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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헌법재판소 등에 대한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추미애 당시 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간사와 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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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뉴크로스

순도 100%의 개혁은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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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0. 14


순도 100%의 개혁은 존재할까. 질문을 던져놓고 보니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 같다. 그런데도 이 질문을 붙들고 있는 건 지금 한국 정치가 바로 이 오래된 명제 앞에서 좌표를 잃었기 때문이다.
 
한 친청계 유뷰버가 며칠 전 방송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개혁은 개뿔”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이 대통령이 개혁이라도 하다가 이렇게 지지율이 무너졌으면 뭐라도 변명이 되지, 그것도 아니라며 ‘개혁은 개뿔’ 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과연 같은 진영에 할 소리인가. 그러나 이런 말은 이제 드물지 않다. ‘반명’ 강성 지지층은 대통령이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윤석열 정권 때보다 더 심한 욕이 같은 편에서 쏟아진다. 친명계는 당혹스러워한다. 이렇게까지 정권을 공격하는 세력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때도 논란은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왜 그러는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한다.
 
공격하는 쪽의 논리도 단호하다. 지금이라도 그동안 외쳤던 개혁을 그대로 이행하면 된다는 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대통령이라도 면죄될 수 없다. 그게 국정 책임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묻는다. 중수청장 후보도 우리가 원하는 사람으로 앉히면 되고 지금이라도 되돌리면 된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이 친문계가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반명의 자리에 서서 분노를 쏟아낸다. 그들은 탄핵까지 언급하며 그것이 정의의 한 부분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친명계는 묻는다. 그렇게까지 죽일 일이냐고. 다른 대통령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당신들은 어떻게 했느냐고.
 
며칠 전 한 사석에서 친명계와 반명계 지인이 필자와 마주 앉았다. 그들의 주장은 팽팽했고 타협할 지점은 자리가 끝날 때까지 보이지 않았고 평행선을 달렸다. 솔직히 말하면 양쪽의 입장이 모두 이해된다. 그래서 개혁의 순도를 다시 묻게 된다.
 
프랑스 혁명에서도 무엇이 진정한 혁명인지를 둘러싼 갈등은 동지들을 적으로 갈라놓았다. 공포정치의 완화를 주장한 당통은 1794년 4월 단두대에서 처형됐고 그를 단두대로 보낸 강경파 로베스피에르도 석 달여 뒤 같은 운명을 맞았다. 같은 혁명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같은 노선과 판단을 보장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프랑스 혁명에서도 개혁의 순도를 놓고 서로를 죽이는...


물론 이 비극을 오늘의 개혁 논쟁과 같은 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 여기서 돌아볼 것은 혁명의 폭력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노선만을 진정한 혁명으로 인정하는 판단의 방식이다. 개혁의 원칙을 지키라는 요구와 다른 선택을 곧바로 배신으로 판정하는 태도는 구분돼야 한다. 개혁의 순도를 묻는 사람에게도 결국 같은 질문이 돌아온다. 그 순도는 무엇으로 재는가.
 
미국의 건강보험 개혁에도 비슷한 질문이 남아 있다. 1974년 공화당의 닉슨 대통령은 기업에 정규직 직원의 건강보험 제공을 의무화하고 저소득층 등의 보장을 확대하는 개혁안을 내놨다. 공적 건강보험을 선호했던 민주당의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은 민간보험 중심의 접근에 반대했고 양측은 타협을 모색했지만 끝내 합의하지 못했다. 워터게이트로 닉슨의 정치적 기반마저 무너지면서 개혁의 기회는 사라졌다.
 
닉슨안의 일부 구상은 36년 뒤인 2010년 오바마케어에 반영됐다. 케네디는 훗날 닉슨과 개혁에 합의하지 못한 일을 자신의 큰 입법적 후회로 꼽았다. 더 나은 개혁을 원했다는 사실만으로 가능했던 개혁을 놓친 선택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타협에는 원칙을 잃을 위험이 있지만 타협을 거부하는 데도 기회를 잃을 위험이 있다.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도 돌아보면 개혁의 순도 때문에 실패한 사례다. 당시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국가보안법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인 제7조의 찬양·고무·동조 등 5개 조항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잠정 합의했다.
 
그러나 완전 폐지를 주장했던 천정배 원내대표와 유시민 의원 등 여권 내 강경파의 반발 속에 합의는 끝내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부영 전 의장은 훗날 유시민 등 폐지론자들이 타협안을 무산시켰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물론 야당의 저항과 여당 내부의 복잡한 갈등까지 고려하면 실패의 책임을 특정 인물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결과는 역설적이었다. 국가보안법의 완전 폐지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 부분 개정마저 무산됐고 22년이 지난 지금도 국가보안법은 살아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검찰 개혁을 언급하면서 이때의 아쉬움을 지적하기도 했다. 순도 100%를 고집하다 개혁의 일부조차 실현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이 오래된 논쟁은 지금도 우리 정치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지금의 검찰 개혁은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


물론 이들 혁명과 지금의 이재명 개혁을 같은 저울에 올려놓는 건 무리다. 그럼에도 개혁이나 혁명이나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그리고 그 일은 공감과 연대 없이는 불가능하다.
 
프랑스 혁명이 그것을 증명했다. 구체제를 허문 열정은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했고 덕의 이름으로 단두대를 세웠으며 끝내 황제를 불러들였다. 혁명의 과잉이 빚은 참사다. 유시민의 순도 100% 국가보안법 폐지는 결국 실패로 막을 내렸고 그 누구도 이 무거운 철갑옷을 벗겨내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지금의 검찰 개혁은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검찰 개혁을 주도하지만 지지율을 보면 중도도 강성지지층도 모두 등을 돌린 것처럼 비친다. 중도는 너무 시끄럽게 같은 편끼리 싸운다고 돌아섰고 강성지지층은 너무 물렀다고 돌아섰다. 같은 하락 곡선 안에 정반대의 이유가 섞여 있다.
 
그런데 모두를 만족시키는 개혁이 있기는 한가. 이 거대하지만 본질적인 명제 앞에서 우리는 멈춰 서야 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패전과 혁명의 혼란 속에서 젊은이들을 앞에 두고 두 개의 윤리를 말했다.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다.
 
신념윤리를 따르는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원칙을 끝까지 지키려 한다. 반면 책임윤리를 따르는 사람은 자신의 신념뿐 아니라 그 행동이 낳을 현실적 결과까지 책임지려 한다. 쉽게 말해 무엇이 옳은가를 중시하는 것이 신념윤리라면 옳다고 믿는 일을 했을 때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가까지 따지는 것이 책임윤리다.
 
베버는 둘 중 하나만 옳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정한 정치인에게는 신념과 책임이 모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념이 없는 정치는 기회주의로 흐르기 쉽고 책임이 없는 신념은 현실을 외면한 독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를 업으로 삼는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뿐 아니라 그 선택이 낳을 결과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시민의 순도 100% 국가보안법 폐지론이 빚은 결과


대통령은 막상 책임지는 자리에 올라가면 좌우를 살펴야 한다.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효율성과 완성도의 문제다. 개혁의 목표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과 개혁을 실제로 완성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한국 정치도 국가보안법 폐지 파동으로 이런 고난을 겪었다.
 
이건 오래된 갈등이다. 혁명이나 개혁에는 언제나 순수성을, 순도 100%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김어준조차 순도 100%에서 조금만 희석되면 지지층이 까기 시작한다. 까는 사람들은 후일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깐다.
 
공격하는 사람들에게는 책임이 없다. 오로지 누가 더 선명한지, 그 선명함을 누가 끝까지 유지하는지만 중요하다. 베버식으로 말하면 그들은 신념윤리의 맨 앞자리에 서 있다. 그 자리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청정무구의 영역이다. 결과를 떠안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그들은 옳고 순백하다.
 
그렇다고 강성지지층에게 국정 책임을 지라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친명계 대부분의 생각은 권력을 꺾기보다 그것이 잘 운용되도록 옆에서 이해하고 도우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현실을 이해해줘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렇다고 대통령의 결정을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대통령의 현실을 이해하고 도와야 한다는 주장 역시 자칫 권력의 잘못까지 감싸는 논리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해는 길어지면 면죄가 되고 면죄가 쌓이면 감시나 견제도 증발한다.
 
강성지지층은 다르게 본다. 대통령이라도 틀렸으면 바로 질책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본다. 그 본능 자체는 민주주의의 건강한 본능이다. 권력은 원래 의심받아야 하는 것이다.
 
누가 개혁의 순도를 정할 것인가


문제는 비판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준이다. 그들이 내세운 기준이 자의적이고 정파적으로 비칠 때 비판은 객관성을 잃고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한다. 오늘 대통령을 거짓말쟁이라 부르는 사람들은 공약을 기준으로 든다.
 
그러나 공약은 생각보다 많은 여백을 갖고 있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다는 문장 안에 어디까지가 분리이고 어디부터가 후퇴인지는 적혀 있지 않다. 문제는 그 공약을 누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개혁의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국민인가. 그 국민은 누구인가. 등 돌린 중도인가, 등 돌린 강성지지층인가. 둘은 같은 국민이지만 정반대의 기준을 들고 있다. ‘국민의 뜻’이라는 말은 그래서 누구나 자기 쪽으로 끌어다 쓸 수 있는 말이 되어버렸다.
 
개혁의 순도를 논하려면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어느 선까지 합의했는가. 그 합의에 공감대는 있었는가. 지금 강경파가 주장하는 순도를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용인했는가. 여론조사로 확인된 주장이라 해도 그 결과가 개혁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뒷받침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그 확인 없이 들이대는 순도는 측정이 아니라 선언이다.
 
이재명의 논리도 맞고 강경파의 논리도 맞다. 하나는 결과를 말하고 하나는 원칙을 말한다. 베버가 말했듯 진짜 정치는 이 둘이 한 사람 안에서, 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붙잡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민주주의는 그 어느 두 점 사이의 절충이고 타협이고 합의다. 전부 옳거나 전부 틀렸거나로 가면 답이 없다.
 
순도 100%의 개혁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개혁의 순도를 놓고 끝없이 다투면서도 결국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 그리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의 길을 찾아가는 성숙한 시민의식뿐이다.
 
‘우리’라는 공동체의 자리로 다 같이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과 관용, 어쩌면 그것이 순백의 개혁일지도 모른다. 그 길 위에서 돌아갈 다리마저 불살라버리고 ‘개혁은 개뿔’이라고 빈정댄다면 그것은 개혁의 순도가 아니라 개혁에 섞여든 불순물일 뿐이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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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란
9
개혁은 구호의 선명함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꾸는 결과로 완성된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원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원칙을 실현할 기회마저 놓친다면 누구를 위한 개혁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신념과 책임이 함께 갈 때 진정한 개혁이 가능하겠지요.
( 0 / 500 )
弘益人間
7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지지자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그러나 비판이 곧바로 배신자 낙인찍기와 정권 흔들기로 이어진다면 개혁의 동력만 약화시킬 뿐입니다. 강성 지지층도 대통령의 현실적 한계를 살피고, 대통령 역시 개혁의 원칙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 스스로 점검해야 합니다.
( 0 / 500 )
타미르
7
국가보안법 폐지 논쟁에서 부분적인 합의조차 놓쳤던 과거는 지금도 뼈아픈 교훈입니다. 완전한 개혁을 외치다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것보다, 가능한 것부터 바꾸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개혁은 순도 경쟁이 아니라 역사를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움직이는 일입니다.
( 0 / 500 )
남해송
5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의 차이를 오늘의 정치 현실에 연결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원칙만 강조하면 독선에 빠지고, 현실만 앞세우면 기회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대통령에게는 책임 있는 결단이, 지지자에게는 냉정한 감시와 합리적인 비판이 필요합니다. 서로를 적으로 만들지 않는 성숙함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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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on85
5
과거 국가보안법 폐지 논쟁은 완벽한 명분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부분적인 성과를 발판으로 다음 개혁을 추진할 수도 있었지만, 내부의 강경한 대립은 그 기회마저 놓치게 했습니다. 지금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개혁을 가로막는 것은 외부의 적만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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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
4
개혁은 마음속의 순수함을 증명하는 경연대회가 아닙니다. 현실의 벽을 넘어 제도를 바꾸고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과정입니다. 100%가 아니면 실패라고 외치는 동안 기회는 사라지고 기득권은 웃습니다. 원칙을 지키되 성과를 만들어내는 정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개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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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45
4
대통령의 선택이 언제나 옳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현실적인 타협을 모두 배신이라고 몰아붙이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지지자는 비판할 수 있고 대통령은 설명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강하게 비난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비판이 더 나은 개혁을 가능하게 하느냐입니다. 비판도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 0 / 500 )
textan
2
결국 개혁의 순도를 누가 독점적으로 판정할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도 강성 지지층도 자신만이 국민의 뜻을 대변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요구를 민주적 토론과 합의로 조정하는 일입니다. 개혁의 다리를 불태우면서 순수성을 자랑하기보다, 함께 건널 다리를 놓는 정치가 보고 싶습니다.
( 0 / 500 )
dongjoo
1
순도 100%의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원칙을 포기하자는 뜻이 아닐 것입니다. 원칙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 어디까지 양보하고 무엇만큼은 지켜야 하는지 끊임없이 토론하자는 뜻일 것입니다. 타협은 패배가 아니며 비판은 배신이 아닙니다.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지 않을 때 비로소 개혁은 정쟁을 넘어 역사의 진전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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