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새 대표에 재선의 장동혁 의원이 선출됐다. 대선후보였던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2,367표 차이로 신승했다. 이변이었다. 그는 당원 선거인단 투표에서 18만5천401표(52.88%)를 득표해 16만5천189표(47.12%)를 얻은 김 전 장관을 2만212표 차로 눌렀으나 국민 여론조사에서는 3만4천901표(39.82%)를 얻어 5만2천746표(60.18%)를 득표한 김 전 장관에게 1만7천845표 뒤졌다.
애초 김 전 장관의 승리가 유력했지만 결선투표까지 가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이변이 잉태됐다. 선거판은 대체로 언더도그가 추격 끝에 막판 승리를 가져가는 경우가 흔히 생긴다. 노쇠하고 식상한 김문수에게 국민의힘 당원들이 더 이상 그 어떤 희망이나 기대도 걸 수 없다는 걸 보여준 선거였다.
비상계엄과 윤석열 탄핵으로 만신창이가 돼버린 국민의힘이기에 ‘차라리 재선의 신인에게 한번 맡겨보자’는 도박심리나 자포자기의 심리도 엿보인다. 그럼에도, 장동혁의 승리는 생경하다 못해 불안하고 음습한 보수정당, 더 나아가 한국정치의 암울한 미래를 예견하는 것 같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기간 중 눈길을 끌었던 장면 중 하나는 장동혁의 ‘포효’ 퍼포먼스였다. 복식에서 끌어올리는 딴딴한 발성과 웅변학원에서 배웠을 법한 강세와 고저장단, 그리고 마지막에 터져 나오는 과감한 손동작 제스처는 김문수의 졸린 화법을 압도했다.
하지만 왠지 웅변의 스킬만이 담긴 인공적이고 작위적인 연설로 느껴졌다. 마치 종교집단 ‘교주’가 고성과 과격한 제스처로 신도들을 압살하듯 장동혁의 ‘핏발 서린’ 연설은 현재의 국민의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괴한 장면이었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비상계엄과 윤석열 탄핵 이후 이성과 상식이 작동하는 정치가 아닌 감정과 혐오가 지배하는 컬트 정치집단이 돼 가고 있다. 목에 핏대를 있는 대로 세워 당원들의 울분과 분노를 최대치로 끌어올려 ‘반 이재명 전선’에 불을 지르려는 선동 정치가 당분간 갈길 잃은 보수정당의 나침반이 될 것이다.
국민들은 이 기괴스러운 국민의힘 전당대회 ‘결과’에 대해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상식을 가진 보통 사람이라면 비상계엄으로 대통령이 탄핵된 보수정당이 진정한 참회와 성찰로 거듭나는 것을 기대할 것인데 계엄을 옹호하고 그 내란우두머리를 면회 가겠다는 후보가 당 대표로 버젓이 올라서는 장면에서 당혹스러움을 넘어 분노까지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은 왜 민심을 거스르고 ‘반탄파’ 후보를 당대표로까지 밀어 올렸을까. 그동안 한국 정치에서 많은 보수지도자를 배출해왔고 ‘박정희 후예’라는 자부심으로 대한민국을 지금까지 이끌어왔다고 믿고 있는 국민의힘은 왜 그런 비상식적이고 절망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먼저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성공 방정식’을 자신들도 이뤄낼 수 있다고 믿거나 또는 착각을 하고 있다고 본다. 민주당은 개딸을 중심으로 하는 강성 지지층이 이재명이라는 ‘비주류’ 정치인을 끝까지 지지해 대통령 권좌에까지 밀어 올렸다. 이재명에게는 ‘사법리스크’라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지만 민주당은 그 약점을 정치검찰의 탄압이라는 프레임으로 전환시켜 결국 집권까지 이뤄냈다.
이재명의 사법리스크는 그가 대통령 권좌에 오르면서 완전히(아니면 다음에 보수정권이 집권하면 또 다시 재연될 수 있겠지만) 사멸해버렸다. 이 대통령 집권 동안 사법리스크가 그의 발목을 잡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의힘도 이재명이 집권하며 사법리스크가 해소된 것처럼, 그들도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게 되면 윤석열의 계엄과 탄핵도 ‘재평가’를 받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민주당이 이재명의 사법리스크를 대선 승리를 통해 사멸시킨 것과 유사하다. 국민의힘도 비상계엄과 탄핵이라는 원죄가 있지만, 이를 이재명 정권의 의회독재와 포퓰리즘 종식 프레임으로 전환해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계엄 내란행위의 불법성도 사멸될 것이라고 믿는 거대한 자기최면에 빠져 있는 것이다.
‘민주당도 하는데 우리라도 못할 게 없다’는 논리다. 이렇게 국민의힘이 허황되게 믿는 구석이 있는 까닭은 바로 ‘당원’이다. 이번에 장동혁이 예상을 깨고 반탄파임에도 당수 자리에 올랐던 배경에는 국민의힘도 민주당 못지 않게 강한 ‘팬덤정치’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장동혁이 취임 일성으로 밝힌 “모든 우파 시민과 연대해 이재명 정권을 끌어내리는 데 제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선언한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윤석열 내란행위와 탄핵의 원죄를 이재명 독재정권 종식이라는 전혀 엉뚱한 프레임으로 전환시켜 빠져나가려는 것이다.
여기에서 윤석열의 존재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국민의힘은 장동혁이 당선됨으로써 윤석열이 저지른 비상계엄과 탄핵의 정치적 책임을 그들의 당으로 직접 끌어들였다. 그리고 절대 사과하거나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이재명 독재정권 종식’ 프레임으로 버티기를 하면서 대여 투쟁을 할 것이다.
장동혁 체제는, 이재명이 사법리스크에 대해 사과하거나 성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정치 검찰의 탄압에 더 강하게 맞섰던 것처럼 국민의힘 또한 윤석열 계엄이나 탄핵에 대해 반성하는 것보다 더 선명하게 대여 투쟁을 하는 쪽으로 전략을 세울 것이다. 이렇게 민심과 따로 노는 여야의 행보는 당원이 지배하는 팬덤 정치에 기존 정치가 완전히 포섭돼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정치는 더 이상 소신과 협력이 지배하는 시스템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는 강력하고도 마약같은 팬덤 정치의 비이성적인 폭력에 지배당하고 있다. 정치인들도(정청래는 주류 당원들의 아바타가 된 지 오래다) 더 이상 골치 아프게 당원들을 설득하거나 주도하려고 하지 않는다. 당원들이 하는 말에 고분고분 따르면 당권도 먹고 대권도 먹고 배지도 먹는데 왜 고생스러운 길을 가려하는가라고 되묻는다. 팬덤 정치가 한국 정치의 새로운 전환점이자 본질인 것처럼 행동한다.
장동혁의 당선은 불법 계엄과 탄핵이 더 이상 옳고 그름의 가치와 합법성의 문제가 아니라 보수진영이 끝까지 사수해야 할 그들의 생존 방패가 됐음을 의미한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비상계엄과 탄핵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하며 ‘무른’ 태도를 보이게 되면 보수정당을 지탱하는 팬덤 정치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는 없고 팬덤만 남은 것이다.
많은 정치 전문가들이 한국 정치에 나타난 팬덤 정치에 대해 우려를 하고 있다. 당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게 하고 정치 참여 효능감을 높여주는 긍정적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팬덤 정치는 혐오와 분노, 배제와 낙인을 먹고 자란다. 때로는 양보하고 타협하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자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이지만 팬덤 정치는 당원 주권화를 명분으로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거나 비위를 거스를 때 그 ‘반역자’들을 ‘수박’이라고 낙인찍어 철저하게 밟아버린다. 국민의힘 또한 과거 박근혜가 ‘배신자’라고 했거나 지금 비상계엄에 대해 반대하거나 탄핵에 찬성하는 당원들을 ‘배신자’라며 공격한다. 민주당에 수박이 있다면 국민의힘에는 배신자가 있다.
이처럼 한국 정치는 팬덤 정치에 둘러싸여 그 본령의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다. 장동혁의 등극은 단순히 웅변 잘한 한 재선 의원의 이변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팬’들의 입맛대로 갉아먹는 ‘팬덤정치’가 정치의 중심권으로 완전히 진입했음을 알리는 음울하고도 절망적인 신호탄일 뿐이다. 팬덤의 열정과 에너지를 타협과 포용의 무대로 올려놓는 게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인데, 정청래와 장동혁이 올라탄 팬덤의 등에서는 분열과 갈등만이 자라나고 있다. 팬덤 정치에 미래는 없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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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a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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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아니라 팬덤이라니... 이제 한국 정당은 거의 종교집단 수준으로 타락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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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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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 말대로 국민의힘은 계엄과 탄핵에 대해 단 한 번도 성찰하지 않았다. 그걸 부정하고 덮는 게 당원의 정체성이라니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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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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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장동혁이 누구인지도 몰랐는데, 이 글 읽고 나니 국민의힘 전당대회 자체가 하나의 희극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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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d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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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혁이든 김문수든, 국민의힘은 미래가 안 보인다. 그냥 이재명 싫다는 감정으로만 버티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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飛上
2
장동혁 당선은 보수의 새 얼굴이 필요하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기득권 늙은 정치인보다 젊은 피가 낫다는 당원 심리가 작동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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飛行
6
팬덤 정치에 대한 우려에 깊이 공감합니다. 당원들의 참여가 늘어난 건 긍정적이지만, 그게 건강한 의견 개진이 아니라 혐오와 배제를 위한 도구로 쓰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정치인들이 강성 지지층에 휘둘리지 않고 소신을 지키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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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helor
4
장동혁이 웅변 쇼로 당대표 된 게 더 기괴하다. 이제 정치인 자질보다 목청 큰 사람이 이기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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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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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도 하는데 우리도 못할 게 없다'는 문장에 무릎을 탁 쳤습니다. 정말 보수정당이 민주당의 나쁜 점만 배운 것 같아요. 떳떳하게 국민들에게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게 먼저인데, 상대방 탓만 하면서 위기를 모면하려는 모습이 너무 실망스럽습니다. 미래가 안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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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a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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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혁 연설 보면서 왜 저렇게까지 목에 핏대를 세우나 했는데, 그게 감정 선동이었다는 걸 깨달았네요.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팬덤에 휘둘리는 정치, 정말 지긋지긋합니다. 우리 정치가 이대로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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