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발생한 ‘법원 폭동’ 사건에 대한 판결과 8월 5일 전광훈 압수수색을 통해 드러난 한국 사법체계의 모순은, 한편에서는 사이비 종교에 대한 과도한 관용을 포장한 사법부의 방패 역할, 다른 한편에서는 뒤늦은 수사로 사법당국의 범죄 흔적 지우기로 이래저래 망국으로 가는 대한민국 법치주의가 나라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법의 위엄이 무너진 법정에서 ‘다신 안 그럴거죠? 믿어요.’라고 말한 판사는 미성년자와 성매매한 남자가 사람을 현혹하는 말투 같다.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나온 이 말은 사법부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이다. 판검사 부도덕의 역사는 11년 전 이맘때 제주지검장 김수창이 길가에서 음란 행위를 하다가 걸렸던 때로만 잡아도 십 년이 넘는다. 자정 능력의 임계치를 그때로만 잡고 사법부가 반성했어도 이 정도 사태, 이런 나라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법원 내에서 벌어진 폭력 사건의 가해자들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되면서, 가증스러운 어눌한 훈계로 법의 무익함과 더러운 사법부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법원 폭동 사건은 우발적 범죄가 아니다. 사법 기관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자 법치주의 근간에 대한 공격이었다. 법정이라는 신성한 공간에서 벌어진 폭력은 국가 권위와 공권력에 대한 정면 도전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런데도 사법부는 ‘우발적 범행’, ‘반성문 제출’, ‘피해자와의 합의’ 등의 이유로 관대한 처분을 내렸다. 과연 이것이 법치주의를 수호해야 할 사법부의 올바른 판단인가. 어쩌면 사법부 스스로 린치를 당했다는 일말의 변태 같은 안도감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무릇 백성들의 눈총을 받으면서 접대와 향락이 당연한 조직 문화에 대한 무언의 가책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오늘 2025년 8월 5일 새벽, 서울경찰청 안보수사대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교회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특수건조물침입 교사 등의 혐의로, 서부지법 난입 사태의 배후로 지목된 전 목사에 대한 강제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사건 발생 7개월이 지나서야 이루어진 이 수사는 여러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왜 법원 폭동의 실제 가해자들에게는 관대한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배후 의혹자에 대한 수사는 7개월이나 늦었을까? 만약 전 목사가 실제로 이 사건을 선동했다면, 왜 실행범들을 먼저 관대하게 처리했을까? 이러한 시간 차이와 처벌 수위의 차이는 사법체계의 일관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사법부의 이번 대응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외부 압력과 사회적 파장을 의식한 정치적 판단의 가능성이다. 법원은 어떤 경우에도 법 앞의 평등과 공정성을 지켜야 하며, 권력이나 여론의 동향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보인 사법당국의 모습은 일관성을 찾기 어렵다. 실제 폭력을 행사한 이들에게는 ‘다시는 안 그럴 거죠?’라는 온정을 가장한 더럽게 징그러운 메시지와 함께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배후 의혹자에 대해서는 7개월 후 새벽 시간에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모습으로 하나 마나 한 수사를 선보였다. 이는 사건의 성격과 법적 책임에 따른 단계적 접근이 아니라, 다른 기준에 의한 차별적 대응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사법부가 보인 일관성 없는 처벌 기준이다. 비슷한 성격의 다른 사건들과 비교했을 때, 실행범에 대한 관대함과 배후 의혹자에 대한 뒤늦은 강경 대응의 조합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권력기관이 개입되거나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패턴은 사법부가 진정 법의 수호자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법치주의는 법이 모든 것 위에 있다는 원칙이다. 권력자든 일반인이든, 인기 있는 대의든 그렇지 않든, 모든 것은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한다. 그런데 사법부가 실행범에게는 온정적 메시지로 범죄에 대한 응징을 흐지부지하고, 배후 의혹자에게는 시기를 놓친 수사로 대응한다면, 이는 법치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다. 법정 폭력은 명백한 범죄행위이며, 이에 대한 적절한 처벌은 사회 질서 유지와 재범 방지를 위해 필수적이다. 하지만 사법부가 보인 과도한 관용은 오히려 유사 범죄를 부추기고 공권력에 대한 도전을 용인하는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 동시에 배후 인물에 대한 뒤늦은 수사는 사법체계의 민첩성과 일관성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킨다.
오늘 전광훈 압수수색은 수사 행위를 넘어, 사법당국이 사회적 압력과 정치적 환경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서부지법 난동 실행범들에 대한 관대한 처벌과의 대조는 사법당국의 대응이 법리적 판단보다는 정치적 요인에 의해 좌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사법부가 사회적 논란을 피하거나 정치적 환경 변화에 맞춰 판결과 수사의 시기와 강도를 조절한다면, 이는 더는 법의 수호자가 아니라 정치적 계산에 좌우되는 기관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해방 후 줄곧 이런 식의 안하무인 수사와 권력 유착 사법부의 이중적 태도는 국민에게 ‘사법부는 과연 왜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을 갖게 한다. 진정한 사법 정의는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여론의 동향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법과 증거에 근거한 원칙적 판단에서 나오는 게 교과서적이지만, 실제로는 사법부가 비리와 범죄의 배양처이자 온상이다.
한국 사법부는 지금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법치주의의 수호자로서 본연의 역할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권력과 여론의 눈치를 보며 원칙 없는 판결과 무의미한 수사를 지속할 것인가. 법원 폭동 사건에 대한 과도한 선처와 배후 인물에 대한 뒤늦은 수사는 후자의 길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위험한 신호다. 사법부는 이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국민의 수준도 개차반이 되어 더러운 사법부를 나무랄 수준의 지식인도 거의 남지 않았다. ‘다시는 안 그럴 거죠?’라는 대사는 범죄자만이 내뱉을 수 있는 메아리다. 법의 권위를 세울 수도 없고 판사 자신의 판단에도 의아함을 남기는 이 명대사는 미래 한국이 망하는데 마중물이 된 사법부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오직 엄정한 법 적용과 공정한 처벌, 그리고 일관성 있는 수사를 통해서 진정한 법치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옛 성현들의 시대가 실제 있었는지, 우리가 그런 유전자를 물려받은 후손인지 의심스럽다.
법원 폭동 무리에 대한 관대함과 인두겁을 쓴 목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보여주는 시간 차이와 대응 차이는 한국의 법치주의가 얼마나 취약한 상태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한국은 사법부 때문에 망할 것이다. 전쟁에서 무기와 전술 부족 때문이 아니라, 법의 수호자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권력과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적이고 원칙적인 판결과 수사로 국민의 신뢰를 얻을 필요성이 없는 인간들 때문에 망한다.