이를 다가올 더 큰 사건의 예고로 읽는 것을 기우라고만 할 수 없다. 사법부는 그 불안을 해소할 책임이 있다.
삼권분립은 왜 생겼나?
권력 분립은 하늘에서 떨어진 원리가 아니다. 그 뿌리는 집정관·원로원·민회가 서로를 견제하던 로마 공화정의 혼합정체에 있다. 근대에 들어 로크와 몽테스키외가 이를 입법·행정·사법의 기능적 분리로 정식화했고, 1787년 미국 헌법이 처음으로 제도화했다. 프랑스 혁명은 '권력 분립이 보장되지 않은 사회는 헌법을 가진 것이 아니다'라는 원칙을 인권선언에 새겨 유럽 민주주의의 상식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미국의 민주주의를 쓴 토크빌은 삼권분립에 대해서 중요한 메시지를 후대를 위해서 남겼다. 국민이 선출한 권력이 가장 중요하다. 토크빌은 권력의 순위를 1) 의회 2) 행정부 3) 사법부라고 말하고 사법부는 정치적인 문제에 엮이면 안 되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회피하거나 소극적 자세를 취하라고 했다. 기본적으로 사법부는 관료 집단이라고 지적했다. 민주주의 삼권분립의 역사가 말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권력 분립의 목적은 어느 한 기관의 독주를 막아 주권자인 국민의 자유를 지키는 데 있다. 사법부 독립도 그 수단이다. 사법부가 독립을 방패 삼아 국민의 의사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하고 정치적 결정을 내린다면, 그것은 권력 분립의 취지를 거스르는 또 하나의 독주가 된다.
민주주의는 절차를 통해서도 무너진다
나치가 합법적 선거와 의회 절차를 통해 권력을 잡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를 민주주의의 구조적 취약점으로 처음 체계화한 사람이 독일의 헌법학자 카를 뢰벤슈타인이다. 막스 베버의 세미나에서 배운 유대계 헌법학자였던 그는 1933년 미국으로 망명한 뒤 1937년 '방어적 민주주의(militant democracy)'라는 개념을 내놓았다. 민주주의가 자신의 관용과 절차를 악용하는 적에게 무방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조희대를 비롯한 극우 성향의 사법부에 너무 관대했는지 성찰해야 할 시점이 왔다.
뢰벤슈타인은 헌법을 정치 과정의 산물로 보았다. 그는 『헌법론』에서 헌법을 실제로 권력을 규율하는 규범적 헌법, 문서로만 존재하는 명목적 헌법, 권력자의 지배를 치장할 뿐인 장식적 헌법으로 나누었다. 헌법 조문이 같아도 그것을 운용하는 기관이 권력 의지를 품으면 헌법은 얼마든지 장식으로 전락한다는 경고다. 그의 통찰은 정당해산과 기본권 상실 조항을 담은 독일 기본법의 정신이 되었다. 그리고 뢰벤슈타인은 나치즘을 일종의 '정치 종교'로 분석했다. 반자유주의·반의회주의에 신비주의적 구원 서사가 결합할 때 정치는 이성적 토론이 아니라 신앙의 영역이 된다. 낭만적 민족주의를 빼면, 오늘날 한국의 극우가 보여주는 확신과 제도에 관한 법 기술적 남용 습성도 이와 닮은 데가 있다.
방어적 민주주의의 교훈은 민주주의의 적이 반드시 거리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헌정 질서를 수호해야 할 기관 안에서도, 절차의 외피를 쓴 채 국민의 결정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나타날 수 있다.
사법 독립과 사법 책임은 함께 가야 한다
사법부 독립은 판사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라는 요청이지, 어떤 판단도 비판받지 않는 특권이 아니다. 독립에는 책임이 따라야 하고, 헌법은 그 책임을 묻는 장치로 국회의 탄핵소추권을 두었다. 2025년 5월의 이례적인 속도전 이후 조희대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부는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의문을 스스로 해소하지 못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에서 대법원장 탄핵론이 다시 나오는 것은 그 누적된 불신의 표현이다.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은 이제 국회가 외면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다만 그 길은 국민의 폭넓은 지지 위에서 걸어야 한다. 개별 판결에 대한 분노만으로 탄핵을 추진한다면, 상대 진영은 이를 '입법부의 사법 길들이기'로 규정할 것이고, 방어적 민주주의의 논리는 고스란히 우리를 향해 되돌아온다. 탄핵을 논하려면 판결의 결론이 아니라 사건 배당, 심리 속도, 전원합의체 운영 등 절차상의 문제를 구체적 사실로 입증하고,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와 판결 공개 확대 같은 제도 개혁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술적으로 디테일을 잘 챙겨서 탄핵을 결정해야 한다. 짧은 시간이라도 국민에게 조희대 사법부의 국정농단을 까발린 후에 탄핵으로 가야 한다.
봉화는 경계하라는 신호다
오세훈 2심 판결이 사법부발 헌정 위기의 서막인지, 엄격한 증명 원칙의 적용에 그칠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의 재판을 쥔 재판부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 잇따라 상식과 거리가 먼 결론을 내놓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민주공화국이 경계해야 할 신호다.
뢰벤슈타인이 경고했듯 민주주의는 총칼보다 절차를 통해 더 조용히 무너진다. 국민이 선거로 내린 결정이 법정에서 뒤집히는 일이 없도록, 국회와 시민사회는 지금부터 깨어 있어야 한다. 사법부 역시 독립이 누구를 위해 주어진 것인지 스스로 물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