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가장 고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는 권력층의 국민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다. 이 말을 반대로 해석하면, 정치인 또는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더 나은 민주정치에 대한 열망에서 개인의 영달을 위한 관로 모색까지 그 어느 기득권 집단보다 강한 힘을 가진 먹이 사슬 최상위 포식자에게 집중해 작용한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누가 권력 있고 나를 도와줄 인간인가를 귀신같이 찾아 기대고 영합하고 최대한 콜라보하는 인생을 계획한다는 말이다.
국민 중에 많은 수가 정치권에 줄을 대니까 수요는 차고 넘친다. 만일, 국민이 정치에 시니컬하고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냉정한 평가에 서슬 퍼런 자존감과 자존심이 꽉 찬 국민이라면 오히려 정치가 국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묵은 적폐는 이미 해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요 공급 면에서 국민은 욕망 넘치는 대한민국 정치권의 무한한 화수분이다.
그러니 정치 권력과 검찰, 그리고 미디어 기득권층의 행태를 보면, 이들이 국민을 동등한 주권자나 민주사회의 주인으로 대하지 않고 오히려 이들은 국민을 이용 가능한 수단, 통제할 대상, 혹은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한 도구로 취급해왔음이 명백하다. 해방 후 장장 80년의 세월이 이런 구조 속에서 흘렀고 이미 이 구주 속에 익숙해져 나태한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세대 차이는 삶의 본질에서 다르다. MZ 세대는 정치나 소비문화가 자신들을 구원해주지 못하고 파멸로 이끌 것이라는 불안감에 부모 세대를 신뢰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세대를 초월한 개돼지 양성이 넓고 깊게 한국 사회에 자리 잡았다는 의미다.
2016년 교육부 관료 나향욱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 발언은 개인의 돌출적 망언이 아니라 한국 사회 기득권층의 집단적 무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들에게 국민은 주체적 사고와 판단 능력을 갖춘 존재가 아니라, 적절한 조건을 제시하면 움직이고, 먹이를 던져주면 따르며, 체계적 통제와 세뇌를 통해 길들일 수 있는 수동적 객체에 불과하다. 이것은 국민 중 누군가가 뿌린 뇌물의 씨앗이 자라서 맺은 열매다. 국민이 정치인 보기를 친일파 매국노처럼 경원시했으면 벌써 진작에 정치권은 청소가 되었을 텐데, 일제 때부터 정해진 관행대로 사업하고 장사하고 매관매직에 열정을 쏟은 것도 바로 국민이었다. 이런 관행적 학습이 뇌물을 받는 위치로 올라가려는 그릇된 국민 정서가 퍼진 것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노예근성(slave mentality)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안의 노예근성을 묻지 않고 한국 정치를 논할 수 없지 않겠는가. 우리 중에서 정치인이 나오고, 우리끼리의 싸움도 모자라, 외국인까지도 주적이라는 탈북자까지도 필요하면 동원하는 것이 한국인 노예근성의 속성이 된 지 오래다. 이 정도면 거의 정신착란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이러한 인식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발현되는지 알 수 있다. 선거 시즌이 되면 이들은 국민을 주인님, 유권자님이라 부르며 머리를 숙인다. 하지만 당선 이후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진다. 공약은 휴짓조각이 되고, 국민에게 한 약속은 정치적 수사로 치부하면 그만이다. 이들의 내면에는 ‘어차피 국민은 정치를 잘 모른다.’, ‘복잡한 정책을 이해할 능력이 없다.’, ‘감정적으로만 반응한다.’라는 편견이 뿌리박혀 있다. 검찰 조직의 국민에 대한 태도는 더욱 심각하다. 이들은 자신들을 법의 수호자이자 정의의 구현자로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국민을 언제든지 처벌하고 길들여야 할 대상으로 바라본다. 최근 국회에서 벌어진 검찰 수사관들의 행태 역시 이런 문제의식의 발로다.
2024년 12월 17일 건진 법사 전성배 자택 압수수색에서 발견된 현금 1억 6500만 원 중 관봉권 띠지가 훼손·분실된 사안에 대해 국회 검찰개혁 입법청문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드러난 검찰 수사관들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서울남부지검 김정민, 남경민 수사관은 불리한 질문 내용이 나올 때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답변을 반복했다. ‘관봉권 같은 형태를 본 적이 있나?’라는 질문에도, ‘압수물이 아니라 저런 형태를 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도, ‘관봉권을 그럼 당신이 뜯어서 세었나?’라는 질문에도 모두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같은 답변만 되풀이했다. 심각한 것은 수사관들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입법청문회에서 사전 예상 질의-답변서를 활용해 증언한 정황이 포착됐다는 점이다.
김 수사관은 ‘저는 기계적으로 일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고 하지만, 이는 철저히 준비된 답변이었다. 국회의원들이 지적한 바에 따르면, 정상적인 답변은 ‘있다’ 또는 ‘없다’여야 할 질문들에 대해서도 수사관들은 일관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이는 진실을 말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고, 국민을 우롱하고 위증을 두려워하지 않는 전형적인 MZ 수사관 세대의 뻔뻔한 특권 의식적 행태였다.
검찰 수사관의 이런 뻔뻔함 뒤에는 조직적 확신이 뒷받침되고 있다. 권력의 비호와 기득권 카르텔이 자신들을 끝까지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국민의 분노가 일시적이고 지속력이 없다는 계산이 그들을 더욱 대담하게 만든다. 이들의 마음속에는 깊은 냉소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어차피 국민은 복잡한 수사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법리적 쟁점을 구분할 능력이 없다.’, ‘시간이 지나면 금세 잊는다’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메모에 국민을 ‘ㅂㅅ’이라고 메모를 하고 국회의원 질의에 이것은 ‘병신’을 의미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긍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결국 국민을 기억하지 못하고 판단하지 못하는 존재, 즉 ‘병신’으로 규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들의 정신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도덕적 감수성과 양심의 철저한 결여다. 국민을 기만하고 권력을 남용하는 행위가 근본적인 도덕적 문제라는 인식 자체가 희미해져 있다. 검찰 수사관들이 국회에서 보여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일관된 답변은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민 앞에서 진실을 말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포기한 채, 오직 조직의 이익과 자신의 보신만을 고려하는 타락한 정신상태를 보여준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첫째, 이들은 자신들을 일반적인 법과 도덕의 적용 범위 밖에 있는 특별한 존재로 여긴다. 둘째, 기득권 사회의 집단적 동조 현상이 개인의 양심을 마비시킨다. 셋째, 오랜 권력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문화적 학습 효과로 인해 국민 기만이 자연스러운 정치 행위로 내재화되어 있다. 모두 관행이고 학습된 악이면서 부모에게 배운 버릇이다. 검찰 수사관들의 부모 중에 공정함을 가르친 부모가 있었다면 이 어린애들이 이렇게까지 대담한 위증을 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아주 뻔뻔한 대한민국의 기성세대가 자식들을 이렇게 더러운 시궁창에서 성공을 위해 살라고 일러준 것이다.
‘국민은 병신이다.’라는 인식은 비하 표현을 넘어서는 폭력적 언어이자 정치적 무기다. 이는 국민을 지적, 정신적, 도덕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낙인찍음으로써 그들의 정치적 발언권과 참여권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시도다. 국민이 무능하고 판단력이 없다면, 그들의 의견은 들을 필요가 없고, 그들의 비판은 무시해도 되며, 그들의 저항은 진압해도 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이러한 규정은 민주정치의 철학적 토대를 근본적으로 훼손한다. 이것을 증명한 사람이 바로 검사 윤석열과 매춘부 영부인 김명신이지 않은가. 민주정치는 국민이 합리적 사고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공개적 토론과 숙의를 통해 올바른 판단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세워진 제도다. 하지만 권력자들이 국민을 ‘병신’으로 규정하는 순간, 이 모든 전제는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허울뿐인 껍데기로 전락한다.
사실 자본주의, 민주주의 다 거기서 거기, 기득권을 앞세운 유행하는 신사조에 불과하다. 이렇게 허울 좋은 철학으로 묶어 두고서라도 많은 대중을 다스리기 좋은 형태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정치적 신축성(politically flexible)이다. 그러나 실제로 국민을 병신으로 마음에 굳혀둔 순간, 부모 자식, 형제자매, 선후배 등 인간관계는 모두 무너지고 병신은 치워 버릴 존재가 된다. 한국 사회는 이 정치적 유연성과 인간성 파괴를 같이 경험한 사회다. 전쟁도 식민지도 분석하고 반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파괴적인 정치를 구사할 수밖에 없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 던지고 싸운 분, 민족을 위해 자기 재산을 헌납한 분, 항일 운동으로 처자식을 돌보지 못한 분, 강제 연행으로 디아스포라의 비극을 경험한 분…. 중요하고 참된 할 일을 한 사람들을 정직하게 평가하지 않는 관행 때문에 선한 사람들의 후손은 가난을 면치 못하고, 악하고 요령 좋게 산 자들은 지금 승승장구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의 왜곡된 세계관이 권력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육 현장에서 학생을 수동적 암기 기계로 취급하는 시선, 직장에서 노동자를 생산비용으로만 계산하는 태도, 언론이 독자를 광고 수익 창출의 도구로만 보는 관행은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이는 결국 사회 전체에 수직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문화를 확산한다. 이 구조적 모순은 개돼지가 있어야 기득권도 존재하는 법인데 잉태와 출산의 진리를 원천 무시하는 여성들의 기득권화로 이제는 인간 본능마저 거스르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형식적 민주주의 제도가 아무리 잘 갖춰져 있어도 실질적 민주주의는 작동할 수 없다. 해결책은 다층적이고 장기적인 접근을 요구한다. 제도적 차원에서는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 시스템을 강화해야 하고 정보 공개 제도의 확대, 시민사회의 감시 활동 지원, 언론의 독립성 보장, 사법부의 중립성 확보 등이 필요하다. 또한, 권력자들의 잘못에 대한 실질적 책임 추궁 메커니즘을 마련해야 한다. 문화적 차원에서는 시민 교육의 강화와 민주적 시민 의식의 함양이 필수적이다. 국민이 자신을 스스로 민주주의의 주체로 인식하고,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도록 해야 한다.
국민을 ‘개·돼지’나 ‘병신’으로 보는 권력자들의 정신세계는 결국 자신들을 병들게 하고 사회를 퇴행으로 몰아넣는 자기 파괴적 구조다. 관봉권 띠지 검찰 수사관들의 뻔뻔한 거짓말은 이런 구조적 문제의 단적인 사례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일관된 답변으로 국민을 우롱한 그들의 행태는 권력이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런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거짓으로 점철된 청문회, 뻔뻔한 검찰의 행태, 기득권의 오만함은 끝없이 반복될 것이다.
진정한 변화는 국민이 자신을 스스로 민주주의의 주체로 인식하고, 권력을 지속해서 감시하며, 잘못에 대해 단호하게 책임을 물을 때 가능하다. 국민이 ‘병신’이 아님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권력에 대한 깨어있는 감시와 적극적인 참여다. 권력자들의 거짓말을 간파하고, 그들의 책임 회피를 추궁하며, 민주적 제도를 통해 그들을 교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권력자들에게 국민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만들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이는 국민 주권의 실질적 구현이라는 민주주의의 근본 과제와 직결된다.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권력의 시선을 뒤집고, 진정한 의미에서 국민이 주인인 사회를 만들어갈 때, 한국 민주주의는 비로소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모든 시민이 참여해야 할 역사적 과제이자 책무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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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9
관봉권 사건에서 검찰 수사관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만 반복했다는 건 정말 충격적이었다.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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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5
글을 읽으면서 참 씁쓸합니다. 항일운동가 후손은 여전히 가난하고, 권력에 빌붙은 사람들 후손은 잘 먹고 잘 사는 현실… 우리가 왜곡된 역사를 정직하게 청산하지 못한 대가인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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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tra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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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국민이 주권자로 살아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를 다시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결국 답은 ‘깨어있는 시민의 지속적 참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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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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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병신이 아님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참여와 감시라는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더 이상 무력한 구경꾼이 아니라 주인으로 나서야 한다는 취지도 분명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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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ma
6
김정님, 남경민 두 수사관은 정말 교활한 모습을 보였다. 철저하게 수사해서 처벌을 받도록 하고
다른 수많은 검찰 수사관들에게 경종을 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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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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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너무 날카롭고 거칠지만, 그만큼 절실한 외침 같네요. 우리 사회가 진짜로 병들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희망도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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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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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곡을 찌른 글이다. 권력자들만 문제인 줄 알았는데, 결국 우리 국민 스스로가 줄서기와 영합에 익숙해진 게 더 큰 비극이라는 지적에 100%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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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wn8
5
너무 근본주의적인 해석 같네요. 자본주의든 민주주의든 제도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 제도를 왜곡하는 인간의 탐욕이 문제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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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eidon
5
읽으면서 너무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권력이 국민을 개·돼지로 보고 병신이라 규정한다는 게 이렇게 뻔뻔하게 드러나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방관자처럼 살고 있네요. 이제라도 국민이 정신 차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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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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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관들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일관된 답변을 보면서 정말 화가 났습니다. 저런 식으로 국민을 우롱하는 모습을 보니 글쓴이 말씀처럼 우리를 정말 '병신'으로 보고 있구나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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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k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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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향욱 사건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 반복되는 패턴을 보면, 이게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기득권층 전체의 집단적 무의식이라는 분석에 동의합니다. 우리가 정말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책임을 물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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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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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맞는 말이지만, 솔직히 이 나라에서 이런 구조가 쉽게 바뀔까요? 세대가 달라져도 권력은 여전히 국민을 우습게 보고, 국민은 또다시 권력에 줄을 서고… 끝없는 반복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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