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일 국감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이 보여 준 것은 해명의 실패가 아니라, 책임의 언어가 아예 작동하지 않는 사고의 회로였다. 일반증인으로 채택되고도 선서와 증언을 거부한 채, 준비해 온 종이에서 ‘위헌’을 네 번 읽고, 헌법 104조를 대법원장 한 사람의 배타적 영토로 풀어 낸 그 6분은 사법부 수장의 답변이 아니라 자기 권한의 재확인이었다. 국회와 대통령은 제청에 관여할 수 없고, 협의는 헌법상 의무가 아니라 그동안 자진해서 해 온 협력일 뿐이며, 협의하지 않아도 헌법상 문제는 없고, 제청으로 대법원장의 권한과 의무는 끝났으므로 선서나 증언을 거부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이 회로 안에서는 질문도, 공석도, 국민의 심려도 권한의 바깥에 놓인다.
법적 책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헌법 104조는 대법관을 대법원장 제청, 국회 동의, 대통령 임명의 순서로 구성하라고 정한 조항이지, 제청 한 번으로 나머지 두 기관의 권한을 정지시키는 조항이 아니다. 제청이 시작점인 것은 맞다. 그러나 시작점을 종착점으로 읽고, 그 뒤의 동의와 임명을 제청권자의 의사에 종속되는 절차로 격하하는 해석은 조문의 문면을 넘어선다. 청와대 재제청 요청 공문에 구체적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없어 후속 절차를 진행하기 어렵다고 한 인사말도 같은 회로다. 공석이 장기화해 국민에게 심려를 끼친 점은 송구하다고 하면서, 이미 제청한 후보를 고수하는 자신의 판단이 공석을 유지하는 결정이었다는 지점에는 닿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거부와 200일을 넘긴 공석을 헌법과 법률 위반으로 보고 탄핵 사유가 충분하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12·3 비상계엄 직후 회의 소집, 대선 직전 파기환송을 둘러싼 선거 중립 시비까지 그 목록에 올려 두었다. 탄핵은 아직 의결된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책임의 소재가 정치공세로만 치부되기 어려운 이유는, 법원 구성을 멈춘 결정의 주체가 그 멈춤을 상대 공문의 흠결로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법권 독립은 재판의 내용이 권력의 지시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원칙이지, 구성의 지연과 출석의 형식과 자료의 부실까지 설명 의무 밖으로 밀어내는 면책이 아니다.
국감장의 절차도 같은 책임의 연장이다. 증인으로 채택된 뒤 선서를 거부하고, 오전에는 답하고 싶은 질문에만 답한 뒤 오후 감사 재개 때에는 위원장 허가 없이 자리를 떴다가 밤 늦게 돌아와 마무리 발언만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를 국회와 국민을 무시한 처사로 보고 자진 사퇴를 요구했다. 국회의원도 법원의 출석 요구에는 선서하고 절차에 따라 이석한다. 그 절차를 사법부 수장이 제멋대로 고를 수 있다면, 선서와 답변은 권한이 약한 사람에게만 남는 의무가 된다. 그는 국정감사와 증언 요구의 근거가 헌법에 없으므로 거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근거가 없다는 판단과, 판단한 사람이 그 판단의 당사자라서 심사를 거부한다는 태도는 다른 층위다. 후자를 전자로 포장하는 순간, 책임은 해석 뒤로 사라진다.
업무추진비는 이 사라짐이 돈의 기록에서 어떻게 반복되는지를 보여 준다. 식사 참석 인원을 사실과 다르게 적어 자료를 작성했다는 보도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한 것은 법원행정처장이었다. 상반기 집행 내역 가운데 허위 의혹이 여러 건 제기됐고, 여당은 청탁금지법 회피용 부풀리기라고 주장했다. 조희대 본인은 카드를 본 적도 없고, 술은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으며, 예산 배정과 집행, 그날 식삿값이 얼마인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금액이 넘은 경우가 있는 모양이라며 행정처가 시정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고, 국민에게 송구하다는 말은 그 뒤에 붙었다. 수장의 이름으로 집행된 공적 자금의 기록이 허위였다는 사실을 기관이 인정했는데, 수장은 지출관과 담당 직원 뒤로 물러선다. 같은 설명을 피고인이 법정에서 하면 그가 선고하는 재판에서는 책임의 회피로 들릴 말이다. 자기 사건에서만 그 말이 면책이 된다면, 법 앞의 평등은 법원 담장 안에서 먼저 깨진다.
여기서 비정상적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은 임상 진단이 아니다. 공개된 발언만으로 한 사람의 정신 상태를 병명으로 단정하는 것은 사실의 범위를 넘고, 그 단정은 논점을 흐린다. 문제의 핵심은 사고의 회로가 외부의 문장을 질문으로 받지 못하고 전부 권한 침해로 번역한다는 데 있다. 재제청 요청은 사유 없는 간섭이고, 증언 요구는 위헌이며, 신뢰 하락을 묻는 자리에는 국제기구 자료상 사법 신뢰가 나아졌다는 회의 발표가 돌아온다. 12·3에 대해서는 인원과 명단을 주지 말라고 지시했으니 전혀 협조한 바 없다고 하고, 서부지법 사태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소홀한 적이 없다고 한다.
‘제2의 윤석열을 꿈꾸느냐’는 질문에는 모욕적이고 서글프다고 받는다. 각각의 문장은 내부에서 완결된다. 그러나 그 완결이 시민이 듣는 의미와 만나지 않는다. 말을 몰라서 하는 실수가 아니라, 말이 밖으로 나가 어떤 책임을 짓는지가 문법 안에 항목으로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 평생 최종 해석권을 행사해 온 사람이 자신의 해석이 이제 해석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언어 안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그것이 국감장이 드러낸 사고체계다. 정상적인 법률가는 자기 조문 읽기가 다툼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전제로 말한다. 그 전제가 사라진 해석은 법리가 아니라 자기 확언이다.
대법관의 자격은 경력 연수와 임명 절차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형식 요건을 갖추고 제청과 동의와 임명을 거쳐 자리에 앉았다는 사실과, 그 자리가 요구하는 판단을 지금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별개다. 대법원장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자격은 세 가지다. 법원 구성을 이유로 멈추지 않을 것, 공적 자금과 공적 기록에 대해 수장으로서 답할 것, 자신의 헌법 해석이 틀릴 수 있음을 절차 안에서 견딜 것. 조희대의 국감은 이 세 가지를 차례로 비웠다. 공석은 상대 공문의 흠결이 되었고, 허위 기재의 사과는 처장에게 남았으며, 해석의 다툼은 위헌이라는 단어로 봉인되었다.
정상적인 대법관이라면 자신의 제청이 동의와 임명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 구성을 회복할 다른 경로를 찾는다. 정상적인 기관장이라면 자기 명의 자료의 허위를 부하의 실수로만 두지 않는다. 정상적인 법률가라면 선서를 거부하면서 그 거부의 정당성을 같은 입으로 최종 확정하지 않는다. 이 셋이 동시에 빠지면, 남는 것은 임명장이 아니라 직의 공백을 사람 모양으로 채워 둔 상태다.
사법부가 수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회로를 감싸면, 감싸는 쪽이 그의 문법을 기관의 문법으로 승인하는 셈이 된다. 법원행정처가 참석 인원 기재에 죄송하다고 한 것은, 기관이 아직 사실 앞에서는 말을 고칠 수 있다는 증거다. 그 정정이 처장에 머무르고 수장의 언어는 흔들리지 않을 때, 국민이 받는 인상은 사법부 전체가 한 사람의 자기 이해에 포획되었다는 인상이다. 책임은 그때 개인을 넘어 기관으로 옮아간다. 재판의 독립과 수장의 무오류는 다른 것이다. 전자를 지키려면 후자를 의심할 수 있어야 하고, 의심은 탄핵이든 사퇴든 기록의 정정이든, 말로만이 아니라 절차로 나와야 한다. 그 절차가 보이지 않는 동안, 조희대라는 한 사람의 사고체계는 대법원 구성의 속도와 사법부 언어의 한계를 함께 결정한다. 국민에게 다가오는 현실은 그래서 한 문장으로 모인다. 법을 최종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자기 말의 책임을 자기 문법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고, 그 불능을 기관이 아직 자격의 문제로 부르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