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헌법은 대통령제를 택했다. 그러나 국회 안의 실제 작동 원리는 그와 다르다. 공천권·당론·교섭단체·국고보조금이 의원 개개인의 양심과 지역 대표성을 압도하는 구조에서는, 대통령제 외피에 내각제식 정당기율이 겹친다. 유권자가 뽑은 것은 한 명의 지역 대표인데, 당선 이후 그 의원은 당 지도부의 의결권 단위로 환원된다. 이것이 ‘실질적 내각제’라는 진단의 핵심이다. 문제는 그 내각제에 내각제의 책임 정치가 없다는 점이다. 총리와 내각이 의회 신임에 매달려 무너지는 구조가 아니라, 거대 양당이 서로를 악마화하면서도 기득권 규칙만은 공동 수호하는 ‘적대적 공생’이 작동한다.
민주화 이후의 정당사는 다양성의 확대가 아니라, 다양성을 양당 안으로 흡수·배제하는 과정에 가깝다. 1987년 직선제 이후 잠시 삼김(三金) 정치가 다극 경쟁처럼 보였다. 그러나 1990년 민정·민주·공화의 3당 합당은 지역주의와 반공 질서를 하나의 거대 여당 안에 봉합했다. 반대편은 호남을 거점으로 한 민주 계열이 재편되며 ‘두 개의 대형 포괄정당’이 자리를 잡았다. 당명은 민자·한나라·새누리·국민의힘, 평화민주·새천년민주·열린우리·더불어민주로 바뀌었지만, 핵심은 같았다. 공천과 자금과 지역 기반을 쥔 조직이 간판만 갈아 끼운 채 살아남는 일이었다. 2000년대 이후 총선은 대체로 이 두 계열의 의석 나누기로 수렴했다. 예외처럼 보였던 열린우리당의 과반, 2016년의 뒤집기, 2020·2024년의 거대 여야 스윙도 제3세력의 제도화를 낳지 못했다. 승자는 바뀌었고, 승자의 규칙은 남았다.
그 규칙을 떠받치는 장치는 여러 겹이다. 첫째는 소선거구제다. 지역구 254석의 승자독식은 2등에게 표를 준 유권자의 의사를 의석으로 바꾸지 않는다. 둘째는 교섭단체 문턱이다. 원내 발언권·위원회 배분·입법 협상의 문은 사실상 20석 전후의 규모에 달려 있다. 셋째는 국고보조금과 기호 순번, 방송 토론 자격이다. 이미 큰 당은 더 큰 자원을 받고, 작은 당은 존재 증명부터 해야 한다. 넷째는 공천권이다. 한국에서 당선 가능성을 좌우하는 것은 종종 유권자보다 공천이다. 공천이 지도부와 주류 계파의 손에 있으면, 의원은 지역민보다 당심과 지도부 눈치를 본다. 공천은 보상과 처벌의 칼이 되고, 윤리와 정책은 그 칼 앞에서 후순위로 밀린다. 현역 의원이 보좌진·현수막·문자·당직을 독점하는 ‘지역 호족화’ 비판이 당 내부 신인들 입에서도 반복되는 이유다.
2024년 총선은 이 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지역구에서 민주당 계열은 161석, 국민의힘 계열은 90석을 가져갔다. 비례에서는 위성정당이 다시 등장했다. 더불어민주연합과 국민의미래는 본가에 의석을 돌려주는 통로였고, 조국혁신당이 비례 24.25%로 12석을 가져가며 제3당처럼 보였다. 그러나 녹색정의당은 비례 2%대에 그쳐 원외로 밀려났고, 개혁신당·진보당·새로운미래는 한 자릿수 의석에 묶였다. 2026년 중반 국회는 민주당 161석, 국민의힘 109석 안팎의 교섭단체 양분 위에, 조국혁신당 12석, 진보당 4석, 개혁신당 3석, 기타와 무소속이 흩어져 있는 형국이다. 숫자의 의미는 분명하다. 입법의 속도와 의제의 우선순위는 두 거대 정당의 당론이 결정하고, 나머지는 항의하거나 동조하거나 무시당한다.
더 노골적인 장면은 선거구 획정이었다. 거대 양당은 전북과 부산의 지역구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비례대표 1석을 줄이는 데 합의했다. 평소에는 서로를 적폐와 내란, 독재와 당내 부패로 몰아세우던 세력이, 정수와 텃밭 앞에서는 한 몸이 되었다. 위성정당 방지와 비례 확대는 총선 때마다 약속되고 총선이 끝나면 증발한다. 특권 내려놓기 공약은 넘치되, 특권을 재생산하는 선거제도는 손대지 않는다. 정쟁은 치열하고, 제도 개혁은 공동 방기된다. 이것이 적대적 공생이다. 잘하기 경쟁이 아니라 덜 못하기 경쟁, 상대를 끌어내려 반사 이익을 취하는 정치다.
민주당 내부에서 이 논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따로 볼 필요가 있다. 집권 혹은 원내 다수일 때 정당은 ‘정권 수호’와 ‘당의 단결’을 거의 동의어로 쓴다. 계파 갈등, 공천 학살 논란, 개별 의원의 윤리 문제, 상임위 운영의 독단은 ‘지금 흔들면 상대만 이득’이라는 논리 아래 봉합된다. 공천 국면에서 비주류가 걸러지고, 주류에 영합한 인사가 살아남는 패턴은 한두 해가 아니다. 당원 주권을 내세울수록 숙의는 줄고 동원과 투표만 남는다는 지적도 반복된다. 당원이 늘어도 정책 정당이 되지 않고, ‘지배하려는 당원’과 지도부가 서로를 필요에 따라 이용하는 구조가 된다. 내부 비판은 배신으로, 외부 비판은 검찰·언론·야당의 공세로 규정되기 쉽다. 눈감아주기는 도덕적 실패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가장 값싼 방법은, 자기 진영의 치부를 상대 진영의 공격으로 치환하는 것이다.
국민의힘이라고 다른 문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계파 공천, 청년 정치의 전시화, 외부 스타 영입으로 혁신하는 척하면서 내부 기득권은 온존하는 방식, 정권 실패를 지도부 교체 쇼로 덮는 방식은 대칭적이다. 양당은 상대의 비리를 크게 부풀리고 자신의 비리는 최소화한다. 국민 앞에서 그들은 적이다. 국회법·선거법·정치자금법 앞에서는 동업자다. 건물과 토지, 현금성 자산, 임대 수입을 쌓아 올린 거대 정당의 재정 규모는 이 동업이 이념이 아니라 조직 재생산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소수정당과 ‘진정한 진보’는 사라졌는가.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니다. 사라진 것은 존재 자체가 아니라, 존재를 제도 안으로 밀어 넣을 통로다. 민주노동당이 원내 교섭단체까지 넘봤던 기억, 통합진보당의 해산, 정의당의 원내 정착과 붕괴, 진보당의 지역 거점 생존, 조국혁신당의 비례 돌풍과 이후 지지율 추락은 한 줄로 이어진다. 2024년 조국혁신당은 비례에서 600만 표 이상을 얻었으나, 2025~2026년 지지율은 수시로 2~3%대로 내려앉았다. 의석 12석과 지지율의 괴리는 제3당이 독자 이념 정당으로 정착하기보다, 거대 정당 심판의 풍선으로 소비되고 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진보당은 의석을 소폭 늘렸지만, 전국 정당 지지율은 1% 안팎이다. 개혁신당 역시 원내 소수에 머문다. 무당층은 20%대 중후반을 오가는데, 그 공백을 받아 안을 정당은 없다. 유권자의 이탈은 있으나 대안의 제도화는 없다.
실질적 내각제의 폐해는 여기서 완성된다. 내각제라면 연립과 정책 거래가 일상화되고, 소수정당이 캐스팅보트가 되며, 실패의 책임은 내각 붕괴로 돌아간다. 한국의 변형은 반대다. 대통령제라서 행정부 책임은 청와대(대통령실)로 모이고, 국회는 거대 정당의 당론 투표로 움직인다. 의원 개인은 내각제처럼 당에 묶이되, 내각제처럼 정권의 운명을 함께 지지는 않는다. 면책과 불체포, 보좌 인력, 후원과 후원회의 특권은 남고, 정책 실패의 값은 분산된다. 상임위원장직을 둘러싼 원 구성 지연, 보이콧과 단독 선출의 반복은 민생 입법이 아니라 지분 싸움이다. 2026년 후반기 원 구성이 수십 일 끌린 장면은 예외가 아니라 문법이다.
그렇다면 왜 정치는 거대 양당에 좌우되어야 하는가. 유권자가 그것을 원해서가 아니다. 제도가 그렇게 보상하기 때문이다. 소선거구는 사표를 양산하고, 위성정당은 비례의 취지를 속이며, 교섭단체와 보조금은 신규 진입의 고정비를 올린다. 미디어는 양당 대결을 가장 값싼 서사로 팔고, 팬덤 정치는 내부 비판을 배신 프레임으로 닫는다. 양당은 상대가 필요 없다. 상대라는 ‘공포의 거울’이 필요할 뿐이다. 거울이 있어야 내부의 불협을 덮을 수 있고, 공천 갈등을 단결로 포장할 수 있으며, 개혁을 다음 국회로 미룰 수 있다.
해법은 도덕 선언이 아니다. 위성정당을 차단하는 법, 비례 의석의 실질적 확대, 교섭단체 요건의 완화, 공천 과정의 개방과 현역 평가의 제도화, 정치자금의 투명성, 당론 투표를 예외화하는 양심 투표의 관행. 이 목록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민사회와 소수정당이 반복해 온 것이다. 번번이 막힌 지점도 같다. 규칙을 고쳐야 할 당사자가 규칙의 수혜자라는 사실. 거대 양당에게 다당제는 민주주의의 성숙이 아니라 지분의 손실이다.
소수정당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사라지게 만든 장치가 남아 있다. 진정한 진보가 멸종한 것이 아니다. 진보를 표방하는 거대 정당이 진보의 자리를 점유하고, 점유하지 못한 진보는 의석 밖의 구호로 밀려난 것이다. 한국 정치의 병리는 좌우의 대결이 너무 치열해서가 아니라, 대결의 규칙이 너무 담합적이라는 데 있다. 국민이 양당을 심판해도 양당 체제는 살아남는다. 심판의 화살이 정당 간 의석 이동에만 꽂히고, 정당 체제의 독점 구조에는 꽂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질적 내각제를 내각제의 책임으로 되돌리거나, 대통령제의 개인 대표성을 의원에게 돌려주지 않는 한, 눈감아주기는 윤리 스캔들이 아니라 이 체제의 정상 가동 방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