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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의 4,389명을 대조한 조사에서,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설립하거나 대학의 이사·이사장·(부)총장을 지낸 친일 경력자는 87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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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斷想

칼럼
Korman

해방 후 교육계를 장악한 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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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0. 10
  • 해방 후 한국 교육기관들은 친일파들이 과거를 세탁하고 권력을 세습하는 통로로 변질되어, 민족 반역 행위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얻는 구조적 문제를 낳았습니다.
  • 친일 인사들이 교육계 요직을 장악하고 대를 이어 권력을 행사하며, 학교 역사서는 이들의 친일 행적을 은폐하거나 미화하여 역사적 진실을 왜곡했습니다.
  • 이러한 교육 환경은 학생들에게 정직과 공공성 대신 점수와 복종을 강요하며, 공동체 의식 없이 개인의 성공만을 추구하는 현 교육 붕괴의 근본 원인이 되었습니다.
  • 친일 청산의 실패가 교육 시스템 전반에 뿌리내려, 학교가 기득권의 세탁 도구로 전락하고 진정한 인재 양성이라는 본래의 역할을 상실하게 만들었습니다.
품(PUM)이 보편타당한 공존을 위해 마련한 민족 반역 장르의 친일파 서술이 과연 가치가 있는가 할 때, 거의 불가능한 이유를 해방 이후 한국의 인재 양성 교육기관이 민족의 미래를 설계하지 않고, 먼저 친일파의 신분을 세탁하는 무대였던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일제 말기 학병과 징병을 독려와 함께 침략전쟁을 성전(聖戰)으로 찬양했던 당시 역사적 배경을 완전히 숨긴 죄도 크지만, 이들이 해방의 혼란을 틈타 ‘민족교육자’로 간판을 갈아 끼우고, 학교 법인과 이사장·총장 자리를 발판 삼아 과거를 지운 역사도 심각한 민족 반역의 연속이다. 일례로 문재인 정부 총리 김부겸이나 법무부 장관을 했던 조국, 내리 친일파 정치인의 대명사로 군림한 나경원 같은 부류의 불확실한 가계처럼 의구심 가득한 하류 인생들의 성공 가도로 전락한 대한민국 교육은 백년지대계의 완벽한 실패의 전형이다.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확정한 1,006명과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의 4,389명을 대조한 조사에서,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설립하거나 대학의 이사·이사장·(부)총장을 지낸 친일 경력자는 87명에 달한다. 교육·학술 29명, 종교 21명, 총독부·군수 등 관료 16명, 일제 검사·판사 6명, 중추원 참의 등 고위직 5명, 경제계 4명이다. 이 숫자는 통계가 아니라 구조다. 민족 반역이라는 배신행위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취득하고, 그 면죄부가 다시 다음 세대의 교과서가 된 경로를 보여 준다.
 
뿌리는 미 군정에서 이미 박혀 있었다. 1945년 9월 미군정청 학무국 조선인 교육위원 11명 가운데 김성수, 김활란, 백낙준, 현상윤, 유억겸 등 5명은 일제 말기 대동아전쟁 찬양과 학병 독려, 황국신민화 선전에 앞장선 인물들이었다. 대동아전쟁은 2차 세계대전의 다른 이름이니, 이 시대를 한반도 안에서 찾는 것은 우선 등신 같은 짓이다. 이 등신들이 왜곡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꼭 묶어둔 반민족 행위 가담자라는 멍에를 이용해 해방 후 이들을 더욱 옥죄며 그 시대를 찬미하는 무기로 작용했다.
 
김활란은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지도위원으로 일왕을 찬양하고 전쟁 협력을 독려했고, 김성수는 학병 동원을 선동하며 친일 단체 간부로 활동했다. 백낙준은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이자 조선장로교 신도 애국기 헌납기성회 부회장으로 태평양전쟁을 ‘아시아인의 해방을 위한 성전’이라 불렀다. 이들은 해방 직후 교육 권력의 핵심으로 들어갔고, 자신이 보낸 학생들의 죽음을 교과 과정의 밖에 두고 ‘민족’의 이름으로 학교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청산이 제도가 되기 전에 면죄가 제도가 된 것이다.
 
학교별 장악은 우연의 집합이 아니었다. 동국대에는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권상로, 일제 판사 고재호·김갑수, 조선임전보국단 상무이사 이종욱, 일본군 무운장구를 기원하는 법요와 시국 강연에 나선 조계종 승려 김영수·임석진·허영호 등 8명이 총장·이사·이사장을 지냈다. 이화여대에는 김활란, 이숙종, 서은숙, 국방헌금 1만 원 납부와 군용기 헌납 발기인 김순흥, 미영격멸간담회 발기인 변홍규 등 6명이 포진했다. 숙명여대에도 고재호, 김두헌, 윤태림, 이숙종, 이인기, 임숙재 등 6명이, 상명대에는 배상명, 신봉조, 조동식, 곽종원 등 4명이 들어앉았다. 고려대에는 김성수·유진오·현상윤이, 연세대에는 백낙준·이묘목·전필순이, 국민대에는 김세완·박이순·최문경이 각각 자리했다. 조동식은 상명학원 이사장과 성균관대 이사장을 거쳐 동덕여대를 설립했고, 이숙종은 성신여대를 세운 뒤 숙명과 이화 재단에도 관여했다. 한 학교에 머물지 않고 여러 법인을 넘나든 것은 개인 경력이 아니라 교육계를 그물처럼 엮은 권력이었다.
 
국민대의 전이는 그 그물이 어떻게 독립의 간판까지 집어삼켰는지 보여 준다. 1946년 신익희를 초대학장·이사장으로 세워 김구, 김규식, 조소앙 등 임시정부 계열의 염원을 담아 개교한 학교는 이승만 정권 아래 빠르게 손을 바꿨다. 2대 학장 박이순은 군수 출신으로 1938년 황국신민화 관련 글을 남겼고, 4대 학장 최문경은 중추원 참의 집안 출신으로 총독부·만주국 관료를 지낸 뒤 박정희 정권에서 외무부 차관을 맡았다. 독립운동가에게 중형을 선고한 일제 판사 출신 김세완은 학장과 이사장을 겸했다. 독립운동가 후손이 궁핍과 차별 속에서 배움의 문턱에 막혀 있는 동안, 판결문과 협력 기고의 주인공들이 학교 재단의 열쇠를 쥐었다.
 
충성 대상만 바뀌었으니, 천황에게 맹세하던 이들이 해방 뒤에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에게 충성을 옮겼다. 노예근성이 배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눈에 뵈는 출세와 문교부 장관을 지낸 백낙준, 이병도, 박일경, 고광만과 차관 이항녕·윤태림이 그 경로의 윗자리였다. 박정희 정권에서는 국민교육헌장 제정에 참여하거나 5·16 이념 구현을 이유로 훈장을 받은 이가 15명에 이르렀고, 전두환 정권에서도 국정자문위원 등으로 권력을 이었다. 민영휘가 세운 휘문고, 조선임전보국단 간부이자 항공기 회사를 운영한 박흥식의 광신고·흥한학원은 재산과 함께 후손에게 넘어갔다. 그 후손이 생물학적 후손인지는 알 길이 없다. 족보는 고쳐졌고, 투탁(投託)은 물건 사듯 쉽고 빠른 해결책이었으니, 국가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그때그때 갈아 끼운 권력에 대한 충성이 교육 행정의 자격증이 된 셈이다.
 
세습은 13개 학교에서 확인된다. 고려중앙학원은 김성수에서 아들 김상만, 손자 김병관, 증손자 김재호로 이어지는 4대 세습이었다. 경성대는 친일 목사 김길창에서 증손자 김동기까지 4대가 이사장을 맡았다. 동아대, 추계대, 동덕여대, 덕성여대, 상명대, 계명대, 성신여대와 성남고, 영훈중고, 휘문고, 광신고에서도 대를 이은 지배가 이어졌다. 교정에는 설립자 동상이 서 있으나 학병 독려, 전쟁 협력, 독립운동가 탄압은 새겨지지 않았다. 경성대 50년사는 김길창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된 뒤에도 그를 ‘일제의 수난을 경험하며 독립을 고민한 인물’로 미화했다. 동덕여대 100년사와 성신여대 50년사 역시 설립자의 배신을 은폐하거나 민족교육자로 포장했다. 2009년 명단이 발표되자 이화여대·성신여대·고려대 총장들은 “공헌을 부정한다”라며 청원했다. 반성은 기득권에서 낙오하는 일이었고, 학교사(學史校) 편찬은 그 낙오를 막기 위한 장치였다.
 
그 더러운 짓들이 모여 오늘의 교육 붕괴가 완성되었다. 인성교육이 사라진 자리를 개인주의와 입시가 채운 것은 단순히 산업화의 부작용이 아니다. 교육을 맡은 사람들이 먼저 자신의 배신을 지워야 했기 때문에, 학교가 가르칠 수 있는 도덕은 처음부터 공허했다. 민족을 말하면서 민족을 판 사람들의 이름을 설립자로 새긴 학교에서, 정직과 책임과 공공성은 구호로만 남을 수밖에 없었다. 학생에게 요구된 것은 역사의 옳고 그름을 묻는 일이 아니라, 그 질문을 접고 점수에 복종하는 일이었다. 입시 위주 교육은 그 복종을 제도로 완성한 형태다. 한 줄 세우기는 누가 더 정직한가가 아니라 누가 더 빨리 주어진 정답에 도달하는가만 묻는다.
 
친일 청산이 실패한 사회에서 정답은 언제나 권력의 편이었고, 학교는 그 정답을 암기시키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사람을 죽이고 편법으로 부를 취득하는 관행이 정치권에서 학계로 퍼졌으니, 삼권은 가장 좋은 남을 등쳐먹는 직업군이 되었다. 이들이 부모로서 자식을 두었으니, 정의와 윤리는 당연히 사라졌다. 그 정점에서 현대사 최악의 등신 윤석열과 인간쓰레기 조희대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법이 가장 꼭대기에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을 엄호하는 세상에서 교육은 무용지물이다. 공교육은 허례와 허식만 아이들에게 가르치게 되었으니, 맛난 급식에 그렇지 못한 저질 커리큘럼이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개인주의도 같은 뿌리에서 자랐다. 공동체의 기억을 공유하지 못한 교육은 개인을 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니라 경쟁의 단위로만 취급한다. 독립운동가 후손이 차별받는 동안 협력자의 후손이 이사장으로 남는 구조를 교과서가 설명하지 못하면, 학생은 정의가 아니라 연줄을 배운다. 인성교육이 공허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성은 구호로 주입되지 않는다. 학교가 자기 설립자의 과오를 정직하게 기록할 때, 교사가 그 기록을 회피하지 않을 때, 학생이 동상 앞의 침묵을 질문으로 바꿀 때 비로소 형성된다. 그 질문이 금지된 학교에서 인성교육은 예절과 복종의 다른 이름이었고, 복종은 다시 입시의 언어로 번역됐다.
 
따라서 친일 청산 없이 국가 인재를 양성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불가능하다는 건 학교가 불필요하다는 뜻이다. 일제식 교사(校舍)하나 벗어나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행정에 화려하고 싸구려 감성 가득한 페인트칠로 더러워진 인간의 마음을 감추는 행위는 싸구려 창녀가 입은 싸구려 가운 같은 기능을 한다. 반민족 행위자들의 대를 이은 노예로 살며 기능인으로서 행정가와 기술자와 전문직은 배출했다.
 
그러나 자기 공동체의 배신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배신 위에 세운 특권을 문제로 인식하며, 공적 책임을 사적 출세보다 앞에 두는 인재는 그 제도 안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되었다. 87명이 학교의 문을 지켰고, 13개 법인이 그 문을 세습했으며, 학교사는 그 문을 민족의 문으로 위장했다. 그 위장 위에서 길러진 인재에게 역사적 자기 성찰을 요구하는 것은, 건축의 기초를 묻지 않은 채 건물의 도덕을 요구하는 일과 같다.
 
오늘날 교정에 남은 동상과 과오가 지워진 학교사와, 점수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묻지 않는 입시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는 청산되지 않은 과거의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과거가 현재의 교육 문법으로 살아남은 형태다. 인재를 기르려면 먼저 누가 그 기르기의 권한을 어떤 대가로 얻었는지 기록해야 한다. 그 기록이 없는 교육은 인재를 기르는 척하면서, 기득권의 세탁을 반복할 뿐이다. 청산되지 않은 친일이 남긴 가장 지속적인 상처는 분노의 기억이 아니라, 질문을 잃은 학교, 다 없애야 한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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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om
8
해방이 되었어도 교육계의 해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뼈아픕니다. 민족을 배신했던 사람들이 교육자의 이름으로 과거를 덮고, 그들이 세운 학교가 다시 후대의 역사를 가르쳤다면 이것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닙니다. 학교의 명예보다 진실을 앞세우는 역사 청산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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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6
친일 청산의 실패가 오늘날 교육의 위기로 이어졌다는 분석에 공감합니다. 학생들에게 정직과 정의를 가르치려면 교육기관부터 자신의 과거에 정직해야 합니다. 설립자의 친일 행적은 감추면서 민족교육의 공로만 내세우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역사 왜곡입니다. 동상과 기념관에 기록되지 않은 진실부터 복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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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raiser
6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가난과 차별을 겪고 친일 협력자의 후손은 교육 권력을 세습했다는 대목에서 우리 사회의 모순을 봅니다. 문제는 후손 개인이 아니라 과거의 특권을 검증 없이 물려주는 구조입니다. 이제라도 대학과 학교 재단의 역사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적 기여와 역사적 책임을 함께 평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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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ander3
5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런데 교육기관의 출발부터 과거의 잘못을 감추는 데 급급했다면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었겠습니까. 입시 경쟁만 탓할 일이 아닙니다. 학교가 먼저 진실을 말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인성교육도 살아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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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d72
4
친일 청산은 과거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입니다. 설립자의 공로가 있다면 공로대로 평가하고, 민족을 배신한 행위가 있다면 그것 역시 기록해야 합니다. 두 가지를 함께 다루는 것이 진정한 역사 교육입니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진실을 덮는 학교가 미래의 인재에게 정의를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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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99
4
해방 이후 친일 세력이 교육계에 뿌리내린 과정을 보면 왜 우리 사회의 정의가 늘 말뿐이었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이름을 바꾸고 지위를 이어갔지만, 독립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은 정당한 대우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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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cheol
3
입시 위주의 교육이 왜 이토록 강고해졌는지 그 뿌리를 돌아보게 하는 글입니다. 공동체의 정의보다 개인의 출세를 앞세우고, 올바른 질문보다 정답 암기를 중시하는 풍토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과거의 잘못을 덮은 권력이 교육을 지배했다면, 이제는 역사를 직시하는 용기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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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gjoon
1
친일 행적을 지운 설립자 동상 앞에서 학생들에게 애국심과 도덕성을 강조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학교의 명예는 과오가 없다고 주장하는 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데서 나옵니다. 이제 교육계도 역사적 책임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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